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167) 제3부 열찬, 또 하나의 방랑자 - 제6장 육군하사, 개하사④
대하소설 「신불산」(167) 제3부 열찬, 또 하나의 방랑자 - 제6장 육군하사, 개하사④
  • 이득수 이득수
  • 승인 2022.06.23 07:00
  • 업데이트 2022.06.24 08: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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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육군하사, 개하사④

거기다 5일마다 돌아오는 장날에 마을의 모든 아낙들이 성냥이나 비누, 치약과 칫솔, 메리야스나 신발을 사기 위해 모처럼 나들이를 해서 형편이 좀 나은 집은 갈치나 가자미 같은 생선도 사고 쇠고기나 돼지고기도 두어 근 사며 은근히 밥술이나 먹는 자랑을 하고 느긋이 뜨내기 약장수가 벌이는 원숭이의 재롱이나 차력사를 구경하는 대열에 자신은 낄 수조차 없는 것이었다. 평소 붙임성이 좋아 아무데나 끼어들고 나서기 좋아하는 성격임에도 이제 자신은 앞새메에 둘러앉아 빨래를 하는 날에도 도무지 한 마디 입방아마저 찧을 수 없는 형편이라 이만저만한 스트레스가 아니었다.

게다가 다른 집 아이들은 장날이면 강냉이박상을 한 바가지씩 사다가 간식거리를 삼는데 시원찮은 농사로 쌀 한 됫박 장에 낼 수 없으니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고 불과 한두 해 전까지만 해도 의령읍의 시장과 과자가게의 단골손님으로 생선이면 생선, 과자면 과자 등 무엇 하나 아쉬운 것을 모르게 키우던 우현이와 숙현이 남매가 아직 감꽃이 붙은 풋감 감또개나 앞집인 접동댁의 풋살구에 침을 흘리는 것을 볼 때마다 속에서 천불이 났다.

그렇지만 사람이 꼭 죽기만 하라는 법은 없는 법, 마른 땅, 진땅을 가리지 않고 마구잡이로 뛰어드는 그 활달한 성격은 그 일이 무엇이든 돈이 된다면야 절대로 가리지 않고 끼어들어 남의 집 모내기나 콩밭매기에도 망설이는 법이 없어 명색 수돗물을 먹었던 그 하얀 얼굴에 수건을 덮어쓰고 마을아낙들과 어울리니 나이들 할머니들이 딱하다 싶었는지 장하다 싶었는지

“천날만날 몸이 아프거나 정신이 오락가락하고 성질머리가 탱주가시보다 더 사나운 일찬이 보다야 백배나 낫지. 세상에 공부 좀 잘 한다고 소문만 나면 뭐할 끼고? 단 한 번 제대로 돈을 벌어 제 부모를 호강시키거나 마실사람들에게 언양 도가 탁주 한 말을 낸 일이 있나? 기껏 아프니 마니, 정신이 있니 마니 마실사람들 마음만 실란시럽게 했지. 거다가 세상에 그 멀쩡한 직장 농햅을, 그것도 월급이 작기나 일이 고되어서도 아이고 세상에 와이로, 그라니까 공돈을 줘서 못 하겠다고 때려치우고 수금포자루 하나 잡을 힘도 없는 사람이 농사를 짓다가 하는 족족 실농을 하고 서른이 훨씬 넘은 나이에 다시 선생시험을 친다고 공부한다고 들어앉았으니 암만 타고난 천재라 하더라도 될 법이나 한 일인가? 미리 선생 되는 사범학교를 나오지 않은 사람이 선생이 되는 시험은 고등고시로 판검사 되는 것 보다 더 애럽다카던대 대학교도 아니고 근근이 언양농고를 나온 처지에 될 법이나 한 일인가, 지가 마 천산개비 재주라도 가짔나? 공연히 죄 없는 제 안식구 우현이, 숙현이애미만 고생시키는 거지. 그라고 보면 그 눈치 없는 시어마시에 나이어린 시동생까지 거두면서 달다씹다 말이 없는 김해댁이 참으로 장한 거지. 굼벵이도 구부는 재주가 있다고 그렇게 <공부는 천재, 농사는 바보>인 일찬이가 여자 잘 골라 장가 잘 가는 재주는 있는 기라, 참!”

수군대면서 일찬이 처가 불쌍하다고 혀를 끌끌 차기도 했다.

