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130) 제2부 농사꾼 기출씨 - 제16장 등말리별곡1⑫
대하소설 「신불산」(130) 제2부 농사꾼 기출씨 - 제16장 등말리별곡1⑫
  • 이득수 이득수
  • 승인 2022.05.15 07:00
  • 업데이트 2022.05.16 10: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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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등말리별곡1⑫

정월 초이튿날, 아침상을 물리자말자 갑생씨가 연장망태를 둘러매고 마당으로 나서며

“아부지, 어무이, 지는 그만 현장으로 갈랍니더. 날씨 추운데 몸조심 하이소.”

인사를 하는데

“야야, 무슨 공사를 정초부터 한다카노? 적어도 보름은 지나야지?”

조동댁이 갑생씨의 눈을 빤히 들여다보며 물었다. 

“아, 아임니더.”

머뭇대는 아들에게

“마누라 없다고 불에 딘 듯이 가지 말고 오랜만에 본 그 알라들이나 좀 챙기고 매칠 더 있다가지.”

제 마누라가 친정으로 쫓겨 간 판에 다섯 명이나 되는 여동생과 매부들을 만나는 것이 성가셔서 미리 도망가려는 것을 눈치 채고 괜한 시비를 건 것이었다.

“아, 아임니더.”

얼굴이 약간 상기되기는 했으나 갑생씨는 그 사이 마당을 가로질러와 바짓가랑이를 잡고 올려다보는 수진이의 손을 떼어 용진이에게 잡혀주며

“니, 얼라 잘 봐야된데이.”

하고는 휘적휘적 사립 앞을 나섰다. 혹여나 제 아내 화천댁이 있는 덕고개쪽으로 가는가 싶어 조동댁이 유심히 바라보았으나 갑생씨는 그 반대쪽이면서 공사장이 있는 청도 금천면의 방향인 운문재를 향해 바들못 앞 후리마을을 지나 길천동내를 향해 곧바로 걸어가고 있었다. 

 

이튿날아침이었다. 아침상을 물리고난 조동댁은 하마 다섯 명의 딸과 사위, 이미 열 명도 넘는 외 손주들이 몰려오기를 기다리며 가까운 길천에 사는 둘째딸은 벌써 오고도 남았으리라고 자주 문을 내다보다 조바심을 못이겨 마침내 

“용진아, 야야 용진아!”

아이를 불러 옷을 챙겨 입히더니

“용진이조부님, 지가 잠깐 나갔다올라카이 이 녘이 딸내미랑 사우들 올 때 까지 알라 좀 잘 보고 계시소이.”

수진이를 사랑방에 안아 넣는데

“그 좀 대강하고 넘어가지. 사람이 어수룩한데도 좀은 있어야지. 큰 아도 사람인데 지 내자를 보고 싶어 처가 곳에 좀 가기로서니 그 기 어데 지 잘못이가? 그라고 젖도 없는 내가 이 아는 또 우째 볼 끼며...”

그러나 대답도 없이 사랑채를 향해 굽신 허리를 숙여 보인 조동댁은 

“가자!”

용진이의 손을 잡고 벌써 명촌 본동네로 내려서고 있었다. 

ⓒ서상균

정초부터 아낙네가 집을 지키지 않고 마실을 나다닌다고 흉을 볼까봐, 아니 제 손으로 며느리를 내치고 그 며느리집은 왜 찾아가고 난린지 촉을 잡을까봐 마음을 졸이며 조동댁은 재빨리 마을 앞을 지나 덕고개를 돌아 모랫골 못을 지나 광대고개를 넘어 작은 못이 있는 화천동네로 접어들었다. 어제 집을 나설 때에는 분명히 길천쪽으로 나갔는데 그렇다면 거리 쪽에서 밝얼산을 넘어 안 간월을 내려와서 화천마을로 가거나 산전에서 다시 언양으로 내려가 덕천고개를 넘어 작천정을 지나 화천으로 가는 길이 모두 십리가 훨씬 넘는데 차마 제 마누라를 찾아가지는 않았으리라고, 절대로 그래서는 안 되지, 맘을 다그치며 짐작으로 화천댁이 산다고 들은 삼 칸 홑 집 작은 오두막집을 발견하고는

“용진아, 니 엄마 보고접제? 저 집에 니 엄마가 있단다. 가서 ‘엄마!’라고 부르다가 아부지가 보이면 ‘아부지!’하고 크게 불러야 한데이.”

단단히 당부하고 아이를 보내는데 과연

“엄마!”

울먹울먹하는 소리에 이어 

“아부지!”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 아닌가. 조동댁이 득달같이 밀고 들어가는데

“야야, 용진이애비야, 니가 웬 일이고? 니가”

힐책을 하는데 허둥대며 문지방을 넘어서던 화천댁이 멈칫하며

“여는 웬 일잉교?”

불문곡직 방문 앞에 밀어닥치는 조동댁을 가로막았다.

“와? 내가 내 아들을 찾아오는 거도 안 돼나? 야야, 용진이애비야, 집에 가자!”

