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102) 제2부 농사꾼 기출씨 - 제11장 음울한 이야기2(노름쟁이 지씨집)
대하소설 「신불산」(102) 제2부 농사꾼 기출씨 - 제11장 음울한 이야기2(노름쟁이 지씨집)
  • 이득수 이득수
  • 승인 2022.04.14 07:00
  • 업데이트 2022.04.15 23: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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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음울한 이야기2(노름쟁이 지씨집) ②마을에서 쫓겨나는 지씨

어쩌다 열찬이가 담 너머로 바라보면 일근이, 이근이형제는 장날 어른들이 치던 화투장을 만지며 저들끼리 ‘땡이다! 아도다!’를 외치며 놀고 어린 순순이는 우물가에서 밀가루를 반죽해 칼국수를 만드느라고 연필 깎는 칼을 들고 반죽을 자르는 것을 흔히 볼 수 있었다.

또 어떤 날은 멀리 장사를 나갔던 셋째, 넷째, 다섯째 삼촌들이 아이들의 신발도 사고 과자도 사고 쌀과 고기도 사고 돌아와서 아래채에 자리 잡고 한 일주일간 지지고 굽고 잘 지내다 가는 경우도 있었다. 한번은 셋째 삼철씨가 장가를 들어 아래채에 살림을 차린다고 붉고 푸른 우테라는 치마저고리를 입은 새색시를 데리고 솥과 밥상, 거울을 소달구지에 가득 싣고 오고 오후에는 아버지 지선옥 씨가 하던 생선전을 물려받아 둔터댁에 세 들어 사는 둘째 삼촌 재철씨와 5형제가 다 모이고 저녁에는 고기장사 소리를 듣는 재철씨 부인 정자엄마까지 와서 지지고 굽고 음식을 마련해 기출씨를 비롯한 마을어른 몇 까지 모시고 잔치를 잘 치렀는데 그날 밤에 바로 형제들 간에 우지끈뚝딱 고함을 지르며 치고받는 소리가 들리다 마지막엔 챙그랑 소리와 함께 낮에 매고와 아직 달지도 않은 거울이 깨어지고 누가 피투성이가 되어 난리가 나더니 그 이튿날 그 많은 형제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날도 있었다. 그날 쇠동골이라는 첩첩산중 소호에서 읍에 가까운 평지 <성가꾸>에 시집온다고 친정에서 큰 잔치를 벌이기까지 했다는 정자엄마가 한참이나 눈물을 흘렸다고도 했다.

 

열찬이가 3학년이 되었을 때였다. 여름방학 과제물을 방학당일 오후에 단번에 다 해치운 열찬이가 이튿날 심심하기도하고 출출하기도 해서 수중에 백 환짜리 하나를 지니고 남천내 뚝다리를 건너 장터로 향했다. 그 돈으로 새콩과자나 똥떡(서울사람들이 말하는 달고나)이라고 불리는 설탕과자를 사먹을 수도 있지만 잘 하면 좀 작거나 흠이 있는 사과를 살 수도 있을 것이었다. 또 자주 그런 일이 있지는 않지만 소전의 아버지나 염소전의 사촌형님 정찬씨, 정미소에서 집에 점심을 먹으로 지나가는 상찬씨를 만나 빨간 종이돈 500환짜리도 얻을 수가 잊을 지도 몰랐다. 그러나 입학하던 그 해 여름방학에 보란 듯이 우등상을 받아오는 열찬이를 보고 이미 낮술로 기분이 거나해진 아버지가 빨간 500원짜리를 하나 주는 것을 들고 너무 기분이 좋아 호주머니에 넣었다가 다시 꺼내보고 이마에 붙여보기까지 하다 마침내는 바람에 날려 보내고 만 쓰디쓴 기억이 떠올라 그는 씁쓸하게 웃었다.

기대와 달리 아무도 만나지도 돈을 얻지도 못 하고 씨앗과 고추가루를 파는 어머니 명촌댁에게

“니는 송아지 풀이나 비든지 동생 백찬이나 보든지 안 하고 장에는 마로 왔노? 넘이 장에 가이 니도 거름지고 장에 왔나?”

호된 꾸중을 듣고 물러나 아까부터 점찍어 놨던 청 사과와 복숭아를 파는 난전 앞에 우물거릴 때였다.

“열찬아, 장에 왔나?”

쳐다보니 다섯 살이나 많은 끝택씨네 장남 선철이, 열찬이보다 아홉 살 많은 형뻘이었다.

“야.”
“니 뭐 살 끼고? 사과 살 끼가?”

다섯 살이나 많아도 열찬이 또래인 일근이나 영호보다도 키가 작은 선철이가 반질반질한 이마를 들이대며

“니 돈 얼매 있노?”

