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 아아, 턱걸이①
겨울방학이 끝나자 6학년인 열찬이에게 중학교입학시험이 다가왔는데 정작 당사자보다도 젊은 담임교사 안정효 선생이더 바쁘고 상기되었다.
부임 첫 해에 6학년 졸업반을 맡은 그는 언양 일대 서부 5개 면의 모든 지원자가 시험을 치러 그중에 90%쯤이 합격하는 이 입시에 두 가지의 목표를 두고 있었는데 그 하나가 반에서 전체 수석을 배출하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불합격자 없이 응시자전원을 합격시키는 것이었다.
덕분에 열찬이는 송대 능골에 사는 김성해란 친구와 함께 담임선생의 특별관리대상이 되어 방과 후에는 턱걸이와 멀리던지기 같은 체육과목을, 숙직날밤에는 숙직실에서 같이 자며 필답고사예행연습을 해야 했다.
그 때 열찬이와 친구 성해는 담임선생님이 사 주는 자장면을 난생 처음 먹어보고 그 황홀한 맛에 넋이 나가고 말았지만 아침에 자리에 일어나서는 숙직실 이불에서 풍기는 고약한 냄새를 서로가 서로에게 뀌었다고 우기며 스물세 살 담임까지 세 남자가 한참이나 웃기도 했다.
친구 성해는 송대리 능꼴(陵谷)이라는 고려 때의 공신 김취려(金就礪)장군의 무덤이 있는 아주 깊고 좁은 골짜기의 조그만 초가집에서 포목장사를 하는 홀어머니 밑에서 외롭게 자라는 아이였다. 키가 작고 눈이 반들반들한 그 애는 전부터 열찬이와 아주 친했는데 비록 덩치는 작았지만 운동신경이 좋아 던지기, 달리기, 넓이뛰기, 턱걸이를 모두 능숙하게 잘해 열찬이의 부러움을 샀다. 그러나 매사에 둔한 열찬이는 모두지 발전이 없어 담임선생의 애를 태웠다.
그렇게 바쁜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학교를 마치고 남천내공굴을 건너오던 열찬이는 무심히 봉꼴산너머 부리시봇디미쪽을 바라보다 그만 가슴이 찡해졌다. 그 안 쪽 명촌마을에 시집간 금찬이누님이 있는 것이었다.
순간 열찬이는 손에 들었던 책 보따리 끈을 조아 어깨에 가로질러 메었다. 그리고는 다시 공굴을 건너 방천둑을 타고 부지런히 달리기 시작했다. 부리시봇디미와 열녀각에서 잠시 숨을 돌린 열찬이는 한 시간이 채 못 되어 근 시오 리나 되는 사개이 마을입구의 작은 못에 도착해 마을사람이 많이 다니는 남쪽의 밝은 길이 아닌 북쪽의 대밭뒷길을 타고 누님 집을 향했다.
마침내 누님 집이 시야에 들어오자 그는 그만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어쩐지 멋쩍고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던 것이었다. 대밭머리 커다란 소나무등걸에 몸을 숨긴 열찬이는 조심스레 낮은 담 너머로 집안을 살피기 시작했다.
한참이나 시간이 지나 사립문사이로 빨간 치마와 파란 저고리가 후딱 지나가는 순간 마침내 심장이 터질 것만 같으면서 얼굴에 화끈 열이 올랐다. 금찬씨가 손에 무엇이 담긴 함지를 들고 지나간 것이었다. 그런데 새댁이라고 보글보글 볶은 파마머리가 아무래도 눈에 익지 않은 것이 도무지 전에 보던 금찬이누나도 아니고 그럴듯한 새색시도 아닌 것 같았다.
자신도 모르게 ‘누부야, 금찬이누부야!’ 외치며 달려갈 기세의 열찬이가 문득 흠칫 놀라며 주저앉았다. 가뜩이나 층층시하 엄한 집안이라는데 난데없는 친정동생이 찾아가서는 안 될 것이었고 그 보다도 감히 삽짝 문을 열고 들어갈 용기도 나지 않았던 것이었다.
