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170) 제3부 열찬, 또 하나의 방랑자 - 제6장 육군하사, 개하사⑦
대하소설 「신불산」(170) 제3부 열찬, 또 하나의 방랑자 - 제6장 육군하사, 개하사⑦
  • 이득수 이득수
  • 승인 2022.06.26 07:00
  • 업데이트 2022.06.27 09: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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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육군하사, 개하사⑦

그러나 103보충대의 가장 큰 특징이자 장관은 하루 세끼 식사가 끝나면 임시막사의 소대별로 줄을 지어 소양강에 양은식기를 씻으러 가는 일이었다. 일선의 경비사단도 훈련소도 아닌 잠시 머물렀다 가는 보충대의 특성상 장병들을 위한 장비나 보급, 휴식이나 복지시설을 염두에도 두지 않는 그곳에는 훈련소나 전방의 전부대가 이제 잘 사는 나라로서 잘 먹이고 잘 입혀 강군(强軍)을 육성한다는 당시의 구호인 1식3찬을 담는 크고 작은 다섯 개의 구멍을 뚫어 국과 밥과 김치와 생선과 튀김을 담는 깨끗하고 반듯한 플라스틱식기를 사용하지 않았다.

아직도 6.25시절에 미군들이 쓰던 작은 프라이팬처럼 기다란 자루가 달린 동그란 양은식기 둘에다 하나엔 국을 다른 하나엔 밥을 푸고 밥 위에 김치 한두 조각을 주는 것이 전부였고 숟가락마저도 아이들 약숟가락이나 삽처럼 생긴 크고 길쭉한 것이었다. 그렇게 한 400,500m는 실히 될 보충대에서 소양강에 이르는 대열에서는 군가가 아닌 <소양강처녀>가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해 저문 소양강에 황혼이 지면
외로운 갈대밭에 슬피 우는 두견새야
열여덟 딸기 같은 여린 내 순정
너마저 몰라주면 나는 나는 어쩌나
아아, 그리워서 애만 태우는 소양강처녀

별 특징도 없이 단순하고 밋밋한 가사와 멜로디의 이 평범한 유행가는 부대에서 강까지, 강에서 부대까지 오고가는 대열에서 줄기차게 불려졌다. 두 개의 양은 식기를 마치 매구 북처럼 탕탕 두드리면서 대열마다 시작과 끝이 달라 멀리서 들으면 이제 시작하는 줄, 절정에 올라가는 팀, 방금 끝이 나는 대열들이 그야말로 소양강처녀의 아수라장이었다.

당시에는 그게 누구의 노래인지 아무도 궁금하지 않았고 누가 불러도 그만인 그 노래는 그렇게 103보충대를 거쳐 간 수많은 병사들의 애창곡이 되어 노래방이 대중문화를 주도하는 2,000년대에 들어서 이제 쉰이 넘은 왕년의 군인들과 그 자녀들에게 이어져 마침내 여론조사 인기 1위의 국민애창곡이 되고 비로소 김태희라는 가수이름이 알려졌지만 이미 중년이 된 그 흘러간 가수는 대단한 국민가요를 남기고도 아무런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 하는 것 같았다. 그 대신 대다수의 젊은이들은 인형처럼 반듯한 젊은 탤런트 김태희를 연상할 뿐이었다.

 

가열찬 하사는 아직도 소설가의 꿈을 버리지 못 하고 W백에 문고판을 넣어 다니며 김동리, 황순원, 헤밍웨이의 소설과 서정주, 유치환의 시에 심취하던 시절이라 나름대로 소양강처녀의 가사와 풍미와 여운을 곱씹어보았지만 도무지 뭔가 잡히지 않았고 오히려 비슷한 분위기의 노래 최안순의 <산까치야>를 늘 흥얼거렸는데

산까치야 산까치야 어디로 날아가니
네가 울면 우리 님이 오신다는데
너마저 울다 저 산 너머 날아가는데
우리 님은 언제 오나
너라도 내 곁에 있어다오

이렇게 혼자 흥얼거리면 그 군기가 엄격하고 기합이 세던 하사관학교 사격장의 감적호에 따발총처럼 쏟아지는 총성 속에서도 뭔가 노래를 흥얼거리던 열찬이를 알던 동기하사관들이 씨익 웃으면서 옆구리를 찌르고 지나가기도 했다. 같은 마을의 고추친구 준권이를 비롯하여 7명의 하사관동기생들이 103보충대로 왔는데 지원병출신들은 이튿날 바로 전방사단으로 팔려가고 포항에서 수산고등학교 교사를 지내다온 김동수하사는 닷새 뒤에 전방의 어느 포사령부로 팔려가고 일주일이 되던 월요일 날 마침내 준권이와 열찬이를 데리고 갈 군용버스가 왔는데 가장 운이 좋다는 후방지역, 그것도 대도시라 교통이 좋고 공기가 좋은 문화도시이자 호반의 도시인 춘천이었다.

