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264) 제4부 신불산 정기 - 제6장 세상에 눈뜨다⑤
대하소설 「신불산」(264) 제4부 신불산 정기 - 제6장 세상에 눈뜨다⑤
  • 이득수 이득수
  • 승인 2022.09.30 09:59
  • 업데이트 2022.09.30 09: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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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세상에 눈뜨다⑤

그렇게 세월이 흐르면서 아이들도 조금씩 자라고 저축도 조금씩 불어나 마침내 꿈에 그리던 독채전세를 가게 되었다. 엄격히 말해서는 몸체전세, 그러니까 주인이 같이 살지 않는 집의 몸체인 마루와 몇 개의 방과 목욕탕이 딸린 화장실과 연탄아궁이 대신 가스레인지가 놓이고 식탁이 있어 집주인과 다름없이 살 수 있는 그런 집이었다. 특히 전에 자신들이 살아오던 곁방과 2층집을 거느리고 대문에 자기명의의 문패도 달수도 있었다.

거기다 아이 둘도 순조롭게 잘 자라 벌써 6학년이 된 딸 슬비는 공부도 꽤 잘 하고 행동거지도 반듯하고 아이들과도 잘 어울려 여전히 자신과 제 어미가 <이슬비라는 이름의 아이>, <이슬비엄마>로 통하게 하고 있었다.

그런데 정석이는 좀 특이한 편이었다. 별로 말도 없이 착하고 고분고분한 성격이면서 친구들과 잘 어울리는 그 아이는 다섯 살이 되어 미술학원에 다니면서부터 늘 또래들의 중심에 있었고 노처녀인 학원선생으로부터도 각별한 사랑을 받았다. 학원에서 그린 그림이라고 가져오는 것이 열찬씨의 눈으로서는 날개가 달린 새나 지느러미가 달린 물고기나 똑 같은 모양이었지만 학원선생은 배에 달린 검정 타이어나 갈매기를 그린 것이 다른 아이와 달리 아주 세심한 편이라 관찰력이 뛰어나 아이라고 추켜세우기도 했다.

 

그런 과정에서 열찬씨가 단 한 번 이 아이가 꽤 괜찮다고 느낀 것은 유치원에 들어가면서 쓴 여섯 살짜리의 일기장에서

0월 0일

오늘은 어머니가 직접 구워준 맛있는 빵을 먹었다. 고양이도 조금 주었다.

라는 대목이었다. 무얼 먹다 옆에서 쳐다보는 고양이에게 조금 떼어주는 거야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맛이 있으니까 고양이에게 주고 또 그런 순수하고 따뜻한 마음을 아무런 설명도 없이 간단하고 표현하는 것이 삼빡하면서도 대견했다. 이는 영주의 4촌 누나 현숙이가 여름방학 첫날

오늘은 미숫가루를 먹었습니다.

로 쓰고 이튿날부터

오늘도 미숫가루를 먹었습니다.

로 40일간의 일기를 채우고는 명색 국어선생의 딸이 그 모양이라고 아버지 일찬씨에게 항의전화가 온 일과 비교해도 뭔가 특이하면서도 그 뉘앙스가 색다른 것이었다.

 

하루는 잠깐 자리를 비운 직원 대신 창구민원을 맡았는데 머리가 허연 40전후의 신사 하나의 인감증명서를 떼다 윤한철이란 이름이 낯익어 곰곰 생각하니 2학년 때 정석이의 담임선생 이름이었다. 희끗희끗한 머리와 부드러운 표정이 푸근한 느낌이라 혹시 연동국민학교에 근무하느냐고 묻고 마침내 정석이의 아버지임도 실토하고 동사무소 앞 대웅다방에서 쌍화차를 한 잔 대접했다.

며칠 뒤엔 같은 집 2층에 세 들어 사는 상재라는 아이의 전자대리점을 운영하는 아버지와 의논해서 윤선생을 초청해 일식집에서 식사를 대접하고 생맥주로 입가심도 했다. 성적이 들쭉날쭉한 상재와 달리 모범생에 반장인 정석이에 대해서 특별히 부탁할 일도 없었지만 그래도 예의상 저녁 한 끼 쯤은 대접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3학년이 되면서 문제가 생겼다. 여전히 반장을 맡은 담임 윤한철선생도 바뀌지 않은 것도 다 좋았는데 문제는 학생회 대표를 뽑으며 시작되었다.