먹고 사는 것이야 농사꾼살림, 있는 양식에 서너 달쯤은 된장에 김치하고만 먹어도 그만이지만 다달이 돌아오는 전기세에 막내 백찬이의 중학교월사금을 맞추는 일이 없는 집에 제사 닥치듯이 돌아서면 금방금방 또 닥치는 것이 김해댁의 가장 큰 걱정거리였고 20일이 지나 월말이 닥치면 입천장이 바싹 말라붙었다.

처음에는 농협에서 받은 퇴직금으로 번듯하게 살았지만 그 돈으로 열찬이의 대학교등록금과 덕찬이 결혼비용을 쓰고 또 집 앞 논 두 마지기를 사고 나니 거의 바닥이 났고 기대대로라면 진장골짝 서 마지기, 갈배기 서 마지기 집 앞 두 마지기, 오룡골 논 한 마지기 반, 도합 열 마지기에 가까운 농사와 진장의 우에 밭, 밑에 밭 각 400평, 도합 800평의 소출로 넉넉히 먹고살 줄 알았는데 옥골선풍 선비님의 농사가 일일이 남의 손이 들어가는데다 소출이 시원찮아 농비마저 건지기 힘들 지경이라 거기에서 생활비나 학비는 단 한 푼도 나오지를 못 했다.

처음 몇 달간은 남의 돈을 빌려 학비를 내기도 했으나 당시의 이자는 기본이 월 5부, 연 6할이나 되니 농가에서 약간의 빚이 있다는 것은 일 년 내내 피땀 흘려 농사를 지어받자 남의 살림 살아주는 격이 되고 마는 것이었다.

하다 못한 김해댁이 하루는 언양읍내의 일찬씨 친구가 운영하는 아모레화장품가게에 가서 통사정을 하고 화장품월부장사에 나섰다. 지점장은 친구의 부인이라 좀 만만찮기는 해도 훤하게 촌티를 벗은 얼굴에 붙임성과 말주변도 좋아 일찬씨의 불같은 성격이 좀 켕기기는 해도 모르는 척 일을 시켰는데 기대대로 상당한 성적을 올렸다.

옛날 소캐장사를 하던 일가는 물론 이제 읍내에 정착해서 연탄장사를 하는 사촌 상찬씨의 아내인 사촌동서를 비롯하여 버든의 일찬씨라하면 다 알만한 남편의 동창이나 친구 집도 서슴없이 찾아가니 처음부터 꽤 많은 월부실적을 올렸고 20, 30리 길을 걸어 장에 온 촌 아낙들에게 슬금슬금 접근하여 종국에는 기어이 그 보리 쌀 몇 말 낸 돈으로 선금을 받고 화장품을 팔아대니 대리점의 일찬씨 친구만 대박이 터진 셈이었다.


그러기를 닷새째, 이제 장사에 제법 요령이 생기고 자신감이 붙은 김해댁이 대리점사장에게 가불을 요청했고 사장은 친구 체면을 생각, 두 말 않고 넉넉히 지불했다. 신이 난 김해댁이 아이 둘과 시동생 백찬이의 운동화를 사고 간식거리 강냉이박상 한 자루에 식구들이 먹을 삼마라고 불리는 주둥이가 짧은 꽁치 한 무더기에 모처럼 남편 줄 소주 4홉 들이도 한 병도 사서 신이 나서 돌아왔다. 집에 오마자 아이들의 신발과 강냉이박상을 자랑스럽게 펼쳐놓은 김해댁은 뒤란의 정구지를 배어 기름이 지글지글 끓는 맛있는 꽁치찌개를 끓여 저녁상을 차리고는

“보소, 현우 아버지! 어서 와서 밥 잡수소. 내 오늘 큰 맘 묵고 고기도 지지고 당신 소주도 한 병 샀심더.”

이렇게 남편을 부르고

“어무이도 많이 잡수소. 그라고 대름 니도 많이 무라.”