싱긋이 웃으며 다가섰다. 선철이 역시 농사도 없고 살림도 넉넉잖아 마을사람들이 택호도 안 붙여주고 깔보는 노름쟁이 지선옥씨, 떡장수 미짱네, 구시골 오모짱네, 보깡구집 박손처럼 끝택씨로 부르는 가난한 집의 장남이었다. 국민학교를 나오지는 않았지만 머리가 좋아 글을 잘 알고 덩치가 작아 농사일이나 나무는 못 해도 속에 든 꾀가 제갈공명이라는 소문도 있었다.

“배, 백 환짜리 하나!” 

혹시 꼬임에 빠져 뺏길지도 모른다고 멈칫대면서도 맘이 여린 열찬이가 손바닥을 펴보이자

“그래. 나도 백 환이 있다.”

선봉이도 의기양양 주먹을 폈다. 결국 선철이의 말대로 피차 사과와 복숭아가 다 먹고 싶으니 하나는 백 환으로 복숭아를, 또 하나는 사과를 사서 반으로 쪼개서 나눠먹기로 하고 다시 남천내를 건너 방천 둑에 앉았는데

“야. 맛있겠네.”

옆집 일근이가 빙글빙글 웃으며 지나가는데

“미안하다. 한발 늦어 니 줄 꺼는 없네.”

선철이가 복숭아씨를 툭 던지며 

“열찬아, 잘 묵었다. 먼저 간데이.”

마을로 들어가고 두 가지나 먹긴 먹어도 간에 기별도 안 간 열찬이도 따라가려는데

“열찬아, 니 잠시만 내 따러 가자!.”

일근이가 손을 잡는지라 주춤주춤 따라가 뚝다리를 건너자

“니 잠시만 여게 있어라. 내 한 십 분이면 오꾸마.”
“기다리면 뭐 할라꼬?”
“니는 잔주코 기다리기만 해라. 잘 하면 자다가 떡이 생기는 수도 있다.”

하고 부리나케 장으로 뛰어가더니 잠시 후에

“오래 기다맀나?”

헐레벌떡 달려온 일근이가 러닝 앞섶을 헤치자 놀랍게도 사과 두 개가 나왔는데 아까 백 환을 주고 산 것보다는 비교도 안 되게 크고 빛깔도 선명했다.

“웬 기고?”
“니는 마 묵기만 하면 된다. 이래 봐도 아(我) 대감이 낚시하는 재주가 안 있나? 아(我) 대감이 낚시 말이야.”

하면서 깔깔 웃었다. 학교도 안 다니고 밥도 늘 굶는 처지에 <아(我) 대감>이라는, 노름쟁이들이 주로 쓰는 말, 자신이 대감처럼 높고 대단하다는 말을 다 쓴다며 고개를 갸웃거릴 틈도 없이

“열찬아, 이거 니 다 묵어라. 다문 집에도 가가지 말고 누가 물으면 내가 주더란 소리는 하지 말고!”

사과 한 알을 더 건네준 일근이가 휙 휘파람을 불며 다시 장터로 달려갔다.

 

집에 돌아온 열찬이가

“누부야!”

금찬이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하자

“내 그랄 줄 알았다.”

누나가 궁금증을 풀어주는데 학교에 다니지 않은 일근이, 이근이 두 형제가 재미사마 손재주도 키우고 배도 채우는 일이 따로 있다고 했다. 먼저 형 일근이는 눈치가 빠르고 손재주가 좋아 장터에서 슬그머니 먹고 싶은 과자나 과일, 심지어는 고무신이나 운동화 같은 것을 훔치는데 그 방법이 기가 차게도 나일론 끈에 낚시 바늘을 달아 슬금슬금 낚아채는 것이라고 했다. 또 동생 이근이는 아비를 닮아서인지 그냥 화투장이나 노름에 정신이 팔려 늘 자기 집이나 장터의 노름판이나 윳  판을 기웃거리며 잔심부름을 하고 용돈을 타기도 하지만 혼잡한 틈에 슬쩍슬쩍 지전을 훔치다가 들켜 더러 치도곤을 당하지만 판이 노름판인 만큼 지서에 붙들려가지는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입술에 손가락 둘을 대고 쉿! 이건 너만 알라면서 가끔 밀떡이나 감자 같은 먹을거리를 조금씩 주는 금찬이가 고마웠던지 하루는 일근이가 번쩍거리는 새 운동화를 들고 와 

“아나. 이거 누부야 니 신어라.”

훌쩍 던져주는 것을

“아이구, 일근아! 이기 웬 운동화고?”

묻자

“내가 누부야 니 줄라꼬 낚아왔다 아이가.”

하면서 운동화를 축담에 놓고 낚싯줄로 걸어오는 시범까지 보였다는 것이었다.

