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무지(道无知)의 채근담 읽기 (348) - 산나물과 들새는 기르지 아니하여도 그 맛이 향기롭고 담백하거늘 …                                                      
도무지(道无知)의 채근담 읽기 (348) - 산나물과 들새는 기르지 아니하여도 그 맛이 향기롭고 담백하거늘 …                                                      
  • 허섭 허섭
  • 승인 2021.12.14 07:00
  • 업데이트 2021.12.16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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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8 오호범(吳湖帆 1894~1968) 절동소경(浙東小景) 43.2+65.5
오호범(吳湖帆, 1894~1968) - 절동소경(浙東小景)

348 - 산나물과 들새는 기르지 아니하여도 그 맛이 향기롭고 담백하거늘 …  

산나물은 물 주어 가꾸지 아니하고  들새는 기르지 아니한 것이건만
그 맛이 향기롭고도 담백하니

우리들도 능히 세상 법도에 물들지 않으면 그 인품이 뛰어나 남다르지 않겠는가

  • 山肴(산효) : 산나물.  肴는 ‘안주’ 를 뜻하나 ‘나물, 채소 절임’ 을 뜻하기도 한다.
  • 世間(세간) : ‘인공(人工)’ 의 의미로 쓰임.
  • 灌漑(관개) : 물을 댐. 인위적으로 물을 주어 키움을 뜻함. 두 글자 모두 ‘물 대다’ 의 듯이다.   灌漑水路(관개수로) * 그 옛날 9급공무원 시험에 자주 나왔던 한자어이다.
  • 野禽(야금) : 들새.  禽은 두 발 달린 날짐승, 獸는 네 발 달린 길짐승을 말함.
  • 豢養(환양) : 먹여서 기름, 사육(飼育)함.  豢은 養과 마찬가지로 ‘기르다’ 의 뜻인데 ‘곡식으로 사육하는 것’ 을 뜻한다.
  • 冽(예) : 차갑다, 맑다, 깨끗하다. 여기서는 그 맛이 ‘담백하다’ 는 의미이다.
  • 爲(위) A 所(소) B : A로 B하는 바 되다. (A로 인하여 B하게 되다, A에 의해 B하게 되다)
  • 點染(점염) : 물들어 더럽혀짐. 
  • 臭味(취미) : 냄새와 맛. 여기서는 ‘인격(人格), 품격(品格)’ 을 뜻함.
  • 逈然(형연) : 아득히 먼 모양. 여기서는 ‘특별히 뛰어나다’ 의 뜻으로 쓰임.
348 오호범(吳湖帆 1894~1968) 매경서옥도(梅景書屋圖) 73.5+36.9 상해박물관
오호범(吳湖帆, 1894~1968) - 매경서옥도(梅景書屋圖) 

◈ 김관식 「거산호(居山好)2」

오늘, 북창(北窓)을 열어, / 장거릴 등지고 산을 향하여 앉은 뜻은 / 사람은 맨날 변해쌓지만 / 태고(太古)로부터 푸르러 온 산이 아니냐.  //  고요하고 너그러워 수(壽)하는 데다가 / 보옥(寶玉)을 갖고도 자랑 않는 겸허한 산.  //  마음이 본시 산을 사랑해 / 평생 산을 보고 산을 배우네.  //  그 품안에서 자라나 거기에 가 또 묻히리니 / 아아(峨峨)라히 뻗쳐 있어 다리 놓는 산.  //  네 품이 내 고향인 그리운 산아 /  미역취 한 이파리 상긋한 산 내음새 / 산에서도 오히려 산을 그리며 / 꿈 같은 산정기(山精氣)를 그리며 산다.

※ 본인이『채근담』에서 인용한 현대 시인의 작품으로는 몇 사람이 안 되지만 유독 김관식 시인의 작품이 세 편이나 되는 것은 그만큼 채근담에서 말하는 동양적 세계관에 가장 근접한 시인이 그이기 때문이다. 그 누구에게도 그 무엇에게도 굽히지 않는 처절한 자존(自尊)과 오만(傲慢), 그는 바로 현대판 도연명(陶淵明)이었다.

◈ 정지용 「장수산」 1, 2

장수산 1.

벌목정정(伐木丁丁) 이랬거니 아람도리 큰솔이 베혀짐즉도 하이 골이 울어 멩아리 소리 쩌르렁 돌아옴즉도 하이 다람쥐도 좃지 않고 뫼ㅅ새도 울지 않어 깊은산 고요가 차라리 뼈를 저리우는데 눈과 밤이 조히보담 희고녀! 달도 보름을 기달려 흰 뜻은 한밤 이골을 걸음이랸다? 웃절 중이 여섯판에 여섯번 지고 웃고 올라 간뒤 조찰히 늙은 사나히의 남긴 내음새를 줏는다? 시름은 바람도 일지 않는 고요에 심히 흔들리우노니 오오 견듸랸다 차고 올연(兀然)히 슬픔도 꿈도 없이 장수산(長壽山) 속 겨울 한밤내 ―

장수산 2.

풀도 떨지 않는 돌산이오 돌도 한덩이로 열두골을 고비고비 돌았세라 찬하눌이 골마다 따로 씨우었고 어름이 굳이 얼어 드딤돌이 믿음즉 하이 꿩이 긔고 곰이 밟은 자옥에 나의 발도 노히노니 물소리 귀또리처럼 즉즉(喞喞)하놋다 피락 마락하는 해ㅅ살에 눈우에 눈이 가리어 앉다 흰시울 알에 흰시울이 눌리워 숨쉬는다 온산중 나려앉는 휙진 시울들이 다치지 안히! 나도 내더져 앉다 일즉이 진달레 꽃그림자에 붉었던 절벽(絶壁) 보이한 자리 우에!

