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220) 제3부 열찬, 또 하나의 방랑자 - 제11장 등말리 별곡(別曲)2(20)
대하소설 「신불산」(220) 제3부 열찬, 또 하나의 방랑자 - 제11장 등말리 별곡(別曲)2(20)
  • 이득수 이득수
  • 승인 2022.08.15 08:54
  • 업데이트 2022.08.15 09: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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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등말리 별곡(別曲)2(20)

그날 오후였다. 점심때 밥그릇을 반이나 비운 수진씨가 금찬씨가 물수건으로 얼굴을 닦아주자

“그 참, 깨내기 세수가 따로 없네. 내가 뭐 살강 밑에 살찌이도 아이고. 그렇지만 오랜만에 마누라한테 서비스를 받으니까 좋네.”

여전히 눈을 못 맞추고 말하는데

“깨내기고 쌀찌이고 고양이세수고 지발하고 인자 그 술 좀 작작 마시소!”

모처럼 큰소리로 책망해도 다소곳한지라 용기를 내어

“보소, 일식이아부지...”

은근하게 목소리를 깔고

“내 내일 언양장에 갔다올라요. 사분도 성냥도 사까리도 다 떨어지고 아아들 내복이랑 양말도 사야하고 열합이라도 좀 사다가 당신 몸도 도와야 되겠고...”

“...”

뭔가 말하려고 입술을 달막거리던 수진씨가 눈을 감아버렸다.

“아아들이 둘이 될 때까지는 업고 지고 걸리고 같이 갔지만 지금은 너이나 되이 엄두도 못 내지요. 내 쌀 반 말만 가주고 퍼뜩 갔다오께요.”

더 이상 토를 달지 않는 것이 반승낙이나 다름없었다. 신이 난 금찬씨가 맷돌에 간 쌀가루반죽을 들고 들어와

“보소, 당신도 언간하면 일나서 동지팥죽 새알 좀 만드소.”

신이 나서 부지런히 손바닥을 놀리는데

“봐라. 내 미리 말 하는데 장에 간다 캐놓고 어문 데로 가면 절대로 안 된다이!”

눈을 감고 소리쳤다.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서로 눈을 맞추지 않았다.

오늘 방학을 한다고 신이 난 일식이가 학교를 가자 막내를 등에 업고도 남은 아이 둘을 수진씨에게 신신당부한 금찬씨는

“엄마, 장에 가서 까자 많이 사 온나. 빠이빠이!”

 

손을 흔드는 두 아이를 등지고 연신 싱글거리며 등말리 논길을 벗어나 사광리 뒷길을 돌아 열녀각을 향했다. 돌잡이 아이를 업고 쌀 닷 되를 이고 가는 것이 보통 힘든 일이 아니건만 키는 작아도 다부진 금찬씨는 마치 탱크가 산야를 쓸어가듯 거침이 없었다.

그 금찬씨가 그렇게 싱글거리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쌀 닷 되를 담은 자루에 슬그머니 팥 한 되와 물레 콩 한 되를 더 넣은 것이었다. 그 중에 팥 값은 쌀값보다 조금 비싼 정도지만 검은 줄무늬가 아름다운 물레 콩은 사람 몸에 이(利)하다고 값이 배가 넘는 것이니 절로 신이 나 무거운 줄도 몰랐다.

이어 장터에 도착한 금찬씨는 혹시 큰언니 갑찬씨가 벌써 장에 나왔을까 싶어 포목점과 목물전사이의 난전으로 향했다. 공부는 잘 해도 늘 배가 고파 여남은 살이 넘도록 얼굴에 마른버짐을 달고 살던 열찬이가 장날마다 혹시 돈 한 푼을 얻어 비가, 유과나 콩과자를 사먹으려고 찾아갔다 간혹 한 푼을 얻기는 하지만 대부분 욕이나 먹고 돌아서던 명촌댁이 전을 펴던 자리는 의령에서 일찬씨가 돌아온 후 맏딸인 갑찬씨가 물려받은 지 근 10년이 되어가는 것이었다.

아직도 두루마기를 입고 갓을 쓴 손님이 더러 있는 장터골목을 이리저리 돌다 시계전의 조일아지매와 이까리전의 작은 엄손과 이조이상과 눈이 마주쳐 인사를 하고 까꾸리전의 하잠김손을 만나

“오랜만입니더. 군자는 잘 산다카덩교?”

동갑친구의 안부를 묻고 명촌댁이 고춧가루랑, 무, 배추씨를 팔던 자리를 훑어보는데

“이기 누고!?”

“아이고, 새이야!”

다가가던 금찬씨와 자리에 앉은 갑찬씨가 소리쳤다.

“새이야, 일찍도 나왔네?”

“나는 인자 늙어서 잠도 없다. 집에 멍청하게 앉았느니 일찍 나왔지. 그래도 하루 장따나 닷새 동안 밭 매는 거보다 훨씬 낫다. 이 장사 벌리고 나서 아들 월사금이고 살림살이고 내가 다 감당하고 쌀 내서 살림 살 일이 없다.”

