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269) 제4부 신불산 정기 - 제7장 승진 그리고 전출④
대하소설 「신불산」(269) 제4부 신불산 정기 - 제7장 승진 그리고 전출④
  • 이득수 이득수
  • 승인 2022.10.05 06:35
  • 업데이트 2022.10.03 13:2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7. 승진 그리고 전출④

연말의 인사평정이 끝난 1월말, 구정대목에 구청의 김우진씨로부터 열찬씨의 승진서열 명부의 순위를 알아낸 김세현 사무장의 입이 귀까지 찢어지면서 열찬씨의 옆구리를 찌르며 한잔 사라고 웃었다. 박카스 한 병만 마셔도 얼굴은 물론 목덜미까지 새빨개지는 우리 사무장님이 먹기만 한다면 한 잔이 아니라 일 년치를 다 산다고 웃자 그럼 가라오께에서 술을 사서 술은 당신이 마시고 나는 노래를 마시면 되지 않겠느냐고 평소에 하지 않던 우스개를 다 했다.

점심시간에 밥을 먹으면서 알려준 열찬씨의 승진서열을 89명중에 27번이라고 했다. 잘 하면 한가운데인 4,50번 정도를 예상했는데 너무 빠른 번호라 어떻게 그렇게 되었느냐고 물으니 운이 좋았다고 했단다. 순간 그 27번이 하필이면 조기축구회에서 자신의 등번호인 27번과 같은 걸 발견하고 ‘하하 나하고 27번은 무슨 특별한 인연이 있는 숫자인가?’ 하는 생각이 떠올랐지만 이내 그 27번이 축구를 못 해도 너무 못 해 슈퍼스타라는 별명이 붙은 불명예의 숫자라는 생각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김세현 사무장은 다시 그 인사평정이라는 것이 물론 총무과를 비롯한 구청내의 요직부서부터 서열이 매겨지지만 너무 구청 위주로만 할 수 없어 간간히 동사무소 직원들의 이름도 하나씩 끼워 넣는데 마침 얼마 전에 열찬씨가 민방위대창설기념일에 받는 내무부장관 표창을 받은 것이 있어 비교적 앞쪽에 넣을 수 있었으니 무슨 부정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단순히 운이 좀 좋은 편이라고 말했다고 전해주었다.

그러면서 김세현 사무장의 승진예상이 나왔는데 적어도 3년 안에는 한다는 것이었다. 드디어 자신도 승진이라는 단어와 가까워졌다는 느낌에 가슴이 울컥한 열찬씨가 무슨 근거냐고 묻자

“보통 한 해 2,3명 나오는 정년퇴직자를 서너 명 잡고 지하철개통 등의 변수를 감안해 5명이 승진한다고 하면 승진은 물론 그 3배수인 15번에도 못 드니 우선 올해는 어림이 없고 올림픽이 끝난 연말에 무슨 변수가 생겨 적어도 7,8명 많이 잡아 10명쯤 승진을 하면 내년 연말엔 우리 이열찬 주사도 서열 10번안에 들게 되는데 자신의 예감으로 빠르면 89년 말, 늦어도 90년 중반에는 승진을 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1990년, 내 나이 마흔에 드디어 사무장이 되는구나, 열아홉에서 스무 살로 넘어가던 시절 삼남면사무소에서 이 아무개 부면장으로부터 엄청난 괄시를 당하고 야간대학합격증을 들고 내려오던 날 밤의 송별회에서 술이 취해 그 부면장의 책상다리에 한강이 되도록 오줌을 싸며 ‘내 무슨 일이 있어도 60 다된 당신보다야 한 십년은 더 빨리 부면장이 될 거야. 아니 면장이 될 꺼야!’ 하고 중얼거리던 모습이 주마등처럼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럭저럭 세월이 흘러갔다. 열찬씨의 승진 꿈처럼 무르익은 봄이 가고 여름이 왔는데 그 해 여름이 가면 가을이 아닌 88올림픽이 오는 것이었다.

총칼로 정권을 잡기는 했지만 늘 민중의 봉기가 불안한 노태우 정부는 단군 이래 최대의 국제행사 올림픽을 앞두고 전 국민의 지지를 끌어내기 위하여 중대발표를 했는데 바로 헌법에 유보조항으로 묶은 지방자치제를 풀어 적어도 89,90년부터 그 시험운영에 들어가 늦어도 90년대 중반에는 지방자치단체장의 민선까지 치르겠다는 것이었다.

당장 내무부와 지방의 행정기관에 난리가 났다. 1948 자유당정권의 정부수립이후 최대의 인사폭탄이 터지게 된 것이었다. 올림픽이 끝나고 당장 시범운영에 들어갈 지방자치단체로의 직제개편을 위해 상반기가 끝나는 6월말이나 7월초의 인사발령에 동래구에서만 열서너 명의 6급 승진이 예상된다는 것이었다.