마침 언덕 아래 옹달샘에 누가 물을 길러가는 것을 보고 누님댁에서도 옹달샘에서 물을 길러 먹고 빨래를 한다는 이야기가 생각나 누님이 물을 길러올 때까지 기다리기로 하고 아직도 뛰고 있는 가슴을 진정시켰다. 저녁을 짓는지 누님 집 지붕 뒤로 연기가 피어올랐지만 끝내 누님은 사립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한 뼘이나 남은 해가 간월산에 걸리고 가늘고 긴 햇살이 어둑어둑한 소나무의 가지에 노랗게 흩어지기 시작할 무렵 열찬이는 대밭에다 쏴아 오줌을 갈기고는 다시 책가방을 어깨에 메었다.
다시 오던 길을 따라 돌아오는데 가슴 한 쪽이 뻥 뚫린 듯 눈물이 핑 돌았다. 터덕터덕 열녀각을 지나면서 그는 우뚝 멈춰 서서 명촌마을을 뒤돌아보더니 휑, 길바닥에 코를 한 번 풀어 던지고 냅다 뛰기 시작했다.
“인자 오나? 늦었네. 밥 묵어라.”
열일곱의 덕찬이가 금찬씨 대신 저녁을 챙겼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열찬이가 명촌에 갔다 온 것을 모르는 모양이고 어린 백찬이도 알 리가 없었다. 곰곰 생각해보니 며칠 남은 설을 지나 정초에 친정에 신행을 올 것을 잊어버리고 괜히 그 먼 명촌걸음을 한 것이었다. 열찬이는 아직도 가늘게 뛰고 있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천천히 저녁밥을 먹기 시작했다.
열찬이의 기대대로 과연 정월 초사흘 날 금찬이누님과 매형벡서방은 누룩이 부글부글 괴기 시작하는 술독에 용수를 넣고 떠낸 맑은 술 웃물 한 병과 떡 한 되를 차반으로 들고 신행을 왔다.
안방에서 수인사를 나누고 점심을 겸한 술상을 들이기가 무섭게 어떻게 알았는지 큰 집의 종찬이형님과 옆집의 금춘이가 들이닥쳐 젊은이들의 밥상 겸 술상은 아랫방으로 옮겨졌다. 점심식사를 채 마치기도 전에 구시골의 큰집에 와 있던 김해의 김 서방도 아이 셋과 순찬씨를 동행하고 나타났고 부산에 산다는 조일댁의 사위인 6촌동서 허 서방도 동참했다.
기출씨기 시킨 대로 미리 명촌댁이 사다놓은 안주감인 한 반티의 참 가자미를 우물가에 꺼내놓고 명촌댁과 덕찬이가 씻고 자르는데 두 사람 다 솜씨가 없어 그야말로 <재주가 매주>인지라 친정 온 금찬씨가 옷을 갈아입고 소매를 걷어붙이자 성질 급한 순찬씨도 뭐라고 소리치며 무채를 썰기 시작했다. 이윽고 사구라고 부르는 아가리가 넓은 커다란 옹기에 엄청난 양의 무와 가자미, 탁주를 묵힌 식초와 고추장이 들어가고 열찬이가 캐온 뒷밭에 묻어두었던 노란 파와 배추까지 넣고 나서 손이 큰 순찬씨가 비비기 시작하더니 집안의 사발이라는 모든 사발에 한 가득씩 담아서 반찬 겸 안주로 돌렸다. 그릇이 모자라 아낙들과 아이들은 바가지나 양푼에 담은 채 밥을 비벼 같이 먹기도 했다.
당일 날 담은 술 한 독이 바닥나자 이튿날은 읍내의 술도가에서 탁주 한 말을 받아오자 신평의 큰 사위까지 처자식을 데리고 합세해 오후에는 창가가 아닌 노랫가락에 장구와 긴소리까지 나왔다. 풍물패 상쇠이던 기출씨와 아버지를 안고 배를 주무르는 열찬이도 함께 옆방의 장구소리에 무릎이 까딱까딱했지만 기출씨가 숨이 가빠 어쩔 수가 없었다.
그렇게 이틀주야를 먹고 마시고 분위기가 좀 갈아 앉자 이제 겨우 스물세 살이 된 새 손 박서방이 새로운 놀이를 개발했는데 그건 일곱 살이 된 막내처남 백찬이와 조카들을 놀려먹는 것이었다.