“나는 학교에 안 가서 운동화 안 신는다. 니나 신어라.”

도로 내밀어도

“내 누부야 줄라꼬 일부러 얌생이몰았다 아이가? 마, 누부야 니 신어라.”

억지로 떠맡기고 갔지만 차마 신을 수가 없어 등겻섬 밑에 숨겨놓았다며 꺼내 보여주기도 했다. 

 

여름방학이 거의 끝날 무렵이었다. 아침부터 무더위가 몰아쳐 방문을 활짝 열고 땀을 뻘뻘 흘리며 질척한 꽁보리밥을 열무김치와 된장을 곁들여 먹는데

“어짜아! 우이도 바 무근다!”

신발 한 짝은 들고 한 짝만 신은 순순이가 앞세메로 가다 열찬이네 집을 바라보며 히쭉 웃었다.

“아침부터 저놈의 앤아가 재수없구로.”

명촌댁이 혀를 끌끌 찼지만

“열찬아, 니는 방금 순순이가 뭐라캤는지 아나?”

금찬이의 말에

“열찬아, 우리도 밥 묵었다 아이가?”

덕찬이가 받고 아버지까지 빙긋 웃는데 지난 번 일근이 낚시사건 이후로 부쩍 옆집에 관심이 높아진 열찬이는 벙어리 제 어미한테서 말도 제대로 못 배우고 혀짜래기가 된 순순이가 불쌍하다는 생각에 한 동안 숟가락질을 멈추고 멍하니 사립문 밖을 바라보기만 했다.

 

어머니 명촌댁의 말대로 아침부터 말더듬이 계집애가 지나가서 재수가 옴 붙었는지 방학숙제용 색종이를 사러 읍내에 갔던 열찬이가 징검다리를 건너다 발을 헛디뎠는데 그만 고무신 한 짝이 물에 동동 떠내려가고 있었다. 깜짝 놀란 열찬이가 남은 고무신 한 짝을 손에 들고 후다닥 달려갔지만 큰물이 진지 얼마 안 되는 사나운 물살에 신발은 금방 한참이나 떠내려가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흔적이 없었다.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집에 돌아온 열찬이가

“야가 와 이래 힘이 없노? 무신 일 있었나?”

다그치는 금찬이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하자

“개학이 며칠 남았노?”
“닷새.”
“그라면 아무 말 하지 말고 아부지가 엮어놓은 조리를 신고 댕기라. 그라고 한 이틀 물이 빠지면 내하고 마흘동네앞 중학교 가는 뚝다리로, 또 니리미도, 그래도 없으면 조산배기나 붕디미쪽으로 가보자 어데 모래톱이나 찔레덩굴 같은데 걸맀겠지.”

금찬이가 안심시키면서

“아나, 이거나 무라.”

자주색 양대가 다문다문 박힌 밀떡을 꺼내주면서

“참, 얹힐라. 천천히 무라.”

찬물바가지를 건네는데

“뭐 열찬이가 고무신을 잊아뿌맀다꼬?”

소리와 함께 담 너머서 고개 하나가 쏙 넘어왔다. 일근이었다. 

“그 까짓 꺼야 아(我) 대감은 식은 죽 묵기다. 열찬아, 아무 걱정 말고 아 대감, 이 지일근이 새이만 믿어라.”

제 집에 드나드는 노름꾼의 말투를 흉내 내며 빙긋빙긋 웃던 일근이가

“내일이 장 아이가? 아무 걱정하지마라. 내가 해 떨어지기 전에 해결하지, 이, 아 대감이 말이야. 하하하.”

큰 소리를 탕탕 치자

“마, 니도 너무 큰 소리 치지 말고 이거나 묵어라.”

금찬이가 커다란 밀떡하나를 담 너머로 넘겨주었다.

ⓒ서상균

이튿날 정말 일근이가 새 고무신을 구해다 줄까 조마조마 기다리는데 그날따라 큰 판이 붙어 아침부터 시끄럽던 옆집이 오후 두 시쯤 무슨 일인지 고함소리가 나고 판을 뒤집고 치고받고 싸우며 법석이 나더니 마침내 지서 순경 둘이 나와 노름꾼 다섯 명과 일철씨를 잡아서 갔다. 사람들이 다 흩어지고 불안한 고요가 감도는 오후 네 시쯤 돌아온 일철씨가

“에이, 씨팔, 지게미!”

중얼중얼 욕을 하며 낮에 먹던 술통의 바닥을 긁어 마시다 

“이 년의 여펜네야, 서방이 술 마시는데 안주가 이래 없나?”   

중얼거리다. 

“어어, 술이 떨어졌네. 이 년아, 술 좀 받아오너라.” 

