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74) 제2부 농사꾼 기출씨 - 제6장 격변속의 7남매 ③정찬이의 귀향 
대하소설 「신불산」(74) 제2부 농사꾼 기출씨 - 제6장 격변속의 7남매 ③정찬이의 귀향 
  • 이득수 이득수
  • 승인 2022.03.15 07:00
  • 업데이트 2022.03.16 11: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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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격변속의 7남매 ③정찬이의 귀향 

여름방학이 지나고 일찬이는 다시 서울로 가고 덕찬이와 열찬이도 부지런히 학교에 다녔다. 덕찬이 때까지는 넉넉하지는 못해도 온 식구가 농사에 매달려 밥은 먹는다며 극빈자 취급은 받지 않았는데 열찬이는 학교에 입학하자마자 못 사는 집 아이로 꼽혀 점심시간에 강냉이 죽을 타 먹거나 가끔 탈지(脫脂)우유을 배급받게 되었다. 

그러나 열찬이가 노란 손수건을 가슴에 단 1학년 2반 아이들에게 이상한 아이로 비친 것은 다른데 있었다. 분명히 입학식에 보이지 않던 아이 하나가 이튿날 교실에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마른버짐이 덕지덕지한 새까만 얼굴에 코를 한 발이나 빼물고서 말이다.

 

그렇게 입학식부터 지각으로 출발했지만 열찬이는 입학하자말자 전교에 파다한 소문의 주인공이 되었다.

우선 공부를 잘 하는 천재라는 소문은 다섯 살도 못 되어 누나의 등 뒤로 한글을 떼고 한문 천자문도 거의 안다는 것이었다. 버든 마을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은 상급생이나 교사들이 직접 찾아와 물어보고 제법 어려운 한자도 능숙하게 쓰는 것을 보고 입을 딱 벌리면서 소문은 자꾸만 퍼져나갔다. 

거기다 언양국민학교와 중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백일장에서 장원을 하고 전국유일의 국립학교인 체신학교에 입학한 일찬이의 동생이라는 것도 더욱 소문을 부채질했다.
 

그러나 좋은 일이 있으면 반드시 나쁜 일도 있는 법, 그 반대의 소문도 퍼졌는데 열찬이네는 가난한 동네 버든에서 논밭도 조금 밖에 없고 식구가 많아 매우 가난하다는 것이었다. 거기다 몇 년 전 정신이 살쭉했던 순찬이누나의 소문과 어머니가 또 아이를 가졌다는 것이 결정적으로 열찬이의 집안이 못 산다는 인상을 심게 했다. 그래서 열찬이는 평생의 굴레가 된 공부는 잘 하지만 너무도 못 사는 집안의 아들이란 딱지가 붙고 말았다.

 

그해 큰집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집을 나간 지 16년이나 된 서른넷의 정찬이가 돌아온 것이었다. 마당귀퉁이의 작은 채전 밭에 자주빛 감자 꽃이 피고 하얀 감꽃이 뚝뚝 떨어져 여덟 살의 열찬이가 큰집의 창감나무 밑에서 감꽃을 주워 실에 꿴다고 정신이 없는 저녁나절이었다. 에헴, 낮은 기침소리와 함께 하얗고 반질반질한 얼굴에 키가 작은 청년하나가 사립문을 기웃거리더니

“어무이 있능교?”

줄레줄레 들어와 마루에 앉아 한참이나 온 집안을 두리번거리는 것이었다. 한참이나 기척이 없자 그는 손에 든 작은 톱 하나를 탕 소리 나게 마루에 놓았다. 비로소 방안에서 낮잠이 들었던 상남댁이 인기척에 깨어나 눈을 비비고 마루에 나와

“누고! 이기 누고?”

와락 껴안는데

“아부지는 요? 할매는 요?”

슬며시 품을 빠져나온 청년이 물어보자

“아이구, 야야, 정찬아! 어데 갔다 인자 오노? 아부지도 할매도 벌써 다 세상 배맀다.”

상남댁이 눈물이 흥건한 얼굴로 이윽히 아들의 얼굴을 바라보는데 마당에서 물끄러미 바라보던 열찬이는 언젠가 순찬이누님로부터 들은 큰집에는 대구로 식모 살러 가서 소식이 없는 복찬이누나와 일이 하기 싫어 집을 나간 깰밪은 형님 정찬이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이 생각나 한참이나 정찬이를 바라보는데

“어무이, 야는 누요?”

뚫어지게 쳐다보는 열찬이를 가리키자

“니 사촌 열찬이다. 저 우에 덕찬이하고 금찬이라는 딸도 둘이나 더 있다. 니가 집나가고 낳은 것이.”
“형님하고 상찬이, 종찬이, 귀찬이는 다 어데 갔능교?”
“상찬이는 군에 가고 귀찬이는 서울에 식모살이를 갔다. 종찬이는 왔다갔다 천방지축으로 돌아 댕기는데 곧 군에 갈 끼다.”