103보충대에서 춘천 시내를 지나 홍천으로 가는 국도를 따라 한 시간 가까이 달려 춘성군 신동면의 33관측대란 측지(測地)부대에 준권이가 떨어지고 그는 정병산을 넘어 홍천으로 가는 고개 아래 학곡리란 마을에 자리 잡은 군견(軍犬)훈련소라는 부대에 배치를 받았다.

자꾸만 힐끗힐끗 쳐다보는 위병의 눈길을 등 뒤에 달고 무겁고 불편한 W백을 몇 번이나 추켜올리며 길게 포플러가 늘어선 길을 따라 한참이나 걸어도 부대는 나타나지 않고 어디선가 콩콩 개 짖는 소리만 들리더니 근 15분이 지나서야 초등학교 교사처럼 길쭉한 <ㄷ>자형의 막사와 널찍한 연병장이 나타났다. 태극기가 보이는 부대본부로 찾아가 대 여섯 명의 근무자들에게

“오늘 전입 명(命)을 받은 가열찬하사입니다.”

커다랗게 소리쳤지만 아무도 쳐다보지도, 말을 붙이지도 않았다. 여섯 명의 사병과 신입하사관, 답답하고 무거운 침묵이 한참이나 흐르는 가운데 문득 열찬이의 코끝에 들쩍지근한 죽 냄새가 풍겨왔다. 열린 창문너머도 바라보니 포플러그늘 아래로 수십 명의 병사들이 메리야스차림으로 양푼에 든 죽을 열심히 주걱으로 저어 식히고 있었다. 부대가 군견훈련소니 만큼 그게 개죽인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니 커다란 울타리속의 포플러 밑에서 컹컹 개짓는 소리가 들려오기도 했다. 그렇게 한참이나 넋을 놓고 바라보는데

“이게 누구야! 신임 이열찬 하사가 왔구먼. 그런데 사람을 왜 이렇게 세워놓은 거야?”

걸쭉한 목소리와 함께 늙은 상사(上士) 한 사람이 들어서며 열찬이의 어깨를 특 치더니 방 가운데에 앉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인사계였다.

“아, 됐어. 신고는 나중에 부대장님 오시면 하고.”

정식으로 신고를 하려고 차렷 자세로 경례를 붙이려는 열찬이를 저지하며

“김상병, 이하사를 내무반으로 모셔. 그리고 식당에 데리고 가 점심도 먹이고.”

인사계의 지시가 떨어지자 마지못해 병사 하나가 일어서

“자, 가십시다.”

앞장을 서더니 본부소대라고 쓰인 내무반으로 들어가

“내일 소대배치가 있으니 아무데나 짐을 놓고 있다 저기 식당에 가서 점심을 먹으세요.”

돌아서더니

“참 점심식사는 개밥이 끝나는 열두시 반에 시작됩니다.”

다시 한마디를 던졌다.

 

이렇게 시작된 그의 자대생활은 좀체 자리가 잡히지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군견훈련대란 부대는 개의 뛰어난 후각으로 눈 위에 발자국이 남아 쉽게 적을 발견하는 겨울이 아닌 한 여름의 우거진 숲이나 풀밭에 숨은 적이나 탈영병, 월북자를 잡기위해 창설된 특수부대였다. 그 출발부터가 미군이 운용하던 독일산 셰퍼드로 출발한 지라 자연 카투사 부대와 비슷하게 복무규정과 보급품, 교재들이 운용되었고 전투부대가 아님에도 철책 선에 근무하는 수색대원들이 지급받는 증식 미와 특식과 생명수당이 나왔다.

그가 전입하던 때가 한여름이라 부대의 주력이 대부분 군견 몇 마리와 함께 전방의 각 사단으로 파견을 나가 지금은 아직 현장에 투입하지 못 하는 훈련이 덜 된 개와 번식을 위한 암캐와 강아지들만 남아있었고 병사들도 본부의 행정요원을 제하면 강아지를 받아 키우는 자견(雌犬)대와 강아지를 배당받아 훈련이 한창중인 신병뿐이었다.

