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140) 제2부 농사꾼 기출씨 - 제18장 언양방송국 순찬씨③
대하소설 「신불산」(140) 제2부 농사꾼 기출씨 - 제18장 언양방송국 순찬씨③
  • 이득수 이득수
  • 승인 2022.05.26 07:00
  • 업데이트 2022.05.27 09: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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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언양방송국 순찬씨③

순찬씨가 엉뚱한 방향으로 공격했다. 국토개발, 경제개발5개년계획과 함께 정부에서는 허례허식, 미신타파에 한참 열을 올려 당시 한창 마을의 성황당이나 굿당을 허물고 심지어 용왕제나 동제까지 하느니 마느니 하는 시절이라 맹씨네가 멈칫하는데 한참 만에

“사형요, 보소. 우리가 마 남도 아이고 서로 좋게 자기 신을 자기가 믿고 간섭 말고 지냅시더. 그만 내려 가이소.”

중간에 선 선길씨가 말려 

“할렐루야! 주여, 저 죄 많은 영혼들을 용서하소서.!”

순찬씨가 돌아서는데

“정자야, 정지 가서 소금 좀 가 오너라!”

아직도 분이 안 풀린 노파가 스무 살이 전후의 앳된 막내딸이 소금을 가져오자 대문간에 뿌리면서 순찬씨의 등 뒤를 보며 퉤 침을 뱉었다. 

 

그런 뒤 한 사흘쯤 흘러 다시 끈텅집에서 동당동당 북을 치며 굿을 하는 소리가 들릴 때였다.

  태산을 넘고 험곡에 가도 
  빛 가운데로 걸어가며
  할렐루야를 노래하며
  영원히 주를 찬양하리.

난데 업는 찬송가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놀란 마을사람들이 담 너머로 내다보니 언양댁 순찬씨가 아이 하나를 업고 둘을 손잡고 걸리면서 끈텅집을 향하고 있었다.

 하늘에 영광 하늘에 영광
 나의 맘속에 차고도 넘쳐
 할렐루야를 노래하면서
 영원히 주를 찬양하리.

마지막 집 앞에 머문 노랫소리는 이어

“사탄아, 물러가라!”
 “사탄아, 물러가라!”

삽짝 문에서 한껏 목청을 높여 외치더니 이내

“천지만물과 우리 인간의 생사를 주관하시는 하느님 아버지, 늘 자비로우시고 은혜가 가득한 하느님아버지시여, 여기 아직도 우리 어리석은 인간의 죄를 대속하고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한 예수님의 기적과 은혜를 믿지 못 하고 어리석은 사탄의 유혹에 빠져 귀신을 믿고 굿을 하는 저 늙고 어리석은 딸을 불쌍히 여기시고 긍휼히 여기시사 그의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하루바삐 주 앞에 나와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를 믿어 영원한 은혜의 나라에서 영생을 얻기를...”

유창하게 기도를 하며 중간중간 주여, 주여와 할렐루야! 를 반복하며 눈물이 글썽한 순찬씨를 보며 비잉 둘러선 아낙들과 아이들이

“아이고, 우짜꼬? 아무래도 큰 난리가 나겠다. 마실 생기고 이런 일은 없었는데...”
“허허, 그 참. 남도 아닌 사돈끼리 무슨 일이고?

걱정이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굿판을 벌리는 노파와 할렐루야를 입에 달고 사는 젊은 아낙의, 그것도 사돈지간에 무슨 철천지원수가 진 것 같은 한바탕 난리가 벌어질 것만 같았다. 그런데 잠깐 기도를 멈춘 순찬씨가 좌중을 비잉 둘러보며 등에 업혀 칭얼거리는 아이를 한번 추어올리더니 

“여러분, 다 같이 기도하십시다.” 

갑자기 눈을 반짝이며

“천지만물과 우리 인간의 생사를 주관하시는 하느님 아버지,  늘 자비로우시고 은혜가 가득한 하느님아버지시여, 여기 아직도 우리 어리석은 인간의 죄를 대속하고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한 예수님의...”

다시 장황한 기도를 시작하는 것이었다. 하매 끝이 날까, 도조마조마한 사람들이 이제 막 기도를 끝내고

“사탄아, 물러가라!”
“우상숭배자는 물러가라!”

다시 고함을 지르는 순찬씨를 넋을 놓고 바라보는데

“보소, 사형요!”

