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177) 제3부 열찬, 또 하나의 방랑자 - 제6장 육군하사, 개하사⑭
대하소설 「신불산」(177) 제3부 열찬, 또 하나의 방랑자 - 제6장 육군하사, 개하사⑭
  • 이득수 이득수
  • 승인 2022.07.03 07:00
  • 업데이트 2022.07.03 10: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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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육군하사, 개하사⑭

입식부엌 주방 앞에 놓인 식탁에 마주 앉아 식사를 하면서 열찬이가 외갓집이 언제 광주에서 서울로 오게 되었는지 묻자 외숙모는 긴 한숨을 내쉬면서

“내가 경성제대에 다닌다는 사실, 머리 좋은 천재라는 소리만 듣고 덜렁 결혼해서 이 낯선 조선 땅으로 들어온 것이 큰 모험이었고 고생의 시작이었지. 물론 고국 땅에 온 것이긴 하지만. 어쨌거나 말도 잘 통하지 않고 음식도 맞지 않아 모든 것이 불편하니 여자의 삶으로서는 비극이지. 아무튼,”

그러고 보니 모든 음식이 너무 싱거워 밍밍했다. 김치와 오이 생채, 시금치나물과 계란말이가 거의 바닥이 났지만 열찬이의 밥그릇은 아직 반도 비지 않았다. 간장을 좀 달라고 해서 쇠고기국과 나물에 듬뿍 넣으니 외숙모가 기겁을 했다.

“한국에 처음 나와 광주 전남방직의 생산부장으로 취업을 했지. 비교적 조용하고 안정된 생활이었지만 너무 외롭고 갑갑했지. 물론 남창에 큰 집, 언양과 밀양에 고모집이 있어도 왕래가 힘들어 마음 놓고 말을 붙일 사람이 없었지. 하다못해 진철이삼촌을 같은 회사에 취직시켰지만 사내들이란 참으로 이상한 것이 형제간에는 무슨 원수라도 진 것처럼 서로 말이 없는 것이었지. 그러고도 저녁에 잠자리에 들면 동생의 온갖 일을 다 걱정하면서도 말이야. 유일하게 말이 통하는 사람이 손아래 동서였는데 그마저도 각각 딸 셋, 아들 하나씩을 키우는 지라 어쩌다 한번 만나는 날이면 아이 여덟이 학교운동회꼴이 되어 정신이 없었지. 물론 아이들이 조금씩 자라 하나둘 학교에 가면서 달라졌지만.

그런데 한국생활이 조금씩 몸에 배이기 시작했을 때 갑자기 삼촌이 돌아가셨지. 출근하려고 문을 나서다 갑자기 쓰러졌는데 심근경색이라고 했지. 청천벼락 같은 일을 당하고 동서가 온갖 고생을 하며 겨우 살아가는 동안 너희 외삼촌은 여덟 명의 아이들이 비뚤어지지 않도록 가르치느라 늘 언성을 높여 다그치고 나는 아이들 뒷바라지에 정신이 없었지. 그 와중에 너의 형 일찬이가 우리 집에 나타난 것은 정말 엄청난 대 사건이었지.

원래 천재소리를 듣고 국립체신학교에 다니던 사람이라 정신이 맑고 기분이 평온한 날은 외사촌동생들에게 조목조목 차분하게 공부를 가르치면 그토록 훌륭한 가정교사가 둘도 없었지. 그러나 기분이 폭발하고 정신이 나가버리면 그야말로 아비규환의 지옥이 되었지. 너희 외삼촌이 정신과병원과 요양소를 여러 번 데리고 가고 입원을 시켰지만 늘 조금 낫다가 다시 악화되기를 반복했지. 그래도 너의 외삼촌은 한 번도 포기하는 법이 없이 꾸준히 돌봤는데 어느 순간 씻은 듯이 병이 나아 다시 언양농고를 복학하고 농협에 다녀서 외삼촌이 엄청 좋아했지. 농협이 군사정권의 특별정책인 농촌개발을 위한 금융기관이라 창설요원인 데다 머리 좋은 네 형이 두취자리 하나는 따 놓은 당상일 것이라고 좋아했지.