구청과 동사무소에 날마다 누구는 승진이 이미 따 논 당상이고 누구는 힘들 것이라는 하마평이 돌았다. 그 소문은 구청과 동사무소를 벗어나 구청인근의 식당이나 다방, 동사무소에 출입하는 통반장과 새마을지도자, 부녀회원, 청년회원의 입소문으로도 번졌다. 그러나 연산1동사무소는 조용할 뿐이었다. 열찬씨가 고참이긴 하지만 너무 동사무소에만 오래 근무해 누구나 승진서열이 새까맣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아하, 그 참 안타깝구나. 많이도 말고 한 20명만 자리가 생겨도 우째우째 한 번 밀고 들어갈 건데 27번 가지고는 아무래도 무리지. 가형, 많이도 말고 한해만 딱 더 기다리소. 이미 지방자치제를 한다고 했으니 내년에 동래구에서 금정구가 분구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니 그 때는 가만히 앉아서도 승진을 할 겁니다.”

하고 위로했다.

6월말로 예상된 승진발표가 7월로 넘어가고 7월말이 되면서 늦어도 8월초까지는 할 것이라는 카운트다운에 들어가고 있었다. 이미 안정권에 들어 하루하루 발표 날만 기다리다 못 해 미리 승진 술을 내고 축하주를 마신 사람도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적어도 열 서넛이 승진하는 판에 서열 10번 안쪽이면 안심권이었다.

연동국민학교의 조기축구장에서도 희비가 엇갈렸다. 서열 10번 안쪽의 선복철씨는 희색이 만면했고 열찬씨는 한숨만 푹푹 쉬었다.

“우째서 열찬이동생 니는 집안에, 아니 다문 고향에라도 구청장이나 국회의원하나도 없어 평생 줄 한 번 못 대고 생고생이냐?”

고 웃는 형뻘도 있었고

“이래 봐도 나는 우리 가문의 개척자로 가문 최초의 공무원에, 대학생에, 연애결혼에, 신식결혼을 한 선구자라 그런 줄 같은 건 아예 생각도 없는 개척자, 즉 미 서부의 파이오니아 아입니까?”

억지로 웃었지만 여전히 열찬씨의 속은 쓰리고 아렸다.

어디서 대충 소문을 들었는지 영순씨도 열찬씨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신경을 쓰는 눈치였다.

ⓒ서상균

마침내 승진발표가 임박한 7월말에 열찬씨는 새로 산 4인용 돔형 텐트 하나를 짊어지고 전 가족을 인솔해 지리산계곡으로 떠났다. 토요일 오후에는 승진발령을 깬다는 하루 전이었다. 지금 승진발표를 했을까, 누구는 붙고 누구는 미끄러졌을까, 온갖 상상을 하며 그 초조한 가운데서 남천내 갱빈에서 자란 실력을 발휘해 하동 섬진강의 민물고기 몇 마리를 잡아 매운탕을 끓여 소주만 부지런히 마시고 일요일 밤에 부산으로 돌아왔을 때였다.

집에 도착해 방문을 열기 전부터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리더니 수화기를 들자마자

“보소, 이열찬씨, 당신 지금까지 어데 갔다오는 기요?”

뜻밖에 김세현 사무장의 목소리였고 평소의 이형이라는 호칭이 아닌 이열찬씨가 나오는 것으로 보아 많이 상기되어 있었고 성이 난 건지도 몰랐다.

“아, 예 마음도 뒤숭숭하고 해서 지리산 쪽으로 좀...”

“허허, 천하태평이로군. 그건 그렇고 당신 발표난 거는 아요?”

“뭐, 누군가들 승진을 했겠지요. 내사”

“그 기 아이고 당신이 바로 승진을 했단 말이요, 당신이!”

“예에...?”

옆에서 듣던 영순씨가 풀쩍 뛰었다.

“세상에...!”

“우째 된 영문인지는 나도 모르겠고 좌우간 승진이 되었답니다. 김우진씨도 놀랄 따름이랍니다.”

“허허, 그것 참.”

“좌우지간 축하합니다. 내일아침 구청에 들어가 보소. 총무과에서 찾아서 난리가 났다 아입니까?”

“예, 고맙심더. 그간 욕받심더. 사무장님.”

“...”

그새 전화가 끊기고 수화기에서는 띠띠 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내가 승진을 했다고...’ 실감이 안 나 중얼거리는 열찬씨의 눈에 눈물이 글썽글썽한 영순씨의 얼굴이 들어왔다.

“당신 욕 봤데이.”

