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270) 제4부 신불산 정기 - 제7장 승진 그리고 전출⑤
대하소설 「신불산」(270) 제4부 신불산 정기 - 제7장 승진 그리고 전출⑤
  • 이득수 이득수
  • 승인 2022.10.06 10:22
  • 업데이트 2022.10.06 10: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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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승진 그리고 전출⑤

연산4동에 잠깐 같이 근무할 당시 특채 출신으로 승진이 늦어 사무장보다도 더 나이가 많은 그는 오전에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옥상에 올라가 담배파이프만 소제하다가 오후에는 신문이나 뒤척거리다 구청으로 다시 올라갔는데 동래토박이에다 배경이 든든해 아무도 건드리지 못한다고 했다.

“이런 답답한 데가? 생각해보세요? 비록 일은 안 해도 명색이 고참에다 이제 정년퇴직이 얼마 남지 않아 동사무장 하고 퇴임하는 것이 소원인 성주사가 마침 승진 T. O까지 늘어나자 총무과장과 행정계장에게 술대접은 물론 은근한 압력까지 넣어 간신히 16번에 이름을 올리고는 자신은 이미 승진한 거나 다름없다며 친구들을 불러 술까지 한 잔 했는데 아무 기척도 없던 가형이 끼어드는 바람에 승진탈락이 되었으니 말입니다.”

“예에...”

“김우진씨가 전화를 했던데 3배수로 된 승진대상자명부를 들고 결재를 갔는데 지갑 속에서 종이쪽지를 하나 꺼내 ‘이 사람 이름이 있는가 봐!’ 해서 보니 바로 이형의 이름이라서 27번이라고 하자 붓 대롱에 인주를 찍어 가형의 이름에 먼저 동그라미를 치고 나머지는 명부순서대로 15번까지 찍었답니다. 그러니까 16번인 성주사가 탈락될 수밖에...”

“아아, 그랬군요?”

“가형, 다시 한 번 물어봅시다. 정말로 우째 된 일인지 모른단 말입니까?”

“글쎄요.”

1988. 8. 1일자 승진자는 시 본청과 구청간의 인사교류와 조정을 위하여 광복절 전후에야 보직발령이 난다고 했다. 이미 주사승진을 했으니 사무장이나 다름없다며 평생을 지긋지긋하게 따라다니던 숙직근무를 빼주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번연히 김세연 사무장이 옆에 있는 것을 알면서도 젊은 직원들이

“사무장님, 이열찬 사무장님!”

하고 일부러 큰소리로 부르는 바람에 민망해서 죽을 지경이었다.

 

다음 일요일, 운동장에서 10시가 넘도록 축구를 하고 스탠드에 둘러앉아 막사이다를 마실 때였다. 어느 때보다도 화기애애하고 뭔가 붕붕 뜨는 분위기였는데 그건 회원 서른 명 남짓한 조기축구회에서 한꺼번에 둘이나, 그러니까 백넘버 8번 선복철씨와 27번 가열찬씨가 승진을 했기 때문이었다. 두 명의 회원이 연산동5개의 동사무소 중 2곳의 사무장이 되면 연산동 전체를 조기축구회에서 접수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며 다들 유쾌하게 웃었다.

한참 술잔이 오고가며 환담이 요란한 가운데 열찬씨보다 아홉살 살 위의 한 회원, 그러니까 전에 열찬씨더러 소원이 무어냐고 묻고 주사승진이 소원이라니까 귓밥이나 만지고 기다려 보라던 형뻘에게 눈을 찡끗하면서

“형님이지요?”

“무슨 말인데?”

“형님이 아니고는 그런 일이 일어날 수가 없지요.”

“나는 통 모리겠는데.”

그러면서 흐물흐물 웃는 얼굴에 대고

“좌우간 나중에 좀 봅시다.”

하고는 동네 목욕탕에서 단체목욕을 하고 돼지갈비 집에서 두 사람의 승진축하파티를 겸한 점심을 하고는 다시 어느 회원이 운영하는 연산관광나이트라는 클럽에서 질탕하게 맥주를 마시고 돌아가며 노래를 한 곡씩 뽑는데

“저어, 형님!”