그래서 하는 말인데 너희 외삼촌은 자신이 외롭고 가난한 고학생으로서 단지 하나, 어떤 어려움이든 이겨내고 무엇이든 이루고야말겠다는 의지력 하나로 기어이 상당한 지위에 오른 자수성가형 인물이라 머리 좋은 사람에 대한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고 생질인 일찬이도 반드시 자기처럼 무언가 이루어낼 것으로 기대하고 그 어려운 뒷바라지를 서슴지 않았지. 그러다가 네 형이 농협을 그만두었다는 소문을 듣고는 너무나 실망해서 한숨을 쉬었지만 그 때는 네 형 일찬이보다도 자신의 일이 너무 힘들었지. 말하자면 제 코가 석자 였지.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한 삼년이 되었나, 생산부장으로 능력을 인정받은 네 외삼촌은 신설부서인 구미의 윤성방직공장장으로 승진이 되었지. 당시 경제개발5개년계획의 일환으로 박정희 대통령의 고향에 조성한 구미공단의 대표적 유치기업이었고 네 외삼촌을 공부시킨 사까모도(서갑호)그룹이었지. 탄탄대로의 출세 길로 접어든 셈이었지만 낯선 땅 광주에 불러들인 막내 동생 철진이삼촌이 죽어 타향에 묻히게 하고 제수씨와 조카 4남매를 남기고 떠난다는 것이 몹시 아쉬워 몇 번이나 돌아보고 돌아보며 떠나왔지.

구미에 도착해서 우리는 전보다 훨씬 더 크고 안락한 관사에서 편안하게 잘 지냈지만 너희 외삼촌은 이제 막 건물을 짓고 기계와 장비를 넣고 인원을 뽑아 시험가동을 하느라고 정신없이 바빴지. 그러다가 갑자기 사고가 난 거야. 아는 사람이라면 다 신문방송에서 보았겠지만 바로 구미의 윤성방직 대 화재가 났을 때 현장책임자가 너희 외삼촌이었던 것이었지. 현장의 용접공이 잘못 불티를 날려서 그렇다는 말도 있고 쓰레기를 태우다 그랬다는 말도 있고 담배꽁초가 원인이었다는 말도 있었지만 굳이 원인을 밝힌다고 책임자에게 무엇이 달라질 것도 없었지. 끝내 너희 외삼촌이 회사에 사표를 내고 서울로 올라왔지.

그렇게 사표까지 내지 않고 타처로 전근하면 된다고 했지만 엘리트의식이 가득한 너희 외삼촌이 그렇게 궁색하게 빌붙을 사람이 아니었지.

 

그간에 번 돈과 퇴직금으로 이 건물을 사고 종로에 작은 석유가게를 열었어. 내가 알기로 석유가게라면 주유소인데 거긴 주유소도 아니고 기름을 배달하는 운전사와 경리사원이 하나씩 있다는데 그런대로 생활비는 안 거르고 잘 들어와. 그리고 서울생활이 좀 안정되자 이렇게 서울에 올라오니 아이들 교육에는 참 좋다고. 저절로 서울의 명문학교에 진학할 것이라고 좋아하며 인생만사 새옹지마라며 껄껄 웃기도 했지.

그러나 어찌 된 셈인지 우리 집 네 아이는 특별히 공부를 잘 하지를 못 해. 큰애 경자와 막내 수자는 그런대로 무난하기는 하지만 제 아비의 수준에는 한참 멀었고 둘째 경자와 아들 용백이는 덩치도 좋고 인물도 훤한데 공부는 겨우 중간 정도인 모양이야. 너희 외삼촌이 얼마나 자식들의 두뇌나 공부에 집착하는 사람인데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닌 모양으로 통신표를 받을 때마다 입맛을 쩍쩍 다시지.

