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홍재 시인의 렌즈로 보는 풍경 그리고 길] (26) 무소유 법정 스님 향기를 찾아 - 불일암과 선암사를 가다
[박홍재 시인의 렌즈로 보는 풍경 그리고 길] (26) 무소유 법정 스님 향기를 찾아 - 불일암과 선암사를 가다
  • 박홍재 기자 박홍재 기자
  • 승인 2022.02.22 11:16
  • 업데이트 2022.02.24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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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즈26-1. 무소유길에 가슴에 담을 명언이 그려져 있다
 무소유길에 가슴에 담을 명언이 새겨져 있다

송광사 암자로 뒤편을 올라가면 불일암이 자리하고 있다. 조계산에 와서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 길을 찾는다. 옛 기억으로 송광사 뒤편 율원 쪽에서 오르면 부도가 있고, 불일암 가는 오솔길이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절 입구에서 왼편으로 오르막으로 난 길이 불일암 가는 길이라고 이정표가 나 있다.

불일암은 무소유의 삶을 살아가시면서 현대인에게 책을 통해 많은 가르침을 주신 법정 스님께서 17여 년을 공부하시던 암자이다. 지금은 스님은 계시지 않지만, 숨결이라도 찾아볼 양으로 오른다. 겨울 햇살이 내리쬐는 오름길은 차량이 다닐 수 있게 잘 닦여져 있었다. 오름길은 역시 힘이 든다. 땀이 난다. 다시 뒤돌아보면 앞산이 우리를 굽어보고 있는 것 같다. 찻길이 거의 끝날 즈음에 오른편으로 오솔길이 나타났다. 옛날 다니던 길이라 발길이 닿지 않아서 발자취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 길이 정다워서 그냥 길을 걸어보았다. 계속 가보고 싶지만, 불일암 쪽으로 돌아서 '무소유 길'로 접어든다.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이 솟은 편백 나무와 대숲이 길을 안내한다. 길에 들어서자마자 법정 스님의 체취가 나는 것 같다. 무소유의 길 / 행복은 결코 많고 큰 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작은 것을 가지고도 고마워하고 만족할 줄 안다면 그는 행복한 사람이다. 여백과 공간의 아름다움은 단순함과 간소함에 있다.[법정 스님의 『홀로 사는 즐거움』 중에서] 

'무소유 길'에 아담하게 나무로 된 현판이 서서 우리에게 깨달음을 전해주고 있다.

 대문 격인 앞 문이 정겹게 맞아준다

옛 기억도 새록새록 나타난다. 깔끔하신 스님 성품이 길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었다. 아직은 스님의 체취가 남아 있지만, 언젠가는 지금 모습도 어떤 모습으로 변형되어 뒷사람들에게 전해질지 궁금해진다. 그리고 스님을 친견한 사람과, 책으로 만나본 사람과, 떠도는 이야기를 전해 들은 사람들이 느끼고 생각하는 그림이 다를 것이다. 나는 아직도 젊은 비구의 모습 법정 스님을 기억해내곤 한다.

 불일암. 왼쪽 축담의 의자는 법정 스님이 평소 앉았던 의자

불일암에 들렀을 때 산책 중이셨다. 우리는 스님을 향해 합장한 후, 그냥 뒤돌아 나왔던 기억이 난다. 스님의 시간을 우리가 빼앗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 뒤로는 일부러 내가 꼭 알아야 할 의문이 없으면, 스님 친견을 하지 않기로 마음먹은 계기가 되었다. 요즘도 꼭 볼 일이 없는 한 스님들의 공부하는 시간을 방해하지 않으려 한다.

책을 펴낸 청정한 글귀에서부터 법석에서 사자후 같은 말씀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에 대해 법문을 하시던 모습이 떠오르곤 한다.

‘스님은 1932년 전남 해남에서 태어나 대학 재학 중이던 1954년 입산 출가하여 효봉 스님을 은사로 2010년 3월 입적할 때까지 올곧은 수행자의 길을 걸었다. 출가한 뒤 20여 년 동안은 전쟁의 참화를 겪고 난 후라 나라 전체가 어려웠지만, 상처가 난 국민의 마음을 치유해주어야 할 불교계는 자기 문제를 해결하기에도 벅찼다. 내부 갈등과 분쟁이 끊이지 않았고 이에 휘둘리는 이들이 많았지만, 스님은 이런 분위기에 흔들리지 않고 수행자의 길을 묵묵히 걸었다. 스님의 수행 여정에서 서울 봉은사 다래헌에 주석하던 시절은 일반인들에게 크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1960년대 중반부터 1975년까지 다래헌에 머물렀다. 운허 스님을 도와 동국역경원의 경전 번역에 매진하고, 봉은사에 둥지를 틀었던 대불련 구도부 학생들의 스승이 되어 바른길을 가도록 지도하였다.’<불교신문 이병두의 사진으로 보는 불교에서 발췌>

이처럼 다래헌에서 공부하던 중 신도들이 찾아와 자신의 공부하는 시간을 낼 수 없으니 자신 공부를 위해 다시 옮겨 내려온 곳이 이곳 불일암이다. 불일암에서도 견디지 못해 나중에는 오대산 오막살이에서 혼자 지내시었다.

스님이 세상을 향해 내던진 맑은 소리는 『무소유』를 비롯해 『영혼의 모음』, 『서 있는 사람들』, 『말과 침묵』, 『산방한담』, 『텅 빈 충만』, 『물소리 바람 소리』, 『버리고 떠나기』,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산에는 꽃이 피네』, 『오두막 편지』 ,『아름다운 마무리』, 『홀로 사는 즐거움』 등에 담겨 있다. 스님의 깊은 사유에서 우러나온 담백한 언어와  화두들로 불자들뿐만 아니라 수많은 국민에게 감동과 깨우침을 주었다.

