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시대8-이 달의 책】 그의 지성은 영성으로 인하여 더욱 빛났다 - 이어령의 『지성에서 영성으로』
【시민시대8-이 달의 책】 그의 지성은 영성으로 인하여 더욱 빛났다 - 이어령의 『지성에서 영성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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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2.08.15 09:25
  • 업데이트 2022.08.16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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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26일 이어령 선생의 타계 소식이 전해졌다. 2017년 암 발병 후 계속 투병 중이었다. 신문 지면엔 ‘시대의 지성’이 걸었던 흔적들을 앞 다투어 보도하기도 했다. 1956년 5월 6일 <한국일보> 문화면에 실린 「우상의 파괴」로 평단에 이름을 알리게 된 그가 동시대를 풍미했던 비평가 고석규에 대한 기억을 떠올려 준 건 고석규비평문학관으로선 매우 뜻 깊은 행운이었다. 그의 떨리는 육성을 들은 지 18일 후 그는 세상을 떠났다.

이어령을 지칭하는 수많은 수식어 중 단연 문제적인 명칭은 ‘시대의 지성’이 아닐까 싶다. 평론가로 출발한 그가 에세이와 시, 소설 등 다양한 문학 장르로 외연을 확장시킨 이력도 예사롭지 않지만 교수, 언론인, 문화행정가로서 보였던 거침없는 행보는 시대를 ‘대표’하는 지성으로 그를 한국 지성사에 우뚝 세우기에 손색이 없었다.

그가 토양으로 삼았던 ‘시대’와 그 시대 위에서 꽃피워졌을 ‘지성’의 구조물은 어떤 모양이었을까. 여기서 잠깐, 한국비평사에서 그가 차지하는 위치성을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1950, 60년대 전후 문단에서 그의 비평이 가지는 역사적 의미맥락을 추적해 들어가는 행위는 그가 지닌 문화권력과 문화전반에 대한 영향력을 생각할 때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의례에 가깝다. 그의 첫 평론인 「우상의 파괴」부터 들춰보자.

눈도 코도 입도 없는 그 공허한 우상의 자태-그것은 우리 사색의 선혈을 흠신 빨아 먹고 교만한 웃음을 웃는 기생충의 모습이다. 그러나 구경(究竟) 낡은 유물은 그 낡은 구시대의 시간과 더불어 소진되기 마련이며 혹은 박물관의 진열장 속에 정좌한 골동품으로서의 운명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이제 그러한 우상은 우리에게 있어 아무런 의미도 되지 않는다. 표피를 스치고 지나가는 일진의 광품에 불과하다.

우리의 정체를 감추기 위하여 그 거추장스런 달팽이의 껍데기를 등에 지고 다닐 필요는 없다. 혈혈단신 물려받은 유산도 없이 우리는 우리의 새로운 작업을 개시해야 된다. 50년 유년의 신문학 시대 그것을 과도기나 초창기의 혼란이라 부르기엔 너무나 지루하고 긴 세월이었다.

우리는 이 문학 선사시대의 암흑기를 또다시 계승할 아무런 책임도 의욕도 느끼지 않는다. 지금은 모든 것이 새로이 출발해야 할 전환기인 것이다. 우상을 파괴하라!
- 「우상의 파괴」 중에서 -

한국전쟁이 빚은 참화는 모든 것을 폐허로 만들었다. 전후 문학과 비평의 지평은 그 허물어진 흔적 위에서 펼쳐졌다. 그러나 새로운 질서로 자리잡은 분단체제는 기성旣成의 것과 신생新生의 것, 양자 모두를 각기 다른 방식으로 왜곡했다. 「우상의 파괴」는 이러한 시대적 상징들을 내포하고 있다. 신세대론과 전통론으로 대별되는 이어령 비평의 핵심은 그 지점에 대한 문제제기이자 논쟁의 촉발제였던 셈이다. 김동리와 결을 달리하는 이어령의 실존주의, 그리고 김수영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중단된 순수문학 논쟁은 이어령이 침잠해있던 서구 교양주의와 ‘계몽’enlightenment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의 계몽적 지성은 이성과 합리성으로 구축되었다고 믿는 인간의 자유와 물질적 진보의 허약한 토대를 새삼 확인하게 함으로써 그를 새로운 ‘지성의 양식’으로 이끌어 간다. 그가 추구하던 통섭과 융합 역시 이러한 시대상황 속에서 변주되어진 것이다.