그 때 기출씨네 집에는 일곱 살 백찬이를 비롯해 신평 큰딸 네의 여덟 살 신철이, 여섯 살 원자 또 김해 김서방네의 일곱 살 상철이, 다섯 살 용철이에 큰 집 정찬씨의 아들 네 살 난 용우를 비롯해 젖을 먹거나 겨우 걸음을 떼는 아이들이 또 너덧이나 있었다. 그중에서 박 서방이 찾아낸 가장 재미있는 놀이는 바로 막내처남 백찬이와 일주일 늦게 태어난 생질 상철이간, 그러니까 아재비조카간의 싸움을 붙이는 일이었다. 아직도 소년처럼 얼굴에 장난기가 가득한 그는
“외삼촌이고 나발이고 동갑이면 친구지 아무 것도 아이다. 야, 임마! 한번만 주먹으로 얼굴을 쳐 봐라! 그라문 내가 돈 백 원을 주꾸마.”
실실 웃으며 종이돈을 꺼내 흔들어보였다.
“처가 와서 참 큰일도 하요. 마 그만 두소.”
아내 금찬씨가 말려도 꿈쩍 않고
“백 서방이 의흥백씨 양반인 줄 알았는데 노는 거 보이까 영판 돌 쌍놈의 백씨네.”
입바른 처형 순찬씨가 조롱박이라고 놀려도 그냥 실실 웃기만 하며 자꾸만 상철이를 부추겼다.

그러나 명색 외삼촌인 백찬이가 또 누군가? 단 일주일 빨리 태어났지만 자형 김 서방이 제 아들 상철이에 비해 장군이라고 말할 정도로 골격도 크고 늦게 본 막내라고 주머니에 넣고 살듯 품고 사는 기출씨를 비롯해 여기저기 고임을 받아 기가 펄펄 살아있는 아이였다. 평소 상철이, 용철이는 물론 원자, 용우를 비롯한 나이어린 조카들이 눈만 붉혀도 놀랄 정도로 당당했고 심지어 한 살 많은 조카 신철이도 명색 외삼촌이라 함부로 대들지 않고 서로가 슬슬 피하면서 눈치껏 지내는 처지가 아닌가? 게다가 자신은 교회에 잘 다니지 않으면서 크리스마스 날은 교회 앞에서 빵과 과자, 상품을 가득 안고 나오는 두 조카 상철이와 용철이를 길목인 징검다리에서 기다려 우선 과자와 빵을 뺏어먹고 남천내 뚝다리를 건널 때쯤은 생질들이 탄 공책이랑 필통을 뺏어들고 신나게 기출씨에게 자랑하면서 조카들을 울리는 심술쟁이 외삼촌이기도 했다.
<열 번 찍어 안 넘어 가는 나무가 없다.>고 박 서방의 집요한 유혹이 통했는지 아니면 상철이가 그 동안 받아온 압박과 수모가 사무쳤는지 마침내 한 번은 외삼촌을 향해 주먹을 쥐고 대들려고 올려다보다 단 한방에 나동그라지면서 울고 말았다. 백찬이가 자신만만하고 단호하기도 했지만 상철이자신이 처음부터 영 자신이 없고 쭈뼛거려 아예 전의를 상실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심심하게 한 나절을 보낸 백 서방이 처남 종찬씨와 이웃 금춘이와 더불어 오후에 장에 가더니 이번에는 어른 팔뚝보다도 굵은 참 상어 한 마리와 가로 줄무늬가 있는 딱딱하게 여문 개 상어와 주둥이가 넓적한 곱돌상어를 한 무더기나 사왔다. 사내 셋이 우물가에서 회를 친다고 법석을 떨며 흰 색과 자주색이 어울려 빛깔이 고운 참 상어 회를 몇 양푼이나 떠서 또 온 마을의 잔치가 되었다.
그렇게 저녁을 잘 먹고 나자 저녁의 안주거리가 부족해 개 상어와 곱돌상어를 장만하는데 너무 질겨서 도무지 진척이 없자 기출씨가 금찬씨에게 눈짓을 했다. 솥에다 물을 끓이기 시작한 금찬씨가 짚단을 하나 부엌으로 들고 가 벋기다 만 횟감들을 들고 가더니 채 십분도 안 되어 그 많은 상어들이 발갛게 횟감으로 변해서 나오는 것이 아닌가? 깜짝 놀라는 사람들에게 기출씨가 이렇게 껍질이 거친 상어는 더운물에 짚을 적셔 문대면 그러니까 짚으로 튀하면 단번에 벗겨진다고 설명해주었다.
