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0년대에 발생한 동일방직 사건을 기억하시는지요? 동일방직에서 발생한 노동쟁의는 한국 노동사에서 가장 장기적이고도 폭력적인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폭력적이라는 근거는 체포영장의 발부 건수, 체포된 노동자의 수, 유죄 확정판결 후의 형량 등을 고려했을 때의 판단입니다. 여성노동자들의 주도로 진행된 동일방직 사건은 1976년부터 1980년까지 5년 동안 계속되었고 체포, 투옥, 부상 그리고 대량해고 등의 일들이 일어나면서 간간이 맥이 끊기기도 하였습니다.
여성노동자들이 주도한 노동쟁의는 발전국가 정부의 탄압으로 조직적인 노동운동이 제대로 펼쳐지지 못하던 1970년대에 일어났습니다. 정부 시책에 저항하면 치러내야만 했던 대가가 너무 컸던 탓에 합법, 불법을 떠나 노동쟁의를 조직하고, 또 참가한다는 일 자체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했던 시대였습니다. 이런 침잠의 분위기에 불구하고 여성노동자들은 그녀들이 처한 암울한 현실에 저항했고, 많은 대가를 치렀으며,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1970년대의 노동운동에는 흔히 ‘간헐적’이라는 관형사가 따라옵니다. 한 곳의 작업장에서 발생한 쟁의가 다른 작업장으로까지 옮겨가서 작업장 간의 연대로까지 이어지는 연쇄파급효과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여성노동쟁의의 대부분은 사회적 반향이나 다른 작업장과의 연대가 없이 고립된 상태에서 국지적으로 발생하였습니다. 박정희 정권하에서의 단체협상권은 거의 인정을 받지 못하였으나 1980년대에 발생한 전국적인 노동운동의 기폭제가 된 것 또한 사실입니다.
이 당시 노동쟁의의 대부분은 섬유, 피복, 가발공장 등과 같은 소위 주변부 산업에서 발생했습니다. 동일방직, 원풍모방, 청계천 피복 공장, 태광산업, 반도상사, YH 무역 등과 같이 노동집약적이고, 저임금이며, 불안정 고용의 성격을 가지고 있던 작업장에서 노사갈등이 분출되었고, 남성노동자들의 대부분은 여성들과 같이 움직이기를 거부 또는 무시하였습니다.
‘주변부 산업에서 왜 여성들의 주도로 노동쟁의가 발생했을까?’라는 질문에 노동억압적인 발전국가라는 당시 국내 상황의 설명만으로는 온전한 설명이 되기는 어렵습니다. 발전도상국 여성들의 삶은 국제통상관계 속에서 작동하는 국가 간 비교우위에 따른 국제 분업이라는 원리를 파악하지 않고서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박정희 시대에 흔히 듣던 ‘우리나라는 자원도 없고, 영토도 작고, 가진 거라고는 교육받은 인력 밖에 없다’던 주장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입니다. 발전도상국이던 한국은 노동단가가 낮은 인력을 풀가동하며 경공업 중심의 수출주도형 경제발전 모델을 지향한 것이고 그 전까지는 노동시장 참여가 저조했던 여성인력의 수요가 증가한 것입니다.
사회의 지각이 크게 변동할 때 그 구성원인 여성들의 삶도 당연히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경제성장과 여성의 사회경제적 지위에 관한 연구들은 많고 관련 논쟁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보즈럽[Boserup 1970]1)과 워드[Ward 1986]와 같은 학자들은 여성의 임금 노동이 증가해도 남성과 비교했을 때는 상대적으로 지위가 하락한다는 주장을 펼친 반면, 블룸버그[Blumberg 1991]2)는 여성의 소득창출과 가족 내에서의 지위는 긍정적으로 연동한다고도 했습니다.
