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시대8-여가문화】 나는 여가생활에 얼마나 만족하고 있을까? - 김문겸
【시민시대8-여가문화】 나는 여가생활에 얼마나 만족하고 있을까? - 김문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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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2.08.23 07:30
  • 업데이트 2022.08.24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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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겸 부산대 사회학과 명예교수

 

개미와 베짱이의 우화가 있다. 여름 내내 일한 개미는 겨울을 배부르고 따뜻하게 나고, 놀고 지내던 베짱이는 추위 속에 굶어 죽고 만다는 것이다. 그러나 21세기의 개미와 베짱이는 이와는 전혀 다르게 그려진다. 개미는 노역에 시달리다 허리디스크에 걸린 반면, 베짱이는 최신곡이 히트하여 잘나가고 있다. 또 어떤 베짱이는 겨울 동안 따뜻한 방에서 심심해하는 다른 곤충들에게 지난여름 동안 보고 들은 자신의 경험으로 특강을 베풀며 삶을 즐기고 있다.

이 이야기는 한 시대의 변화상을 상징적으로 압축한다. 전자는 근대 산업사회를 원활하게 작동시켜왔던 근면․노동․절제라는 생활윤리가 담겨 있고, 후자에는 즐거움과 여가를 추구하는 후기 산업사회의 생활논리가 함축되어 있다. 그러면 21C에 접어든 오늘날의 한국인들은 여가생활에서 어느 정도 만족하며 살고 있을까?

통계청 조사에 의하면, 한국인의 여가생활만족도는 2009년 21.8%에서 2013년 27.1%로 높아진 이후, 계속 이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2021년 현재 여가생활만족도는 27.0%이다. 연령별로는 10대가 가장 높고 다음으로 20대, 30-50대, 60대 이상의 순으로 나타나 나이가 들수록 여가생활에 대한 만족도는 떨어진다. 여기에 대한 해석은 뒤에 가서 종합적으로 살펴보기로 하고 먼저 여가생활에 만족하지 못하는 이유부터 살펴보자.

전 국민을 대상으로 2021년에 조사한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제일 첫 번째가 47.8%로 시간부족이고, 두 번째가 28.1%로 경제적 부담을 꼽는다. 그 다음에 지적하는 여가생활 불만족 요인은 “여가정보나 프로그램 부족”이 7.5%, “여가를 함께 즐길 사람이 없어서”가 4.7%, “이전 여가경험[여가향유능력]이 부족해서”가 4.3%, “여가시설이 부족해서”가 3.4%, 기타 4.2% 등의 순으로 나타난다. 여가불만족 요인 중 시간과 돈 부족은 다소 차이가 있지만 OECD 국가 모두에게 나타나는 공통적 현상이다. 그런데 여기서 필자가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물리적인 시간과 돈 부족보다는 심리적 상태를 내포하는 현대인의 시간 강박증 현상이다.

전통사회가 식량기근에 시달렸다면, 현대사회는 시간기근[time-famine]에 허덕인다. 소유되고 소비되는 하나하나의 사물에서와 같이, 자유시간의 일 분 일 초 속에서도 현대인은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려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낙오자가 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8282 문화가 한국인에게는 더욱 더 두드러진다. 빨리빨리 문화가 급속한 경제성장을 성취하는 엄청난 동인으로도 작용했지만 여기에 대한 대가도 치러야 했다. OECD 국가 최고의 자살율과 최저의 행복감이 그것이다. 우리의 8282 문화는 시간강박증을 나타내는 현대인의 삶을 상징한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보드리야르는 현대인의 비극을 ‘시간 낭비의 불가능성’에서 찾는다. 사심 없이 그저 시간을 낭비할 수 있는 자유가 현대인에게는 없다는 것이다. 가속적인 사회적 환경의 변화에서 오는 자극이 우리의 욕구와 의식을 끊임없이 재구성하기 때문이다.

현대인의 생활에서 시간의 사용가치는 뒷전으로 밀려난다. 현대인은 시간에 쫓기고, 시간 부족에 허덕인다. 시간 부족에 대한 반응은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려는 태도로 이어진다. 대표적으로 다음과 같은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주어진 행동을 빠르게 하려고 시도하기. 한 번에 하나 이상의 활동하기. 예컨대 화장실이나 버스[전철]에서 영어 단어 외우기. 핸드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신문을 보면서 식사하기. 또 시간사용을 치밀하고 정확하게 해서 활동하기. 즉 치밀하게 계획된 시간표에 따라 시간의 낭비 없이 짜여진 스케줄대로 다음 행동으로 이어가기 등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간강박증에 대응하여 여기에 대한 반작용도 나타난다.

‘느림에 대한 미학’의 출현이 그것이다. 슬로우 푸드 운동과 슬로우 라이프, 슬로우 시티의 출현 등이 대표적인 것이다. 2000년도에는 프랑스의 사회학자이자 수필가인 피에르 쌍소의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가 우리나라에 번역이 되어 나왔다. 느림에 대한 사회적 욕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1999년에 프랑스에서 최대의 화제작으로 논픽션 부문 1위를 차지했다. 그는 일상의 속도를 늦춤으로써 얻을 수 있는 섬세한 삶의 풍경을 묘사한 여러 에세이를 통해 전 세계적으로 '느리게 사는 삶'에 대해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쌍소는 “인간의 모든 불행은 단 한 가지, 고요한 방에 들어앉아 휴식할 줄 모른다는 데서 비롯한다”는 파스칼의 말을 인용하면서, 느림을 제대로 즐기기 위한 몇 가지 방안을 제시한다. ‘한가로이 거닐기’, ‘듣기’, ‘권태를 즐기기’, ‘꿈꾸기’, ‘기다리기’, ‘마음의 고향 떠올리기’, ‘글쓰기’, ‘포도주 한 잔에 빠지기’ 등등이다.