어느새 새파라동동 화가 잔뜩 난 노파가 뛰어나왔다. 손에 북채를 든 채였다.

“보자보자 카이 이기 뭐하는 짓이요!”

금방 머리끄덩이라도 잡으려다 사돈이라는 생각이 미쳐 멈칫하며

“와 이라능교? 무단히 너무 밥상에 재 뿌릴 일이 있능교?” 

애써 분을 참으며 묻는데

“와요? 내가 뭐 잘못 했능교? 사장어른이 예수를 믿든 손을 비비든 지 신세 지가 알아서 하자 안 캤능교? 사돈어른이야 굿을 하든지 말든지 내사 찬송을 하든지 말든지 무슨 간섭잉교?”
“허허, 참. 여게가 어데 사형집잉교? 와 너무 집 굿판에 와서 야단잉교? 그 주거침입인가 뭔가 너무 집에 함부로 못 들어간다는 것도 모르능교?”

마침내 주도권을 잡은 집주인이 공세로 나오는데

“말 잘 나왔다. 그래 주거침입이 죈지 미신을 믿고 백주대낮에 굿판을 벌리는 기 죈지 시방 김해경찰서에 같이 가볼랑교? 아이면 이북면면사무소 면장한테라도 물어볼랑교?”

방금이라도 경찰서로 끌고 갈 판이라 노파가 멈칫하는데

“아이구, 사형요, 상철이엄마요.”

들에서 난리가 난 것을 보고 달려온 맹선길 씨가

“제발 좀 참으시소. 우리가 이래 싸워서 될 사람들잉교?”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자 그 제서야 나타난 재근씨도

“와 이라노? 가자!”

모처럼 아내에게 큰소리를 치며 다가서서

“가자!”

장인어른의 18번을 한 번 더 써먹었다. 결국 그날도

“정자야, 소금 가온나!”

노파의 고함소리와 함께 그야말로 난리법석, 굿판이 끝나고 말았다.

ⓒ서상균

이튿날 끈텅집장남이 지게에 널빤지와 각목 몇 개를 지고 마을사람 하나를 높을 해 생금산골짝 가장 깊은 곳 작은 샘물이 나오는 곳에 땅을 고르고 비바람에 촛불이 꺼지지 않도록 개집처럼 조그만 감실(龕室)하나를 짓고 내려왔다. 그리고 며칠 뒤 과일과 양초를 든 애동처녀 막내딸을 거느린 노파가 꽹과리와 북을 들고 허위허위 가쁜 쉼을 몰아쉬며 올라가 쾌자자락을 펄럭이며 굿판을 벌였지만 덩덩덩덩 마을에서는 마치 자리에 누워 심장이 뛰는 소리를 듣듯이 조용하고 편안한, 그저 낮잠이나 자기에 마침한 소리였다. 비로소 전쟁이 끝난 것이었다. 그날 이후 순찬씨는 금음마을에서는 아무도 못 말리는 여자, '언양방송국'이 되고 말았다.

그렇게 소동이 끝난 뒤 매사에 자신감을 얻은 순찬씨는 김해의 교회를 다니며 집사 직까지 맡았다. 버스 정류소나 시장골목의 장사도 여전했고 새로 수확한 딸기를 구포까지 나가서 팔고 오기도 했다. 상철이가 국민학교에 입학하기는 했지만 아직 아이들이 어려 큰돈도 들어가지 않으니 비록 천수답 골짝 논이나 비탈 밭도 조금씩 늘리며 이제 밥걱정은 없다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그런 어느 날이었다.

“아이구, 형수님!”

웬 젊은이 하나가 마당으로 들어섰다. 당당한 체구에 이마가 훤했지만 입성이나 표정이 어딘가 추레하고 움츠러든 모양이었다.

“아이고, 이기 눙교? 대름아잉교?”

한참이나 바라보던 순찬씨가 신혼 때 한두 번 본 시동생을 떠올리며

“보소. 대름 오싰네. 야들아, 인사해라. 법근이삼촌이다.”

하는데

“왔나?”
“형님잉교?”

순찬씨가 알기로 못 되어도 7, 8년 만에 만나는 두 형제는 손도 잡지 않고 그냥 소 닭 보듯이 하는 것이었다. 하다 못한 순찬씨가  

“보소, 손님 왔는데 달구새끼라도 좀 잡으소.”

아이에게 시키듯 소리치고

“대름 어서 들어갑시더.”