분위기가 절정을 넘어 마무리단계로 넘어갈 때쯤 열찬씨가 아까의 형뻘을 불러 먼저 클럽을 빠져나와 포장마차에 데리고 가서

“형님, 제발 속 시원히 말 좀 해보소.”

“뭔 말이고?”

“우째서 제가 갑자기 진급을 했는지, 형님이 무슨 천산갑이 재주를 부렸는지 말입니다.”

“진급이 소원이던 사람이 진급을 했으면 됐지, 사정은 알아서 뭐 할 끼고?”

또 흐물흐물 웃더니

“그거는 누구의 덕도 아니고 오로지 열찬씨자네의 복이다. 내가 특별히 노력한 것도, 누가 억지로 도와준 것도 아이고 순전히 니 복이다. 지리산 천왕봉에서 일출을 볼라카면 3대 적선을 해야 된다 카 듯이 너거 조상이 공덕이 많거나 자네의 운이 돌아와서 그런 거지 내 덕은 아이다.”

그 제서야 시인을 하는 것을 보고

“알겠심더, 형님. 그렇든지 말든지 어떻게 여차여차 그렇게 되었는지 알고나 봅시다. 초상집에 가서 밤새 울고는 누가 죽었는지 묻는 사람처럼 그렇게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가 되어서야 되겠능교?”

다그치자

“그래, 그러면 알기는 하더라도 누구에게 고맙다고 치사를 하거나 신통하다고 이야기를 전하지는 말게.”

하고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그 추정현이란 형뻘의 말로는 자신이 고2던 열여덟 살이 되던 어느 초겨울 날 늦게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옷을 갈아입는데 옆방에서 사람의 신음소리가 나더라고 했다.

그 방엔 전라도 어느 섬에서 태어나 여수에서 고등학교를 나와 부산의 명문B대학 법과에 다니는 대학생이 하숙을 하고 있었다고 했다. 깜짝 놀라 방문을 열어보니 방안에 연탄가스가 가득 차 의식을 잃은 하숙생이 입가에 거품을 물고 쓰러져 있었다. 깜짝 놀라 방문과 창문을 열고 공기를 통하게 하고 어머니를 불러 동치미국물을 떠먹이고 한바탕 북새통을 떨자 대학생은 의식을 찾고 젊은 나이라 금방 회복이 되었다. 그 일이 있은 뒤로는 그는

“정현이 니가 내 생명을 살려준 은인이다. 내 무엇으로 은공을 갚을까?”

를 입에 달고 살며 전보다 더 알뜰히 공부도 도와주고 같이 빵집이나 단팥죽집도 다니며 친형제보다도 더 각별히 지냈다는 것이었다. 그 후로 대학을 졸업한 하숙생이 행정고시에 합격해 서울의 어느 중앙부처에서 근무하는 줄 알고 있었는데 지난 봄 남포동에 구두를 사러갔다가 옛날 생각이 나서 단팥죽 집에 들렀는데 거기서 둘의 눈이 딱 마주친 것이었다.

순간적으로 부둥켜 안으며 형님, 아우하며 인사를 나누는데 그는 너무나 엄격하고 갑갑한 중앙부처, 그러니까 내무부 근무에 염증이 생겨 어느 지방의 기관장이나 나가려고 생각하다 자신이 대학교를 다니던 부산의 동래구청장으로 부임해왔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어머님은 잘 계시느냐, 3년 동안이나 하루도 변함없이 마치 친자식처럼 잘 입히고 먹이고 재워주셔서 너무나 감사하고 보고 싶었다고 묻는데 돌아가신지 3년이 넘었다고 하자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그리고는 돌아가신 어머님의 은혜도 그렇고 또 자네가 연탄가스중독으로 다 죽어가는 걸 살려준 은공을 갚을 길이 없겠느냐고, 자네가 힘들고 아쉬운 일, 아니면 무엇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소원이 있으면 내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들어줄 테니 한 가지만 이야기하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당시 특별한 애로사항도 없고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아 그냥 고맙다고 말만 하고 헤어졌는데 어느 날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며 막사이다를 마시며 곧 진급을 한다면서 신명이 난 선복철씨를 보다 기가 푹 죽은 이열찬씨를 보는 순간 문득 그 이야기가 떠올랐다는 것이었다.

