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137) 제2부 농사꾼 기출씨 - 제17장 아아, 턱걸이⑤
대하소설 「신불산」(137) 제2부 농사꾼 기출씨 - 제17장 아아, 턱걸이⑤
  • 이득수 이득수
  • 승인 2022.05.23 07:00
  • 업데이트 2022.05.24 11: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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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아아, 턱걸이⑤

그런데 이 가마니를 짠다는 것은 그 공정이 여간 복잡하고 성가신 것이 아니었다. 먼저 탈곡이 끝난 볏짚 중에서 키가 크고 곧게 자라 약간 푸른빛이 도는 깨끗한 짚단을 골라 베틀처럼 생긴 가마니틀에 세로로 걸 새끼를 꼬아야 했다. 새끼를 꼬기 전에는 먼저 짚을 갈리고 추긴다고 해서  짚단을 풀어 손으로 꼭대기를 잡고 아래쪽으로 지푸라기를 훑어내고 평소에 떡을 치는 넓은 돌 안반위에 놓고 입에 물을 머금고 추기면서 메질을 해서 짚을 부드럽고 촉촉하게 준비해야 했다. 

그리고는 방안에서 양손으로 새끼를 꼬아 엉덩이 뒤로 뽑아내는데 기출씨처럼 왼손으로 시원시원하게 아주 잘 꼬는 사람이 하룻밤에 가마니 세 장 칠 새끼를 꼬기도 힘들었으니 열찬이 정도의 실력으로는 두 장을 칠 정도도 힘들었지만 네 살 위의 덕찬이와 저녁마다 부지런히 새끼를 꼬았다. 그런데 이미 처녀티가 나고 마을에 몇 개밖에 없는 라디오에서 이미자의 동백아가씨나 섬마을선생 같은 노래나 연속극에 한창 재미를 붙인 덕찬이는 짚단을 들고 온 친구들과 시시덕거리며 함께 새끼를 꼬거나 다른 집에 가서 꼬기도 하고 때로는 몰래 언양의 극장에 가기도 했지만 열찬이는 늘 혼자서 천식으로 헐떡거리며 괴로워하는 아버지 앞에서 새끼를 꼬다 가끔 아버지를 돌봐야했다. 같이 중학교에 다니는 마을아이들은 대개 열찬이네보다 잘 살거나 아버지가 젊어 가마니를 치는 집이 드물어 매일 밤 새끼를 꼬느라 손바닥에 짚 물이 새파랗게 드는 아이는 열찬이밖에 없었다. 

 

그렇게 꼰 새끼로 어머니가 가마니를 치면 완성된 가마니를 낫으로 잘라내어 그 귀퉁이를 베어내고 가마니틀에 끼우고 굵은 새끼를 꼬아 나무바늘에 꿰어 꿰매는 일 역시 열찬이의 몫이었다. 그렇게 완성된 가마니를 돌가리마당이라고 부르는 새끼전(廛), 가끔 촌사람들이 마시마이(曲馬團)이라고 부르는 서커스단이 자리 잡기도 하는 언양장터 맨 위쪽 지서뒤편의 공터에서 파는 것이었다. 

그런데 불행히도 명촌댁의 손끝이 그리 야무치지 않아 다른 사람들의 가마니가 매끈하고 색깔이 산뜻한 데 비해 열찬이네의 가마니는 어딘가 거칠고 우중충해서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식으로 같은 값이면 모양이 좋은 것부터 사가는 판이라 좀체 잘 팔리지가 않았다. 나이 많은 농부 중에  일부러 두꺼운 가마니를 찾는 사람이 있을 경우나 아무리 보아도 중학생밖에 되어 보이지 않는 어린 장사꾼의 가마니를 일부러 사주는 사람이 아니면 점심시간을 넘기고 파장이 되어 그중 늦게 팔기가 예사였다. 

나무꾼에 농사꾼에 장사꾼, 소설책에 흠뻑 빠진 한 순진한 중학생은 또 그렇게 세 가지의 가장 원초적인 직업을 가져야만 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같은 마을 같은 또래친구들의 방학은 좀 달랐다. 여름방학엔 남천내에서 멱을 감는 일과 과일서리에, 겨울방학엔 용당수에서 얼음을 지치는 일과 닭서리에 열중하여 날 가는 줄을 몰랐다. 

