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무지(道无知)의 채근담 읽기 (349) - 대 심고 학과 노닐어도 그 가운데 스스로 깨닫는 바가 있어야만 … 
도무지(道无知)의 채근담 읽기 (349) - 대 심고 학과 노닐어도 그 가운데 스스로 깨닫는 바가 있어야만 … 
  • 허섭 허섭
  • 승인 2021.12.15 07:00
  • 업데이트 2021.12.16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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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9 유해속(劉海粟 1896~1994) 급행열차(急行列車) 1929년
유해속(劉海粟, 1896~1994) - 급행열차(急行列車), 1929년

349 - 대 심고 학과 노닐어도 그 가운데 스스로 깨닫는 바가 있어야만 …                                                    

대를 심고 꽃을 가꾸고 학과 노닐고 물고기를 바라보아도
또한 그 가운데 스스로 깨닫는 바가 있어야 하니

한갓 눈앞의 광경에 빠져 그 겉모습만 취한다면 
이는 우리 유가(儒家)에서 말하는 구이지학(口耳之學)이요 
불가(佛家)에서 말하는 (허무에 빠진) 완공(頑空)일 따름이니
어찌 아름다운 맛과 멋이 있으리오

  • 栽花種竹(재화종죽) : 대를 심고 꽃을 가꿈.
  • 玩鶴觀魚(완학관어) : 학과 놀고 물고기를 바라봄.
  • 段(단) : 일단(一段). 여기서는 ‘하나의 ~, 일종의 ~’ 라는 뜻이다.
  • 自得處(자득처) : 스스로 깨닫는 바.
  • 徒(도) : 한갓되이, 헛되이.
  • 留連光景(유련광경) : 눈앞의 광경에만 빠져 있음. 留連은 ‘반하여 빠져듦’.
  • 玩弄物華(완롱물화) : 겉모습의 화려함만 완상(玩賞)하고 즐김.
  • 口耳(구이) : 구이지학(口耳之學). 학문이 귀로 들어와 입으로 나간다는 뜻으로 깨달음과 실천이 없는 소인(小人)의 학문을 말함.
  • 釋氏(석씨) : 석가(釋迦), 불교.
  • 頑空(완공) : 만물을 공(空)으로 보는 소승불교(小乘佛敎)의 견해.  * 후집 14장 참조
  • 而已(이이) : ~할 뿐이다, ~할 따름이다.
  • 佳趣(가취) : 아름다운 맛(멋).
349 유해속(劉海粟 1896~1994) 황산(黃山) 135+65.6 1954년
유해속(劉海粟, 1896~1994) -황산(黃山), 1954년

◈ 『순자(荀子)』 권학편(勸學篇)에

君子之學也(군자지학야) 入乎耳(입호이) 著乎心(착호심) 布乎四體(포호사체) 形乎動靜(형호정동). 端而言(단이언)  蝡而動(연이동)  一可以爲法則(일가이위법칙). 小人之學也(소인지학야) 入乎耳(입호이) 出乎口(출호구) 口耳之間(구이지간) 則四寸耳(즉사촌이) 曷足以美七尺之軀哉(갈족이미칠척지구재).

- 군자의 학문은 귀로 들어와서 마음에 붙어 온 몸에 퍼져 행동으로 나타난다. 소근소근 말하고 점잖게 움직여 모두가 법도가 될 만하다. 소인의 학문은 귀로 들어와 입으로 나간다. 입과 귀 사이는 불과 네 치일 뿐인데 어찌 일곱 자나 되는 몸을 아름답게 할 수 있겠는가

著 : 붙을 착.    動靜 : 行動擧止    端 : 喘(속삭일 천)과 通함    蝡 : 꿈틀거릴 연/윤, 즉 점잖게 움직임.    耳 : 어조사 이, 한정을 나타내는 助詞     曷 ‘ 어찌 갈.    

古之學者(고지학자) 爲己(위기) 今之學者(금지학자) 爲人(위인). 君子之學也(군자지학야) 以美其身(이미기신) 小人之學也(소인지학야) 以爲禽犢(이위금독). 故不問而告(고불문이고) 謂之傲(위지오) 問一而二告(문일이이고) 謂之囋(위지찬). 傲非也(오비야) 囋非也(찬비야), 君子如嚮矣(군자여향의).

- 옛날 학자들은 자신을 위하여 학문을 하였고 지금의 학자들은 남에게 보이기 위해 학문을 한다. 군자의 학문은 그 자신을 아름답게 하기 위함이나, 소인이 학문 하는 것은 남에게 내놓아 남을 이용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므로 묻지도 않았는데 이야기하는 것을 ‘시끄러움(傲)’이라 하고 하나를 물었는데 둘을 얘기하는 것을 ‘뽐냄(囋)’이라고 한다. 시끄러움도 잘못이요, 뽐냄도 잘못이니, 군자는 소리가 울리듯 일에 따라 적절히 행동하는 것이다. 

禽犢 : 사람들이 처음 만날 때 선물로 가져가는 폐백(禮記 曲禮), 소인들은 학문을 남에게 선물하는 폐백처럼 출세의 수단으로 삼는다는 말.    傲=嗷 : 시끄러울 오.    囋 : 기릴 찬, 지껄일 찰.  (독음의 찬과 찰 선택이 애매함)    嚮 : 響(울릴 향)과 통함. 즉 종을 치면 울리는 것에 비유한 것이다.

349 유해속(劉海粟 1896~1994) 황산인자폭(黃山人字瀑) 131+67.5 1981년
유해속(劉海粟, 1896~1994) - 황산인자폭(黃山人字瀑), 1981년

◈ 『설원(說苑)』에

君子之學也(군자지학야) 入於耳(입어이) 藏於心(장어심) 行之以身(행지이신).

- 군자의 학문은 귀로 들어가 마음에 새겨지고 몸으로 행해진다.

※ 이른바 위기지학(爲己之學)과 위인지학(爲人之學)의 출전은『논어(論語)』헌문편(憲問篇)이다. < 古之學者 爲己, 今之學者 爲人 - 옛날의 학자는 자기 수양을 위해서 공부했는데 오늘날의 학자는 남에게 보이기 위해서 공부한다. > 라는 공자님의 짧은 이 한 마디 말에서 비롯된 것이다. 

얼핏 글자 그대로 풀이하자면 정반대로 아는 오해의 소지(所持)가 있다. 흔히 말하는 우리말 속담 ‘배워서 남 주랴’ 하는 것은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위한 배움, 이기적(利己的)인 학문이지만, ‘배워서 남 주자’ 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베푸는 배움이요 나아가 세상을 위한 학문인 것이다. 공자님 말씀대로라면, 옛날의 학자들은 자신의 지식과 덕행을 쌓고 인격을 수양하기 위한 爲己之學에 힘썼으나, 오늘날의 학자들은 오로지 자신의 박학다식(博學多識)을 자랑하고 남보다 돋보이고 잘 살기 위한 爲人之學에 힘쓴다는 이야기이다.

오늘날은 물론 공자님 시절에도 자신의 입신양명(立身揚名)을 위해 학문을 했지 세상을 위해 공부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나 보다.

<배움의 공동체 - 학사재(學思齋)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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