조동댁이 방안을 향해 소리를 지르자 

“시방은 어무이아들이 아이고 지 서방이지요. 남정네가 지 여편네 만나러왔는데 말라꼬 찾아왔능교, 찾아오기는?”

커다란 덩치로 가로막자

“아이고, 지 서방이라꼬? 에라이, 여편네가 시어른 잘 모시고 집안 살림을 짭찔하게 잘 해야 시부모가 있고 서방이 있지 니 겉이 보리짚빼까리 맨시로 어설프기 짝이 없는 년이 서방은 무슨 서방이고?”
“내가 뭐 밥을 못 했능교? 아를 못 낳능교? 전심만신 심술기가 졸졸 흐르는 심청궂은 시어머니에 못 돼빠진 시누이들 등살에 쫓겨나서 그렇지. 세상에 어무이도 자식을 키우면서 너무 집에 딸을 다섯이나 보내놓고 지 며느리한테는 꼭 그래야 되겠덩교?”
“마 시끄럽다! 비키라. 야야, 용진이애비야 이 애미하고 가자. 나오너라!”

다시 불러도 방안에서는 묵묵부답이었고 마침내 화가 치민 화천댁이

“동네 사람들요!”

온 마을이 들썩하도록 고함을 지르더니

“이 얄궂은 할마씨 좀 보소! 멀쩡한 며느리를 쫒아냈으면 됐지 뭐가 부족해 정초부터 지 손으로 쫓아낸 며느리집 을 찾아와 패악을 지기는 할마시 좀 보이소!”

일부러 커다랗게 소리치자 그새 궁금증을 참지 못해 여기저기 담 너머로 조동댁을 흘낏거리던 사람들 중에서 비로소 머리가 허연 할머니 몇을 비롯한 아낙들이 주춤주춤 사립문을 들어와 빙 둘러섰다. 이어 아이들과 개들까지 몰려와 금방 마당이 가득 찼다. 안 그래도 집안의 딸을 쫓아 보낸 못 된 시어머니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고 만나면 욕이라도 퍼붓고 싶은 마음들이었는지

“아이고 저 할마씨 쌍판대기 좀 봐라. 생기기는 초배기상으로 질쭉하고 하관이 쪽 빠져서 인정머리 없기로는 족제비상이구나!”

하나가 저들끼리 소곤거리면서도 일부로 누가 들어라든 듯이 목소리를 높이자 

“저 볼때기 새파라동동한 것 좀 봐라! 심술이 덕지덕지 흐리는 구나!”
“그 판에 얼굴은 와 얽었노? 살짝곰보는 구멍구멍이 복이라는데 저 할마시는 구멍구멍이 심술만 들었는 갑다!”

하나같이 비수로 조동댁의 가슴을 후비듯이 악담을 퍼붓는 것이었다. 견디지 못 한 조동댁이

“야야, 용진이 애비야, 어서 나오너라! 가자. 니는 이 에미가 이렇게 망신을 당하는 것이 부끄럽지도 않나?”

방문을 향해 소리치는데

“흥, 부끄러울 년이 따로 있지? 이기 뭐 숯이 껌정 나무래는 거가?”

누가 촉을 달자

“아이다. 똥 묻은 개가 등개 묻은 개를 나무래는 기다.”
“아이다. 똥 귄 놈이 방구 뀐 놈에게 성내는 기다.”

저마다 한마디씩 거드는데 이미 목소리가 한풀 꺾인 조동댁이

“야야, 가자!”

낮고 간곡하게 부르는데

“용진이애미, 거 정지에서 성냥 좀 가져온나! 내 이 노무 집구석을 마 불을 확 싸질러뿔끼다!”

여태껏 방안에서 묵묵부답 숨을 죽이던 갑생씨가 마침내 화를 내는데
 (얼씨구!)

마침내 점입가경으로 들어가는 싸움구경에 마을사람들은 한층 재미가 나는데

“내가 저거를 자식이라고 놓고 미역국을 먹었나? 에라이 더러분 종내기야, 마 그 더러분 궁가리에 처박혀서 콱 숨이나 막혀뿌라!”

침을 탁 뱉고 돌아선 조동댁이 재빨리 명촌을 향해 걸어가다 문득 용진이를 돌아봤다. 마당에 있는 엄마와 길에선 할머니를 한참이나 저울질하던 용진이는 마침내

“엄마!”

소리와 함께 화천댁의 품을 파고들었고 그걸 확인한 조동댁은 비로소 덕고개를 넘어섰다.   
 