당시의 농촌에서는 다 같이 자식을 키우는 마당에 약간의 과일이나 닭 한 두 마리 같은 엔간한 먹을거리를 한창 때의 청소년들이 훔쳐다 먹는 일에 비교적 관대했고 심지어는 장독간이나 부엌에 둔 삶은 감자나 떡, 고구마나 홍시 등을 훔쳐가더라도 대범하게 용서하고 잊어버렸다. 사내자식 키우면서 남의 아들을 도둑이니 뭐니 부르지 않는 것이 그들의 불문율이기도 했다. 

어느 집 하나 양식이 남아돌 정도로 넉넉하지 않은 버든마을의 아이들은 특히나 이 <서리>에 관심이 많고 또 능했다. 그들이 생각만 해도 가슴이 콩닥거리는 이 은밀한 놀이는 밀이 익기 시작하는 6월초의 밀서리에서  진장의 조부잣집과수원에 복숭아가 익기 7월말쯤이면 절정에 달했고 이어 9월초의 풋콩을 구워먹는 콩서리를 거쳐 가끔은 십리가 넘는 들내마을의 사과서리를 원정가기도 했다. 

그러나 이 서리라는 것이 말처럼 그렇게 쉽사리 매번 성공을 할 정도로 만만하지가 않았다. 특히 진장 복숭아밭은 그 울타리가 전체로 촘촘한 철조망으로 막혀있고 복숭아밭에는 한 뼘이나 되는 가시가 사정없이 찔러대는 탱자나무가 심어져 있어 가히 난공불락의 철옹성(鐵甕城)이라 할 만 했다. 그러나 반촌에다 빈촌인 버든마을의 동란동이들이 어디 그만한 일로 좌절하거나 포기할 아이들인가. 그들은 트로이성을 공략하는 오디세이의 목마처럼 나름 중장비를 개발하여 공성(攻城)에 나섰는데 그것은 바로 덕시기라고 불리는 멍석작전이었다. 두꺼운 헌 멍석을 한 장 메고 가 탱자나무울타리에 걸치고 마치 지붕을 타넘듯 넘어가 한 자루씩 복숭아를 따오기도 하고 탱자나무울이 너무 높으면 땅바닥쯤에 토관처럼 둥글게 꽂고 그 속으로 살금살금 기어가 고구마를 캐오기도 했다. 

과수원에는 베루라고 불리는 대단히 크고 사나운 세퍼드가 있어 마을아이들의 공포의 대상이었고 어떤 때는 또 다른 개들을 풀어 대비했지만 아이들은 그 역시 너끈히 돌파했는데 바로 '꿉은 무시 작전'이었다. 

짓궂은 아이들은 개들이 생선이나 짐승고기나 기름 냄새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커다란 무에 참기름을 칠해 오랫동안 속속들이 잘 익도록 불에 구웠다. 그리고는 사납게 짖어대는 개를 향해 훌쩍 던지면 이내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얼떨결에 고소하게 구운 무를 단숨에 깨문 개들은 그 기다란 송곳니를 비롯한 모든 이빨이 수백 도가 넘도록 자글자글 끓고 있는 무의 속살에 익어 제대로 숨도 쉬지 못하고 한참이나 끙끙거리다 마침내 하나도 남김없이 몽땅 무의 속살에 박혀 단숨에 빠져버리는 바람에 더는 짖거나 물지를 못하는 폐견이 되고 마는 것이었다. 

 

여름방학이 끝나면서 아이들이 그렇게 신나게 열중하던 여름서리도 자동으로 끝이 났다. 2학기 개학을 하는 아침에 아랫각단 말랑댁에서 희한한 일이 벌어진 것이었다. 

중3의 장남 필준이와 국민학교 2학년 영준이까지 모두 책보를 들고 등교를 했는데 중학생인 차남 광준이가 여태 마루에 앉은 채 미적거리는 것이었다. 아침 일찍 탱주나무골짜기논에 물을 빼러갈려고 나온 말랑김손이 자기보다 한 뼘도 더 큰 아이를 쳐다보며

“니 거서 머 하노? 어서 학교 안 가나?”

묻자

“예.”

대답만 하고 또 한없이 밍거적거리는 것이었다. 한참 만에 부엌에서 설거지를 끝내고 나온 말랑댁이

“니 학교 안 가고 뭐 하노? 오늘 월사금 가가야 되나?” 

