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현숙 시인의 '詩의 아고라'(41) 허밍처럼
손현숙 시인의 '詩의 아고라'(41) 허밍처럼
  • 손현숙 손현숙
  • 승인 2022.02.19 11:07
  • 업데이트 2022.03.20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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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밍처럼
                          손현숙

 

 

어떤 생각이 여기까지 이끌었을까, 한 발이 한 발을 따라가고, 그 뒤를 또 다른 발자국이 따라간다 저기, 환하게 빛을 지고 선 사이프러스, 나무가 예를 갖춘 듯 양쪽으로 늘어섰다

소실점 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곳, 누구는 차를 마시고 농담을 하고 더러는 무릎 위에 담요를 덮었다

거기에서 한 치의 망설임도 없기를, 바람이 오랜 비밀처럼 하늘을 간다 한 번도 가본 적은 없지만, 아무도 되돌아오지 않았다

밝음, 저 도열의 끝을 지나 한 발짝만 들어서면 죽은 자들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빛으로 사람을 가볍게 당기는, 문득 걷다 보면 허밍처럼 빛을 터트리는,

- 손현숙 시집 《일부의 사생활》(시인동네, 2018) -

손현숙 시집 《일부의 사생활》 앞 표지와 날개

시작메모 :

소설을 읽다 보면 삶과 죽음이 낮과 밤처럼 반복된다. 마치 한 방향으로 마주 접어 꼭 들어맞는 데칼코마니 같다. 이곳에서의 햇빛이 그곳에서는 물빛으로. 삶 쪽에서의 사랑이 죽음 쪽에서는 뒷모습으로. 단지 전과 후 지금과 나중처럼 약간의 시간을 두고 반복 변화하는 것들이 오히려 천연덕스럽다.

손현숙 시인

윤회를 믿느냐고 누가 묻는다. 윤회를 믿는다기보다는 이번 생이 꼭 마지막 같지는 않다고 대답한다. 나는 꿈속에서 죽은 아버지와 꽃구경도 한다. 그런 날은 종일 꽃멀미 하면서, 너무나 생생해서 어이없기도 하다. 딱 한 발짝 문지방을 넘으면 그곳에 갈 수 있다는 예감. 여전히 그곳에서도 웃음소리 들리고 빛그늘로 사람을 당기기도 하리라. 자기만큼의 삶을 모두 걸어서야 도달할 수 있는 완성. 그 나라에 갈 때는 허밍처럼 가벼웠으면 좋겠다. 가서, 당신이 보고 싶었노라, 은은하게 말도 건네보리라.

 

손현숙 시인
손현숙 시인

◇손현숙 시인은 

▷1999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너를 훔친다》 《손》 《일부의 사생활》 《경계의 도시》(공저)  《언어의 모색》(공저) 
▷사진산문집 『시인박물관』 『나는 사랑입니다』 『댕댕아, 꽃길만 걷자』 
▷연구서 『발화의 힘』, 대학교재 『마음 치유와 시』 
▷고려대 일반대학원 문학박사(고려대, 한서대 출강) 
▷현 조병화문학관 상주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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