하는 순간

“이기 누고? 니 정찬이제?”

한쪽 다리를 질질 끌며 뒷방에서 동찬이가 나왔다. 마침 갈배기논에 갔다 오던 기출이가 평소와 달리 큰집 마루에 사람소리가 나는 지라 “에헴!” 인기척을 내고 들어오자 놀라서 벌떡 일어난 정찬이가

“자, 잔 아부지...”

목구멍에 도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하고 눈치를 살폈다.

“이기 누고? 정찬이 아이가? 그래 잘 왔다. 객지 돌아댕긴다고 고생이 많았제?”

기출이가 마루에 걸터앉으며

“웬 톱이고? 반질반질한 기 잘 들겠네”

요리조리 훑어보다가 

“그래 그동안 어데 가서 뭐 했노?”

진지한 눈빛으로 물었다.

“여기저기 돌아댕기다가 뭐 이것, 저것 해보기도 하고 뭐...”

정찬이가 자꾸 말끝을 흐렸다. 저렇게 약한 몸에다 무슨 일에도 관심이나 취미가 없고 오로지 제 몸 하나가 제일 귀한 아이가 굶어죽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래, 벌써 16년이나 되었구나. 그 동안 뭔 기술은 좀 배웠나?”
“...”
“그라문 돈은 좀 벌었나?”
“...”

눈을 내려 깐 정찬이는 도무지 말이 없었다.

“그라문 뭐 쫌 들고 왔노? 설마 집나간 지 16년 만에 빈 손들고 왔단 말이가?”
“...”

쥐구멍이라도 들어갈 듯 목덜미까지 새빨개진 정찬이를 보며

“내 그럴 줄 알았다. 집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는 어련히 안 샐라꼬? 그렇게 깨알밪은 인간이 어디 가서 환영받고 어디 가서 돈을 벌꼬!”

쯧쯧 혀를 차는데

“저, 저 톱 한 개...” 정찬이가 머뭇거리며 톱을 가리키자
“에라이!”

기출씨가 톱을 집어 마당으로 내던지며 

“평생 톱질도 안 하는 놈이 너무 집 톱은 와 가주고 왔노!”

도로 역정을 내더니

“내일은 니 새이 하고 진장에 너 아부지하고 할매 산소에 갔다오너라.”

손을 탁탁 털면서 마당을 나가다 사립문에서 돌아서며
“어디 도망갈 생각도 하지 말고 대낮부터 구들장 질 엄두도 내지 말고 모래부터는 내 따라댕기며 농사지을 생각을 해라. 알았제?” 다짐을 받자
“예.”

마당까지 나와 꾸벅 인사를 한 정찬이가 마당에 나뒹구는 톱을 주워 마루기둥에 걸었다.

ⓒ서상균

살다보면 바윗돌이 닳고 소금물이 쉬는 수도 있다더니 16년 만에 돌아온 정찬이는 이외로 고분고분 삼촌 기출씨를 따라다니며 농사일을 배워나갔다. 

그러나 워낙 체수가 짧고 힘이 없어 쟁기질, 써레질이 금방 넘어질 듯 위태로웠다. 그 제서야 기출이는 죽은 선출이형님이나 정찬이가 왜 그렇게 농사일에 게을렀는지 짐작이 갔다. 우선 쟁기가 키보다 크니 손 좆이라 불리는 쟁기의 손잡이를 허리를 잔뜩 굽혀 잡아도 쟁기의 끝은 자기키보다도 높고 또 모퉁이를 돌때 들어 올리는 쟁기의 무게도 부담이 될 것이었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이 노무 소!”를 외치며 뻗대는 소와 힘겨루기를 하며 버티거나 당기는 경우도 있는데 이 모두가 힘겨울 것이었다. 지게도 기출이의 큰 지개를 지면 목발이 땅에 닿아 비틀거리기가 일쑤였다.

그렇게 힘겨웠지만 오랜 객지생활을 하면서 견딜 심이 생겼는지 정찬이는 아무 불평도 없이 기출씨를 따라다니며 농사를 지었고 어떤 때는 자신이 먼저 논에 나와 물을 대거나 논두렁을 베는 경우도 있어 기출이의 마음이 많이 풀렸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들에서 일을 하다 기침이 나오면 정찬이는 

“에에, 에이 치 엣치!” 