말 못 하는 아내에게 소리쳤지만 대답을 할 수도 없고 돈도 없을 터였다. 그래도 눈치는 있어 그만 마시라는 시늉을 하며 어어어, 뭐라고 더듬거리자

“에이 씨팔, 이런 것도 여펜네라꼬!”

철썩 뺨을 올려붙이더니 금방 메다꽂기라도 할 기세로 우악스레 팔을 잡는데

“아아아, 아부이, 아아아 안 돼.”

더듬거리며 순순이가 가로막자

“이런 제미, 에미가 저 꼴이니 아아새끼까지!”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일철씨가 순순이를 쳐들더니

“에라이, 죽어뿌라, 이 빙신아!”

사정없이 내던지자 하필이면 명절에 떡을 치는 널따란 돌 안반(安般)에 뒤통수가 떨어져 피투성이가 되고

“어버버버!”

일근이엄마가 아이 위로 엎드리는데 

“동네사람들 요! 여게 사람 죽심더! 사람 좀 살리소, 동네 사람들 요!”

담 너머 명촌댁이 고함을 치자 삽시간에 아이어른 할 것 없이 사람들이 몰려들어 일철씨를 떼어 말리고 피투성이가 된 아이는 신작로 위 서울병원으로 싣고 갔다. 

 

그날 저녁 마을의 상 어른인 일촌양반의 지시로 구장이 온 마을의 남자들을 동사마당으로 모이게 하고 일철씨를 동사마당에 꿇어앉혔다. 처음에는 거칠게 반항하던 일철씨도 조금씩 술이 깨자 사태를 눈치 채고 고분고분 따랐다. 말을 안 들으면 지서 순사를 부른다는 구장의 협박도 있었지만 제수씨인 정자엄마가 눈물로 통사정을 했기 때문이었다.

방금 멍석말이라도 할 것처럼 덕석도 한 장 펼쳐놓고

“봐라! 일근이애비 이 사람아! 인자 우짤끼고?”

얼굴도 머리도 하얗게 곱게 센 일촌어른이 재떨이에 담뱃대를 탁탁 두드리며 다그치자

“자자, 잘못 했심더.”
“거기, 어데 말로 해서 될 일이가?”
“...”
“장날마다 술꾼에 노름꾼이 드나들어 시끄럽고 정신없고 동네 아아들 배릴까 싶어도 우리가 이웃 간의 정으로 참았지만 인자 예사로 순사가 드나들고 개잡듯이 아아를 패니 이기 어데 사람 사는 꼴이가?”
“...”
“마, 지서에 연락해서 콩밥을 좀 믹이까? 멍석말이를 해서 초주검을 맨들어서 내쫗으까? 우짜면 좋겠노, 니는?”
“...”

장본인은 말이 없고 동생과 제수씨만 애가 타서 통사정을 하는지라 마침내 사흘 안으로 마을을 뜨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더 이상 노름을 붙이지 못하면 더는 살아갈 방도도 없는 것이었다. 집은 경주에 사는 일촌댁의 먼 친척이 사기로 했다. 
 

을씨년스런 침묵만 고인 집안에서 아무런 기척도 밥 짓는 연기도 나지 않고 하루가 흘렀다. 사흘째가 되는 날 마침내 집 판 돈 약간을 챙겨 이불보따리와 솥단지만 챙긴 다섯 식구가 이사를 떠나는데

“아이구, 불쌍해라. 말 몬 하는 저 아아가 무신 죄가 있다고... 안죽 핏자국도 다 안 말랐네.”
“순순아, 인천 가거든 말문도 열리고 밥도 잘 묵고 곱게 커서 시집도 가고 아들딸 놓고 잘 살아라!”
“숙모 정자엄마는 언자 한숨 돌리겠다. 앓던 이가 빠져서.”
“사람이 길로 두고 미(墓)로 가나? 암만 애를 믹이도 성제간인데 안 섭섭하겠나?”
“아이구, 인지 가면 언제 보노? 드는 정은 몰라도 나는 정은 안다 카디마는...”
“에라이, 여펜네야, 그거는 행상 나갈 때 하는 소리 아이가?”

마을아낙들이 한 마디씩 던지며 눈물을 훔치기도 하는데

“일근아, 이근아, 잘 가거라.”

열찬이가 조그맣게 한 마디 하는데

“인천 가면 인자 낚시는 하지 말고.”

금찬이가 일근이를 빤히 들여다보는데

“누부야, 그간 고맙심데이.”

감정이 복받쳐 코를 한 번 훌쩍인 일근이가

“여, 열찬아!”

은근히 불러 귀에다 대고

“낸주게 내 가고 나면 너거 도감나무 밑에 봐라. 니 검정고무신 있을 끼다. 아 대감의 마지막 선물이다.”

한마디 던지고는 순순이의 손을 잡고 달리기 시작했다.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2021년 4월 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