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266) 제4부 신불산 정기 - 제7장 승진 그리고 전출①
대하소설 「신불산」(266) 제4부 신불산 정기 - 제7장 승진 그리고 전출①
  • 이득수 이득수
  • 승인 2022.10.02 07:40
  • 업데이트 2022.10.02 16: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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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승진 그리고 전출①

서른일곱 살이 되던 가을에 열찬씨부부는 2박3일간 설악산으로 장기근속 자 산업시찰을 떠나게 되었다.

관광버스의 좌석 한 칸씩 18쌍의 부부가 앉도록 좌석배정을 받았는데 열찬씨부부가 맨 뒤쪽이었다. 공무원사회인 만큼 계급순, 나이순, 근무부서 직제순이었는데 6급의 구청계장도 동사무장도 아닌 데다 같은 7급 중에서도 구청이 아닌 동사무소 근무에 나이마저 가장 젊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열아홉 살에 공직에 투신한 그는 근무경력 면에서는 상당히 고참이었지만 늘 동사무소에 처박혀있느라 인사권자인 구청장의 눈에 뜨일 일이 없어 승진 순으로서도 역시 꼴찌였다. 심지어 자신보다 늦게 입사한 사람이 벌써 6급주사로 승진되어 구청계장이 된 사람도 다 있었다.

 

출발에 앞서 구청장이 일일이 좌석을 돌며 직원은 물론 부인들에게 그동안 사모님들의 노고가 많았다는 인사를 하고 버스가 출발하자 일순 관광버스 안은 직원들끼리는 형님, 동생과 친구를 찾고 부인들끼리는 서로서로 사모님을 칭하며 시장바닥처럼 시끄러웠다. 인솔자 행정계장이 간단한 인사와 함께 맥주를 돌리자 저들끼리 온갖 농담을 하고 낄낄거렸는데 주로 같은 부서에 근무하며 고생을 하거나 엉뚱한 사고를 친 에피소드나 같이 밤샘 술을 마신 일, 고스톱으로 밤을 새거나 야외로 놀러간 일을 회상하며 저들끼리의 돈독한 우의를 과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여태껏 동사무소에만 근무한 열찬씨는 승진 후에 잠깐 동사무소에 내려왔다가 6개월을 채우고 다시 구청으로 올라간 사람 하나 외에는 도무지 친분이 없어 혼자 우두커니 뒷자리에 앉아있을 뿐이었고 영순씨 역시 그 생소한 분위기가 너무나 어색하고 불편한 눈치였다.

버스가 경주를 지나 포항가까이 이르며 어느새 12시가 가까워올 때였다. 꾸뻑꾸뻑 졸고 있는 열찬씨의 귀에

“저 맨 뒷자리에 앉은 촌티 풀풀 나는 사람은 누고?”

“연산1동에 근무하는 이열찬이란 사람 아이가?”

“내 동래구청에 근 20년을 근무해도 생판 처음 보는 얼굴이네.”

“와, 연산동에만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입사 17년을 보낸 연산동 찌꾸미 이열찬이라고 안 들어봤나?”

“응, 그러고 보니 들어본 것도 같네. 그런데 저 촌놈이 무슨 공로가 있다고 산업시찰에 다 끼었노?”

“구청직원만 몽땅 보내기 뭣해서 동사무장 하나, 동 직원 하나를 넣었는데 그 동직원 T.O 아니가?”

“암만 그래도 구청 근방이나 온천장 지역에 날고뛰는 동직원이 수두룩뻑뻑한데 우째 저 연산동촌놈이 뽑혔노 말이다. 무려 46개동 500명이 넘는 동 직원 중에 말이다.”