그럴 때마다 나는 또 아이들이 어째서 머리 좋은 아버지를 닮지 않고 평범한 어미인 나를 닮았는지, 네 외삼촌이 혹시 내 머리를 의심하고 원망할까 두렵기도 하지만 나도 사실 공부는 중간이상 했어. 좌우간 갑갑한 일이지.”

그 사이 식사가 끝이 났다. 간이 싱거워 국이고 찬이고 할 것 없이 바닥까지 삭삭 긁어먹은 접시를 치우고 외숙모가 보리차를 들고 왔다.

“그래, 그랬지. 지난 번 네 형이 농협을 그만두고 실망한 네 외삼촌이 슬며시 열찬이 네 이야기를 꺼낸 적이 있었지. 언양 큰 누님한테는 일찬이 밑에 열찬이라고 공부를 잘 하는 동생이 또 하나 있어서 언양바닥에서는 일찬이형제가 공부깨나 하는 집안으로 알려져 있다고. 그렇다면 이번엔 열찬이란 아이가 얼마나 공부를 하고 어떻게 성장하는지 지켜보자고 말이야. 그러다가 네가 농업고등학교에서는 힘든 대학입학예비고사를 합격하고 동아대 야간대학교에 들어간 데 대해서는 대견해하면서도 국문과를 지망한 것에 대 실망을 했지.

아니 사내라면 반드시 우리 인류가 먹고살 공학이나 상학 아니면 농축산학이라도 해야지 한갓 문약한 선비나 키워내는 국문과가 다 뭐냐, 야간대학이라 과가 적더라도 법학과, 경제학과, 경영학과, 정치외교학과가 다 있는데 그렇다면 차라리 법학과나 경영학과라도 지망할 것이지 국어국문학과가 뭐냐고 대단히 실망한 적이 있었지. 그러니까 이따 외삼촌 오시거든 그리 알고 잘 대처하기 바라네.”

ⓒ서상균

이렇게 이야기가 끝나고 외숙모가 설거지를 하면서 심심한데 텔레비전이나 보라고 틀어준 것이 마침 고등학교야구를 중개하고 있었다. 스포츠에 관심이 많은 열찬이가 내처 두 게임을 시청하는 사이 해가 지고 외사촌들이 하나둘 들어왔다.

맨 맏이 경자는 고등학교 졸업반으로 간호대학을 지망 중인데 고모들을 닮았는지 어머니 명촌댁처럼 자그마한 키에 둥근 얼굴과 통통한 몸매의 착한 인상이었고 여고 1학년인 둘째 양자는 훤칠한 키에 튼튼하고 볼륨 있는 몸매에 희고 맑은 피부와 커다란 눈동자를 가진 대단한 미인이었다.

둘은 처음 보는 고종사촌 오빠, 그것도 군복을 입은 오빠란 존재가 신기한지 오랫동안 열찬이의 얼굴을 쳐다보거나 군복에 붙은 명찰과 계급장을 만져보기도 했다. 이어 중학교 2학년의 남동생 용백이가 들어왔는데 벌써 키가 크고 얼굴이 허연 미소년이었다. 마지막으로 초등학교 4학년이라는 막내 수자가 들어왔는데 외숙모를 닮아 가냘픈 체구에 갸름한 얼굴의 이 아이는 어찌 된 셈인지 다리를 잘숨잘숨 절고 있었다. 거기에다 무거운 책가방을 메고 학원 가방을 들어 한층 힘들어보였다.

“어서 온나. 니가 수자구나. 나는 니 고종사촌 언양사는 열찬이오빠다.”

가방을 받아들며 열찬이 말하자 한참이나 쳐다보던 아이가

“아아, 열찬이오빠, 그런 오빠가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어요.”

