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136) 제2부 농사꾼 기출씨 - 제17장 아아, 턱걸이④
대하소설 「신불산」(136) 제2부 농사꾼 기출씨 - 제17장 아아, 턱걸이④
  • 이득수 이득수
  • 승인 2022.05.22 07:00
  • 업데이트 2022.05.22 09: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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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아아, 턱걸이④

그러나 아버지 기출씨의 건강은 점점 더 나빠졌고 어머니 명촌댁과 누나 덕찬이는 단순히 하루하루 먹고 일하는 것 외에는 더 이상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았다. 동생 백찬이는 겨우 국민학교에 입학할 정도라 집안에서는 아무도 같이 어울리거나 말상대할 사람이 없는 조용한 아이로 자랐고 아버지가 기침으로 잠 못 드는 밤에 배를 주물러주면서 젊은 날의 경험담이나 견문, 여러 가지 타령이나 지신밟기의 사설을 한 토막씩 배우는 것이 이제 한창 세상에 관심이 많은 사춘기 열찬이의 재밋거리였다. 
 
늘 농사일에 바빠 집에서는 책을 볼 엄두도 못 내고 저물도록 일을 하고 저녁을 먹자말자 골아 떨어졌지만 시험기간에 가끔 새벽에 호롱불을 켜고 공부를 하면 어머니 명촌댁은 호롱불 기름 닳는다고 호통을 쳤다. 그럴 때면 자는 척 불을 끄다 다시 켜기를 반복하기도 했다. 그런 날 아침 우물가에 부옇게 동이 트는 햇살의 전조가 비치기 시작하면 어머니는 다급하게 열찬이를 부엌으로 불러내었다. 그리고는 시락국에 콩이 드문드문 들어간 국밥을 먹이거나 막걸리까지 한 사발을 먹여서 논밭으로 내몰았다. 
 
진장논이나 밭까지 부지런히 서너 번 왕복하며 거름을 내고 콩이나 볏단을 걷어 들이고 축담에 앉은 채 밥을 먹고 남천내 뚝다리를 건너다 발을 씻고 운동화를 신었다. 그렇게 공부에 집중하지 못했지만 다행인 것은 그래도 성적이  심하게 떨어지지는 않고 우등생의 수준을 유지한다는 것이었다.

 

열다섯이 되던 여름방학 중이었다. 처서를 며칠 앞둔 광복절 전날의 그 한더위 속에서도 반드시 김장배추나 무를 심을 거름을 진장 밭까지 져내야했다. 정오가 되기 전에 일을 끝내려고 열찬이가 땀을 뻘뻘 흘리며 진장만디의 깔딱 고개를 올라가는데

  솔솔솔 오솔길에 빨간 구두 아가씨
  똑똑똑 구두소리 어디 가시나

지게꾼들의 쉼터인 고개위의 커다란 상수리나무 밑에서 누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터질듯이 숨이 가쁜 판이라 평소 그가 제일 좋아하는 꽃인 산비탈에 핀 자주색 도라지꽃에도 눈길을 주는 둥 마는 둥 지나가는데 마침 장날인지 쌍수정마을에 사는 처녀 몇이 고개를 내려오다가

“아이구, 시장시러버라. 나는 뭐 잘 생긴 총각인줄 알았디마는 대가리 피도 안 마린 조막띠만한 머시마가 딴에는 히야까시를 한다고 지랄이네”

저들끼리 키드득거리는데
 
       새파란 운동화 신은 쌍수정 그 처녀가 
       어쩐지 나는 좋아, 어쩐지 맘에 들어

꼭대기에서 다시 노랫소리가 흘러나왔다.

“오냐. 이노무 자석. 장에 갔다올 때까지만 고라고 있어라. 하늘이 노랗도록 시껍을 미길 끼다. 이 짱배기에 피도 안 마른...”

처녀들이 침을 퉤퉤 뱉으며 내려갔다. 허허 웃으며 고개마루에 열찬이가 올라가자

“어이, 사형. 오래만이네!”

반갑게 소리치는 사람은 바로 구시골에 사는 한 살 많은 용천이었다. 시집간 순찬이누님의 남편인 김재근씨의 조카, 그러니까 열찬이와는 사형 간이었다. 하도 어릴 적에 사돈이 되서 그냥 너나 돌이를 하던 친구에 국민학교 동창이라 그냥 서로 용천아, 열찬아, 이름을 부르다가 갑자기 사형이라고 부르라고 해서 아예 서로 아무 호칭도 없이 그냥

“학교 가나?”
“일찍 오네.”

