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송원의 ‘천방지축, 세상을 논하다’ (25)기다리는 사람
조송원의 ‘천방지축, 세상을 논하다’ (25)기다리는 사람
  • 조송원 기자 조송원 기자
  • 승인 2022.01.16 12:42
  • 업데이트 2022.01.17 11:1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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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 노인네가 택시를 탔다. 목적지에 도달하자 ‘잔돈을 준비하지 못해 미안하다’면서 10만 원짜리 자기앞수표를 건넸다. 기사는 힐끗 그 손님의 위아래를 살폈다. 꾀죄한 입성에 듬성한 흰 머리칼에다 우글쭈글한 면상으로, 영락없는 촌 늙은이였다. 사납금을 맞추지 못해 애면글면하던 터라 거스름돈을 내줄 만한 벌이도 하지 못했다. 부아가 치밀었다.

기사는 근처 은행으로 가서 수표를 100원, 500원짜리로 바꿨다. 거스름돈 자루를 늙은이에게 던져주며 빨리 내리라고 했다. 사납금을 맞추려면 몇 탕을 더 뛰어할지 모른다. 마음이 급했다. 그런데 노인은 내릴 눈치는 전혀 없고 자루의 동전을 일일이 세고 있었다. 기사는 마음이 더욱 급해졌다.

“거스름돈은 정확히 맞습니다. 바쁩니다. 제발 빨리 내리소!” “이놈아, 조용히 해. 네 말 때문에 세던 걸 잊어버렸어. 다시 세야겠다.” 기사는 정신 버쩍 들었다.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이러다간 영영 사납금 맞출 시간도 다 뺏기게 생겼다. 골부림을 한 내가 천벌을 받는구나. 생각에 예에 미치자 손에 화독내가 날 정도로 빌었다.

“어르신, 제가 잘못했습니다.” 그러자 노인은 “나도 잔돈을 준비 못할 사정이 있었다네.” 그리고 하여튼 수고했다며 동전 한 움큼을 자리에 두고 택시에서 내렸다.

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에 세워진 김삿갓 기념 조형물. [문화체육관광부 해외문화홍보원 코리아넷 / CC BY-SA 2.0] 

#2.
一步二步三步立(일보이보삼보립)
山靑石白間間花(산청석백간간화)
若使畵工摸此景(약사화공모차경)
其於林下鳥聲何(기어림화조성하)

걸음마다 멈춰 서 구경하니
푸른 산 흰 바위 사이사이 꽃
화가가 이 경치 그리게 되면
숲속에서 지저귀는 새소리는 어찌할까

김 삿갓은 배가 고팠다. 발품의 고통이야 산천 구경의 즐거움으로 에낀다치더라도 배고픔에는 음식밖에는 직방이 없다. 금강산의 절경도 배가 부른 후에나 눈에 들어오는 법이다. 해가 건듯 기울고 저자거리에 들어섰다. 음식 내에 이끌려 한 주막 앞에 섰다. 소매 속의 엽전을 걸량짚어 본다. 먹으면 한뎃잠 자야 하고, 봉노에서 하룻밤 편하려면 굶어야 한다. 칡덩굴처럼 생각이 얼크러진다.

“게서 뭐하는 게요? 손님 길 막고.” 대뜸 주인이 호통을 친다. “미안하외다. 음식 냄새가 하도 좋아서 좀 맡고 있었소.” 김 삿갓이 겸연쩍게 말했다. 주인은 초라한 행색으로 봐 사먹을 위인이 못 됨을 눈치로 긁었다. 천하의 장사꾼인 주인은 돈 벌 자투리를 예사 보아 넘기지 않았다. “사 먹진 못하고, 냄새만 맡았다? 그럼 냄새 값을 내소.”

김 삿갓은 몇 십 년을 떠돌며 직접 눈으로 확인했다. 산천은 사시사철 철따라 옷 바꿔 입으며 아름답다. 그러나 세정世情은 사시사철 철도 없이 각박하다. 삿갓은 소매 속의 엽전을 꺼냈다. 그리고 두 손 안에 넣고 흔들었다. 짤랑짤랑. “됐소. 이 엽전 소리가 냄새 값이오.” 이 말을 남기고 삿갓은 저자거리를 뒤로 했다. 배고픔과 한뎃잠을 각오하고, 그래도 어딘가로 걸었다.

 

#3. “20분 이상 기다림을 당하는 여자가 있고, 그래도 여전히 그 여자가 떠나지 않을 땐, 그녀는 기다리는 남자와 이미 육체관계가 있다······. 거꾸로 20분 이상 계속 기다리는 남자는 이제부터 올 여자와 아직 육체관계가 없다······.” 아토다 다카시의 단편소설 「기다리는 남자(待っている男)」에 나오는 말이다.

까마득한 푸르디푸른 시절, 연인과 도시의 언덕배기에 나란히 앉아 아파트 숲의 야경을 보고 있었다. 안톤 체홉(1860~1904)에 대한 이야기를 한 것 같다. 그녀는 체홉이 단편소설만으로 일가를 이룬 러시아의 대문호라고 말하여, 자서전적인 소설 「갈매기」에서 갈매기의 의미를 얘기했다. 나는 듣기만 했다. 내심으로는 딴 걸 생각하고 있었다. 출처가 어딘지는 모른다. 막 성년이 될 무렵에 읽었다. ‘비로소 여자(성욕?)에서 벗어났다. 남자가 오십 살이 되면 이렇게 진정으로 자유가 된다.’ 이 말을 한 사람이 체홉일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녀에게 체홉의 생몰연대를 물었다. 몰랐다. 다만 그녀도 그 나이가 되면 충분히 성에서 해방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우리에게 그 나이는 짐작키도 어려운 먼 미래였다.

조송원

웬만한 쓰레기장에는 세탁기 몇 대를 만들고 남을 만한 부품을 쓰레기 더미 속에 품고 있다. 그러나 쓰레기장에 전류를 흐르게 한다고 해서 세탁기가 작동해 빨래를 해주지 않는다. 어쩜 세월은, 경험은, 기다림은, 그리고 기억은 어떤 기계의 부품일지언정 쓰레기 더미 속의 쓰레기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체홉은 44세에 사망했다. 그러니 내 기억은 틀렸다. 육십갑자를 한 번 순회하고도 몇 년이 더 지났다. 그럼에도 그 노인네의 지혜를 갖지 못했다. 김 삿갓의 재치 대신 욱하고 옥신각신 말다툼을 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아직도 분 냄새에 자유롭지 못하다.

그래도 기다린다. 누구든 무엇이든 기다리지 않는 삶은 삶이 아니니까. 다만 세월이, 경험이 가져다주는 것은 이만하면 됐다. 취사선택해 질서를 잡지 않으면, 경험이든 지식이든 쓰레기에 불과하다. 이젠 쌓기보단 버릴 때이다. 쓰레기를 다 치우고 온전한 부품만 골라 전류가 통하면 세탁기가 휭하고 돌아가는 날을 기약하며, 기다린다.

<작가/선임기자, ouasaint@injurytim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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