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 시인의 단시조 산책 (19) 소품이 되다 - 정경화
이광 시인의 단시조 산책 (19) 소품이 되다 - 정경화
  • 이광 이광
  • 승인 2022.02.23 07:01
  • 업데이트 2022.02.25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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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품이 되다
                           정경화

 

 

명품백의 행차에 내 어깨는 가방걸이다

혹시나 비 젖을까 어쩌다 스크래치 날까

꼼짝도 하지 못하는, 나는 이미 소품이다


정경화 시인의 <소품이 되다>를 읽는다. 명품백의 지배하에 놓인 화자의 심리 상태를 잘 보여주고 있다. 명품족이라면 최고 브랜드를 통해 자기 과시적 소비를 하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인데 이는 과거 오렌지족처럼 비난의 시선이 살짝 얹혀 있다. 우리나라가 고도의 경제성장으로 해외명품의 새로운 시장이 되자 고급 소비문화가 하나의 흐름을 이루었다. 부유층 고객뿐 아니라 젊은 직장인들 사이에서도 마치 새로운 가치에 투자하는 열정으로 명품을 찾는다.

화자는 명품백에 자신의 어깨를 가방걸이로 기꺼이 내어놓는다. ‘명품백의 행차’란 표현은 가방걸이란 사실이 만족스럽고 자랑할 만하다는 걸 드러내고 있다. 중장 전구 ‘혹시나 비 젖을까’ 우려하는 모습엔 웃음을 머금는다. 명품이 아니더라도 새것이면 누구나 스크래치가 나기 전까진 조심스레 대한다. 건데 일단 흠이 생기고 나면 오히려 편안하게 다루면서 애착이 쌓이기도 한다. 한편 명품을 금이야 옥이야 아끼는 마음은 애착보다는 집착에 가깝다.

명품을 소유했지만 그 명품에 ‘꼼짝도 하지 못하는’ 구속을 겪은 화자는 자신이 명품을 앞세우다 ‘소품’이 되었음을 깨닫는다. 결국 화자는 이른바 소유냐 존재냐 하는 선택에 자신을 결정해야만 한다. 화자가 과연 명품을 소품의 위치로 돌려보내고 제 자리를 지킬 수 있을까. 명품에 사로잡힌 자신을 노출하여 명품에 현혹된 세태를 슬그머니 꼬집고 있다.

 

이광 시인
이광 시인

◇이광 시인 : ▷2007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당선 ▷부산시조 작품상, 이호우 시조문학상 신인상, 나래시조문학상 수상 ▷시조집 《소리가 강을 건넌다》, 《바람이 사람 같다》, 현대시조 100인선 《시장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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