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168) 제3부 열찬, 또 하나의 방랑자 - 제6장 육군하사, 개하사⑤
대하소설 「신불산」(168) 제3부 열찬, 또 하나의 방랑자 - 제6장 육군하사, 개하사⑤
  • 이득수 이득수
  • 승인 2022.06.24 07:00
  • 업데이트 2022.06.24 19: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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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육군하사, 개하사⑤

마을아낙들은 ‘세상도 참 희한하다. 수십 년 상쇠노릇을 하던 명촌댁양반이 죽자 그 며느리가 대를 잇는다.’고 신통하게 생각하며 ‘그 신명이 많던 명촌가손이 저승에서 며느리의 쇠소리를 듣고 무릎이 까딱까딱 신명이 나서 막걸리 잔이나 자시겠다’고 웃었고 노인네들은 ‘집안이 망하면 암탉이 운다더니 동네가 망할 징조로 풍물패에 여자가 상쇠, 쇠잡이를 다 하는 세상이 왔다’고 빈정대었다.

그렇든 말든 젊은 김해댁을 앞세운 남녀반반의 한층 젊어진 농악대는 정초의 마을안팎을 돌며 부지런히 지신을 밟아 꽤 많은 곡식과 돈을 모아 마을잔치도 열고 당사(堂舍)도 탱주나무골로 옮겼다. 와중에 친정으로 다니러온 순찬씨가 아버지대신 상쇠가 된 올케를 보고

“이 버르장머리 없는 무당 년의 딸이 댕기기로 약속한 교회는 안 댕기고 어데서 미신에 빠진 안택이나 하노? 당장 그 고깔 안 벗고 뭐 하노!”

패악을 부렸지만 마을사람들이 모두 가로막고 당사자인 김해댁도 눈 하나 꿈쩍 않아 그만 이불속에서 만세 부르는 격이 되고 말았다.

그렇게 마을사람에게 신임을 얻은 김해댁이 대견했던지 모내기철 대목을 앞두고 못줄에 빨간 비닐 표시, 즉 꽃을 꽂는 부업이 이까리장사 수동댁에서 들어왔다. 마침 백찬이의 월사금도 빠듯하던 참이라 김해댁도 반색하며 낮에는 물론 밤에도 호롱불을 켜고 못줄에 꽃을 꽂는 일에 열중했다. 어떤 때는 백찬이까지 끼어들어 한 되들이의 됫박을 뒤집어 그 위에 가늘고 파란 밧줄을 놓고 벼 포기의 간격이 되는 모서리에 빨간 꽃을 꽂았다. 그렇게 해서 월사금도 내고 비누와 치약도 사고 전기세도 내고 아이들 강냉이박상도 사주면서 모내기철이 닥쳤는데 그만 사달이 나고 말았다.

수동댁의 못줄을 사다 모를 심던 논에서 ‘오라이!’ 하고 못줄을 넘기면 자꾸만 못줄이 툭툭 끊어지는 사고가 나기 시작했다. 항의를 받은 수동엄손이 확인해본 결과 못줄이 불에 타 중간, 중간에 끊어진 것을 촛불로 나일론 줄을 녹여 억지로 붙여놓은 것이 물이 들어가자 다시 모조리 끊어진 것이 원인이었다. 그러니까 밤이 깊도록 잠 안 자고 꽃을 꽂던 김해댁이 어느 순간 졸면서 밧줄을 태워 모조리 동강이 나고 겁에 질려 꾀를 낸다고 낸 것이 촛불에 다시 녹혀 붙인 것이었다. 좁은 여자의 소견으로 덜컹 겁이 나기도 하고 물어주고 꾸중 듣는 것이 겁나 궁여지책으로 낸 꾀가 그야말로 '눈감고 아웅'격으로 금방 들통이 난 것이었다.

화가 난 수동댁 양반이 다시 일거리를 주지 않는 것은 물론 ‘김해댁이 겉만 멀쩡했지 속은 시커먼 먹물이 가득한 이까복지더라’라는 소문이 퍼지고 사람들이 대하는 품이 다시 뭔가 경계하고 서먹해졌다. 그렇게 기분도 위축되고 돈줄이 끊겨 생활도 팍팍하여 가슴이 갑갑한 차에 하필이면 열찬이가 휴가를 온 것이었다.