성과 직업에 관한 논란은 현재진행형입니다. ‘성 평등의 역설’[Gender equality paradox]이 그 예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 독일, 핀란드, 스웨덴과 같이 성 평등 지수가 높은 나라들보다 튀니지, 오만, 모로코, 사우디아라비아와 같이 성 평등 지수가 상대적으로 낮은 나라들에서 흔히 남성의 영역으로 간주되어온 STEM 즉, 과학[Science], 공학[Technology], 기술[Engineering], 수학[Mathematics]의 분야에서 여성들이 학위를 취득하는 경우가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 역설은 소위 STEM분야가 남성의 영역이라고 믿어온 선입견에서 기인한 것이지 여성들이 애초부터 이공계통에 약하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설명이 있기도 합니다.3)
한국의 경우, 급격한 도시화와 산업화, 불공평한 부의 분배 그리고 노동시장 참여증가 등의 요인으로 여성들은 새로운 노동계급으로 떠올랐습니다. 완고하게 변하지 않던 남성 중심적 경영형태는 여성노동자의 지위를 향상시키기는커녕 기존의 성 역할이 작업장에서도 재현, 강요당하는 현상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복종적이고 온순하다고 인식되던 아시아 여성노동자에 관한 기존의 인식과는 달리 한국 여성노동자들이 쟁의과정에서 보여준 행동들은 자주 과격하고, 급진적이기까지 했습니다. 최장집[1988]은 한국 여성노동자들은 노동운동에서나 생산과정에서나 매우 중요한 존재들이었다고 주장하였고4), 이정택[1987, 71] 또한 “한국의 노동시장이나 노동운동에서 젠더는 매우 중요한 설명변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5)
프레드릭 데요[Deyo 1989, 190]6)도 당시 “네 마리의 용”이라고 불리던 한국, 대만, 싱가포르, 홍콩에서 발생한 노동쟁의를 분석한 뒤 아시아 여성들의 기본성향이 복종적, 수동적이라 노동쟁의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인식에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데요는 “나이가 어린 여성들이 노동운동과 같이 잘 조직된 집단행동에는 거의 참여하지 않았으나, 다른 형태의 집단행동인 데모나 시위에는 활발히 참여”했으며, 특히 한국의 경우 1980년대에 전국적으로 전개되던 민주화운동에서 여성들이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앞으로 연재될 1970년대 여성 노동자의 생애사를 다루는 이 글에서도 수동적, 복종적이라는 동양여성들의 이미지는 그녀들의 살아온 삶과는 괴리가 있음을 경험적으로 분석하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런 동양적 여성상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일까요? 성별 간의 권력관계가 ‘여성성의 신화’를 만들어 낸 것처럼7) 동양과 서양 사이에 존재해온 힘의 불균형이 강자의 일방적인 인식정향에 합치되는 일부의 현상만을 취사선택한 결과, 현실굴절이 생긴 것입니다. 여성을 감정적, 수동적, 의존적이라고 묘사해온 ‘여성성의 신화’가 기존의 가부장적 질서유지에 필요하고 또 편리했기 때문에 강요된 틀에서 벗어나는 여성들을 소외, 배제, 정죄해온 것같이 서양도 동양을 여성화해온 것 또한 사실입니다. 이런 제국주의적 인식을 정당화하기 위해 종교적인 신념, 식습관, 지형까지 설명도구로 동원되었고 그러한 인식의 잔재는 지금도 남아있습니다.
이런 인식과 주장은 현실의 관찰과 분석 작업을 통해 수정될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수잔 티아노[1994]와 게이 영[1987]이 미국과의 접경지대에 있는 마퀼라[Maquila]라고 불리는 멕시코의 보세가공구역에서 발생한 여성주도 노동쟁의를 살펴본 결과 가난하고, 배운 것 없고, 조직력이 약한 제 3세계 국가의 여성들도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판단하면 집단행동으로 옮긴다는 것을 관찰했습니다. 멕시코의 여성들도 아시아의 여성들과 비슷하게 조직적인 노동운동에는 미온적이었으나 남성지배층들이 알기 힘든 그들만의 방식으로 저항을 하는 현상이 보고되고 있습니다.8) 따라서 한국 여성노동운동도 ‘서양적 시각’이 만들어낸 동양적 여성성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과격한”, “급진적인”, “전투적인” 등으로 인식되어 온 듯합니다.