언양장에서는 귀한 시금치와 도라지, 고사리와 고치미를 늘어놓고 한쪽에는 양철 바께스에 미꾸라지를 담아놓고 있었다.

“박 서방 잘 있제?”

“야. 만날 술이나 퍼묵지만 안주 숨은 수요.”

“술 너무 묵는 것도 탈이지만 너거 형부맨시로 사람이 술도 안 묵고 너무 쫀쫀한 것도 탈이다.”

자매는 오랜만에 서로를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벌써 마흔이 훨씬 넘은 갑찬씨는 흰머리가 듬성듬성해 금찬씨의 마음이 아팠지만 그 갑찬씨가

“니는 우짤라꼬 묵고 살 것도 넉넉잖은데 알라들만 자꾸 놔쌓노? 하긴 밤톨 같은 머시마가 너이나 되니 다 키아노면 후빨이야 있겠지만.”

업힌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더니 빨간 지폐 한 장을 꺼내 아이 손에 쥐어주었다.

“괘안타. 새야. 아가 무슨 돈을 아노?”

“아이다. 알라들 강냉이박상도 좀 사주고 박 서방 소주라도 한 병 사가거라.”

금찬씨의 짐을 내려놓고 아이를 받아 한번 안아보고는

“뭐꼬? 쌀이가?”

“야. 쌀 닷 되에 팥하고 물레콩도 한 되 있심더.”

“그래. 내가 팔아주께. 아는 시계쟁이가 있다.”

“마 조일아지매 주지. 시계쟁이고 다부쟁이고 쌀장사가 다 똑 같지 뭐.”

“아이다. 모 숭구고 논매고 타작하고 방아 찧고 농사꾼들 고생하는 거 생각해봐라. 한 푼이라도 더 받아야지.”

아이를 도로 업혀주고 쌀자루를 이고 장터골목을 빠져나가더니 지폐 한 뭉텅이를 들고 왔다. 금찬씨가 기대하던 것보다 꽤나 많았다.

“금 잘 받았네. 새야 우리 밥 무러 가자.”

“그래 니 시장켔구나. 아아 업고 저 무거운 거 이고 십 리길도 더 걸어왔으니.”

“아이다. 나 많은 새이도 이 무거운 짐 다 이고 댕기는데.”

둘이 황급히 눈길을 돌렸다. 컬 때 고생했으면 시집가서는 잘 살아야 될 것인데 우째서 우리형제들은 이적지 단 한 사람도 밥걱정 없이 사는 사람이 없는지 싶어서였다. 평소에는 장에 오면 금춘이엄마 미짱네 떡집에서 떡을 먹거나 팥죽을 사먹는 것이 보통이지만 어제가 동지라서 오늘은 백정 밍도집에서 소피국물을 먹기로 했다.

대대로 소를 잡아 팔아온 밍도씨는 집도 마을 안에 짓지 못 하고 남천내방천위에 볏짚으로 대충 움막을 엮어서 살았는데 대부분이 딸인 아이들이 7,8명이나 오롱조롱 했다. 그래도 겉보기와 달리 덕찬이와 동기인 딸이나 열찬이와 한반인 딸도 도시락을 사오거나 옷을 입는 것이 여느 아이들 못잖은 지라 남에게 백정이란 소리를 듣고 하대(下待)를 받아도 먹고살기에는 그만한 것도 없는 모양이었다.

그 밍도씨가 하루장단에 그러니까 5일장이 돌아오는 사이에 한 마리씩 소를 잡아 국거리, 곰거리등 따로 팔 것은 각(脚)을 뜨고 남은 소머리와 내장을 몽땅 썰어 넣고 한 이틀 푹 고아 밥과 함께 커다란 뚝배기에 담아 아이어른 할 것 없이 가득가득 퍼주는 것을 이곳 사람들은 소피국물이라 불렀다. 오뉴월 땡볕에 논밭을 매느라 기름기가 빠진 촌사람들은 엔간히만 살면 장에 올 때마다 이 소피국물을 사먹었고 소피국물을 잊어버리고 그냥 돌아가면 장에 안 간 것 같다고 했다.

ⓒ서상균

소피국물이 오자마자 정신없이 후룩후룩 퍼 넣는 금찬이를 보면서 아이를 받아 안은 갑찬씨는

“야야, 누가 안 빼앗아 묵는다. 천천히 무라!”

혀를 끌끌 차더니 자기의 뚝배기에서 고기를 반이나 건져주며

“싫컨 묵어라. 아 젖빨릴라커면 무도, 무도 배가 고프다 아이가?.”

첫 남편을 전쟁에 잃고 모진 구박 끝에 아버지기출씨에게 손목이 잡혀 친정에 돌아온 후 밥술이나 뜬다는 신평 옹기점동네의 전처자식이 둘이나 있는 김씨네에 재혼을 했지만 눈이 약간 어두운 시어머니가 첫 시집, 출강의 시어머니보다 인색하고 사납기가 몇 배나 더해 첫아이를 낳고도 제대로 미역국 한 그릇을 못 먹어 늘 젖이 부족했던, 아니 그보다 어미자신의 배가 고파 잠이 잘 안 오던 기억이 떠올라 갑찬씨는 눈물이 핑 돌았다.