환하게 웃어주는데 다리를 질질 끄는 어머니 명촌댁과 잘숨잘숨 저는 밀양이모의 얼굴에 클로즈업된 가녀린 수자의 모습이 가슴에 저려왔다. 이어

“그래, 열찬이가 왔다면서 얼마나 컸나 보자-.”

굵직한 목소리와 함께 외삼촌이 현관에 들어섰다. 작달막한 키에 통통한 몸매와 둥글고 넓은 얼굴에 굵직한 목이며 어딘가 어머니와 많이 닮은 모습이었다.

엉겁결에 거실에서 큰절을 하자 대견한 듯 바라보며 껄껄 웃으며

“잘 왔다. 우리 아이들에게도 모처럼 형님이랑 오빠가 있어서 좋아하겠다.”

일곱 식구가 식탁에 둘러앉아 밥을 먹는데

“야, 열찬아, 니 힘든 군대생활 중인 휴가병에게 이런 말 하기는 뭣하지만 제대하면 우선 국문과를 법과나 경영학과로 전과(轉科)하고 동사무소에서 구청이나 시청으로 근무지도 옮겨라. 내가 부산에서 고등학교를 나왔을 뿐 아니라 부산의 요직에 친구가 많이 있으니 그리 알아라. 니가 제대하고 복직한다고 연락만 하면 내가 알아서 다 해주꾸마.”

안 그래도 조마조마 우려하던 말이 직방으로 튀어나오고 말았다. 일본에서 전라도, 또 구미와 서울로 객지생활을 수십 년이나 했다지만 손톱만치도 변함이 없는 언양사투리, 어머니 명촌댁과 똑 같은 어조였다.

“...”

이것, 저것 되는 대로 집어먹어도 도무지 너무 싱거워 젓가락을 머뭇거리던 열찬이 멈칫했다.

“이 이는 아이 밥 안 넘어가게 무슨 말씀을? 나중에 아이들 들어가고 나서 천천히 하시지 않고?”

이번에는 혀짜래기 목소리로 외숙모가 나서며 동생들에게 눈짓으로 방으로 들어가게 했다. 식탁을 치운 외숙모가 사과를 깎는 사이

“남자라면 말이다, 사내가 학문을 배운다면 반드시 공학도가 되어야 된다. 그래서 이 좁은 지구의 수많은 인류가 무엇을 먹고 어떻게 편리하게 살지 고민하고 이바지해야 된다. 의사나 판검사가 존경받는다고는 하나 증기기관차를 발명한 와트, 전구를 발명한 에디슨, 전화기를 발명한 콜, 활자를 발견한 구텐베르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하물며 원자탄, 아니 상대성원리를 발견한 아인슈타인에 비하면 링컨이나 케네디, 박정희대통령도 새 발의 피일뿐이다. 그들이야 고작 제 나라, 제 민족이 단합하고 잘 사는 데 몰두 했지만 과학이나 공학적 발견이나 발명은 바로 인류전체의 삶에 유용하며 인류의 문명을 발전시키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이냐?”

“...”

전체로도 딱 두 번, 열찬이가 성년이 되어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너무나도 엄청난 이야기가 튀어나와 열찬이가 당황하는데

“내 비록 지금은 불의의 화재로 산업일선에서 물러나 석유나 파는 기름장사지만 아직도 공학도로서의 꿈이나 포부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어. 박 대통령의 경제개발 5개년계획이 우선은 반만년의 가난, 아니 보릿고개의 기한(飢寒)을 벗어나기 위한 농업생산을 증대시키기 위한 댐건설, 비료생산, 헐벗은 국민들을 입히기 위한 방직산업 같은 기초산업에 머물러 있지만 곧 화학과 중공업, 조선과 자동차 같은 기계 산업으로 발전하고 오로지 과학과 공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세상을 주도하는 시대가 올 것이야. 내 비록 과학과 공업의 현장에서 떠나기는 했지만 말이야...”