무슨 타령이라도 읊듯 얼마나 크고 길게 기침을 하는 지 하굣길의 열찬이, 덕찬이가 깜짝 놀라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버든의 명촌댁이 먼저냐, 진장의 딸 순찬이가 먼저냐, 외삼촌과 생질 중 누가 먼저 나올 것인지 온 동네 아낙들의 관심사는 추석을 며칠 앞두고 판명이 났다. 다행히 추석 나흘 전에 명촌댁이 사내아이를 낳았고 추석이 지난 사흘 만에 순찬씨도 아들을 낳았다. 그러나 마흔네 살의 노산으로 태어난 명촌댁의 막내 백찬이는 하마터면 세상구경을 못 할 뻔 했다. 늙은 산모가 죽어라 아기를 틀기만 할뿐 정작 아기는 머리를 내밀지 않아 마침내 명촌댁이 실신을 하게 된 것이었다.

어디에서나 큰말이 죽으면 작은말이 대신해 세상은 돌아가지 마련이라지만 갑찬이, 순찬이가 다 시집을 가고 오라비 일찬이도 서울로 공부하러 간 당시에는 열다섯의 금찬이가 덕찬이, 열찬이 두 동생을 거두며 집안일을 돌 볼 때였다.

아침나절에 아이를 틀기 시작한 어머니 명촌댁이 해가 지도록 몸을 풀지 못 하고 실신을 할 지경이 되자 기출씨는 외사촌형수 대동댁을 부르러 갔다. 이제 쉰이 훌쩍 넘어 머리가 하얘 할머니 티가 완연한 대동댁은 

“동새야, 동새야! 내 말 들리나? 눈 좀 떠 봐라!” 

완전히 맥이 빠져 자꾸만 눈이 감겨지는 명촌댁을 이리저리 흔들어보더니

“우짜꼬? 큰일 나겠다. 이라다가 아아고 뭐고 어마이 다치겠다!”

혀를 끌끌 차더니

“의사를 불러야겠다. 병원에 실고 가든지.”

열다섯의 금찬이가 못 미더운지 마당을 서성거리는 기출씨를 불러

“대름요, 이라다가 큰 일 나겠다. 어서 가서 의사를 불러오소.”

말하자 기출씨는 한참이나 고민에 빠졌다. 

언양에는 당시에 개업한 지 수십 년이 된 김태진병원이 있었고 남천내 건너 새로 생긴 서울의원이라는 병원도 있었다.   그러나 김태진병원은 의사가 나이도 많고 몸도 비대하고 무거운데다 길도 멀어 좀체 오지 않으려 할 것이었다. 그렇다면 같은 평리부락인 정거장의 서울의원을 부르면 되는데 문제는 돈이었다. 집에 돈이라야 겨우 닭 몇 마리 살 정도가 전부인데 의사를 부를 형편이 아닌 것이었다.

“아부지, 내가 덕찬이 하고 갔다 올까요?”

벌써 엄마가 죽는다고 울상이 된 열두 살의 덕찬이의 손을 잡고 나서는 금찬이를 보던 기출씨가 무릎을 탁 치며

“아이다. 니는 집에서 아지매 심부름하고 있거라. 내가 갔다오꾸마.”

벌떡 일어서더니 정거장마을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얼마 전에 길에서 인사를 나눈 아편쟁이 의사 김종률 씨가 생각났던 것이었다. 두 장 전, 그러니까 한 열흘 전쯤 장에서 장사를 마치고 막걸리도 거나하게 한 잔하고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기억은 안 나지만 아마도 늦게 장에 나온 작은님이가 막걸리를 받아준 뒤 방천묵까지 동행을 한 건지도 모르지만) 남천내공굴을 건너 마구뜰 하계의 임씨 성을 가진 포수의 무덤인지 아닌지도 잘 모르지만 아무튼 임포수 혹은 인포시미뜽이라고 불리는 넓다란 무덤을 가로질러 올 때였다. 

어둑어둑 어둠이 내리는 무덤가에 무언가 희뜩한 것이 눈에 띄어 걸음을 멈추고 툭 차는데 발끝이 물컹했다. 사람이었던 것이었다.

“아이구 놀래라, 이 양반아, 안 밴 아아 떨어질 뿐 했네!”

소리치며 일으켜 세우니

“아랫마을 버든에 사는 모양이지요. 나는 정거장마을 엿 공장에 세든 김종률이라고 합니다. 김해 김씨에 쇠북 종자에 법률자에 김종률(金鐘律).”

이렇게 수인사를 한 사람이 바로 의사라고 한 기억이 난 것이었다. 6·25 전쟁 중에 군의관으로 있을 때 하도 끔찍한 부상자나 시신을 많이 대하고 마취도 않고 수술을 하면서 처음에는 독한 소주나 양주, 배갈을 마시고 환자나 시신을 만졌는데 나중에는 자신도 모르게 마취용 모르핀에 손을 대어 마침내 아편중독이 되어 군에서도, 병원에서도 쫓겨나고 마침내 부산의 처갓집에서도 쫓겨났다고 했다.