모처럼의 생선비린내에 환장을 하고 덤벼드는 아이들을 보면서 흐뭇하게 웃으며 남편과 시어머니에게 소주를 한 잔씩 부어주는데 공부에 힘이 들어 그런지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며 밥숟갈을 들지 않고 소주만 서너 잔 벌컥벌컥 마시던 일찬씨가 한참 만에

“우현이엄마, 니 무신 돈으로 이 고기하고 술 사왔노? 돈이 어데서 났노?”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아내를 쳐다보았다. ‘아차, 이것 큰 일이다. 무슨 일이 일어날 모양이다.’ 눈치 빠른 백찬이가 흘깃흘깃 형님내외의 표정을 살피는데

“우현이아부지 보소. 내 당신이 공부해서 선생시험 걸릴 때까지 아무래도 그냥 놀아서는 안 될 것 같아 돈벌이를 나섰지요. 와 읍내 사거리에 있는 당신친구 그 화장품대리점에...”

미처 말을 끝내기도 전에

“뭐라꼬! 월부화장품을 팔았다고 그것도 내 친구 집에서!”

고함과 함께 밥상이 마당으로 날아갔다. 젊은 시절의 아버지 기출씨가 술이 취해 술상을 던진 이후 실로 20년 만에 다시 명촌댁의 마당에 밥상이 날아간 것이다.

“아부지...”

머리를 박고 부지런히 먹어대던 우현이, 숙현이 남매가 울음을 터뜨리고 백찬이가 마당으로 튀어나가 깨어진 그릇들과 밥상을 수습했다.

“야가 와 이라노?”

손을 잡으려는 명촌댁을 뿌리치고

“아내고 친구고 똑 같다. 잠시잠깐의 가난도 못 견디는 마누라나 그런 친구각시 꼬드겨 돈이나 벌라카는 학식이 이 개 같은 친구 놈이나!”

부르르 온몸을 뜨는 일찬씨에게

“보소, 현우 아부지. 그 기 아이지요. 당신친구 학식씨가 아니라 내가 먼저 저 아아들하고 어무이 모시고 묵고 살고 또 백찬이시동생 공부시킬라고 월부장사 시키달라고 안 캤능교? 그러니까...”

“마, 시끄럽다!”

순간 퍽 소리와 함께

“아이구!”

김해댁이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았다. 일찬씨가 눈두덩을 강타한 것이었다.

“야야, 니가 와 이라노? 니가?”

명촌댁이 벌벌 떨며 손을 잡자 일찬씨가 주저앉아 다시 소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아이 둘의 손을 끌고 큰 채 시어머니 방에서 김해댁이 어깨를 들썩이며 울기시작하자 골치가 아픈 백찬이는 친구 집으로 자러갔다. 이윽고 아래채가 잠잠해지며 명촌댁이 큰방으로 들어올 때였다. 쨍그랑! 소리와 함께 소주병과 술잔이 마당으로 날아와 박살이 났다.

ⓒ서상균

이튿날부터 김해댁은 다시 월부장사를 나갈 수가 없었다. 남편 일찬씨의 행패나 친구인 대리점주 학식씨보기가 민망해서보다도 우선은 눈두덩이 시퍼렇게 멍들어서 바깥출입을 할 수가 없어서였다. 그렇게 며칠간이나 달걀로 눈두덩을 비비던 김해댁은 이윽고 툭툭 자리를 털고 일을 나섰다. 다시 남의 집 나락을 걷는 농부의 아내로.

저렇게 고생을 하고 어떻게 견딜까, 어쩌면 친정으로 내뺄지도 모른다고 걱정을 하던 마을아낙들은 불쌍하고 대견하단 마음으로 김해댁을 포근히 감사면서 잘 대해주었다. 원래 성격이 단순하고 낙천적인 김해댁은 이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들에서 먹는 새참에서 막걸리라도 한 잔 걸치는 날이면

내 고향 황주땅은 능금꽃 피는 고향
푸르른 바람결에...

구성지게 노래 한 자락을 풀어내다

사연도 흘렀구나 십여 년을
정처 없이 떠돌았네. 황해도 색씨

눈물을 글썽이며 노래를 마치면 사람들은 박수를 치면서 노래도 참 잘 한다고 탄복을 했다. 당시는 집집이 라디오가 다 있고 이미자의 노래가 유행을 하던 시절이라

차라리 만나지나 않았더라면
행복이 무엇인지 몰랐을 것을
야속히 정을 두고 떠나갈 바에
어이해 내 가슴에 그리움을 남기고
밤마다 울게 하네, 왼손잡이 사나이

박노식이 출연하는 영화 「홍콩의 왼손잡이」의 주제가를 부르면 아낙들은 모두 흥얼거리며 따라 불렀다. 그리고 더러는 그 왼손잡이 사나이가 공부만 한다고 방에 처박힌 일찬씨라고 연상하기도 했다.