더욱이 그 부대는 병사들에게 군번(軍番)이 있듯이 개들에게 견번이 있고 일인일견, 한 사병이 한 강아지를 배당받아 훈련을 잘 시켜 한 두어 해 전방에 나가 파견생활을 즐기고 제대를 하는 것이 정해진 코스였는데 어쩌다 암캐를 키우는 자견대에 배치되거나 드물게 자신이 맡은 개가 멍청이라 수색이나 추적능력이 향상되지 않는 <똥개>로 판명되어 한 번도 파견을 나가보지 못 하는 불행한 병사도 있었다.

부대장 육군 중령과 부관 중위 한 사람, 이렇게 단 두 사람의 장교와 주로 전방의 파견대장을 맡는 하사관 십여 명, 그리고 이백 명이 좀 넘는 사병들로 이루어진 그 부대에서 단기하사는 어쩌다 한두 명 들어오는 희귀한 존재였고 직업군인이 아니면서 군견을 맡지도, 개죽을 식히지도 않는 거저먹는 군인, 마치 준위(准尉)나 박쥐같은 존재로 경원당하고 있었다. 당시에는 단 한 명의 고참 단기하사가 전방에 파견 나가 있었는데 늦가을에 귀대하자말자 곧 제대를 한다고 했다. 거기에다 듣지도 보지도 못 했던 정훈하사라는 말이 더욱 병사들과 거리감을 두게 해서 자대의 2소대의 내무반장이 된 그에게 당번병격인 서무마저도 어쩐지 서로 멋쩍기만 했다.

 

한여름의 지심처럼 무성한 포플러숲속에서 시도 때도 없이 울려 퍼지는 개 짖는 소리와 역겨운 개밥냄새, 주력부대가 파견을 나가 텅 빈 막사와 불볕더위, 몸에 땀구멍이 없어 온종일 혓바닥을 내밀고 헐떡거리는 개들의 이상한 풍경 속에서 가열찬 하사의 자대생활은 어쩐지 김빠진 모습으로 시작되었다.

거기다 도무지 그 힘든 하사관과정을 훈련받은 것으로 보이지 않는 순진하고 어수룩해 야무치거나 사납거나 독한 내무반장이 아닌 계급만 높은 순둥이하사는 자대생활에 채 적응이 되기도 전해 엉뚱한 사건에 휘말리고 말았다.

사건의 발단은 이랬다. 당시 2소대에는 제대가 얼마 남지 않아 전방파견도 못 나간 전라도말씨의 문창성병장이 특명만 기대리며 남아있었다. 언제나 어둑한 무섬기가 감도는 서낭당의 늙은 고목나무아래에 똬리를 틀고 산다는 지킴이 구렁이처럼 집합이나 점호에도 열외하며 하루에도 몇 번씩 거꾸로 매달려도 국방부의 시계는 간다고 중얼거리며 매일오후 사단본부에 갖다오는 전령에게 혹시 오늘 전역특명 떨어진 것이 없냐면서 무료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당시에 군대생활 개월 수는 짧아도 계급이 높은 단기하사와 단기하사보다 군대생활이 한두 해나 더 길고 게다가 나이까지 한두 살이 많은 고참 병장사이에는 묘한 이질감과 긴장감이 흘러 서로가 조금은 불편하고 버거운 사이였다. 표면적으로는 서로 무심한 척 되도록 부딪히지 않으려고 신경 쓰는 형편이지만 일단은 계급사회인 군대인지라 매일 적과 총부리를 맞대는 전방의 철책 선에선 군기도 엄하고 분대장하사에게 전시에는 부하에 대한 즉결처분 즉 총살권까지 있다는 상당한 권위가 있었지만 후방에 갈수록 그 군기는 점점 무뎌졌다.

ⓒ서상균

열찬이가 근무하는 특수부대인 군견훈련소는 계급보다는 짬밥이라는 군대생활기간을 더 중시하는 경향이 있어 열찬이도 문병장을 별로 터치하지 않았고 아무 하는 일도 또 별로 말도 없이 퀭한 눈길로 천정이나 바라보다 일, 이등병 졸병에게 밥을 타오고 구두를 닦게 하는 갈참병장 역시 불편한 상급자 이열찬 하사와 눈길이 마주치기를 피하며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었다.

그 문 병장이 어느 날 문득 평소에 입에 담지도 않던

“내무반장님, 이 하사님!”

을 연발하며 내무반장의 호감을 사기 시작하더니

“야, 이놈들아, 군대는 뭐니 뭐니 해도 계급사회야! 우리 소대는 이열찬 하사님을 중심으로 일치단결해야 돼!”