무신론자 이어령은 2007년 7월 24일 세례를 받고 기독교 신자가 되었다. 그의 나이 74세 되던 해였다. 그 후 이어령은 ‘공식적’인 크리스챤이 되었다. 『지성에서 영성으로』에는 무신론자 이어령이 자신의 믿음을 찾아 떠났던 여정이 촘촘하게 기록되어 있다. 세례를 받고난 후 기독교인으로 주목받는 자신이 낯설었음을 그는 가감없이 드러낸다. 당시 그의 세례 소식을 인터뷰한 기사의 일부분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지성인이 지금까지 쌓아온 인본주의적인 작업을 뒤로 하고 지성의 세계에서 영성의 세계로 들어가는 순간이었다. 크리스천 이어령, 무엇이 그를 이성과 지성의 세계에서 영성의 세계로 떠나게 만들었을까.”

그러나 크리스찬 이어령은 말한다.

“누구나 가슴깊이 파고 들어가면 거기 영성의 수맥이 흐르고 있을 것입니다. 나는 그런 사람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2012년 먼저 세상을 떠난 딸 이민아 목사는 아버지 이어령을 신앙으로 이끈 장본인이다. 병마와 싸우는 딸의 고통을 한 줌이라도 덜어줄 수 있다면.. 아비의 기도는 간절했다. 세례를 받은 이후 이어령은 서양문화 속에 숨어있는 지知의 공허와 무상성에 대한 상징들에 더욱 깊이 천착한다. 그의 표현대로 지성에 감금된 인간의 비극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일까. 책과 함께, 평생 책을 의지처 삼았던 석학의 노년의 삶에서 우리 시대의 문제인 근대성의 그늘을 본다. 

이어령에게 영성은 ‘절실한 고독’ 속에서 ‘완벽한 사랑’을 구하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딸 민아’의 고통을 통해 그는 연약한 생명에 대한 특별한 존재론적 감응에 눈을 뜬 것이다. 지독한 외로움. 그는 자신의 ‘원네스 oneness’가 되고, ‘임파테이션 impartation’이 되어줄 절대자에게 절규한다.

“당신이 내가 되고 내가 당신이 될 것 같습니다. 당신이 약속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는 신앙인으로서의 추체험을 통해 지난 시절 자신이 쌓아올린 지성의 탑과는 다른 영성의 탑을 축조하기에 이른다. 그래서였을까 ‘주님의 뜻’대로 살고자 했던 이어령은 더 깊어진 필력으로 세상을 향해 거침없이 준엄한 목소리를 낸다. 물질적 욕망으로는 채워지지 않을 정신의 허기를 그는 문명의 추위라 불렀다. 감사하는 마음, 사랑하는 마음, 살아있는 모든 것들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조차 상품이 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아침에 일어나 듣는 새소리와 장엄한 해돋이 풍경이 어떤 의미인가를 되묻는다. 절멸의 길 끝에서 그는 생명을 얘기하고 사랑을 노래하는 영혼의 순례자가 되었다. 그의 지성은 영성으로 인해 더욱 빛났다.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 2
                      이어령 詩

당신을 부르기 전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당신을 부르기 전에는 
아무 모습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제 아닙니다
어렴풋이 보이고 멀리에서 들려옵니다

어둠의 벼랑 앞에서
내 당신을 부르면
기척도 없이 다가서시며
‘네가 그동안 거기 있었느냐”고
물으시는 목소리가 들립니다
달빛처럼 내민 당신의 손은 왜 그렇게도 야위셨습니까
못자국의 아픔이 아직도 남으셨나이까
도마에게 그렇게 하셨던 것처럼 나도
그 상처를 조금 만져 볼 수 있게 하소서
그리고 혹시 내 눈물방울이 그 위에 떨어질지라도
용서하소서

아무 말씀도 하지 마옵소서
여태까지 무엇을 하다 너 혼자 거기에 있느냐고 
더는 걱정하지 마옵소서
그냥 당신의 야윈 손을 잡고
내 몇 방울의 차가운 눈물을 뿌리게 하소서


 

이진서

◇이진서

▷부산대, 이화여대, 영국 워릭대(University of Warwick)에서 수학했다.
▷지금은 김해에 둥지를 튼 고석규 비평문학관에서 비평적 글쓰기에 대한 실험들을 해보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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