“대름이 첫 휴가를 왔는데 집안 꼴이 이래서 우야꼬? 대름아, 나는 마 첫 휴가 왔다고 맨발로 뛰나가고 싶지만 그런 형편도 기분도 아이다. 대름새이는 공부한다고 천 날, 만 날 저래 들앉았고 집에 돈은 똑 떨어지고 양식도 달랑달랑 한다. 나는 마 너거 집에 시집올 때 이래 고생할 것은 꿈도 안 꿨다. 대름아, 나는 우짜면 좋노?”

어찌어찌 돼지고기를 한 뭉텅이 사와 두루치기를 해 모처럼 식구들에게 비린 것을 먹게 하고는 이튿날 일꾼 있을 때 일을 해야 된다며 옆집 엄상댁의 소를 빌려 열찬이에게 쟁기를 메고 진장 밭으로 가 그간 손이 없어 못 했던 콩밭에 골도 타고 갈배기 논의 피도 뽑게 했다.

 

그렇게 오전을 보낸 열찬이는 오랜만에 보리쌀을 삶아 푹 퍼준 꽁보리밥을 열무김치에 비벼 찬물과 함께 포식을 하고는 명촌을 향했다. 방금 천장이라도 내려앉을 것만 같은 갑갑한 분위기의 집에서 형님과 어머니와 형수의 눈치까지 보며 지내는 것도 힘들었지만 언제나 싱글벙글 처남에게 잘 해주는 명촌의 자형이 생각났던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벌써 거의 연년생에 가까운 4형제를 둔 조그맣고 새까맣고 다부진 누님, 그렇지만 늘 고생만 하는 금찬이누님이 보고 싶었던 것이었다.

마구뜰을 지나 남천내공굴을 건너고 방천묵 둑길을 따라 서부를 지나면 문득 나타나는 삼각형건물 언양성당의 하얗게 빛나는 첨탑과 십자가를 바라보며 가끔 털털이버스가 지나갈 때마다 뿌연 먼지가 나고 자갈돌이 튀는 신작로를 걸어 오른쪽의 화장산비알에 소처럼 비스듬히 몸을 누인 벌건 옹기굴을 지나 상북면과 언양면을 잇는 잘록한 고개 부리시봇띠미의 봇둑을 건너 천전리를 바라보며 열녀각을 지나 사광리를 거쳐 등말리의 외딴집으로 올라가는 시오 리 길!

그 옛날 노총각 기출씨가 큰님이 누님댁을 출입하다가 마침내 다리를 잘숨잘숨 저는 열여섯의 처녀 명촌댁을 만나 장가를 가고 그 명촌댁이 가마를 타고 시집을 오며 눈물을 훔치던 열녀각 앞을 다시 셋째 딸 금찬씨가 코로나 택시를 타고 여섯 살 막내 백찬이를 걱정해 손수건을 적시던 바로 그 길이었다. 그 금찬이누님이 궁금해 열세 살의 사내동생이 하학길의 책 보따리를 둘러 맨 채 뛰어올라가던 그 길을 이제 군복차림의 열찬이가 열세 살적을 추억하며 무딘 군화발로 터덜터덜 걸어가고 있었다.

사광리의 대밭 길을 돌아 등만리의 논길로 들어서는 순간 낯선 군인아저씨의 등장에 눈이 휘둥그래 바라보던 너덧 명의 올망졸망한 아이들 중의 하나가

“야, 외삼촌이다! 열찬이외삼촌이 군인아저씨가 되서 왔다!”

소리를 지르니

“와 삼촌이다! 외삼촌이다!”

이제 갓 입학할 나이로 보이는 큰아이 일식이를 비롯한 사내아이 넷이 우르르 논둑길로 달려 나오다 네 살짜리 셋째가 쓰러지자 돌잡이 네 째가 와아 울음을 터뜨렸다. 이목구비와 얼굴윤곽, 뾰족한 뒤통수까지 영판 열찬이를 빼닮은 성식이란 아이였다.

“아이고, 이기 누고? 열찬이 아이가! 우리 열찬이가 벌써 휴가를 왔는가베. 안 그래도 군에 갈 때 돈 한 푼도 못 조서 미안해 죽겠던데.”

나이가 서른이 되고 아이를 넷이나 낳았지만 여전히 키가 작고 얼굴이 새까만 금찬씨가 잰걸음으로 다가오더니

“누부야, 잘 있었나?”

“그래 내사 마 잘 있었다. 니는 고생 만았제?”

“아이다. 넘도 다 하는 고생 내라고 짜들 많이 할 이유가 있나? 그저 넘 하는 대로 나도 했다.”