“나도 처음엔 그래 생각했는데 총무과의 담당자 이야기를 들어보이 일리가 있더라. 선거 때만 되면 연산1동에서 9동까지 근 20만이나 되는 인구 중에 외항선원이나 군에 간 사람의 부재자신고서가 날아오는데 그 수천 장이나 되는 부재자신고서를 저 연산동 찌꾸미가 아니면 도무지 동별 분류가 안 된다 안 카나? 니도 알다시피 연산동에는 구획정리에서 제척된 옛날의 지번에, 구획정리가 된 신번지가 있고 또 현재 구획정리 중인 블록노트 번지가 있고 임야의 산 번지에 하천부지, 거기에다 한번지에 수백, 수천세대가 사는 철거민 이주지역 연산3동 1공구의 1811, 1813, 1820, 1823번지에다 3공구의 1876번지, 연산7동 2공구의 1940번지에다 마하사골짝 달동네의 산178번지와 그중에서 지목 변경된 2022번지에 물망골의 산 176번지가 있어 누구 하나 동별 분류를 엄두도 못 내는데 저 사람은 한번 쳐다보기만 하면 동별 분류는 물론 몇 동 몇 투표구, 심지어 누구네 아들인지까지 정확히 안다는 거야. 그러니 총무과나 연산동 선거담당들에게는 구세주나 다름없다는 거지.”

“듣고 보니 그러네.”

 

한참이나 떨어진 데다 여러 사람이 중구난방(衆口難防)으로 떠드는 속이지만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는데 하물며 사람인 열찬씨가 자기를 두고 입방아를 찧은 소리를 못 알아들을 수가 있는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듣다 가끔 움찔움찔 놀라기도 하다 문득 옆자리의 아내가 듣고 있을 것만 같아 고개를 돌리는 순간 영순씨가 황급히 눈을 감으며 딴청을 부렸다.

“그렇다면 상당히 머리도 좋다는 말인데?”

“그렇데. 고향이 언양인데 촌놈이 예비고사를 거쳐 야간대학교에 갔다카면 제법 아이가? 특히 기억력이 좋고 국문과를 다녀서 문장도 좋다 카더라.”

“그라면 와 구청에 안 올라왔을까? 총무과에서 대번에 땡길 낀데.”

“그렇지만 그저 일이나 꿍꿍하고 술이나 좋아하고 사람이야 한없이 좋지만 업무 차 구청의 담당자나 계장을 찾아와서 인사를 하거나 명절이라고 선물 한 번 하는 법이 없는 맹꽁이라네. 기왕이면 다홍치마고, 외 할매 떡도 커야 사먹고 공자님도 삼천 제자 중에서 술 잘 사주는 제자를 제일 좋아했다는데 그렇게 열손재배하고 앉았는데 누가 구청에 땡기 줄 끼고?”

“그렇구나. 우짠지 사람이 좀 맹추같이 생겼더니...”

 

이야기가 끝이 나고 한참 뒤 울진의 왕피천 가에서 은어회로 점심식사가 있다는 안내방송이 나올 때까지 열찬씨도 영순씨도 서로를 의식하며 짐짓 자는 척 하고 있었다.

점심을 먹고 관광버스에 오르자 인솔자의 제의로 앞자리에서 부터 자기소개와 함께 부인을 소개하고 마지막에 노래를 한 곡씩 하기로 했다.

근 한 시간이나 지나 마지막으로 열찬씨의 차례가 되어 부부가 꾸뻑 절을 하고 열찬씨가 아내를 처음 만나 송도 거북섬에 가서 돈이 없어 회를 못 먹고 쫓겨나며 ‘돈도 없는 새끼가 가시나는 두 개나 차고 댕기나?’ 하고 욕을 먹은 이야기를 하자 박장대소를 했다. 이야기의 말미에 그런 언양촌놈이 여러분들과 함께 꿈에 그리던 설악산에 산업시찰을 가게 되어 영광이라고 하자 우레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런데 그 박수 뒤로 점점 맨 뒷자리로 눈을 돌려 힐끗힐끗 쳐다보는 사람들이 많았고 특히 여자들이 측은한 듯 영순씨를 바라보기도 했다. 열찬씨가 슬그머니 눈을 감아버리자 영순씨도 눈을 감았다.

