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내게 준 선물 (33) 퇴계에게 길을 묻다
인생이 내게 준 선물 (33) 퇴계에게 길을 묻다
  • 이미선 이미선
  • 승인 2022.02.24 10:14
  • 업데이트 2022.02.26 10:0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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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교단일기 / 부산시광역시교육연수원장

유안진의 '지란지교를 꿈꾸며’ 와 같은 친구가 있다. 40년이 다 되어가는 긴 세월 만나왔지만 한 번도 오해하거나 섭섭해하는 일이 없다. 우리는 한 달만에 만나도, 어제 만나고 오늘 또 만나도 여여(如如)하다. 어떤 이야기도 숨기거나 과장할 필요가 없어 편하고 좋다. 그 오랜 지기(知己) 철순이에게 문자가 왔다.

“어제 통도사 성보박물관에서 열리는 전시회 다녀왔어. ‘무풍한송로’도, 그림도 너무 좋아 너랑 다시 가고 싶은데, 갈래?”
“좋지. 안 그래도 통도사 홍매화도 보고 싶었는데 잘됐다. 가자.”

통도사 앞 주차장에 차를 대고 언제 걸어도 좋은 소나무 숲길을 걸었다. 이름하여 ‘무풍한송로’(춤출舞, 바람風, 찰寒, 소나무松, 길路). 해마다 이즈음이면 봄을 알리는 법당 앞 ‘홍매화’는 아직 만개하지 않았다. 매화나무가 봉오리만 살짝 얼굴을 내밀며 말을 건넨다. 오늘은 ‘성보박물관’ 그림 속 매화부터 만나고 시간 내어 다시 걸음하란다. 

‘그래, 기다림은 설렘이니 그 맘으로 한 주를 보내고 다시 오자.’ 

눈빛으로 전하고 김양수 화백의 ‘아 매화불이다’ 전시회를 돌아보았다.

김양수 화백의 '홍매화' 그림 앞에서 필자

부처는 어디로 갔나
큰 법당이 텅 비었다
뜨락에 홍매화 피었다
아 매화불 매화불이다. 

황청원 시인의 ‘통도사’ 시(詩)를 소재로 그린 김양수 화백 그림 앞에서 한동안 머물렀다. 

‘아, 너도 부처, 매화도 부처, 곳곳에 부처가 있구나.’

작가님께 혹 그림 사진을 찍어 인저리타임에 올려도 되는지 여쭈어보니 흔쾌히 승낙해 주신다. 사진도 찍고 도록에 싸인까지 받는 행운을 안고 돌아왔다. 작가님의 말씀처럼 ‘화연(華連)’이다.

김양수 화백의 '아 매화불이다' 도록 표지.

‘매화’ 하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퇴계 이황. 퇴계의 재발견. 

고등학교 윤리시간에 따분하게 만났던 성리학의 대학자 퇴계가 아닌 너무나 인간적인 퇴계. 아내를 잃고 단양군수로 갔을 때 관기였던 두향과의 진실한 사랑. 퇴계가 풍기군수 발령이 나는 바람에 1년도 채 나누지 못한 짧은 인연이 더 절절하다. 두향이 퇴계에게 준 마지막 선물, 매분(梅盆). 퇴계는 죽는 날까지 매분(梅盆)을 방에 두었고, 두향에 대한 그리움 담아 100여 편의 매화에 관한 시(詩)를 지었다. 

퇴계가 존경받아 마땅한 것은 세계적인 대사상가, 성리학자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겸손하고 따뜻한 성품으로 몸소 실천한 인격자이기 때문이다. 퇴계의 일화 중 교사인 내가 특히 감명받은 부분은 제자들에게 진정한 깨우침을 준 그의 실천적 삶이다.

그 시절 선비들은 도산서원에 몇 년씩 기거하면서 학문을 깨치고 돌아가곤 했다. 아내 행실이 바르지 못하다며 공부 마치고 돌아가면 아내를 내쳐 버리겠노라고 말한 제자가 있었다. 그가 공부를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갈 때 퇴계는 편지를 한 장 주면서, 고향 집에 들어가기 전 읽고 들어가길 당부했다. 하늘 같은 스승의 편지라 마을 어귀 나무 아래에서 읽었는데, “조강지처(糟糠之妻)를 버리지 말게. 나를 보게나. 나도 이렇게 살지 않는가.”라는 내용이었다.

첫 번째 아내를 잃은 후 퇴계가 맞은 두 번째 아내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역적으로 몰린 집안이라 정신적인 문제를 안고 있었고,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거두어들였다고 전해진다. 편지를 읽고 서생은 생각했다. 모자라는 아내인데도 존중하고 배려하며 삶에서 본을 보여준 스승의 모습, 자신의 욕심과 어리석음을 깨닫게 해 준 스승을 향해 선비는 큰 절을 올리고 집으로 들어가 아내를 용서하며 가정을 잘 꾸렸다고 한다. 소위 ‘Learning by doing!’이다.

무릇 참다운 교육이란 ‘앎이 곧 삶이 되는 교육’이다. 말이나 책, 가르침 속에서도 배우지만, 교사나 부모, 어른들이 삶 속에서 실천하는 모습을 보고 아이들은 더 크게 성장한다. 첫 발령지에서 만난 중2 우리반 아이 중 사춘기를 심하게 앓던 아이가 있었다. 거의 매일 지각하고 규칙을 어기고 묻는 말에도 전혀 대답을 하지 않는 참 힘든 아이였다. 그러던 그 아이가 어느 날 스스로 말을 걸어와 깜짝 놀랐다. 

“어머나 방금 니가 말한 거 맞지? 목소리도 그렇게 좋구만 왜 그동안 통 말을 안했을까? 어떻게 말을 먼저 걸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아무튼 너무 좋고 고맙다. 마음을 열어주어서.”

“선생님 죄송합니다. 사실 저는 어릴 때부터 아빠, 엄마가 집을 나가 할머니랑 삽니다. 어른들이 너무 싫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에게도 맘을 못 열고 반항했습니다. 그런데 지난주 토요일 온천천 단체 자연보호 활동 나갔을 때, 우리들에게는 냄새나는 하천에 들어가 쓰레기 주우라고 시키고는 다른 샘들은 이야기만 하고 있었는데, 샘은 직접 더러운 하천에 들어가 우리들과 같이 활동하는 거 보고 제 맘이 열렸습니다.” 라고 말했다. 

이미선 원장
이미선 원장

‘아 다 우리 어른들 잘못이구나. 아이를 무책임하게 버리고 상처를 주고..... 듀이가 말한 Learning by doing!이란 바로 이런 거구나. 아이들은 무심한듯해도 다 보고 있고 생각하고 있구나.’  

교사의 자리, 두렵고도 중(重)하다.

퇴계가 우리에게 길을 묻는다. 

새 학년,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아이들을 맞이하고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

<교육학 박사, 부산시교육연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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