어중간하게 대화하다 나이가 들어 4, 5학년 되면서

“친구, 학교 가나?”

하는 정도로 사형 대신 친구 칭호를 붙였는데 이제 열찬이가 중학생이 되어 진학을 않은 그와 근 1 년 만에 만나니 그 어색하던 사형 자를 다 붙이는 거였다. 

ⓒ서상균

장남인 그의 아버지는 키도 작고 용맹도 없어 어찌어찌 언양바닥에서 그중 키는 작지만 이목구비가 또렷하고 귀염상이라 오모짱(인형)이란 별명이 붙은 아내를 얻었다. 그러나 특별히 하는 것도 없이 이불속 농사만 지어 식구들만 자꾸 늘어나자 물려받은 닷 마지기의 논과 마지막 재산인 구시골의 집마저 지니지 못 해 마을건너 좁고 양지바른 골짜기에 움막집을 짓고 하루하루를 근근이 넘기는 판인데 용천이가 바로 장남이었다.

“어이, 사형 니는 이 염천에 뭐 하는 기고? 그까짓 거름지고 농사지으면 부자가 되나? 맨 날 고생만 하고 등골만 빠지지.”

시근없이 이 산만디에서 뭐하는 짓이냐고, 덩치도 나이도 상대도 안 되는 이웃마을처녀들한테 실없는 히야까시를 하다가 쌍수정총각이나 어른들을 만나면 우짤라고 그러냐고 말하려는데 먼저 선수를 친 용천이가

“공부 그 거 암만 해도 소용없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고 누가 말했다 카는데 그 짧은 인생에 공부고 농사고 다 소용이 없다. 인생은 그냥 연애다. 우쨌기나 연애를 잘 해서 아니, 가시나를 잘 꼬아서 그 삐꿍삐꿍이나 억수로 하고...”

실없는 이야기에 열찬이 다시 지개를 지고

“요, 용천이 사형아, 아까 그 처자들에 올 때 니를 절딴낸다 카더라. 무슨 일 당하지 말고 마 집에 가거라.”

하고 부지런히 걸어 밭에 거름을 붓고 돌아서 조부자집 과수원울타리위로 하늘이 새까맣도록 날아다니는 고추잠자리를 바라보다 눈이 부시자 문득 자신의 산소에 백일홍을 많이 심어달라고 했지만 등교하는 학생들이 다 꺾어가서 대신 코스모스를 심어놓은 아버지산소를 찾아가서

“아부지, 지 왔심더.”

옷에 거름이 묻고 지개까지 진 형편이라 절은 생략하고 이제 몇 송이 꽃이 피기 시작하는 코스모스 잎을 만져보다 오던 길을 돌아오는데 한참 앞에 이번에도 몇 명의 처녀가 걸어가고 있었다. 

  노오란 원피스 입은 말없는 그 처녀가
  어쩐지 나는 좋아 어쩐지 맘에 들어

이번에도 용천이의 목소리였다. 그리고 길가는 네 명의 처녀중 하나가 노란 원피스였다. 이어

  한번만 더 봤으면 좋겠네. 
  돌아서 가는 님이 야속해
  낮이나 밤이나 내 마음대로 
  한번만 더 했으면 좋겠네.
  밤이나 낮이나 꼴릴 때마다
  원피스 입고 있는 저 아가씨와...

처음에는 맞는 것 같다가 나중에는 얼토당토 않는 노랫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길가는 여대생을 붙잡아 놓고
  사정에 이야기를 하였더디
  부끄러워 말 못 하고 뒤로 돌아서
  살며시 빤스끈을 풀어주더라.

이야기가 점점 이상하게 빠진다고 생각하는데

  한번만 더 합시다.
  아니 됩니다.
  만약에 아 새끼가 튀어나오면
  당신은 책임 없는 군발이고요
  나는야 말 못하는 여대생이요.

제법 가락을 잡아가는데 

“아야!”

갑자기 노래가 뚝 끊기며 

“아이구, 사람 잡네! 놔라! 놔라!”

용천이의 비명이 터졌다. 후다닥 달려간 열찬이가 지게를 세우고 바라보니 그 노란 원피스를 입은 처녀를 비롯한 넷이 

“아이구, 더러버라! 이 쥐 부랄 만한 새끼가!”
“임마 이거 젖이나 떨어졌나? 또라이새끼가?”
“이 새끼야, 맞아 뒤져야 정신을 차리겠나?”

조그만 용천이를 쓰러뜨리고 발로 지근지근 밟고 있었다. 큰일 나겠다 싶은 생각이 든 열찬이가

“보소. 쌍수정누님들요, 내 친구 이 아가 암만캐도 더위를 문 모양임더. 동생이라 생각하고 용서하이소.”