고개를 갸웃거렸다. 비록 농사꾼이지만 부부가 부지런하기로 소문나 그 많은 아이들의 월사금을 단 한번이라도 늦게 준 일이 없었고 혹시 늦었더라도 필준이, 광준이가 동시에 늦지 광준이만 달랑 늦을 일이 없는 것이었다.

“엄마...”
 “와?”
 “엄마...”
 “와아!”

말랑댁의 목청이 올라갔다. 상남댁할매 서촌댁이 죽은 이후로 버든에서 키가 제일 큰 여자인 만큼 목소리도 우렁찼다.

“내 학교 안 가고 새끼 꾸면 안 되나? 엄마 내 학교 안 가고 새끼 꾸께. 엄마!”
“뭐라고? 이노무 자석이! 넘은 하라캐도 돈이 없어 몬 하는 공부를... ”

말랑댁이 마당 빗자루를 들고 모기 쫓듯 아들을 공격했다. 둘 다 키는 크지만 회창회창한 아들보다 몸 전체가 실팍한 말랑댁의 완력에 가방을 든 광준이는 주춤주춤 삽작 밖으로 밀려나 동사 앞을 지나 마침내 뚝다리를 건너갔다. 강 건너 중학교에서는 벌써 아침 조회가 시작되었는지 교장선생님의 훈시가 삐익삐익 잡음과 함께 마이크를 타고 흘러나왔다.

“아이고, 내 팔자야!” 

빗자루를 거름 밭에 내던진 말랑댁이

“그놈의 영감쟁이! 아이구 내가 헛보고 시집을 왔제? 키만 작은 줄 알았지, 그렇게 머리가 없어 말캉 돌대가리만 놀 줄 누가 알았노?”

푹푹 한숨을 내쉬었다. 버든마을에서 가장 부지런하고 야무진 농사꾼으로 꼽히는 말랑김손이 사실은 남자들 중에서는 그 중 키가 작은 편이라 덩치 좋은 신부와 상대가 안 되어 결혼사진을 찍으면서 발밑에 반티를 엎고 올라섰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었다. 아무튼 그렇게 또 하나 재미있는 이야기가 빨래터로 번지기 시작했다. 

ⓒ서상균

방과 후에 나락 논에 새를 쫓고 알밤을 줍다 추석맞이 씨름대회, 그네대회에 신명을 내다 농번기 가정실습을 맞아 벼베기, 타작과 보리갈이에 시달리면서 짧은 가을철이 끝나고 찬바람이 불고 눈이 내리더니 금방 크리스마스가 닥치고 그 안날 24일에 겨울방학이 시작되었다. 

누가 뭐래도 겨울방학의 하이라이트, 가장 스릴이 넘치고 신명이 나는 절정은 바로 닭서리에 도전하는 것이었다. 

닭서리는 아무데서나 훔치는 즉시 먹고 사라지면 되는 수박서리나 복숭아서리와 달리 반드시 물을 끓여 닭털을 벗기고 닭고기를 삶아야하는 상당한 공간과 기물이 필요한 일이었고 자칫 닭을 잘못 다루어 푸드득거리거나 꾹꾹거려 잡히기라도 하는 날이면 중남지서에 잡혀갈 위험조차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버든의 아이들은 두 가지의 호재(好材)가 있었으니 하나는 300평에 가까운 커다란 기와집의 본채에는 어머니 삼동댁과 누나 송자, 여동생 송분이가 거처하고 방이 두 개나 되는 아래채를 통째로 쓰는 친구 종석이가 있어 언제든지 닭만 잡아오면 삶아먹을 수가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의 호재는 마치 호랑이 잡는 담비처럼 닭 잡는 기술자 광준이가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공부가 하기 싫고 학교에도 가기 싫은 광준이게게 조물주는 희한하게도 닭 잘 잡는 기술을 준 모양이었다. 