보통의 고참병장과 다른 노골적인 아부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간혹 휴가를 나갔던 졸병들이 밤늦게 귀대해 술이나 담배를 최고참인 자신에게 바치면

“야, 내무반장님 주무시나? 자, 이 하사님 일어나세요. 소주나 한 잔 합시다!”

깍듯이 대하면서 따로 사제담배를 한 갑 챙겨주기도 했다. 그리고 일과시간에 야외훈련을 나가면 자신은 이미 맡은 군견도 없으면서 무슨 호위병이라도 되는 듯 가하사의 뒤에 바짝 붙어 따라다니기도 했다.

당시 군견훈련소의 교육과정은 일 년에 한두 번 자견실에서 자란 수캉아지를 지급받은 신병과 개가 동시에 받는 신병훈련과 주로 파견이 끝난 겨울에서 봄까지 야외에서 실시되는 숨은 적의 냄새를 쫓아가는 추적훈련, 여기저기 들쑤셔서 찾는 수색훈련이 위주였고 추적실력이 떨어지거나 아직 어려서 파견에서 탈락한 여름철의 개들은 그저 시원한 나무그늘이나 물가에서 땀을 식히는 정도였다.

그런데 그 야외훈련의 책임자이자 교관이 현역이 아닌 개 훈련전문의 군속, 즉 민간인이라 야외훈련은 자동 자유분방하달까, 심하게 말해 군기가 빠지기 마련이었다. 그래서 훈련 틈틈이 고참병들은 졸병들을 시켜 여남은 집 외진마을마다 빠짐없이 한두 집 있게 마련인 도토리묵 안주와 옥수수술을 사오게 해 추렴하기 마련이었다. 그렇게 마시는 술값은 주로 갓 전입한 신병이나 휴가 갔다 온 지 얼마 안 되는 병사가 내기도 하고 또 아주 가끔은 내무반장이나 고참병이 내기도 했다. 군인봉급이 워낙 적어 일반병사들은 월급날 P. X 외상값을 갚고 나면 남는 게 거의 없어 야외훈련지 댓 군데 마을의 외딴 술집에는 의례 각 병사들의 외상장부가 있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그 장부에 적힌 고참병들의 외상이 늘 문제가 되었다. 갚지 않고 제대하면 다시는 받을 길이 없는 지라 누구의 제대특명이 나왔다고 소문이 나면 단번에 몇 곳의 옥수수를 파는 노파들이 위병소에 서 제대병의 외상값을 독촉하다 받을 전망이 없으면 부대장에게 진정하기도 했다.

자연 외상이면 소도 잡는다는 말처럼 제대 앞두고 외상술값이 없는 병사가 드물었고 집이 가난하거나 일가친척도 제대로 없는 외롭고 가난한 병사들은 어쩔 대책이 없었는데 문병장이 바로 그런 경우였다.

당시 가열찬 하사의 소대에는 독실한 기독교인에다 서울의 명문대학에 다니는 엘리트였지만 어찌 된 셈인지 군견병의 첫사랑이자 목숨 줄인 담당견의 후각이 떨어져 파견도 못 나간 경북영덕출신 배대복상병이 있었는데 자신보다도 한 살 적은 가열찬하사에게 순순히 복종하며 간혹 문학이니 철학이니 대화도 나누던 그는 아무래도 문병장의 무슨 꿍꿍이속이 있을 것 같다면서 슬며시 귀띔을 해왔다.

저 문 병장이 본래 저리 고분고분하거나 순한 사람이 아니라 전라도 여수, 어느 섬에서 태어나 서울로 흘러들어와 청량리 588에서 놀던 깡패출신으로 늘 음험하고 심술궂고 표독한 성격이라 지금 내무반장님에게 그렇게 잘 대하는 것은 분명히 무슨 흉계가 있을 것이고 그 흉계란 두 말 할 것도 없이 대추나무에 연 걸리듯 걸린 강냉이 술 외상값이란 것이었다. 따라서 지금부터는 문 병장이 아무리 살갑게 굴어도 무심히 대하고 외상술값 이야기가 나오면 들은 척도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아닐까 다르랴, 문 병장의 전역특명이 떨어진 이튿날부터 몇 명의 노파가 위병소로 외상술값을 받으러 나타났고 간신히 노파들을 돌려보낸 문 병장이 그날 저녁 P. X로 이열찬 하사를 불러내어 통사정을 했다.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2021년 4월 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