버스가 강릉을 지나 속초로 향할 때쯤 앞자리에서 7급 주사보 서넛이 이야기를 주고받는데

“야, 올해 연말에 주사승진 T.O가 몇 개나 된다 카더노?”

“정년퇴임이 셋이라 세 자리가 생긴다 카던데 그것도 시청에서 한자리 따묵고 나면 두 자리쯤 된다 카더라.”

“아이구야, 이 넓고 넓은 동래구에 겨우 두 자리라니? 그럼 승진서열명부에 들어가는 주사보는 몇 명이나 된다 카더노?”

“북면출장소와 동사무소까지 대충 8.90 명이 된다 카더라.”

“아이구야! 그러면 무려 45:1인데 2곱하기 3, 6명의 3배수에 들어가는 데도 무려 15:1이구나 그나마 총무과에서 한 자리 묵고나면 구청전체에 단 한 자리가 남네. 이라다가 주사승진하는데 5년 10년을 고사하고 평직원으로 늙어서 평생 결재 판만 들고 댕기다가 정년퇴직하게 생겼네.”

“그라이 여기 앉은 고참주사보 11명도 모두 경쟁잔기라. 이중에서 어쩌면 한 명쯤 승진할 지도 모르지.”

“열한 명이 아이고 열 명이다. 뒷자리 저 연산동촌놈은 승진서열에도 없을 끼다.”

“아이다. 그래도 고참이라서 한 80번 뒤쪽에 이름은 있겠지.”

귀를 쫑긋해서 듣던 열찬씨가 잘 나가다 삼천포에 가는 식으로 또 자기의 이야기가 나오자 얼굴을 찌푸리며 옆자리 영순씨를 바라보는데 영순씨는 새끈새끈 잠든 숨소리를 내는데 어쩐지 일부러 그러는 것만 같았다.

ⓒ서상균

설악동의 숙소에 도착해 저녁을 먹자 제가끔 친한 사람들 끼리 술자리와 화투판을 벌리고 부인네들은 패를 지어 기념타월이나 오징어를 사며 하하호호, 몰려다니는데 열찬씨도, 영순씨도 누구하나 아는 척 하는 사람이 없어 일찌감치 씻고 들어와 멀뚱멀뚱 앉았는데 담당직원이 인솔계장님이 찾는다면서 두 사람을 데리고 갔다.

입구의 가장 넓은 방이 인솔자와 담당자가 자는 방이었는데 벌써 몇 쌍의 부부들이 양주를 비롯해 비싼 안주를 잔뜩 사와서 술판을 벌이면서 부지런히 인솔계장에게 아첨을 떨고 있었다.

“아, 연산동 찌꾸미, 아니 지킴이 이열찬씨 오셨네. 어서 이리 좀 앉으소.”

하며 부부를 나란히 앉히고 술잔을 건네주며

“동에서 혼자 오니 아는 사람도 없고 좀 쓸미하지요?”

하고 오징어다리까지 건네주며

“참, 그라고 보니 우리 가주사가 홀딱 반했을 정도로 부인이 참 미인이네요.”

하면서 동시에 두 사람의 얼굴을 붉게 만들었다. 밤 열시쯤이 되어 자리가 파하자

“이주사, 내 이번 산업시찰에서 좋은 사람을 알게 되어 다행입니다. 사무실에 돌아가면 동장사무장과 상의해서 구청사람들과 인사도 좀 트고 친해져서 구청에도 올라오고 어서 승진도 하이소.”

악수를 하면서 영순씨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이튿날 신흥사를 들러 울산바위에 올라 흔들바위를 흔들어보고 내려와 삼삼오오 짝을 지어 설악산 특산 머루주를 마시는데 어제와는 달리 인사를 하고 술을 권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어 열찬씨도 영순씨도 훨씬 지내기가 수월했다.

영순씨의 귓속말을 들은 열찬씨가 머루주 한 병을 사서 인솔계장을 찾아 한잔 권하니 계장이 아주 흔쾌히 받았고 다른 직원들과도 스스럼없이 술잔을 주고받으며 모처럼 여행 온 분위기를 즐기고 있을 때였다.