작은 대문 같은 입구를 지나 대숲 길이 끝나면 암자가 언덕 위에 자리하고 있다. 스님이 산책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손을 모은다. 한 걸음씩 오른다.

스님이 앉았던 의자와 스님 사진이 벽에 걸려 있다. 주인을 잃은 암자는 묵묵히 햇살을 받고 앉아 있다. 아래에는 스님 한 분이 계시었다.

후박나무 아래에는 ‘법정 스님이 계시는 곳이라며 스님의 유언에 따라 가장 아끼고 사랑하던 후박나무 아래 사리를 모셨다.’라는 메모가 있었다. 꽃 한 다발이 흰색과 분홍색을 띤 채 얌전히 얹어져 있다.

법정 스님의 사리가 모셔진 후박나무

왼쪽 언덕에 제7대 자정국사 부도 묘광탑이 따스한 햇볕을 받고 자리하고 있었다. 참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나무토막으로 만든 의자도 손수 짜맞춘 탁자 등 불일암에 있는 물건 하나하나가 화려하지 않고 깔끔한 모습이 나도 닮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위에 얹힌 귤 향기가 더욱 코를 자극한다. 사탕 한 알까지도 스님의 얼굴이 겹쳐진다.

스님의 숨소리를 듣는 시간이 길어지자 또 다른 방문객이 들어오니 우리는 자리를 내어주어야겠다 싶어 합장하고 무소유 길을 내려왔다.

겨울 해가 짧지만, 한 곳을 더 가보기로 하고, 조계산 동쪽 너머 선암사로 방향을 돌린다. 선암사 가는 새길이 생겨서 그리 멀지 않다.

렌즈26-6. 선암교와 그 뒤로 강선루가 보인다
 선암교와 그 뒤로 강선루가 보인다

선암사는 올라가는 초입에 부도가 오른편에 줄지어 있다. 숲길이 넓고, 눈에 확 들어오는 것이 보물 제400호인 승선교(昇仙橋)가 바윗덩이를 겹겹이 쌓아 아치형을 만든 것이다. 보기 드문 그림이다. 겨울이라 물은 많지 않지만, 조계산을 적시고 내려오는 물은 맑고 깨끗하다. 그 너머로 강선루(降仙樓)가 날아갈 듯한 기와지붕이 펼치고 서서 사람들을 맞는다. 동그랗게 생긴 연못 안에 알 모양의 섬이 축조된 삼인당은 겨울이라 그 모습이 초라해 보인다. 삼인당은 삼법인 즉 제행무상인(諸行無常印), 제법무아인(諸法無我印), 열반적정인(涅槃寂靜印)을 뜻하는데 삼인당은 불교의 중심사상을 나타낸 것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선암사에서만 볼 수 있다.

렌즈26-7. 선암사 일주문이 고풍스럽다
 선암사 일주문이 고풍스럽다

조계산 선암사(曹溪山仙巖寺)란 편액이 걸린 일주문이 언덕 위에서 맞이한다. 더 앞으로 들어서면 태고총림조계산선암사(太古叢林曹溪山仙巖寺) 현판이 고풍스럽게 사물(법고, 범종, 운판, 목어)을 지닌 건물을 지나간다.

선암사는 ‘한국불교 태고종 태고총림. 대한불교 조계종 제20교구 본사. 신라 542년에 창건했다고 전해지나 「사적기」에 의하면 875년에 도선국사가 창건했다고 한다. 1092년에 의천이 중창했으나 임진왜란 때 모두 소실되어 1660년에 재건을 시작했다. 1701년에 불조전이 완성되었고, 대웅전의 개수 및 승선교 축조 등 대대적인 확장과 정비가 이루어졌다. 1819년에 화재로 소실되었으나 중건했고, 1823년 다시 불이 나자 해붕 등이 중수했다. 사적 제507호로 지정되었다. 2018년 6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안내판에서>

선암사 대웅전과 쌍탑
선암매가 봄에 꽃 피울 날을 기다리고 있다

대웅전과 각황전, 선암매와 뒤깐(해우소)으로 유명하다. 선암매는 아직 겨울을 뚫고 나오지 않았지만 궁금하여 싹틔울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선암사 해우소를 가서 실컷 울어라/해우소에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으면/죽은 소나무 뿌리가 기어 다니고/목어가 푸른 하늘을 날아다닌다/풀잎들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주고/새들이 가슴속으로 날아와 종소리를 울린다/눈물이 나면 걸어서라도 선암사로 가라/선암사 해우소 앞/등 굽은 소나무에 기대어 통곡하라’ 정호승 시인의 〈선암사〉라는 시가 생각이 났다.

 선암사 뒤깐(해후소)

선암사를 일목요연하게 말해주는 이 시 한 편을 소개하면서 발걸음을 돌린다.

<글, 사진 = 박홍재 객원기자, taeyaa-park@injurytime.kr> 
 

박홍재 시인

◇박홍재 시인은 

▷경북 포항 기계 출생 
▷2008년 나래시조 등단
▷나래시조시인협회원
▷한국시조시인협회원
▷오늘의시조시인회의회원
▷세계시조포럼 사무차장(현)
▷부산시조시인협회 부회장(현)
▷시조집 《말랑한 고집》, 《바람의 여백》 
▷부산시조작품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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