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송원의 천방지축, 세상을 논하다】(65)먹지 않는 소쩍새가 솥 적다 한을 하네
【조송원의 천방지축, 세상을 논하다】(65)먹지 않는 소쩍새가 솥 적다 한을 하네
  • 조송원 기자 조송원 기자
  • 승인 2022.10.03 11:16
  • 업데이트 2022.10.06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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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섬진강 그리고 원추리 [픽사베이]
지리산, 섬진강 그리고 원추리 [픽사베이]

경허 스님은 가만히 자신의 옷 속에 있는 등토시와 손에 들고 있던 부채를 월면 수좌에게 내보였다. 그리고 물었다.

“이 토시를 부채라고 해야 옳겠느냐, 아니면 이 부채를 토시라고 해야 옳겠느냐?”
“…그, 그야 토시를 부채라고 해도 옳고, 부채를 토시라고 해도 옳겠습니다, 스님.”

경허 스님이 다시 물었다.

“다비문(茶比文.승려를 화장할 때 읊는 제문)에 ‘유안석인 제하루’(有眼石人 齊下淚), 눈 달린 돌사람이 눈물을 흘린다고 했는데, 이 뜻이 과연 무엇이던고?”
“유안석인 제하루…잘…모르겠사옵니다.”

‘딱’, 사정없이 내리치는 경허 스님의 주장자에 월면 수좌의 어깨가 움찔했다.

“너, 이놈! 그것도 모르면서 감히 어찌 토시를 부채라 하고, 부채를 토시라 할 수 있단 말이던고!”

경허(鏡虛.1849~1912)는 한국불교의 중흥조(中興祖)이다. 경허의 법은 ‘삼월’(三月), 곧 경허가 배출한 월月자 돌림의 세 명의 걸출한 제자 혜월慧月, 수월水月, 월면(月面, 만공)에 이어져 크게 융성, 오늘의 한국불교를 만들었다.

경허는 ‘나귀의 일이 끝나지 않았는데, 말의 일이 닥쳐왔다’(여사미거 마사도래 驢事未去 馬事到來)는 화두를 가지고, 동학사에서 정진했다. 정진 중 어떤 사미승이 ‘소가 되어도 고삐 뚫을 곳이 없다’(도우무비공처 到牛無鼻孔處)란 말에, 홀연 깨달음을 얻었다. 이후로 법명을 ‘깨우친 소’라는 뜻에서 성우惺牛라 하고, 법호를 ‘맑디맑은 거울’이라는 뜻인 경허鏡虛로 부르게 되었다. 1879년, 세수世壽 31세 때이다.

깨달음을 이룬 후, 20년 간 경허에 대한 특별한 행적을 찾을 수 없다. 그냥 세간의 사람들과 섞여 지낸 듯하다. 어지러운 시대 상황과 굶고 헐벗은 백성들을, 자신의 깨달음만으로 구제하지 못한다는 무력감의 세월이었으리라.

온 세상 다 혼탁함이여, 나만 홀로 성성하구나
숲 아래 남은 세월 홀로 보내야 하리

51세 때인 1899년 해인사의 초청을 받아 5년간 제자들을 가르치는 데 힘썼다. 그러다가 1904년 홀연히 자취를 감추었다. 승복을 벗고 세속인과 같은 모습으로 박난주(朴蘭舟)란 이름으로 함경도 지역을 떠돌았다. 서당 훈장 노릇도 하고, 시장 거리에서 술잔도 기울였다고 전한다. 이러구러 자신이 기거하던 글방에서 열반했다. 1912년 4월 25일, 세수 64세, 승랍 56세였다.

만공(월면)과 혜월이 경허의 열반 소식을 접한 것은 그로부터 1년 뒤였다. 만공과 혜월은 경허의 무덤을 찾았다. 허리께까지 자란 잡풀을 헤치고 관을 꺼내 시신을 수습하고 다비식을 치렀다. 만공은 다비식을 올릴 때, ‘함경도 갑산군 옹이면 난덕산 밑에서 선법사의 다비를 모실 때 읊다’란 긴 제목의 게송을 지어 읊었다.

예로부터 시비가 여여하신 객이
난덕산에서 겁 밖의 노래 그치셨네
나귀와 말 태워 저문 이날에
먹지 않는 소쩍새가 솥 적다 한을 하네

‘먹지 않는 소쩍새가 솥 적다 한을 하네’(不食杜鵑恨小鼎 불식두견한소정)은, 17년 전 경허가 만공(월면)에게 질문한 “‘눈 달린 돌사람이 눈물을 흘린다’고 했는데, 이 뜻이 과연 무엇이던고?”에 대한 답이었다.

