조송원의 ‘천방지축, 세상을 논하다’ (17) 행복에 관해 ①간이역과 종착역
조송원의 ‘천방지축, 세상을 논하다’ (17) 행복에 관해 ①간이역과 종착역
  • 조송원 기자 조송원 기자
  • 승인 2021.12.05 13:15
  • 업데이트 2021.12.07 15:00
  • 댓글 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픽사베이]

“대체로 일반 백성은 상대방의 재산이 자기보다 열 배 많으면 몸을 낮추고, 백 배 많으면 두려워하며, 천 배 많으면 그의 일을 해주고, 만 배 많으면 그 하인이 된다. 이것이 사물의 이치다.”

전쟁 역사극이나 영화에서 자주 공성전攻城戰이 전개된다. 적의 성을 함락하기 위해 성벽에 사다리를 걸쳐놓고 병사들이 기어오른다. 성 위에서는 수비군이 활을 쏘거나 돌덩이를 내리 던지며 기어오르는 공격군을 막아낸다. 끓는 기름이나 물을 퍼붓기도 한다. 대체로 선봉으로 사다리를 기어오르는 병사는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사다리 타느라 두 손도 제대로 사용할 수 없는 판국에, 위에서 활이든 돌덩이든 끓은 기름과 물이든 퍼부어대는데 무슨 용빼는 재주가 있어 성벽을 무사히 넘을 수 있으랴!

앞장서 사다리를 기어오르는 병사의 심사는 대관절 어떤 것일까? 군율이 혹독해서일까, 아니면 왕이나 국가에 대한 충성심의 화신이어서일까? 우스갯소리로 군인정신은 ‘제정신이 아니’라고들 하던데, 그 무엇에 취해 정신이 혼미해져 제정신이 아닌 게 아닐까?

“부富라는 것은 사람의 타고난 본성이라 배우지 않아도 누구나 얻고 싶어 한다. 그러므로 건장한 병사가 전쟁에서 성을 공격할 때 먼저 오르고, 적진을 점령하여 적군을 물리치며, 적장을 베고 깃발을 빼앗으며, 화살과 돌을 무릅쓰고 끓는 물과 불의 어려움도 피하지 않는 것은 큰 상을 받기 위해서이다.”

위의 두 인용문은 『사기열전』의 제69편 「화식열전」에 나오는 내용이다. 사기열전의 마지막인 제70편은 「태사공자서」이다. 이는 책의 머리말 격이다. 요즘은 저자 머리말을 맨 앞에 배치하지만, 예전에는 맨 끝에 두었다. 그러므로 이 화식열전이 실질적으로 마지막 편으로 볼 수 있다. 화식貨殖은 ‘돈(재화)을 불린다(殖)’는 뜻이다. 곧 ‘먹고 사는 문제, 돈벌이’에 대한 내용이다.

저 서산西山에 올라/고사리를 뜯네/폭력을 폭력으로 바꾸었건만/그 잘못을 모르는구나/신농, 우, 하나라 때는 홀연히 지나갔으니/우리는 앞으로 어디로 돌아가야 하나?/아아! 이제는 죽음뿐/우리 운명도 다했구나!

사기열전 제1편 「백이열전」에 나오는 ‘채미가采薇歌’이다. 백이와 숙제는 이 노래를 부르며 고사리를 채취하여 먹고 살다가, 결국 수양산에서 굶어죽었다. 그들은 주 무왕이 은나라 폭군 주왕紂王을 방벌하는 것은 대의에 어긋난다고 믿었다. 하여 주나라 곡식을 먹지 않았다. 아쉬운 건 수양산도 주 무왕의 통치 관할에 있었으므로 고사리 역시 주나라의 나물이니 이것마저 거부했어야 하지 않을까?

사기열전은 고결한 정신의 귀족 백이·숙제로 시작하여, 물질에 대한 인간의 욕망을 다룬 화식열전으로 대미를 장식한다. 사기열전을 이렇게 구성한 사마천의 의도는 무엇일까? 인간은 부와 명예를 얻기 위해 목숨을 걸고(성벽 사다리 타고 오르는 병사), 삶의 푯대에 또한 목숨을 건다(백이·숙제). 병사가 목숨을 건 목적은 부와 명예일 것이고, 백이·숙제가 목숨을 걸고 지키고자 한 것은 ‘소신’이다. 그러나 이것이 종착역일까? 부와 명예를 획득하고, 소신을 지키며 사는 삶 다음에는 뭐가 있을까? 행복이 아닐까? 그렇다면 부와 명예와 소신은 행복의 밑바탕일 뿐, 목적은 아니다.

탈레스(Thalés)는 ‘고대 그리스의 7현인’의 한 사람으로 꼽히고 있다. 그는 사람들, 심지어는 자신의 하녀에게까지 비웃음을 샀다. 왜냐하면 그가 하늘의 별을 관찰하다가 우물에 빠졌는데, 하녀가 구출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탈레스를 ‘철학의 아버지’라 부르며, 『정치학』에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탈레스는 가난했던 탓에 철학이 쓸모없다는 사실을 스스로 보여주는 실례라는 핀잔과 비웃음을 샀다. 이야기에 따르면, 그는 아직 겨울인데도 별을 관측하는 기술을 이용해 이듬해 올리브 농사가 대풍작을 거둔다는 사실을 예측했다. 그래서 얼마 안 되는 돈으로 키오스와 밀레토스의 모든 올리브 압착기 사용권을 얻기 위한 공탁금을 걸었지만, 아무도 그와 경합을 벌이지 않았기 때문에 싼 가격에 사용권을 획득했다. 마침내 추수할 때가 되자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부랴부랴 몰려와 압착기를 빌리려 법석을 떠는 와중에, 그는 자기가 원하는 가격에 압착기를 임대해준 대가로 엄청난 돈을 벌었다. 따라서 그는 철학자들이 원하기만 하면 쉽게 부를 축적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지만, 정작 철학자들의 야심은 다른 것이다.”(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들은 근대철학자들과는 달리, 자연철학자로서 현재의 과학자에 가깝다-필자 주)

우리의 삶에서 목적은 아련하고, 수단만 또렷하다. 행복이 목적이라면 부와 명예, 소신 등은 모두 수단에 불과하다. 행복이란 종착역에 다다르기 위한 간이역인 수단에 매몰된 버둥거림이 우리 삶이다. 이 수단을 제대로 확보하는 일에만도 벅차다. 또 간이역을 통과하지 않고 종착역까지 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렇지만, 곰곰 생각해 보자. 고故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미국 연방대법관은 “판사는 그날의 날씨를 읽지 말고, 그 시대의 기후를 읽어야 한다.”고 갈파했다.

긴즈버그의 말을 빌려 표현하자면, 사람은 수단(부,명예,소신)만 읽지 말고, 목적(행복)을 읽어야 한다. 적어도 수단에만 얽매이지 말고, 한 번쯤 목적도 생각해볼 일이다.<계속>

<작가 / 선임기자, ouasaint@injurytime.kr>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