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 시인의 단시조 산책 (50) 바람, 어쩔 수 없는 - 김정연
이광 시인의 단시조 산책 (50) 바람, 어쩔 수 없는 - 김정연
  • 이광 이광
  • 승인 2022.09.28 10:23
  • 업데이트 2022.09.29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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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어쩔 수 없는
                            김정연

 

 

그래 난 참 헤퍼서
바람 앞 깃발이지

어르다 흔들다가
끝내는 찢어놓지만

찢긴 채 한끝은 남아
그 깃대를 물고 있지

김정연 시인의 <바람, 어쩔 수 없는>을 읽는다, 화자는 자신을 ‘참 헤퍼서/바람 앞 깃발이지’ 하며 자조 섞인 고백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헤프다는 말 속엔 바람이라는 변화무쌍한 현실 앞에 일희일비하던 지난날의 성찰이 깔려 있다. 그리하여 나약한 인간의 실상으로 ‘바람 앞 깃발’이라는 새로운 명제가 나타난다. ‘바람 앞 등불’이라는 위기상황뿐 아니라 깃발은 바람이 일으키는 모든 상황에 직면하는 실체의 입장에 처한다.

중장에서는 냉혹한 사회의 칼바람도 느껴진다. ‘어르다 흔들다가/끝내는 찢어놓’는 야수 자본주의의 속성을 우리는 곧잘 보아오지 않았던가. 가진 자는 더 가지려 하고 그 과정에서 바람에 지는 낙엽처럼 거리를 뒹구는 패자가 생겨나는 것이다. 그러나 화자가 목격하고 체험한 바람은 보다 근원적인 곳에서 불어오고 있다. 이는 이 시의 제목에서 이미 예감하게 되는데 ‘어쩔 수 없는’ 바람이란 우리가 일생동안 겪어야 할 피해갈 수 없는 숙명, 즉 실존의 삶에 가해지는 외부 압력을 말한다.

종장 후구에 등장하는 깃대는 시의 함의를 더욱 깊게 해준다. 깃발은 우리가 꼭 붙잡아야 할 가치, 깃대는 ‘찢긴 채 한끝은 남아’ 한끝이라도 물고 있어야 할 소중한 기반을 상기하게 한다. 깃대가 없는 깃발은 떠돌 수밖에 없고 깃발을 잃은 깃대는 존재 이유를 상실한다. 깃발은 깃대가 있기에 바람과 맞설 수 있고, 깃대 또한 펄럭이는 깃발을 위해 꿋꿋이 설 힘을 얻는다.

 

이광 시인

◇이광 시인 : ▷2007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당선 ▷부산시조 작품상, 이호우 시조문학상 신인상, 나래시조문학상 수상 ▷시조집  《당신, 원본인가요》, 《소리가 강을 건넌다》, 《바람이 사람 같다》, 현대시조 100인선 《시장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