노란 원피스의 팔을 잡고 통사정을 하자

“비러먹을 모숭기철 내내 공동 모 심고 오뉴월 염천에 땀을 팥죽 같이 흘리며 콩밭을 매서 받은 품을 모아 근근이 원피스 하나 해 입고 처음으로 장에 가는데 이건 뭐 총각도 아니고 사내꼭지도 못 되는 라이타 돌만한 놈이 지랄하고 자빠졌네.”

“죽자고 고생하서 길을 딲아 놓았더니 문디가 먼저 지나간다 카디 이 새끼가 그 맞잽이네.”
“안 그래도 진장만디에 도라이새끼가 있다카디마는 별 희한한 꼴도 다 보네.”
“인들아야, 니 한 분만 더 그라면 제삿날인줄 알아라!”

제가끔 한 마디씩 내뱉고는 손을 탈탈 털고 돌아섰다.

“사형아, 니 무슨 짓이고? 다치지는 안 했나?”

한숨을 놓은 열찬이가 묻는데

“뭐, 그까짓 일로. 그래도 밑에 깔려서 가시나 너이 젖은 실컨 봤다 아이가? 가시나 하나는 궁디도 실컨 문땠는데 얼마나 크고 뭉클하던지.”
“에라이, 못된 사형아!”

혀를 끌끌 차며 열찬이가 돌아서는데

“인생 그 뭐 별 거 있나? 그나 저나 사형 고맙데이.”

용천이의 목소리와 함께 <길가는 여대생을 붙잡아 놓고>의 노랫소리가 계속 그의 바지게를 뒤따라 왔다.
  

겨울방학은 늘 나무들 하느라 바빴지만 여름방학에는 학교도서관에 가서 가장 두꺼운 소설책 서너 권씩을 대출받았다. 날씨가 좋으면 논을 매고 풀을 베고 소를 먹이고 풋나무를 하여야 했지만 여름철은 무엇보다 장마철이 있어 좋았다. 짧아도 일주일, 길면 보름이나 넘는 이 궂은 비 하염없이 내리는 날들이 가난하고 외로우며 늘 바쁜 소년에게 유일한 휴식기간이 되어 침침한 방에 배를 깔고 누워 가끔 찐 감자나 밀떡을 먹으며 하루 종일 소설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중3의 긴 방학 동안에 그는 톨스토이의 『부활』, 도스토 에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과 <『백치』, 고골리의 『외투』, 나다니 엘 호손의 『주홍글씨』를 독파했다.

겨울방학에는 나무를 하는 것 외에도 또 하나의 고역이 있었으니 바로 가마니를 꿰매어 팔러가는 일이었다. 약 오십 호의 버든마을에 절반이 넘는 서른 집 정도에서는 추수가 끝나는 12월부터 농사가 시작되기 직전인 3월까지 가마니를 쳐서 팔았다. 언양장터에서 팔리는 가마니의 절반이상을 이 조그만 마을에서 공급하는 셈이었는데 그 유래도 역시 좁고 가난한 버든마을의 입지조건에서 유래한 것이었다.

일제가 강대국 미국에 앞서 대동아전쟁을 선포하고 내선일체를 내세우며 반도의 젊은이들을 학도병과 정신대와 징용으로 뽑아가고 놋그릇을 비롯한 온갖 군수물자를 공출하던 시절 높은 산을 끼고 넓은 들판을 펼친 부촌에서는 주로 군량미인 나락을 부담하고 산촌에서는 비행기의 기름으로 쓴다는 송진을 채취하느라고 모든 노송과 거목에는 하사관의 계급장처럼 V자의 상처를  여러 개 내고 그 아래에 송진이 흘러내리는 Y형의 홈을 파서 채취한 송진을 바쳤고 도시나 읍내에서는 현금을 헌금했지만 읍에 가까운 반촌으로 곡식이나 송진도 생산이 적고 그렇다고 헌금을 할 만큼 부촌도 아닌 버든 같은 마을은 도무지 바칠 것이 없어 일제가 고심 끝에 부과한 것이 바로 언양읍일대의 반촌인 세 마을 즉 서부리 방천마을에는 신불산의 싸리로 만든 채반인 산데미, 어음상리 마흘과 하리 니리미를 포함한 어음의 새끼, 버든의 가마니 공출이었다.
 
그런데 이 가마니를 짠다는 것은 그 공정이 여간 복잡하고 성가신 것이 아니었다.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2021년 4월 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