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시대5-책읽기]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읽고
[시민시대5-책읽기]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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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2.05.27 16:02
  • 업데이트 2022.05.27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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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은 수필가

이 책의 지은이 빅터 프랭클(1905~1997)은 유대인으로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빈 대학에서 의학박사와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빈 의과대학 신경정신과 교수를 역임했다. 2차 세계대전 중 나치의 유대인 강제수용소(아우슈비츠, 다하우 등 네 곳)에 3년간 수용되었다가 죽을 고비를 넘기고 살아남았다. ‘정신치료사’를 자칭하며 ‘로고테라피’Logotherapy학파를 창시했고, 미국 인터내셔널대학에서 로고테라피를 가르쳤다. 로고스Logos는 그리스어로 ‘의미’를 뜻하는데, 로고테라피는 미래에 환자가 이루어야 할 과제가 갖고 있는 의미에 초점을 맞춘 치료법이다.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청아출판사, 2020) 원제는 영어로 Man’s Search For Meaning으로 ‘삶의 의미를 찾아서’이다. 영어판만 73쇄에 이르렀고 전 세계 19개 언어로 번역 출판된 베스트셀러이다. 제1부 강제 수용소에서의 체험, 제2부 로고테라피의 기본개념, 제3부 비극 속에서의 낙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자전적 이야기이고, 2부는 1부에서 도출한 교훈을 요약한 내용이다.

이 책의 독일어 판의 제목은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삶에 대해 “네”라고 대답하는 것’이다. 지은이는 자신의 체험을 담담하게 기술하며 어떤 상황에서도, 가장 비참한 상황, 강제 수용소와 같은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삶에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독자에게 전달하고자 했다. 그렇기에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어떤 어려움도 참고 견딘다.”는 니체의 말을 자주 인용한다. 강제 수용소에서 자기가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걸 알고 있는 사람이 더 잘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로고테라피에서는 책임감을 강조한다. 책임감을 인간 존재의 본질로 본다. 인간은 삶으로부터 질문을 받으며, 자신의 삶에 ‘책임짐’으로써만 삶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살아있는 인간 실험실이자 시험장이었던 강제 수용소에서 어떤 사람들은 성자처럼 행동했던 반면 또 다른 사람들은 돼지처럼 행동하는 것을 목격했다. 그렇기에 사람의 내면에는 두 개의 잠재력이 있으며 그중 어떤 것을 취하느냐는 문제는 전적으로 본인의 의지에 달려있다고 보았다. 이 시점에서 지은이는 삶의 모든 순간을 ‘선택과 책임감’으로 정의한다.

강제수용소와 같은 극한상황에서 ‘개인적인 차이’는 더욱 분명하게 드러났다. 사람들은 가면을 벗고 돼지와 성자 두 부류로 나누어졌다. 중요한 것은 어떤 종류의 사람이 되는가 하는 것은 개인의 내적인 선택의 결과이지 환경의 영향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아무리 척박한 환경에 있는 사람도 자기 자신이 정신적으로나 영적으로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를 선택할 수 있고,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다는 말이다. 사람은 자기 운명과 그에 따르는 시련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자기 삶에 보다 깊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고 보았다.

비참한 상황에 처해서도 누구는 용감하고 품위 있고 헌신적인 삶을 살지만, 누구는 자기 방어와 생존을 위한 치열한 싸움에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잃고 동물과 같은 존재가 될 수도 있다. 어떤 존재가 될 것인지, 삶의 목표와 의미를 어디에 둘 것인지, 매순간 사람에게는 선택의 기회와 선택의 자유가 있다. 이기적인 존재와 이타적인 존재 사이 그 어디에선가 자신의 정체성을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선택을 강요받는다고 표현할 수도 있겠다.

자기가 살기 위해, 살아남아야한다는 명제 앞에 짐승이 되어야 할 지, 인간으로서 존엄성과 품위를 지키기 위해 귀중한 목숨이나 재산을 내려놓아야 할 지. 갈림길에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에는 선악도 없고 정답도 없지 않을까. 쉽지 않은 문제이다. 지은이는 인간 존엄성을 지키는 편에 무게를 싣고 있다. 오죽하면 “이 수용소에서 저 수용소로 몇 년 동안 끌려 다니다 보면 결국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양심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있는 사람들만 살아남게 마련이다...우리들은 알고 있다. 우리 중에서 정말로 괜찮은 사람들은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고 할까 싶다.

지은이는 사람이 강제 수용소와 같은 극한의 상황에 놓이게 되었을 때 겪는 심리적 반응에 대해서도 담담히 서술하고 있다. 첫 반응은 충격이다. 그 다음 단계는 상대적 무감각 단계로 정신적으로 죽은 것과 다름없는 상태이다. 무감각은 너무나 충격적인 현실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한 일종의 방어기제이기도 하다. 이와 별개로 사람들은 정신적으로 집과 가족에 대한 끝없는 그리움으로 엄청난 고통을 겪는다. 이 그리움은 너무나 간절해서 그리워하는 데 자기 자신을 완전히 소진할 정도이다. 그리고 강제 수용소 안에서도 [상대적인] 행복이나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생 겪지 않을 상황이지만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충격과 무감각 상태, 그리고 사무치는 그리움의 고통. 그러나 고통이라는 감정은 우리가 그것을 이렇게 명확하게 묘사하는 바로 그 순간에 고통이기를 멈추는 감정이기도 하다. 있는 그대로의 고통과 대면하고 시련 속에 무언가 성취할 수 있는 기회가 숨어있음을 깨닫는 삶이 의미 있는 삶으로 가는 길이다.

사람은 미래에 대한 기대가 있어야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 미래에 대한 믿음, 살아야 하는 이유,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거나 잃어버린 사람은 정신력을 상실하고 육체적으로도 퇴화되며 마침내 자포자기 상태가 된다. 또 다른 방법으로 고통을 멈추고 싶은 것이다. 지은이는 수용소 내에서의 체험을 통해 인간의 정신상태[용기와 희망 혹은 절망]와 육체의 면역력이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목격했다. 사람에게 희망과 용기의 상실은 몸의 면역력을 떨어뜨려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이 대목에서 사람의 정신력과 체력, 면역력이 긴밀하게 연동되어 있음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성공이나 행복은 추구하거나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다보면 찾아오는 것이다.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확실하게 행동하는 것만이 삶의 열쇠이다. 주어진 상황에 최선(라틴어 optimum)을 다하는 것이 낙관(optimism)이다. 주어진 상황에서 삶의 의미를 찾다보면 저절로 행복해지고 시련을 견딜 수 있는 힘도 솟아난다.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삶에 대해 “네”라고 대답하는 것’, 어떤 상황에서도, 가장 비참한 상황에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 지은이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다.

내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나 많더라도, 그래 그럴 수 있지 생각한다. 시련에서 기회와 의미를 찾으려고 노력하며 현실을 감내한다. 더 이상 바꿀 수 없는 상황이라면 내가 변화해야 한다. 내 삶의 태도와 시각을 바꾸는 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임을 깨닫게 된다. 부정적인 생각을 밀어내기 위해서는 다른 일에 몰두해서 바쁘게 지내는 것이 최고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