보통 어느 집이나 밤에 닭을 잡아가는 족제비나 인간 족제비 닭 서리꾼을 막기 위해 안채와 얼마 떨어지지 않는 아래채의 헛간이나 담 모퉁이에 세워놓은 닭장에 누가 조금만 접근하며 꼬꼬댁 꼬꼬 놀라 잠이 깬 닭들이 울거나 푸드득거려 금방 개가 짖거나 주인이 나오기 마련이었다. 보통 아이들은 무사히 닭을 낚아채기보다도 우선은 가슴이 울렁거려 닭장에 접근하기가 죽을 맛이었다. 그러나 닭 잘 잡은 광준이는 간을 타고 나기를 됫박 만하게 타고 났는지 단한 번도 움츠리거나 망설이는 법 없이 언제나 백발백중 성공이었다. 까무잡잡한 얼굴에 키만 껑충했지 아무런 특기도 장기도 없을 것 같은 그 애는 족제비나 매처럼 아예 처음부터 닭 잡는 기술을 타고난 모양으로 조용조용 발소리도 내지 않고 닭장에 접근했고 그가 닭장에 손을 집어넣으면 아무리 크고 사나운 장닭도 찍소리 한번 내는 법이 없었다. 니는 우째서 그래 닭을 잘 잡느냐고 물어도 그는 씨익 한번 웃을 뿐이었다.

 

처음에는 마을의 돌아앉은 집이나 노인들이 사는 집의 닭장을 털던 아이들은 그 사냥감이 점점 없어지자 나중에는 동무들끼리 서로 자기 집 닭장을 털도록 삽짝문을 열어주고 보초를 서는 그야말로 <봉사 제 닭 잡아먹기>로 한 두 마리 닭을 잡아 돌도 부숴낸다는 그 왕성한 식욕으로 종석이네 기와집에서 밤마다 포식을 하곤 했다.

그래도 더 이상 잡아먹을 닭이 귀해지자 아이들은 인근의 수남마을 향교마을 쌍수정과 도호마을로 원정을 가고 십리에 가까운 마산까지 가는 수도 있었는데 재미있는 것은 그들이 인근마을에서 닭을 훔쳐다 포식을 하고난 이튿날 마을에서 닭이 도둑맞았다고 난리가 나는 수가 있는데 그건 바로 그 사이에 다른 마을아이들이 다녀갔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마산이나 쌍수정에서 성공하면 무슨 자랑처럼 가까운 개울에서 닭을 죽여 창자를 빼고 털을 흘리고 돌아오듯 다른 마을아이들도 꼭 남천내나 새빗도랑의 뚝다리에 닭창자와 닭털을 흘려 화를 돋우는 것이었다. 한 번은 외래종 흰 닭인 레그혼 폐계 두 마리를 서리하고 자기 집 토종닭 다섯 마리를 털린 영호에게

 “야, 아깝고 섭섭하나?”
 “아이다. 대기 소친다.”
 “진짜 보골나나?”
“그래 허패가 터진다!”
 “그라문 우리한테 털린 쌍수정, 수남, 도리, 마산, 향교아아들도 다 대기 소칫겠제?”
 “아이다. 보골이 나고 허패가 지 디비졌겠지.”
 “맞다. 서로가 똑 같다. 말짱 봉사 지 닭 잡아묵기다.”
 “하하하.”
 “허허허.”

그렇게 같이 웃어넘겼지만 그렇게 끝난 것은 아니었다. 이제 아이들은 마을 간에 무슨 대결이나 하듯이 패를 지어 저녁마다 이 마을, 저 마을을 습격하고 간혹 역습당하기도 했다. 중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서로가 같은 반이거나 얼굴을 다 아는 처지이면서 학교에서는 간밤에 자기 마을에서 닭서리를 당했는데 어느 마을아이들의 소행이다, 닭털이 어느 방향으로 떨어졌더라고 예사로 이야기하면서도 시치미를 뚝 뗀 체 다시 그 친구들의 마을을 털러 가는 것이었다.

 