느림의 미학은 요즈음 급부상한 ‘힐링’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힐링이라는 단어가 유행하기 전에는 웰빙이라는 단어가 크게 유행했었다. 웰빙이 생물학적인 육체와 관련되어 있다면, 힐링은 정신적인 것과 관련이 많다. 2000년도 이후에 한국사회에서도 각종 명상 프로그램이 대거 등장했다. 심지어 집중적으로 명상을 유도하는 사설감옥소까지 등장하고, 2014년에는 서울광장에서 ‘멍때리기 대회’가 열리기도 했다. 이와 같은 현상은 시간기근과 시간강박증에 사로잡힌 현실사회에 대한 반작용의 산물이다.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경쟁주의 사회에서 그만큼 온전한 자아를 찾기 어렵고 정신세계가 피폐해졌다는 현실을 반증한다. 진정한 여가를 즐기기 위해서는 물리적인 시간과 돈 부족보다는 먼저 스스로 시간에 쫓기는 강박 관념에서 벗어나는 것이 최우선 과제일 것이다.

한편 앞서 말한 여가불만족 요인에 대한 통계적 결과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조사한 것이기 때문에 구체적인 현실을 설명하기에는 적합치가 않다. 그래서 이를 연령층별로 살펴보면 보다 현실감 있는 해석을 도출해 낼 수 있다. 이 잡지를 구독하는 연령층이 비교적 고연령층이라는 점을 감안해 여기에 초점을 맞추어 보면, 다음과 같은 특이점이 발견된다.

60대 이상의 고연령층에서는 여가불만족 요인으로 ‘시간 부족’을 지적하는 비율은 확연히 떨어진다. 주로 일에서 은퇴한 삶을 살아가는 고연령층에게 이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오히려 남아도는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하는 것이 고민이다. 여기서 저연령층에 비해 두드러지게 부각되는 여가불만족 요인이 등장한다. 그것은 여가를 함께 즐길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즉 여가동반자가 없다는 것이다. 또 이전에 경험해 보지 못해서 여가향유능력이 부족하다는 것도 크게 지적된다.

지금의 60, 70대 이상의 고연령층은 과거에 거의 일 중독증에 걸렸다 할 만큼, 모든 일상이 일 중심으로 짜여진 생활을 했다. 야근, 특근은 물론이고 일요일도 반납하는 경우도 많았다. 일 중독증이 오히려 장려 받는 사회였다. 경제개발이 상승곡선을 이루는 시기에는 승진의 기회도 많았고 새로운 영역 개척의 기회도 많았다. 일의 대가로 이루어지는 보상은 개인적 성취이자 가족과 가문의 영광으로 치부되었다. 그러나 그 시절을 살았던 삶은 중요한 걸 유보해야만 했다. 바로 그것은 놀 줄을 모르는 것이었다. 이러한 환경에서 여가는 사치였고, 여가향유능력은 개발되기 어려웠다.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우리나라의 여가문화는 암흑기에 빠졌다. 어찌 보면 그럴 수밖에 없는 시대적 환경이었다. 여기서 우리의 독특한 여가문화로 급부상 했던 것을 하나 꼽으라고 한다면, 그건 바로 고스톱이다. 물론 다른 놀이문화도 있었지만, 고스톱은 ‘국민보건체조’라고 불릴 정도로 전국을 강타했다. 세월이 흘러 서울 미사리에 복고풍의 통기타 주막집이 열리고, 은퇴한 7080세대들은 새로운 길들을 찾기 시작한다. 섹소폰 동호회가 아마 가장 대표적인 것일 것이다. 그리고 TV의 자연인 프로그램에 심취하는 것도 치열한 경쟁사회를 살아온 과거의 흔적이다. 그리고 통계청 설문조사에는 빠져 있지만 고연령층에서 간과할 수 없는 또 다른 중요한 여가불만족 요인은 건강이다. 나이가 들수록 병원 가는 시간이 많아지고, 활동할 수 있는 에너지 자체가 줄어든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이것은 개인차가 매우 심하다.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가 예전에는 와 닫지도 않았고, 심지어 비난받기까지 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상당히 일리가 있다고도 느껴진다.

앞으로는 일생에 오직 한 번 밖에 주어지지 않는 찰나의 삶에서 자기 자신을 성찰하고, 구체적인 현실에서 온전한 자기모습을 찾아보려고 하는 사람들이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잠재된 자기의 다양한 여가향유 능력을 찾아내어 자기계발과 자아실현을 추구하면서 삶의 복수적 형태를 실행하려는 인간형이 많아질 것으로 예측된다. 최근에 부상하는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과 ‘워라벨(work-life balance)’의 등장에서 복수적 삶의 형태를 실천하려는 맹아는 이미 싹트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 김 문 겸 교수

▷부산대학교 사회학과에서 학사, 석사를 거친 뒤 동대학원에서 한국인의 여가문화 : 노동과 여가에 대한 사회사적 접근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612-20218월 부산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

▷일상성·일상생활연구회 회장, 한국문화사회학회 부회장, 부산대 사회조사연구소소장, 부산대 한국민족문화연구소 사회문화연구실장을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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