“그래도 니는 넘보다 고생이 많았을 끼다. 우리 아부지가 니늘 보고 날마다 동작이 느리고 눈치가 빠르지 못 해 군에 가면 맞아죽을 끼라고 걱정을 했는데 세상에 이렇게 늠름한 병정이 되었구나. 그 계급장에는 무슨 작대기와 깔꾸리가 그래 많노? 그라면 니가 하사관이라 카는 기 됐나?”

“야.”

“장하다. 아무튼 황천에서 명촌가손이 놀랠 일이다. 우리 동생이 장하다.”

주고받으면서 남매는 언제나처럼 두 손을 꼭 마주잡고 있었다.

“짬촌, 외짬촌!”

어느새 울음을 그치고 열찬이의 군복자락에 매달리는 성식이를 안고 남매는 네 아이에 둘러싸여 집으로 들어갔다. 누구나 첫 휴가를 가면 아버지어머니가 먹던 밥숟갈을 놓고 맨발로 뛰어나온다고 했는데 늙은 어머니와 공부하느라 예민해진 형님과 아직 어린 동생과 조카들과 그런 가족들을 먹여 살리느라고 정신이 없는 형수로 이루어진 여섯 명의 가족은 누구하나 맨발로 뛰어나오기는커녕 반갑다는 내색조차 없었는데 오늘 비로소 맨발로 뛰다 시피 하고 반가운 기색을 보이는 가족을 만난 것이다.

ⓒ서상균

입대하던 날 진영국민학교로 단감과 찐쌀을 들고 나왔던 김해의 순찬이누님이 보았다면 기쁨에 넘치는 눈물을 흘리며 ‘주여, 주여!’ 기도를 올릴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눈시울이 시큰해졌다. 순간 슬며시 한손으로 눈가를 훔친 열찬이가

“누부야, 자형은?”

“아, 참! 너거 자형이 안 보이구나. 그 양반이야 날이면 날마다 구판장에서 술타령이지. 뭐 촌사람이 모숭기 마치고 아시논 매고 나면 특별히 할 일이 있나?”

하며 동네 상포계에서 돌아가며 소주나 성냥, 비누나 석유따위를 파는 구판장이 있는 아랫마을을 바라보며

“일식아, 또식아! 얼른 가서 너거 아부지 데꼬 오너라. 그라고 올 때 소주도 한 반 되쯤 사 오라 카고.”

“야.”

말이 끝나기도 전에 큰놈, 작은놈이 나란히 들길을 달려 나가자 뒤따르던 셋째 외식이는 힘이 부쳐 논길 가운데서 멈추고 넷째 성식이는 삽짝 가에서 엄마에게 붙잡혀버렸다.

“아이구, 이기 누고? 이기! 그 공부 잘 하고 술도 잘 묵는 우리 처남 열찬이 아이가? 세상에 군인, 그것도 하사관이 되어서 왔네?”

어느 새 마당귀로 들어서던 자형 박수진씨가 반색을 했다. 애리애리 나이어린 신랑의 얼굴은 간 데가 없고 원래 검붉은 얼굴에 면도를 않아 듬성듬성한 수염에 뒤덮인 얼굴에서 30대 농군의 중년 티가 났다.

“열찬이 니가 반갑기는 반갑는 갑다. 내 시집오고 십 년이 되는 동안 술집에 찾으러 가서 단 한 번이라도 바로 오는 법이 없던 사람이다. 언제나 다른 술꾼들이 다 도망갈 때까지 술이 떡이 되어 가자, 가자 캐도 안 일어나는 사람이 내가 뭐라, 뭐라 보골을 채아야 죽인다고 따라오던 사람이 말이다.”

 

외삼촌 왔는데 술안주 하게 칼치못 그물에 붕어나 몇 마리 걸렸는지 가보라고 아이 둘을 내 보내고 자신은 닭을 잡느라고 칼을 들고 닭장에 들어간 남편을 보면서 금찬이누님이 빙그레 웃었다. 한 번 술자리에 앉으면 해가 지든 달이 돋든 절대로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으려는 사람을 마침내는

“내가 당신 집안에 와서 살아보니 의흥백씨 양반집안이 뭐 별거도 아이더라. 시할배, 시아부지는 아무 용맹도 없이 심청 궂은 시할매 눈치나 보고 시할매와 시고모같은 여자들도 그저 모조리 심술꾸러기들이더라. 그러니까 당신도 처자식은 입에 밥이 들어가는지 똥이 들어가는지 그마저 묵을 끼 없어 거무줄을 치는지도 모르고 술만 퍼마시지. 양반집안이면 원래 그래 용맹이 없기나 심술궂거나 술만 퍼마시는 기 양반인가베”

하고 약을 올리면

“뭐라 카노? 니 오늘 내손에 잡히는 날이면 죽는 줄 알아라!”