“보소!”

낮고 단호하게 열찬씨를 부른 영순씨가 눈짓으로 매점 뒤의 다래덩굴 밑으로 데리고 가더니

“술 좀 언간히 잡수소. 사람들이 모두들 당신만 쳐다보는 것 같은데 가뜩이나 나이도 어리고 동사무소에 근무하는 당신이 술 채서 실수라도 하면 우짤 끼요?”

염려가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며

“내 당신이 그냥 고생하는 줄만 알았지 당신 처지가 그렇게 힘든 줄은 몰랐네. 나는 구청이든 시청이든 동사무소든 공무원이면 다 같은 공무원인줄만 알았는데 같이 시험 쳐서 들어간 공무원끼리도 양반, 상놈처럼 귀천이 있는 줄은 몰랐지요.”

“무슨 말이고. 산업시찰 왔으면 잘 놀고 가면 되지. 무슨 말이 하고 싶노?”

“인자 당신도 동사무소에만 있지 말고 구청에도 좀 올라가소. 누구 말마따나 내 똥 묻은 빤스를 팔아서라도 당신 밀어줄 테니 어서 구청에 가고 승진도 하소.”

“마 치아뿌라. 송충이 솔잎을 묵어야지 갈잎을 묵으면 죽는다고 내는 암만 해도 동사무소체질인기라. 내 모래밭에 쇠를 박고 죽었으면 죽었지 어데 가서 내가 누구며 어찌어찌 잘 봐주라는 소리는 죽어도 할 수가 없고.”

“그 기 무슨 소링교? 당신이 어데 당신 혼자 사능교? 나는 그렇다 치더라도 아아들을 봐서라도 정심을 하고 용기를 내소.”

“마 시끄럽다이.”

“당신 그러다가 언제 주사승진하고 사무장 해보겠능교? 늙어죽도록 평생 사무장도 한 번 못 해보고 동사무소에서 통장,반장하고 술이나 묵다가 죽을랑교?”

“마, 시끄럽다카이!”

“당신요, 왕성같이 골만 내지 말고 내 말 잘 들어보소. 지난 번 정석이 학년대표 포기하고 내 자모회장 밀려난 기 물론 돈도 돈이지만 당신이 말단동서기라서 그렇다는 소문이 돈다카데요. 물론 돈도 많지만 같은 공무원 중에서도 시청위생과에 댕기는 집에서는 남자는 육성회장, 여자는 자모회장을 잘만 했다 안 카능교? 당신도 구청에 가고 계장이고 뭐고 높은 자리에 있었으면 그런 일이 있었겠능교?”

“마, 고만해라.”

“내 이번 산업시찰 안 갈라 안 카덩교? 싫다는 사람 무단히 데꼬와서 와 이렇게 심장 상하게 하능교? 비단 내 심장이 상하는 것은 두고라도 나는 당신이 불쌍하고 우리 아아들이 불쌍해서 죽겠심더.”

“와 가만있는 아아들은 들먹이고 지랄이고?”

화가 단단히 난 열찬씨가 눈을 부라리는데

“나는 마 죽고 싶소. 당신 그 알량한 연애편지에 속아서 결혼이라고 해서 이적지 집이 한 칸 있나, 지긋지긋한 셋방살이에 남편은 아무 희망도 없는 동서기고 공부 잘 하는 아아는 돈이 없어 학년대표에서 밀려나고 내사 마 기가차서...”

“시끄럽다이!”

“다른 건 다 두고라도 이라다가 당신 죽기 전에 동 사무장 한 번 하겠능교? 내가 뭐 사모님소리 듣고 싶어서가 아이고 당신이 평생 남의 밑에서 굽실거리는 것이 불쌍해서 안 그렁교?”

“마, 시끄럽다카이!”

 

그 제서야 영순씨가 움찔했다. 열찬씨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은 것이었다.

 

※ 이 글은 故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