 

그렇게 마을아낙들에게 조금씩 젖어든 김해댁은 어느 듯 완벽한 버든사람, 시어머니와 일찬씨를 제치고 명촌댁의 대표가 되어 온갖 마을일에 참여하고 골목길과 앞세메에 특유의 활달한 목소리가 자주 울려 퍼졌다. 그 김해댁이 마침내 명촌댁뿐 아니라 마을전체를 대표하는 버든사람으로 자리매김을 하는 일이 생겼는데 그것은 엉뚱하게도 농악의 상쇠가 된 일이었다.

그러니까 열찬이가 군에 입대해 여산의 하사관학교에서 그야말로 한창 조뺑이를 치고 있던 그 해 겨울 대보름에 마을에서 오랜만에 대보름지신밟기를 하기로 한 것이었다.

버든마을의 농악은 마을의 상쇠이자 언양바닥에서 소문난 선소리꾼이던 기출씨가 늙고 병들면서 한 해 두 해 거르기 시작한 것이 어느 듯 근 십 년이 훌쩍 넘어 모내기철 공동모를 심느라고 간혹 신호용 징을 치는 외에는 풍물마저 어디에 몇 개가 보관되어 있는지도 가맣게 잊어진 형편이었다. 거기에다 상쇠인 기출씨를 비롯 양반역의 장구장과 포수역의 곱추 신장에 징잡이, 북잡이에 매구북치던 아낙들까지 대부분이 죽거나 병이 들어 우선 패를 구성하기조차 힘든 상황이었다. 또 고속도로가 나고 공장들이 들어서면서 농사짓는 사람도 적고 외지인이 이사 오고 새마을운동이 시작되면서 농악이나 풍물 자체도 무슨 미신의 잔재처럼 인식되어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던 시점이었다.

그런데 버든마을에선 이듬해 봄 바야흐로 경지정리가 시작되면서 마을의 안길은 물론 복걸, 새빗도랑이 반듯한 농수로로 바뀌고 진장만디, 장승배기골짝에 가는 길도 변하고 복걸밑의 갱빈가에 자리잡은 당수나무와 탱주나무골의 행상(行喪)집에 오랜 전통인 당제(堂祭)까지 사라질 형편이라 이 판에 마을의 전통인 농악도 챙기고 오랜만에 지신도 밟고 또 곡식이나 돈을 걷는 걸립(乞粒)으로 새로운 당수나무와 행상집도 만들어야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황성권이장을 중심으로 마을원로들이 힘을 합쳐 대보름지신밟기를 하기로 했는데 문제는 풍물 꾼이었다. 셋이나 되는 꽹과리 꾼을 상쇠하나로 줄이는 식으로 징 하나, 쇠 하나, 북 하나에 장구 둘, 매구북 다섯, 양반, 포수의 기본 열두 명을 갖추는데도 풍물을 다루는 사람이 부족했고 더욱이 꼭두쇠격인 상쇠, 즉 쇠잡이를 할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고심끝에 발탁된 사람이 바로 김해댁이었다. 그간 마을잔치나 화전 때에 간혹 장구로 흥을 돋우던 김해댁의 실력이 보통이 아니고 장구면 장구, 북이면 북, 쇠면 쇠, 못 치는 것이 없더라는 아낙들의 추천에 졸지에 쇠를 잡은 김해댁이 마을사람들 앞에서 깨갱깨갱 쇠를 쳐 장단을 맞추니 어중이떠중이, 이제 풍물을 배우기 시작하는 사람들이 그럭저럭 따라갈 만했다.

 

마을아낙들은 ‘세상도 참 희한하다. 수십 년 상쇠노릇을 하던 명촌댁양반이 죽자 그 며느리가 대를 잇는다.’고 신통하게 생각하며 ‘그 신명이 많던 명촌가손이 저승에서 며느리의 쇠소리를 듣고 무릎이 까딱까딱 신명이 나서 막걸리 잔이나 자시겠다’고 웃었고 노인네들은 ‘집안이 망하면 암탉이 운다더니 동네가 망할 징조로 풍물패에 여자가 상쇠, 쇠잡이를 다 하는 세상이 왔다’고 빈정대었다.

 

이득수 시인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2021년 4월 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