※  1939년 3월 『문장』에 발표된 정지용의 작품으로 1941년 9월에 간행된 정지용 시집 『백록담』에 재수록 되었다.

「장수산 1」은 반향과 흐름이라는 감각적 심상을 빌려 정신적 고요의 공간을 빚어내는 시적 표현과 구성의 긴밀성을 보여주는 시이다. 「장수산」은 전체적으로 의식의 접점과 교묘한 울림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 시는 시적 표현이 성취한 것만큼의 정신적 승리의 기록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으나, 장수산의 공간적‧시간적 심상을 빌려 <고요> 로 표상되는 동양적 세계에 근접한 정신적 고투의 기록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바람도 일지 않는 고요’ 는 장수산의 고요이며 화자의 시름은 고요하면 고요할수록 ‘심히 흔들리우는’ 반어적 순간에 서 있는 것이다.

이는 결코 동화될 수 없을지 모르는 시인과 장수산, 곧 인간과 자연의 경계선이라 하겠다. 그러나 그는 인간적 차원을 넘어서는 견인(堅忍)의 정신으로 극복하고자 한다. 초월적 의식은 인간과 자연이 일체화되는 동양적 자연관의 구경(究竟)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어떤 면에서 여기서 볼 수 있는 정지용의 정신주의는 허정(虛靜)의 세계로 몰입하기 위한 첨예한 의식의 싸움이라고 볼 수 있다. 

「장수산 2」는 「장수산 1」과 유사한 화법과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문장의 종결을 거부하며 지속되는 흐름, 독특한 시어의 사용, 감각적 심상의 원용 등의 측면에서 그러하다. 그러나 결코 어둠 속에서 그가 견디려는 시름을 정신적 고투를 통하여 극복한 것이라고 할 수 없다. 

정지용이 이 두 편의 시를 통하여 보여주는 정신적 탐색은 몰입의 한 경계선을 완전히 타파하지 못한 채 ‘절벽이 보이는 자리 우에’ 멈추어 버린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정지용은 스스로 설정한 정신적 시련인 ‘고요’ 그 자체에 침잠함으로써 물아일체(物我一體)에 도달한 것이 아니라 물아화해(物我和解)의 지점에 서게 된 것이다.

             - 『한국현대문학대사전』 권영민  민음사


※ 1연 1행의 자유시이다. 1939년 3월 『문장』 2호에 발표되었으며 1941년 9월에 간행된 정지용 시집 『백록담』에 재수록되었다.

이 시는 한겨울 장수산을 시공간적 배경으로 삼아 산속 정경과 산승의 거동을 묘사하고 있다. 줄글로 이어진 행 사이사이에 뚜렷하게 구분되는 휴지부를 두어 호흡과 여운을 부여한 것이 특징이다.

“벌목정정(伐木丁丁) 이랬더니”라는 첫 구절은 『시경(詩經)』 ‘소아(小雅) 벌목(伐木)’ 편에 등장하는 구절로 산속에서 나무를 벨 때 쩡 하며 울리는 소리를 나타낸다. 아름드리 소나무게 베어지면 골짜기가 울리며 메아리 소리가 돌아올 것 같다며 장수산의 깊이를 표현한 것이다. 『시경』에서는 나무 베는 소리가 쩡쩡 울리니 새들이 날아 자기 벗을 찾는다는 구절이 나오는 것에 비해 이 시에서는 “다람쥐도 좇지 않고/멧새도 울지 않아/깊은 산 고요가 차라리 뼈를 저리우는” 적막한 정경을 강조한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산중에는 눈과 달이 종이보다도 흰 밤이 펼쳐진다. 흰 종이처럼 펼쳐진 산속 풍경 속에서 산중들의 고요한 움직임이 섬세하게 드러난다. 환한 달빛 아래 걸음을 하여 이웃 산사를 찾은 ‘웃절 중’은 “여섯 판에 여섯 번 지고 웃고 올라 간”다. 내기에 초연하여 모든 판을 지고도 웃으며 돌아가는 ‘웃절 중’은 “조찰히 늙은 사나히”로서 오랜 수양의 흔적을 보여준다. 이처럼 장수산과 그 안의 동식물과 사람이 모두 “바람도 일지 않는 고요”에 익숙해져 있는 것에 비해 이 시의 화자는 시름이 일어 견디기 힘들어 한다. “오오 견디랸다 차고 올연히 슬픔도 꿈도 없이”라는 다짐은 마음속 번뇌를 다스려 장수산의 정경처럼 고요와 평정에 이르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준다.

일제 말기에 쓴 이 시에는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깊은 산을 찾은 시인의 번민이 깃들어 있다. 어지럽기 그지없는 현실에 비해 적막할 정도로 고요한 장수산에서 시인은 탈속과 극기의 이상향을 만난다.

이 시는 정지용의 후기시에서 주를 이루는 산수시를 대표하며 시인의 정신적 지향을 함축하고 있다. 동양 시가의 전통을 이루는 정경교융(情景交融)과 여백의 묘미를 새롭게 창조해내 현대시의 가능성을 확장한 시로 평가된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배움의 공동체 - 학사재(學思齋)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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