이튿날은 세 사람이 장에 닭을 사러간다더니 오후에 커다란 장 닭 한 마리를 잡아 우물가에 펼치고 칼로 쪼아 닭볶음탕을 시키더니 간과 모래주머니로 맛있게 소주를 마셨다. 그렇게 또 하루를 잘 보내고 이튿날 모두들 제 집으로 돌아가려고 아침식사를 하다 그만 난리가 나고 말았다.
아침에 “구구구구...” 마당에서 닭을 불러 사래기로 모이를 주던 열찬이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걸 문틈으로 내다보던 기출씨가 깜짝 놀랐다. 여남은 마리가 채 안 되는지라 두 마리의 수탉과 나머지 암탉의 생김새와 크기를 대충 기억하는 기출씨의 눈에 그중 큰 수탉으로 새벽마다 홰를 치며 우는 우두머리수탉이 없어진 것을 모를 리가 없었다. 당장 밥숟갈을 놓은 기출씨는
“죽도록 딸을 길러 시집을 보냈는데 사위라고는 전신만신 도둑놈밖에 없다.”
면서 돌아앉아버렸다. 깜짝 놀란 김서방, 백서방이 잘못 했다고 빌어도 소용이 없었다. 아버지의 논밭과 집에서 키우는 짐승에 대한 애착이 그 누구보다도 강한 애착을 아는 순찬씨가
“아부지, 그만 용서하이소. 본래부터 사위자식은 다 도둑놈이라 카는데 딸 훔쳐간 도둑놈이 닭인들 안 훔치겠능교? 다 딸 가진 죄인이라 생각하이소. 정 안 되문 지가 새로 큰 장닭 한 마리 사주께요. 그만 용서하이소.”
사정해도
“안 된다. 내 닭 다르고 그 닭 다르다. 내가 키운 그 닭 사내란 말이다!”
요지부동, 더 성을 냈다. 분위기가 살벌해 대충 먹고 상을 물리고 식구들이 방에서 나오자 김해 김서방이 제 아이들을 불러 모아 엄마를 찾아오라더니
“가자!”
명촌댁 사위답게 위기 때마다 기출씨가 18번으로 부르짖는 ‘가자.’ 구호를 신호로 인사도 없이 슬며시 빠져나가자 금찬씨도 제 서방에게 어서 가자고 눈짓을 했다.
딸은 출가외인, 사위는 백년손님이 아니라 백년우환덩어리에 도둑놈이고 외손자 어르느니 디딜방아대가리나 어르라더니 이렇게 애를 먹이면 딸 많은 부모가 어디 숨이나 쉬겠다며 덕찬이를 데리고 뒷정리를 하던 명촌댁은 아랫방의 쌀가마니를 보다 또 깜짝 놀라고 말았다.
훌쭉해진 쌀가마니에서 기다란 대나무 대롱을 발견한 것이었다. 그 대롱 양끝이 비스듬히 잘려진 것으로 보아 한 쪽 끝을 쌀가마니에 비스듬히 꽂고 흔들어 쌀을 빠져나오게 한 모양이었다. <봉사 제 닭 잡아먹는다.>고 여태껏 먹은 닭고기도 상어회도 모조리 사위들이 슬쩍슬쩍 장난질을 한 것이었다. 그렇지만 명촌댁은 아버지나 다른 사람에게 절대로 말하지 말라며 덕찬이에게 단단히 다짐을 받았다. 가뜩이나 화가 난 호랑이영감이 알면 또 무슨 불똥이 떨어질지 모르는 일이었다.
열찬이가 국민학교 6학년 때였다. 서둘러 학교에서 돌아온 덕천고개 아래 오롱골 논에서 한창 나락을 베느라 정신이 없는데 논둑위 신작로에는 이제 집으로 돌아가는 중학생과 농업고등학생들이 줄을 지어 지나가고 가끔씩 뿌옇게 먼지를 뿜어 올리며 부산-언양 간의 시외버스와 트럭들이 지나가며 가끔 주먹만 한 돌멩이를 튕겨 혹시 자신을 아는 사람들이 자나갈까 가뜩한 찜찜한 열찬이는 불시에 날아올지도 모르는 돌멩이까지 신경을 써야하는 판이었다.
한창 열심히 나락을 베어가던 열찬이의 손길이 멈칫하더니 이내 낫 끝으로 먼지를 흠뻑 뒤집어쓴 여자 팬티하나를 긁어 올려 논두렁에 던지며 벌쭉 웃었다.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2021년 4월 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