손을 꼭 잡아주는 열찬씨의 눈에도 눈물이 고였다.

 

이튿날 빳빳한 새 와이셔츠로 갈아입은 열찬씨가 출근시간 아홉시를 맞추어 구청총무과로 들어갔다. 인사발령을 담당한는 행정계에 갔지만 담당 김우진씨가 보이지 않아

“저어, 연산1동 이열찬인데요.”

머뭇거리며 옆자리의 직원에게 인사를 하는데

“뭐, 당신이 이열찬씨라고? 이 맹랑한 친구 좀 보아. 그렇게 슬쩍슬쩍 승진하는 용빼는 재주가 있으면서 발령장을 받으러 왜 안 와?”

차가운 느낌의 금테 안경을 쓴 새로 바뀐 행정계장이 몹시도 못마땅한 어조로 내뱉더니

“그래도 일말의 양심은 있어 이제 나타났구먼. 생긴 건 멀쩡하면서...”

혀를 끌끌 차는데 사무실안의 모든 시선이 열찬씨를 향하고 있었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열찬씨가 몸 둘 바를 모르는데

“왔어요?”

결재 판을 들고 들어온 김우진씨가

“계장님, 구청장실에서 가열찬씨 발령장을 주도록 할까요?”

묻는데

“구청장실이 다 뭐야? 생각 같아선 임용장을 찢어버리고 싶은 판에!”

버럭 화를 내며 임용장을 받아들더니

“자, 이열찬주사님, 한글을 아니까 읽어보면 내용은 잘 알 끼고 아무튼 승진을 축하합니다.”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열찬씨에게 임용장을 건네주며

“똑 바로 근무하세요. 앞으로 사무장노릇 얼마나 잘 하는지 두고 봅시다.”

하더니 바로 고개를 외로 꼬았다.

우우 바라보는 따가운 시선을 참아내며 총무과를 나서는데

“아니, 이 주사님 우째 된 일입니까?”

계단까지 따라오며 김우진씨가 물었다.

“김 주사님, 고맙습니다. 그런데 정말 우째 된 겁니까? 제가 27번인 줄 아는데 어떻게 열여섯 명 승진자 명단에...”

“허허, 당사자도 모르는 일을 내가 우째 압니까? 하여간 축하드리고 당분간은 조용히 지내도록 하세요.”

할 말은 태산 같지만 차마 하지 못하는 듯 아쉬움이 가득한 눈빛으로 돌아섰다. 사무실에 돌아와 동장에게 발령장을 보여주는데

“하하, 굼벵이 구부는 재주 있다더니 우리 이 주사가 꼭 그 맞잡이로구먼. 아무튼 축하해.”

동장이 껄껄 웃자 젊은 직원들은 모두 축하한다며 악수를 청하는데 7급 직원 둘은 소태 씹은 표정이 되어 열찬씨가 찾아가 손을 내밀어도 마지 못 해 악수를 할 뿐 도무지 표정을 풀지 안았다. 김세현 사무장은 웃지도 울지도 못 하는 묘한 표정으로 우두커니 쳐다보더니

“이형, 아니 이열찬 사무장님!”

동장이 자리를 비우자마자 동장실로 열찬씨를 불렀다.

“도대체 우째 된 거요?”

“...”

“지금 동래구청과 46개 동사무소가 발칵 뒤집히고 난리법석이 났답니다. 우째서 이름도 처음 듣는 동직원이 1번으로 승진을 했느냐고 말입니다.”

“글쎄요. 저도 그게 궁금합니다. 우째서 제가 승진이 되었는지.”

“혹시 뭐 집히는 것은 없습니까?”

“글쎄요.”

순간 열찬씨의 뇌리에 며칠 전 운동장에서 열찬씨의 소원이 무어냐고 묻고 귓밥이나 만지고 있어보라던 형뻘의 얼굴이 떠올랐다. 순간적으로 가슴이 덜컹 내려앉으며

“...”

“도무지 알 수가 없어요. 암만 생각해봐도...”

일단 시치미를 떼는데

“지금 산업과의 성아무개씨가 이형을 만나면 죽여버리겠다고 이를 갈고 다닌답니다. 승진했다고 너무 기분 내지 말고 조심하세요.”

뜻밖의 이야기를 하는지라

“아니, 성 주사님이 왜요?”

 

연산4동에 잠깐 같이 근무할 당시 특채출신으로 승진이 늦어 사무장보다도 더 나이가 많은 그는 오전에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옥상에 올라가 담배파이프만 소제하다가 오후에는 신문이나 뒤척거리다 구청으로 다시 올라갔는데 동래토박이에다 배경이 든든해 아무도 건드리지 못 한다고 했다.

 

※ 이 글은 故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