공부를 잘하고 붙임성이 있어 학급회장을 맡은 것까지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데 문제는 그 학급대표들 중에서 12개 학급의 회장과 남녀 부회장 각 한 명씩을 차출한 반(班)대표 36명이 투표로 학년대표를 뽑고 처음 학생회에 들어오는 3학년의 학년대표회장의 학부모가 자모회장이 되는 것이었다.

자유당시절 그 어렵던 보릿고개에도 치맛바람이 있었다고 하듯이 제 자식이 잘 나 보이고 또 제 자식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망설이지 않는 어미들의 본능이 이어오는 데다 이제 경제발전에 탄력이 붙어 시골에서 보리밭을 매거나 새마을공장에서 재봉틀을 돌리며 야간여상을 다니다 이젠 대부분이 엔간한 가게나 공장을 가지고 반듯한 2층 양옥 하나쯤은 가져 나름 부자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당시의 3,40대 주부들은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과 자식들에 대한 기대감이 하늘을 찌르는 판국이라 당시가 어쩌면 건국 이후 치맛바람의 최전성기인지도 몰랐다.

그래서 정석이네 또래에도 아이들의 유치원시절부터 같은 학부모로 알게 지내며 제가끔 주택이나 아파트, 자동차나 모피코트, 명품가방과 외제시계 등으로 자신의 부를 과시하던 건축업자, 운수사업자, 빌딩과 상가건물소유주, 의사, 변호사, 세무사, 은행원에 심지어 교통사고처리 경찰관에 이르는 부잣집 안주인들의 치맛바람부대가 있었다. 가난한 영순씨는 이슬비라는 특별한 이름의 아이엄마로 시작해 정석이엄마로 이어져오면서 치마부대에 잘 알려지긴 해도 감히 끼어들 엄두도 못 내는 동사무소엄마로 불리고 있었다.

 

그런데 무려 12학급이나 되어 서로 알기도 하지만 모르는 아이가 더 많은 반(班)대표들이 학년회장을 뽑는 투표에서 예상 밖으로 정석이가 공동1위를 한 것이었다. 동점자는 정석이와 같은 반도 한 적이 있는 최차식이라는 아이였는데 그의 아비가 연산로터리에서 꽤 큰 규모의 운수회사를 운영하고 있었다. 그 어머니가 그 형인 선식라는 아이가 입학한 이후 무려 5년 동안 부지런히 학교의 행사에 드나들며 각종 행사에 기부금을 내고 교장교감을, 어떤 때는 전교 7,80명의 교사전부를 초청하여 식사를 대접하기를 여러 번이라 담임과 교장교감은 물론 대부분의 교사들이 특별한 변수가 없으면 당연히 최차식이 학년회장이 되고 그 어머니 강해순여사가 자모회장이 되는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렇게 되면 수많은 학교행사에 쏠쏠한 찬조금이 들어오고 전체교사가 식사에 초대받아 학교와 자모회는 물론 지역사회발전에 커다란 보탬이 될 것으로 믿고 있었다.

그런데 2차 투표결과 상당한 표차로 차식이가 아닌 정석이가 당선되고 말았다. 순진한 아이들은 폴짝폴짝 뛰며 기뻐했지만 어리둥절한 낙선자 차식이보다 담임선생과 교장교감의 얼굴이 사색이 되고 말았다. 학부형이 동사무소직원이라 쏠쏠한 찬조금과 성대한 회식이 물 건너갔기 때문이었다.

ⓒ서상균

그날 저녁 퇴근한 열찬씨를 맞이하는 영순씨의 얼굴이 사색이 되어 있었다. 무슨 일이냐고 묻자 옆에 있던 슬비가

“아빠, 정석이가 전교회장에 당선되었어요. 그런데 엄마가 왜 저렇게 걱정하는지 모르겠어요.”

하고 대신 말을 하자

“아빠, 2차 투표에서 근근이 이겼어요. 아이들이 깡충깡충 뛰면서 얼마나 신이 났는지 몰라요.”

정석이가 자랑스럽게 가슴을 펴 보이는데

“보소, 우짜면 좋겠능교?”

“우짜기는? 아아들끼리 투표해서 걸린 거면 좋은 일이지. 하하하 우리 정석이가 그래 아이들한테 인기가 있는 편이란 말이지.”