오래간만에 원행을 가 친구를 만났다. 친구는 그 지역 유지라 교분이 넓었다.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한 쌍 부부가 친구를 찾아왔다. 친구는 이 부부를 관내의 한 승려와 상담을 주선한 모양이었다. 그러니 밥이든 술이든 절에 다녀와서 하자고 했다. 절에 간다는 게 별 내키지는 않았다. 그러나 내가 연락 없이 찾아왔으니, 동행할 수밖에 없었다.

“20년이나 같이 살았어요? 참 용합니다.” 승려는 녹차를 따르며, 앞에 앉은 부부에게  결혼하지 얼마가 됐냐고 묻고는, 20년이라고 하자 대뜸 이렇게 말했다. 뜨악했다. 차를 한 잔만 마시고, 나 혼자 문밖으로 나왔다. 부부의 개인사를 들을 만한 사이도 아니고, 굳이 들어서 뭐하겠는가. 경내를 구경했다. 친구의 말로는 예의 이 승려가 사실은 비승비속일 것이라고 했다. 40대에 늦깎이 출가를 했다고 한다. 아내와 자녀들을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이 절도 개인 소유라고 했다.

얼마가 지났을까, 친구가 불렀다. 같이 법문을 듣자고 했다.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동행했는데,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법문(?)의 내용은 이러하다.

매월당 김시습이 수양대군의 왕위 찬탈에 불만을 품고,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세상을 떠돌다가, 한명회의 정자 압구정에 이르렀다. 정자 기둥에 “청춘부사직(靑春扶社稷), 백수와강호(白首臥江湖). 젊어서는 나라를 떠받쳤고, 늙어서는 자연에서 쉬노라”란 주련柱聯을 보았다. 매월당은 앞 구절의 도울 부(扶)를 위태로울 위(危) 자로, 뒤 구절의 누울 와(臥) 자를 더럽힐 오(汚) 자로 바꾸었다. “청춘위사직(靑春危社稷), 백수오강호(白首汚江湖). 젊어서는 나라를 위태롭게 했고, 늙어서는 자연을 더럽히는구나.”

사람의 만남과 헤어짐의 이치는 이 일화 속에 다 들어있어요. 한명회와 매월당, 누가 옳고 그름이 아니어요. 부창부수(夫唱婦隨)라고 했지요. 한쪽이 ‘늙어서 자연에서 쉬노라’ 하면, 또 한쪽도 ‘그래, 늙어서 자연에서 쉬노라’ 하면 좋은 인연입니다. 한데 한쪽에서는 ‘자연에서 쉬노라’고 하는데, 다른 쪽에서는 ‘자연을 더럽히는구나’고 하면, 시절 인연이 안 맞는 거예요.

이 땡추도 매월당의 삶을 흉내 내는 꼴이지만, 여하튼 매월당을 그리워하지요. 매월당의 한시 중에서 대중에게 잘 알려져 있는 ‘사청사우’가 있지요? 내가 ‘화개화사춘하관’을 읊으면, 누가 ‘운거운래산부쟁’하고 화답한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환속하겠소.

이렇게 말하고는 자신의 속내를 들켜서 쑥스러운지 껄껄 웃었다. 그리고는 부부, 친구, 나의 빈 찻잔을 골고루 채워주었다.

       乍晴乍雨(사청사우)/문득 개고 문득 비 오다

乍晴還雨雨還晴(사청환우우환청) 문득 갰다가 다시 비 오고 비 오다 다시 개니
天道猶然況世情(천도유연황세정) 하늘의 도도 이렇거늘 하물며 세상 인정이랴!
譽我便是還毁我(예아편시환훼아) 나를 칭찬하는가 했더니 어느새 나를 헐뜯고
逃名却自爲求名(도명각자위구명) 명예를 피하더니 되레 스스로 명예를 구하네
花開花謝春何管(화개화사춘하관) 꽃이 피고 지는 걸 봄이 어찌 다스리랴
雲去雲來山不爭(운거운래산부쟁) 구름 가고 구름 와도 산은 다투지 않는다네
寄語世人須記憶(기어세인수기억) 사람들에게 말하노니 부디 기억해두오
取歡無處得平生(취환무처득평생) 기쁨 얻은들 평생 가지 않는다는 것을

<작가/본지 편집위원, ouasaint@injurytim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