그렇게 정초부터 망신을 당하고 돌아온 조동댁은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바로 자리를 깔고 드러누워 버렸다. 오후가 되어 길천의 둘째딸 가족을 필두로 다섯 딸네들의 식구가 밀어닥쳤지만 백년손님이라는 사위들이 방문을 열고 세배를 하겠다고 우겨도 “자네 왔는가?” 한마디를 하고는 도로 문을 닫았다. 싸늘해진 집안분위기에 다섯 딸들이 전전긍긍하고 시끌벅적 술을 마셔야할 사위들도 조용하게 술잔만 달그락거렸고 아이들도 덩달아 어른들의 눈치를 보았고 세 살잡이 수진이만 모처럼 푸짐하게 차려진 떡과 과일들을 챙겨먹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다섯 딸들이 조동댁의 방으로 몰려가 이리저리 달래면서 겨우 일으켜 앉혀 머리를 빗기고 비녀를 꽂고는 제발 기운을 차리라고 사정을 했다. 그리자 조동댁은 금방 자신의 가슴에 비수를 꽂은 이 세상에서 제일 잘나고 귀한 아들 갑생씨를 훔쳐간 천하에 <재수 없는 년>에 <본 데 없는 년>에 <시근머리 없는 년>인 며느리를 내쫓았음에도 당사자 갑생씨는 어미마음을 모른다는 하소연을 시작했다. 

설이라고 집에 다니러오자마자 하룻밤 자기도 무섭게 현장에 간다고 반대방향으로 나서서 어미를 속이고는 길천에서 길머리를 돌려 바들못을 지나고 칼치못을 지나 명촌 뒷산 새목등을 넘어 안간월로 넘어가 화천마을 제 마누라를 찾아간 것이 너무나 분하고 억울한 판에 마을 사람들에게 온갖 욕지거리를 얻어먹는 수모를 당했다는 것이었다. 

다섯 딸들이 저마다 비장한 표정으로 울먹이는 조동댁을 바라보며 구구절절 신세한탄이 나오자 혹은 한숨을 쉬고 혹은 손을 잡아주며 제 어미를 달래고 진정시켰다. 
 
한참 후에 비로소 가슴에 맺혔던 분이 풀린 조동댁이 와락 울음을 터뜨리며 또 한참이나 눈물을 찍어내더니 자신은 ‘이제 눈에 흙이 들어갈 때까지 그 <재수 없는 년>에 <본 데 없는 년>에 <시근머리 없는 년>인 며느리 화천댁은 물론 그걸 기집이라고 애미를 버리고 오다싸는 아들 갑생씨와 그 와중에 할미를 버리고 에미에게 붙어버린 용진이까지도 보지 않을 것.’이라고 못을 박았다. 그러자 그중에서 가장 어질고 경우가 바른 삽재의 큰딸이 

“어무이, 그기 아입니더. 세상에는 천륜이라는 것이 있어 아무리 모진 고난, 심한 허물이 있어도 부모자식간의 인연은 끊어지는 것이 아니니 다시 한 번 잘 생각해서 우짜든동 오빠가 마음을 고쳐먹고 집으로 돌아오게 해야 되는 거 아잉교?”

설득하자 이어 마음이 여린 막내딸도 마침 자신의 품에 안겨 오랜만에 고모의 젖을 빨다 잠이 든 수진이를 가리키며 “세상에 자식 이기는 부모가 없고 손자를 이기는 조부모는 더더욱 없는 법이니 우선 돌이 지나자말자 어미를 떠나 젖도 제대로 못 먹고 자라는 이 가엾은 수진이를 보거나 또 보통아이보다 월등히 덩치도 작고 말도 행동도 온전찮은 용진이를 보아서 딱 한번만 어른인 엄마가 마음을 열고 월캐새이를 용서해 다시 집으로 데리고 와야 됨더.”

거들었다. 그 말이 나오자마자 단 한 사람 그나마 맘이 너른 큰딸이 고개를 주억거릴 뿐 금방 방안의 공기가 싸늘해지며 모두가 조동댁의 눈치를 살피기에 바빴고 아닐까 다르랴 눈을 허옇게 까뒤집은 조동댁이

“이 쇠가 만 발이나 빠질 년아, 내가 니를 막내로 낳아서 없는 젖에 암죽을 먹이면서 겨우겨우 길러놓은 것이 겨우 요 따우 앙물로 보답하는 것가? 이 배은망덕한 년아, 그 <재수 없는 년>에 <본 데 없는 년>에 <시근머리 없는 년>이 그렇게 좋으면 당장이라도 이 에미를 버리고 니도 그년한테 가서 살아라!”

다시 자리에 드러누울 판이었다. 심술이라면 제 어미를 따라가고도 남을 나머지 세 딸이 각각 입술을 비죽거리며 제 어미의 말에 맞장구를 치거나 막내에게 눈을 흘기며 겨우 조동댁을 진정시켰다. 그리고는 어떻게 어머니의 속을 풀어줄 것인지, 어떻게 오라비가 다시 <재수 없는 년>에 <본 데 없는 년>에 <시근머리 없는 년>인 올케가 아닌 어머니에게 돌아오도록 할 것이냐를 의논하기로 했다. 
 

그렇게 여섯 명의 모녀가 한나절이나 의논한 결론은 오라비를 어머니의 품으로 돌아오게 하는 것보다는 우선 오라비가 광대고개를 너머 화천마을로 발걸음을 못해 그 <재수 없는 년>에 <본 데 없는 년>에 <시근머리 없는 년>인 올케를 만나지 못 하게 하는 것만이 유일한 대책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득수 시인
이득수 시인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2021년 4월 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