아이들이 하도 꼬챙이처럼 메말라 명절에 친정에 데리고 오면 어머니 명촌댁이 혀를 끌끌 차며 거의 사구만한 큰 뚝배기에 국밥을 잔뜩 말아주며

“니도 나도 맏딸인데 이년아, 니도 애미 닮았나, 와 이래 복이 없노? 대동댁이 성님 말만 듣고 보낸 기 야시 피하다가 호랑이 만난 꼴이 되었구나!’”

한탄을 했고 일곱 살이 된 열찬이는 명색 외삼촌인 주제에 바짝 마른 두 생질을 깨구리다리라고 놀렸는데 촌사람들이 커다란 개구리를 잡아 다리만 떼어 껍질을 벗겨 나중에 아이들 약으로 먹으려고 매달아놓아 바짝 마른 그 다리와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새이야!”

정신없이 국밥을 퍼먹던 근찬씨가 아이에게 국밥을 떠먹이느라 정신이 없는 갑찬씨를 쳐다보며

“혹시 오늘 강당 사는 우리 사형 아지매 못 봤나?”

입가를 쓰윽 닦으며 묻자

“보자, 그 백 얌생이 키우는 집 말이제? 아까 얼핏 지나가는 거 같더라. 안주까지 집에 가지는 안 했을 끼다. 천천히 찾아봐라.”

“야.”

 

갑찬씨는 난전으로 가고 금찬씨는 이 골목 저 골목을 누비며 세수비누, 세탁비누, 성냥과 석유, 아이들의 속옷과 동동구리무를 한통 사고 수진씨 몫으로 4홉들이 소주도 한 병 샀다. 밀린 돌 담치, 열합(裂蛤)이라도 한 줄 사서 수진씨를 고아주려다 마음을 바꾸고 어물전으로 가서 여기저기 생선을 둘러보다 비싼 생물이나 제사고기를 파는 가운데를 지나 좀 물이 가기는 해도 겨울철이라 아직은 먹을 수 있는 까지매기, 물꽁, 물치, 상어와 가오리 따위를 파는 구석진 가게로 갔다.

어릴 적 닭 전에서 재미를 좀 본 날이면 대폿집에서 얼큰히 막걸리에 취한 아버지 명촌이손은 늘 여기서 물은 좀 갔어도 양이 많은 물꽁이나 물치, 방어등을 사왔고 사위들이라도 오는 날이면 아가미쪽이 물러빠진 가자미나 개상어, 곱돌상어를 사와 손끝이 야문 금찬씨에게 다듬게 하고 움에서 캐낸 무와 대밭 밑 검불 속에 숨어있는 노란 파를 뽑아다 커다란 사구에 가득히 무쳐 사위들 술안주는 물론 아이어른, 심지어 길가는 이웃까지 한 사발씩 퍼주던 생각이 떠올랐다.

한참이나 물건을 둘러보던 금찬씨는 살도 연하고 빛깔도 고운 커다란 참 상어 한 마리를 사려다 마침내 주둥이가 남자 고무신처럼 둥그스럼한 곱돌상어를 한 뭉텅이 사기로 했다. 끓는 물에 짚북데기를 담가 문질러 껍질을 벗기는 것이 성가시지만 무엇보다 양이 많고 회로 무쳐 술안주가 되는 데다 싱겁게 지지면 뼈가 연해 아이들도 쉽게 먹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대충 장을 보고 삽재고모의 작은집 딸인 강당의 사형을 찾느라 두리번거리는데 마침

“아이고 사형, 장에 오싰능교?”

호랑이 제말 하면 온다더니 사형이 먼저 말을 걸어왔다.

“아이고, 사형, 내가 이적지 찾었디마는 제 발로 오싰네.”

비슷한 나이에 꼭 같이 돌잡이 아이를 업은 두 아낙이 반갑게 인사하며 손을 잡고 서로의 아이를 들여다보며 뺨을 쓸어주었다.

“별일 없능교?”

“농사꾼아낙이 다 그렇지요. 참 사형은 집안이 다 편치요?”

이렇게 수인사를 나누고

“그런데 이거 참 부끄러운 소린데 우리 작은집, 뭐 일본집이라카문 다 아는 그 집 소문은 좀 듣능교? 또 그 뭐 얼마 전에 우리 집에서 작은아들 따라간 우리 시조모님 소식은 좀 듣능교?”

달막거리던 말을 꺼내놓자

“그런데 그 기, 그 기...”

말을 얼버무렸다.

 

필시 무슨 곡절이 있나싶어 아낙을 데리고 장터를 다시 가로질러 닭 전에서 목물전을 가로질러 버든에서 장에 오는 첫 집 백손댁 앞에서 방천모퉁이로 올라가 둘이 나란히 앉았다.

 

※ 이 글은 故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