하더니 그 때서야 생각난 듯

“삼촌, 야가 큰아 상철인데 인자 1학년이고 야는 여섯 살 용철이, 가시나 이거는 네 살 미숙이, 업힌 거는 망내이 미경이 아잉교?”

하나씩 아이들을 인사시키기 시작했다.

 

“니가 우리 집에 우짠 일고?”

밥상을 앞에 놓고 재근씨가 물어도 쳐다보지도 않고 걸신들린 듯 닭고기를 뜯던 법근씨가 이제 평소 왕래가 없어 어디서 무얼 하는지는 몰라도 어려서부터 일이라고는 안 하던 동생이 아무래도 탐탁하지 않아 도대체 무슨 일로 찾아왔는지 혹시 장가라도 들 형편이라면 위에 세 형님을 다 두고 하필이면 이 골짝까지 왔을까 생각에 잠겼다.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 탐탁하지 않았지만 재근씨는 원님 덕에 나팔이고 손님 덕에 이밥이라고 모처럼의 닭고기와 탁배기에 맛을 들이는데

“저어, 형수님!”

마뜩찮은 눈길의 형을 제치고 순찬씨를 올려다보며 입을 달막달막하자

“와요, 대름요, 어데 장개갈 일이라도 생깄능교? 그까짓 큰일 나면 큰일 치면 될꺼 아잉교?”

하며 그새 정이 듬뿍 든 눈길로 바라보는데

“예, 형수님!”

비로소 입을 여는 시동생의 말이 실로 엄청난 일이었다.

 

“형수님, 실은 제가 올개 고등고시 일차시험에 붙었다 아입니까?”
“예에?”

어려서부터 객지로 떠돌며 온갖 일을 다 해보지만 단 한 번도 진득이 붙어있지 못 하고 몇 년 만에 고향이라고 나타날 때마다 초췌한 몰골로 수중에 돈 한 푼 없는 빈털터리였다. 아예 손 처내 논 자식이라 별 관심이나 믿음도 없었지만 그래도 가족은 가족인지라 요즘 어디서 무엇하고 지내냐고 물으면 그저 그냥 잘 지낸다고 우물쭈물 넘어가다 이번에 잘만 하면 큰 것 한방이 터져 돈벼락을 맞으면 이까짓 구시골논은 10마지기 아니라 20마지기도 문제없다고 큰소리를 탕탕 치곤 했다.

“임마, 니 또 거짓말이제? 니가 무신 고등고시를, 지발 말이나 되는 소리를 해라.”

재근씨가 듣자말자 벌쭉 웃었다. 원래 이름이 여섯 번째 육근인데 언제부턴가 걸리기만 하면 한방에 판검사나 군수, 경찰서장이 되는 것은 일도 아닌 고등고시를 볼 것이라고 한문투성이 책 몇 권을 사들고 집에 들어모녀 

“아부지, 어무이, 그라고 형님들, 인자부터 지 이름은 육근이가 아니고 법(法)법자 법근입니더. 사내대당부가 한 번 고등고시를 보기로 마음을 묵었으니 이름까지 아예 법법자로 지어 법근이라 하니 오늘부터 그래 불러주이소.”

한 맹랑한 놈이 아닌가 막내동생이지만 여남은 살이 넘으면서 서로가 제 목구멍 하나 감당하기도 어려워 제가끔 팔도강산을 누비는 6형제중의 넷째와 여섯째가 특별히 알뜰한 정을 나눌 기회도 없었지만 만날 때마다 믿음이 안 가는 이야기만 들어서 벌써 서른이 넘어 남 같으면 장가가서 아이도 여럿 낳아 키울 나이지만 함부로 임마 소리가 튀어나온 것이었다.

“아이구, 형님은 내가 그래 시뻐비능교? 말이나 한 분 들어보소.”
“마 치아뿌라. 언양바닥에 천재소리를 듣는 우리 큰처남도 못 덤비는 고등고시를 일자무식 니가 우째?”

여전히 못 미더운 재근씨에게

“일단 들어나 보소.”

하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우 법근씨의 이야기로는 자신은 매일 끼니도 잇기 어려운 형편이라 언양국민학교 3학년때 학교를 그만두고 이발 기술을 배운다고 부산으로 나온 이후 구두닦이, 신문배달, 월부책장수, 심지어 중국집배달원에 노가다까지 안 해본 일이 없었다고 했다.

 

이득수 시인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2021년 4월 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