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무지(道无知)의 채근담 읽기 (356) - 인생이란 조금이라도 덜어내면 그만큼 벗어날 수 있는 것이거늘 … 
도무지(道无知)의 채근담 읽기 (356) - 인생이란 조금이라도 덜어내면 그만큼 벗어날 수 있는 것이거늘 … 
  • 허섭 허섭
  • 승인 2021.12.22 07:00
  • 업데이트 2021.12.24 16:3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356 관량(關良 1900~1986) 백사전(白蛇傳) 69+70 북경 중국미술관
관량(關良, 1900~1986) - 백사전(白蛇傳)

356 - 인생이란 조금이라도 덜어내면 그만큼 벗어날 수 있는 것이거늘 …                                                    

인생에 있어서 한 푼을 덜고 줄이면 그만큼 그것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

말하자면 사귐을 덜면 분란을 면하고, 말을 덜면 허물이 적어지고, 
생각을 덜면 정신을 헛되이 쓰지 않고, 총명함을 덜면 본성을 보전할 수 있다.

사람들이 날로 덜기를 구하지 않고 오직 더하기를 구하는 것은 
진실로 자기 인생을 스스로 얽어매는(속박하는) 것이다.

  • 減省(감생) : 덜어내어 줄임. 
  • 一分(일분) : 한 푼, 적은 양(量)을 의미함. 즉 ‘조금, 쬐끔’ 으로 옮기면 될 것이다.
  • 便(변) : 곧, 이내, 문득.
  • 如(여) : 만약, 만일. 여기서는 ‘예를 들어, 말하자면’ 의 뜻으로 옮기면 될 것이다. 
  • 紛擾(분요) : 분쟁으로 시끄러움. 
  • 寡(과) : 적어짐.
  • 愆尤(건우) : 허물, 잘못.  두 글자 모두 ‘허물’ 의 뜻임.
  • 耗(모) : 소모(消耗)하다. 헛되이 쓰다.  耗는 ‘줄다, 다하다 , 없애다, 쓰다, 소모하다’.
  • 聰明(총명) : 원래 聰은 ‘귀가 밝은 것’ 이고, 明은 ‘눈이 밝은 것’ 이다. 
  • 混沌(혼돈) : 천지개벽(천지개벽) 이전의 어두운 상태, 즉 본성(本性)을 뜻함. 앞에 나온 聰明에 대응하는 말이다.
  • 彼(피) : 저들, 곧 ‘세상 사람들’ 을 가리킴.
  • 桎梏(질곡) : 속박(束縛)과 구속(拘束). 桎은 죄인의 발에 채우는 차꼬를 말하며, 梏는 손에 채우는 수갑(手匣)을 말한다. 이외에도 목에 채우는 칼이 있으니 모두 형구(刑具)이다.

◈ 『원사(元史)』 야율초재전(耶律楚材傳)에

興一利不若除一害(흥일리불약제일해) 生一事不若減一事(생일사불약감일사) 

- 하나의 이익을 일으키는 것은 하나의 폐단을 없애는 것만 못하고, 하나의 일을 만드는 것보다 하나의 일을 줄이는 것이 더 낫다.

※ 야률초재(耶律楚材 1190 ~ 1244) : 자 진경(晉卿). 시호 문정(文正). 
요(遼)나라의 왕족 출신. 대대로 금(金)나라를 섬겼으며, 천문·지리·수학·의학·유교·불교·도교(道敎)에 통달하였다. 1215년 몽골군이 연경(燕京: 北京)을 점령하자 칭기즈칸에 항복, 정치고문이 되어 서역(西域) 원정에 종군하였다. 오고타이의 즉위를 도와 중서령(中書令)으로 중용되었으며, 1234년 금나라가 멸망하자 화북(華北) 지역의 실정에 적합한 정치를 폈다. 군정(軍政)과 민정(民政)을 분리하여 군·관(軍官)이 민정을 간섭하지 못하도록 하였으며, 세제(稅制)를 정비하여 몽골제국의 경제적 기초를 확립하였다. 

시인으로서도 뛰어나 문집 《담연거사집(湛然居士集)》(14권)과, 서역에 종군했을 때의 견문기인 《서유록(西遊錄)》 등이 있다. 아들 주(鑄)도 세조 쿠빌라이를 섬겨 고관이 되었는데, 특히 시인으로 유명하였다. 

◈ 『명심보감(明心寶鑑)』 존심편(存心篇)에

生事事生(생사사생) 省事事省(생사사생) 

- 일을 벌이면 자꾸 일이 생기고, 일을 줄이면 자꾸 일이 줄어든다.

※ 이 장의 말씀을 들으니 평소 내가 농담처럼 하는 말도 이와 관련될 듯하여 여기에 한번 말해 둘까 한다.

다석 유영모 선생께서는 하느님을 일컬어 ‘없이 계시는 분’ 이라 말씀하신다. 어디 하느님을 직접 본 사람이 있는가? 그렇다고 하느님을 계시지 않는다고 부정할 수 있는가? 하여 다석 선생께서는 하느님을 ‘없는 듯이 계시는 분’ 이라 칭하신 것이다. 

가장 바람직한 삶이란, 하느님의 자녀로 하느님처럼 하느님을 닮아 살아가는 것일진대, 가장 바람직한 삶은 바로 ‘있는 듯이 없는 듯이 살아가는 삶’ 일 것이다. 

하여 나는 평소 ‘있는 딕히 없는 딕히 사는 것이 가장 잘 사는 것이며, 그리고 살고난 뒤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이 가장 완전한 삶이다’ 라고 농담조로 말하곤 한다.

<배움의 공동체 - 학사재(學思齋) 관장>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