대견한 듯 아이의 머리를 쓸어주는 열찬씨의 가슴이 비로소 쿵 소리를 내며 내려앉았다. 전교회장을 맡으면 적잖은 돈이 든다는 것을, 그게 교활한 학교장들과 치맛바람 부인네들의 야합으로 연출하는 돈 자랑 쇼임을 그도 익히 들어서 알고 있는 것이었다.

“보소. 그 기 어데 한두 푼 들어서 되는 일잉교?”

“한 두 푼이 아니라 열두 푼이 들어도 하기는 해야지. 아아들이 뽑은 건데 아아들 실망시키면 안 되지, 우리 정석이 기죽이는 것도 그렇고.”

“당신 월급이 얼만데 그라요? 한 달 월급으로 전체교사 저녁도 한 끼 못 살낀데요?”

“선생님들이 전체 몇 명인데?”

“한 학년에 12학급에다 교장, 교감에 서무실과 양호실해서 80명도 훨씬 넘는답니다. 게다가 식사가 끝나면 교장교감선생님한테는 따로 선물도 해야 하고 무엇보다도 자모회장이라고 학교에 입고갈 옷도 없단 말입니다. 나는.”

“그까짓 옷이 문제가? 사람이 문제지.”

말을 하면서도 열찬씨의 어조가 쳐지기 시작했다. 자신이 생각해도 무리인 것 같고 자신이나 아내 영순씨가 육성회장이니 자모회장이니 돈으로 감당하는 회장감이 도무지 아닌 것이었다.

“아아들이 뽑은 것이니까 무조건 밀고나간다 캐라. 거기 정의고 상식이고 아이들에게 본보기 아니겠나? 남이 밥을 살 때 내가 죽을 사도 내 성의껏 하면 되고 자모회장이 꼭 그렇게 기부금을 내고 선생님 대접을 하라는 법도 없다. 우짤 끼고? 당하면 당하는 데로 형편대로 사는 거지.”

“...”

찜찜한 저녁식사가 끝나고 아이들이 잠들기를 기다려

“보소!”

잠자리에 든 영순씨가 은근한 목소리로 부르는데 눈빛이 간절했다.

“차식이엄마 얼굴이 사색이 되었답니다. 또 담임 윤철한선생과 교장선생님도 어쩔 줄을 모르고. 아마 틀림없이 학년대표가 될 줄 알고 미리 대접을 한 모양입니다.”

“그 기사 다 지 사정이고. 지 좋아 지 돈 쓰는 데 내가 뭐라 칼 끼고? 넘이사 전봇대로 이빨을 쑤시거나 말거나.”

“꼭 그렇게만 생각할 게 아니지요? 우선 돈이 얼마나 들고 우리가 그 돈을 감당할 수 있느냐를 생각해야지요.”

“...”

 

딴은 그랬다. 도대체 얼마나 돈이 드느냐 물으니 자모회장에 취임하면 별도의 찬조금은 두고 라고 전체교사회식에 두당 7,8천원씩 잡아도 6,70만 원, 교장교감과 담임에게 약소한 선물을 하고 택시비를 주는 것만도 한 20만 원을 들어가니 우선 100만  원 가까운 돈이 있어야 하는데 20몇 만원하는 월급의 4개월 치는 들어가야 하는 것이었다.

거기에다 각종행사 찬조금을 내고 가을에 또 한 번 회식을 시키자면 연간 적어도 2,3백만 원은 잡아야한다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시골에 팔아올 논밭이 있는 것도 아니고 결혼한 지 십년이 넘도록 죽자 살자 모아서 겨우 마련한 독채 전세 800만 원을 빼고 다시 곁방살이로 갈수도 없는 일이었다.

아이 공부 잘 하고 성격 좋은 것이 이렇게 힘든 일인 줄 몰랐다. 무엇보다도 내일 당장 교장선생과 학교에서 만나자고 담임 윤철한 선생이 연락을 해 왔는데 점심값이야 대월이 되는 가계수표를 들고 가면 되지만 자모회장에 걸맞은 옷이 없다는 것이 제일 급하다고 했다.

 

둘이 오랫동안 아마를 맞대고 의논한 결과는 일단 아이들이 뽑은 만큼 학년대표와 자모회장은 밀고나간다, 단 각종행사찬조와 식사대접은 빠짐없이 하기는 하되 형편에 맞게 간소하게 한다고 밝히고 미리 양해를 구한다는 것이었다.

 

※ 이 글은 故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