혼자 정양을 한다고 나서 이리저리 떠돌다 언양에 이르러 남천내 공굴 밑에 하룻밤을 머물다 지나가는 엿장수에게 발견되어 그들과 같이 기거하게 되었다고 했다. 거기서 엿장수들의 소소한 잔병들도 다 치료하여주었다면서 당신도 엔간한 병은 말만하면 다 낫게 해준다며 억지로 그를 엿 공장의 뒷방으로 끌고 가 진찰기랑 주사기랑 약병들을 보여준 기억이 난 것이었다.

 

기출이가 엿 방에 도착했을 때, 의사 김종률씨는은 저녁식사에 반주가 심했는지 세상모르고 잠에 곯아떨어져 있었다. 이리저리 흔들어 깨우자 간신히 눈을 뜨고 한참이나 바라보다 

“아, 아랫각단에 이서방!” 

하고 눈을 비비면서 기출이의 다급한 부탁을 듣고 주사기와 약통을 챙기는 의사의 손이 덜덜 떨렸다. 허둥지둥 아랫각단 기출씨의 집으로 도착한 의사 김종률씨는 흐릿한 눈으로 산모를 한참이나 들여다보더니

“노산에 힘이 빠져 그렇구먼. 의사고 나발이고 다 소용없어요. 아이가 살 복이 있으면 삼신할미가 도와주겠지.”

약통을 열 생각도 않고 방바닥에 철버덕 주저앉더니 미지근한 물을 떠오게 하여 산모의 입에 흘러들게 하고 금찬이와 덕찬이더러 산모의 온몸을 주무르게 하고는 

“아주머니, 힘내시오! 이를 악물면 아이와 아주머니가 다 살고 포기하면 다 죽어요!”

하면서 두 손을 잡고

“영차!”

힘을 불어넣는 순간이었다. 마침내 “아앙!” 소리도 크게 울부짖으며 아이의 머리가 숙 비어져 나왔다. 사촌동서 대동댁이 살살 잡아당겨 완전히 꺼내니 덩치가 보통아이의 배에 가까운 우량아였다. 

“히야, 아들이다, 아들!”

덕찬이가 신이 나서 금찬이를 바라보는데

“동새야, 욕 받다. 진짜 죽을 고생했다.”

대동댁이 금찬이가 떠온 더운물로 축 늘어진 명촌댁을 씻기기 시작하고 그 제서야 한숨을 돌린 기출씨가

“선생님, 욕받심데이. 고맙심데이.”

의사의 손을 잡고 치사를 하는데 

“내야 뭐 한 게 있습니까, 삼신할머니가 돌본 거지. 그건 그렇고 막걸리나 한 되 받아오면 안 될까요?”
“되고말고요. 잠시만 기다리시소.”

기출씨가 금방이라도 읍내를 향해 달려갈 판인데

“금찬아, 우리 집 정지에 가면 부뚜막에 술독이 있다. 니 술 거를 줄 알제?”

대동댁이 나섰다.

“예.”

금찬이가 마당을 건너가자 작은 방으로 의사를 데리고 온 기출씨가 술잔이랑 김치보시기를 챙겼다.

어머니명촌댁과 동시에 배가 불렀던 순찬씨도 정확히 일주일 뒤 몸을 풀었다. 역시 사내아이였는데 자신의 첫 아이를 본 김 서방이 

“야아, 우리 얼라는 와 이래 작노? 버든에 처남은 진짜 장군이구나!” 

감탄을 했다. 

 

그해 추석에는 외삼촌인 백찬이와 동갑내기 생질 진장의 상철이, 신평 갑찬이의 아들 간훈이까지 명촌댁의 좁은 집에 사내아이 셋이 득실거리며 종일 아이우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그새 갑찬씨는 다시 배가 불러오고 있었다. 젊은 두 딸은 젖이 많은데 명촌댁은 젖이 잘 안 나와 금찬이가 쌀가루를 빻아 백찜 떡을 쪄서 말려서 빻은 쌀가루에 노란 설탕을 넣고 끓인 암죽을 주로 먹였는데 이를 딱하게 여긴 순찬씨가 하루에 한 번정도씩 친정에 와서 막내 동생에게 젖을 물리면 백찬이는 옴싹옴싹 빨면서 잘도 자랐다. 어쩌다 언양장에 오는 길이 있으면 갑찬이도 동생에게 젖을 실컷 먹이고 갔으니 백찬이는 어머니보다는 누님들의 젖을 먹고 얼추 자란 셈이었다.

 

이득수 시인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2021년 4월 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