제 3세계의 유색인종여성들을 이국적 정취를 풍기는 ‘타자’로 범주화해온 서구학계의 연구풍토를 비판해온 인도출신 여성학자들인 모한티[Mohanty]9)와 스피박[Spivak]10)과 같이 1976년부터 1980년까지 진행된 동일방직 노동쟁의의 발자취를 따라 가보고 소위 ‘공순이’로 불렸던 여성방직노동자들의 생애사도 편견이 없는 시선으로 바라보고자 합니다.
이 글에서는 동일방직 노동쟁의를 사회운동의 표출로 보고 초기단계에서의 공감대 형성, 점진적인 연대의식의 고양, 첨예한 노사 간의 대립, 그 이후의 쇠퇴과정을 추적해보려고 합니다. 이 모든 과정과 전개에서 주도자와 참여자들이 여성이었다는 성적 정체성이 남성노동자들과의 관계정립, 노사관계에서 드러난 차별적 관행, 그리고 사회와의 관계짓기에서 핵심적인 변수였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연재를 계속하겠습니다.
[주]
1)Boserup, Esther. 1970. Women’s Role in Economic Develpment. London: Allen & Unwin.
2)Blumberg, Rae Lesser. 1991. “Income under Female versus Male Control,” pp. 97-127 in Gender, Family, and Economy: The Triple Overlap, edited by R. Blumberg. Newbury Park, CA.: Sage Publications.
3)Breda, Thomas; Jouini, Elyès; Napp, Clotilde; Thebault, Georgia (2020-12-08). “Gender stereotypes can explain the gender-equality paradox.”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117 (49): 31063–31069.
4)최장집. 1988. 『한국의 노동운동과 국가』 열음사.
5)Lee, Jeong Taik. 1987. Economic Development and Industrial Order in South Korea: Interactions between the State and Labor in the Process of Export-Oriented Industrialization. Doctoral Dissertation, Dept. of Sociology, University of Hawaii.
6)Deyo, Frederic. 1989. Beneath the Miracle: Labor Subordination in the New Asian Industrialism. Berkeley, CA: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7)Friedan, Betty. 1963. The Feminine Mystique. New York: W.W. Norton. 시몬 드 보부아르. 2021. 『제 2의 성』 을유문화사.
8)Tiano, Susan. 1994. Patriarchy on the Line: Labor, Gender and Ideology in the Mexican Maquila Industry. Philadelphia, PA: Temple University Press. Young, Gay. 1987. “Gender Identification and Working-Class Solidarity Among Maquila Workers in Ciudad Juarez: Stereotypes and Realities.” pp. 105-28, in Women in the U.S.-Mexico Border: Responses to Change, edited by V. Ruiz and S. Tiano. Boston, MA: Allen and Unwin.
9)Mohanty, Chandra Talpade. 1991. “Under Western Eyes: Feminist Scholarship and Colonial Discourse.” pp. 51-80 in Third World Women and the Politics of Feminism, edited by C. T. Mohanty, A. Russo and L. Torres. Bloomington, IN: Indiana University Press.
10)Spivak, Gayatri Chakravorty. 1987. “A Literary Representation of the Subaltern: A Woman’s Text from the Third World.” pp. 241-68 In Other Worlds: Essays in Cultural Politics, edited by G. C. Spivak. New York, NY: Oxford University Press.

◇ 김미경 : ▷현재 부경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강사로 일하고 있다. ▷2005년부터 2017년까지 일본 히로시마시립대학에서 정년보장교원으로 봉직했다. ▷여성, 기억, 인권, 평화를 주제로 다수의 연구논문을 출판했으며 재미한국정치연구회장, 국제정치학회인권연구위원장, 한국풀브라이트협회 부회장, 민주평통 일본대의원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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