고학으로 일본제일의 공과대학을 나온 자부심이 여전했다.

“내 사실 우리 전씨는 아니지만 내 피붙이인 생질 중에서 일찬이 같은 수재가 있다고 해서 아주 반갑고 기뻤다. 그런데 그 중간은 굳이 설명하지 않더라도 열찬이 니도 잘 알겠지만 지금은 대단히 실망이야. 체신고등학교라는 국립고등학교에서 모르스부호라른 통신의 기술을 잘 연마해 우리나라 통신 산업의 기수가 되면 될 일을 왜 그리 몸이 허약하고 마음이 여러 제가 제 마음속의 어두운 그림자도 걷어내지 못 하는 정신분열에 걸리고 간신히 들어간 국책산업 농업협동조합에서는 왜 제 스스로 물러나는가 말이다...”

마치 형이 아닌 열찬이 자신을 나무라는 것만 같아 크게 숨소리도 못 내고 경청하는데

“그렇게 위장병에 시달리고 정신분열에 시달리면서 니 형이 손에서 놓지 않는 것 단 한 가지가 바로 소설책과 시집이었다. 그 힘든 시절에 왜 꼭 그렇게 슬프고 안타까운 김소월의 시를 잃고 아, 무정, 그러니까 장발잔, 그러니까 불란서의 빵 한 조각을 읽어야 하느냐 말이다. 사내가 그렇게 마음이 여려서 무엇을 이루고 어떻게 대장부가 되는가 말이다.”

“...”

“니가 여기까지 왔으니까 말인데 사실 니 형이 직장도 그만 두고 다시 국어선생시험이나 치려고 공부를 한다는 말을 듣고 네 형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접었지. 그리고는 그 동생인 니가 언양에서는 그래도 제법 공부깨나 한다는 소리를 듣고 니를 한번 키워보려고 생각을 안 한 것도 아니야. 그렇지만 일찬이의 일에 대인 네 숙모도 말리고 나 또한 그동안 우여곡절이 많아서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있었지. 아무튼 이렇게 니가 제 발로 찾아와 참으로 다행이야. 너 말이야...”

 

이제 이야기가 자신에게 옮겨오자 귀를 쫑끗 세우고 긴장하는데

“니 말이다, 그 어렵게 야간대학에 가면서 국문과가 뭐야? 도대체 시나 읊조리고 눈물이나 쥐어짜는 국문과가 뭐냐는 말이야? 좌우간 제대하면 당장 옮겨!”

상위에는 어느새 진로소주와 구운 오징어가 올라와 술잔이 오고가곤 했다. 술이라면 자다가도 일어나는 열찬이가 삼촌에게 조금도 뒤지지 않고 술잔을 비워내어 벌써 두 병째가 거의 비어가자

“허어, 이것 봐라. 역시나 술고래 우리 큰 자형을 닮았구만. 야야, 아무리 그래도 술 취해서 실수할 정도가 되면 안 된다. 그라고 그 학과만은 제대하자 말자...”

큰소리를 치면서도 어느새 술이 취하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외삼촌, 아까부터 자꾸 전과를 하라고 하시는데 외삼촌은 왜 그렇게 국어국문과를 싫어하시는지요? 국문과에 시와 소설을 하는 문과만이 아니라 국어과, 그러니까 외솔 최현배, 일석 이희승선생님이 목숨 걸고 지켜낸 세종대왕의 훈민정음을 가르치기도 하고 또 이 세상 모든 소통의 중심인 언어와 그 기록이 되는 어학의 핵심이자 꽃인 문학작품, 즉 세계명작 시 한 편, 소설 한 편이 인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외삼촌도 잘 아시면서 말입니다.”

겨우 용기를 내어 한마디 하자

“이 놈, 택도 없는 소리 하지마라! 이제 겨우 스무 살이 넘은 햇병아리 니가 뭘 안다고?

 

이득수 시인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2021년 4월 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