비틀거리며 잡으려는 남편을 잡힐 듯 말듯 유인해서 이리저리 논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오다 마침내 삽작가나 축담 밑에 쓰러지는 남편을 벗기고 씻겨 재운 일이 한 두 번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아이구! 송애가 준척이 세 마리나 걸렸구나. 저 놈들이 처남 니 온다고 기다렸던 모양이다.”

닭 목을 비틀어 자르고 피를 뽑은 후 미리 물을 끓이고 있던 누님에게 털을 뽑으라고 건네준 박서방이 익숙한 솜씨로 붕어회를 떠 접시에 담더니

“자, 우선 한 잔씩 하자!”

간장종지에 됫병의 소주를 부어 건네주었다. 단숨에 마시자는 바람에 통째로 털어 넣는 식도에 면도칼로 베듯 찌릿한 감각이 타 내리는데

“자, 욕 받는데 이거부터 묵어라.”

새파란 붕어의 쓸개를 건네주며 또 단숨에 넘기게 했다. 붕어쓸개가 약인지, 술이 취해서 그런지 비로소 속도 정신도 편안해지면서 둘은 몇 점 안 되는 붕어회를 안주로 단숨에 너덧 잔씩을 마셨다. 송애는 버릴 것이 하나도 없다면서 회를 뜨고 남은 머리와 뼈를 도마에 놓고 자형 수진씨는 골탕을 만든다고 칼로 다지기 시작했다. 뼈와 머리, 심지어 눈알까지 곤죽이 되도록 잘 다져

“자, 골탕으로 또 한잔 묵자! 촌놈한테는 붕어골탕이 소고기육개장보다도 낫다 안 카나. 우리같이 붕어 많은 칼치못이 있는 사람은 자갈논 서 마지기보다도 낫다. 자, 마시라.”

“야. 마십시더. 그런데 자형요, 그 송애는 언양 밖에 나가면 모두 붕어라 캅니더. 그러니까 표준말이 붕어라는 거지요.”

“그 까짓 거 붕어면 어떻고 송애면 또 어떻노? 자, 묵자. 처남이든 누구든 식자우환(識字憂患)이라고 많이 배우고 많이 아는 것도 지랄인 기라. 자, 묵자. 마시라!”

벌써 눈가가 불그스름한 남편을 보며

“이 술고래양반은 처남이 와서 반갑기보다는 외고 펴고 술을 마실 수 있어서 좋제? 아나, 마 묵는 김에 하늘이 노랗도록 실큰 잡수소.”

닭털을 다 뽑은 평천댁 금찬씨가 배를 갈라 꺼낸 간과 심장, 모래주머니를 도마 위에 올려놓았다. 언제 취했나 싶게 익숙한 솜씨로 닭똥집을 썰던 수진씨가

“닭 창자도 가 온너라. 닭 창자 다진 골탕이 닭 한 마리보다 더 안주가 된다 아이가?”

금찬씨에게 채근을 하자

“제까치로 닭 창자 뒤집어 잘 씻고 닭볶음에 넣으면 십시분한 기 일민데 이 양반은 그것까지 지 술안주로 빼앗아가네. 그라이 술꾼 처자식이 묵을 끼 뭐 남겠노?”

웃으면서 그 사이에 젓가락으로 뒤집어 말갛게 씻은 닭창자를 건네주자 수진씨는 아까처럼 다시 도마 위에 놓고 열심히 다져 골탕을 만들어 또 소주를 권하는데 벌써 병 밑바닥이 얼마 남지 않았다. 저물기 전에 아이들 시켜 한 되를 더 사오라는 말에 금찬씨가 큰 애를 불러 뭐라뭐라 하더니 큰놈 둘을 아랫마을로 보냈다.

 

됫병을 들고 아이들이 돌아올 때쯤 커다란 솥에 넉넉히 물을 잡고 칼로 큼직큼직하게 썬 닭고기와 무, 대파에 마늘과 풋고추, 고춧가루까지 고루 넣은 닭도리탕이 구수한 냄새를 온 등말리언덕에 풍기며 익어갔다.

 

이득수 시인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2021년 4월 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