당시만 해도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진학하지 않은 아이들이 근 1/3이나 되는 시절이라 닭서리가 차츰 마을대항 단체전 비슷하게 발전하고 이웃마을로 나가려던 아이들이 상대의 습격을 눈치 채고 돌멩이질을 하는 투석전이 벌어지거나 가끔은 가까운 거리에서 바로 상대의 멱살을 잡는 육박전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그럴 때는 반드시 중학교에 다니지 않아 서로 얼굴을 모르는 아이들끼리 싸웠고 저 어둑한 담 그늘에 숨은 그림자가 같은 반의 아무개라고 짐작하면서도 서로 간에는 현장에서나 이튿날의 학교에서도 절대로 상대를 거명하지는 않았다. 그것이 관례고 불문율이었는데 나중에 장성해서 같이 군에 입대하면서 또 아웃마을로 장가를 들면서 비로소 그 때의 이야기를 하면서 껄껄 웃기도 하였으니 그 때만 하여도 상당히 농촌다운 너그러운 인심과 정취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처음에는 열찬이에게도 한두 번 같이 어울리자고 했던 마을아이들이 금방 포기를 했다. 농사와 나무하기와 새끼 꼬기 같은 여러 가지 일에다 소설책에 빠져 바쁘기도 했지만 남의 것을 훔치는 것이 두렵고 꺼림칙해 도무지 어울리지를 않자 아이들도 한두 번 권하다가 아예 열찬이라는 존재를 염두에 두지 않았다. 물론 열찬이가 거절하기도 했지만 억지로 데리고 가도 동작이 굼뜬 열찬이가 울타리를 넘어 복숭아나 수박을 따거나 닭장의 닭을 빼내는데 도움이 되지도 않을 뿐더러 혹시 주인에게 발각되어 도망을 치게 되면 주인에게 잡힐 우려가 크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렇게 열찬이가 닭서리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열찬이네 닭이 닭서리로부터 안전한 것은 아니었다. 원래 닭장수로 닭이 잘 떨어지지 않는 집인 데다 담장도 낮고 개도 키우지 않아 그야말로 닭서리에는 천국이었던 셈이었다. 그렇지만 열찬이가 닭서리에 잘 어울리지도 않고 기출씨가 다른 친구들의 아버지보다 거의 삼촌 격으로 나이가 많고 병이 들어 아이들은 일 년에 한두 번 닭서리를 하는 정도였으니 딴에는 좀 봐주는 셈이었다.

대신 열찬이네 집에는 또 다른 전리품이 늘 그들의 방문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것은 밤새 쉬지 말라고 장독대에 얹어놓은 여름철의 국수면발과 수제비, 겨울철엔 얕게 묻어둔 뒷밭의 고구마와 무, 큰 장독 속의 홍시들이었다고 나이 환갑이 지나서 향우회를 하던 아이들이 실토를 하면서 웃었다. 

그 중에서 감자와 호박에 멸치를 넣고 기출씨를 위해 찹쌀도 한 줌 넣은 수제비는 따로 고명이 준비되지 않는 국수에 비해 너무나 맛있는 별미였고 명촌댁이 담은 소금과 마늘 외에는 아무 양념이 들어가지 않은 동치미가 정말 시원하기 이를 데 없었다고도 했다. 

그런데 더욱 재미있는 건, 천식으로 잠을 못 이루는 기출씨나 잠에서 깬 명촌댁이 간혹 삽짝문이나 장독간 또는 뒤란에서 뭣이 투덕거리거나 장독이 삐걱거리거나 인기척이 나도

“바람소린가, 쪽찌비소린가?”
“쪽찌비소리겠지.”
“맞제?”
“맞지.”

하고는 굳이 나가볼 염을 내지 않았고 이튿날 장독간에 두었던 국수면발이나 수제비가 없어져도

“그 놈의 족제비가 묵고 갔구나.”

좁고 긴 몸매로 담 구멍을 드나드는 족제비가 쥐나 뱀을 잡아먹지 결코 국수나 수제비를 먹지 않는 것을 알면서도 더 이상 거론이 없었다.
 

졸업이 다가왔을 때 그는 14세 유태인 소녀 「안네의 일기」에 빠져 전쟁의 참상과 순수하고 호기심에 넘치는 소녀가 처음으로 이성을 느끼기 시작하는 아름다운 이국의 소녀, 그것도 나사렛 예수의 동족 유태인의 안타까운 죽음에 젖어있었다. 그러나 곧 고등학교입학시험이 다가올 것을 걱정하고 한 일주일 간 예의 그 부지런히 외우기를 집중해 전국모의고사에서 상당한 성적을 올려 교내에서는 제법 등수에 들어 또 한 번 탄성을 자아내게 했으나 결과는 역시나 로 끝나고 말았다. 

부산의 일류명문 B고에 지원한 그가 보기 좋게 떨어지고 만 것이었다. 필답고사는 꽤나 잘 친 것 같았는데 역시 그 바닷바람이 사나운 운동장에서 뛰고 달리고 턱걸이를 하던 여전히 부진하기만 한 체육실기가 발목을 잡은 모양이었다. 그렇게 그의 중학교시절이 끝이 나고 말았다. 

 

이득수 시인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2021년 4월 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