“아, 그렇구나!”

마침내 궁금증이 풀린 열찬씨가

“그래서 형님이 쪽지에 내 이름을 써준 것이군요?”

“허허 그것까지 벌써 다 아나?”

하면서 빙긋 웃더니

“다시 한 번 이야기하지만 이건 누구의 덕도 공도 아니고 순전히 자네의 복일뿐이야. 누구에게 고맙다고 치사할 일도 아니지만 무엇보다 죽을 때까지 가슴에 담고 가야 할 거야. 이 일이 밖으로 새나가면 사람 셋이 죽게 되는데 그게 누구누구인지는 자네가 더 잘 알 거야!”

하고 자리를 파했다.

ⓒ서상균

광복절 전날이 마침 토요일이라 일과를 마친 열찬씨는 모처럼 시외버스를 타고 언양으로 향했다.

구멍가게에서 소주 한 병과 오징어 한 마리를 사 휘파람을 불며 고속도로 교각 아래로 놓인 징검다리를 건너 버든 동네에 이르자 남의 손에 넘어간 생가건물이 보기 싫어 동사 쪽으로 길을 잡아 갈배기논과 진장골짝을 지나 아버지의 산소에 도착했다. 날씨가 너무 더워서인지 버든동네는 물론 산소 바로 옆의 종찬씨 집에서도 아무도 내다보지 않았다. 종이컵에 술을 따르고 아버지산소에 절을 한 열찬씨는 뒤편의 묵 묘에도 술을 한잔 부었다.

옛날 아버지 생존 시에 열찬씨 더러

“내가 죽으면 여기에 무덤을 쓰고 뒤에 있는 묵 미에도 벌초 때는 같이 풀을 베고 산소에 올 때마다 잊지 말고 술을 올리도록 해라. 사람이 술 한 잔을 아낄 만큼 야박해도 안 되겠지만 남의 조상한테 잘 해서 손해 볼 일도 없을 기다.”

하던 말이 생각나 어쩌면 자신의 돌연한 승진이 저 묵 묘의 주인공이 도와준 덕분이 아닌가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찌는 듯한 땡볕아래서 남은 술을 병째로 들이켜자 속에서 불이 나는 것 같으면서도 조부잣집 울타리의 커다란 소나무가지를 흔들며 불어오는 부드러운 바람이 선득선득 그의 어깨를 스치자 한없이 기분이 좋아졌다.

산을 내려오면서 아직까지 언양에 남은 두 누님, 명촌과 장촌 중 어디로 갈 것인가를 생각하던 열찬씨가 오른 쪽 구시골 골짜기로 길을 잡아 장촌으로 향했다. 아무래도 명촌의 매형 수진씨는 자신을 만나는 것을 불편하게 생각할 것 같아서였다. 근 한 시간이 걸려 장촌에 도착한 그가

“누님, 잘 있었능교?”

삽짝 문을 들어서는데

“이기 누고? 니가 이 한여름에 우짠 일이고? 벌초 때도 아인데, 혹시 집에 무슨 일이 있나?”

반갑기보다는 걱정스런 얼굴로 물었다.

“아임더. 무슨 일이 아니라 좋은 일이 있었심더. 억수로 좋은 일.”

“어서 말해봐라. 무슨 일인지. 사람 송신케하지말고.”

“누부야, 내가 이번에 진급을 했다 아이가.”

“그래. 잘 됐구나. 그라문 얼마나 높아진 기고? 월급도 많이 오르고?”

“월급이야 얼마 안 오르지만 주사승진이라고 여게로 치면 면에 부면장택이지.”

“뭐라, 부면장이라꼬?”

마침 쉬는 날이라 런닝바람으로 누워있던 매형 고차대씨가 마루로 나오며

“아따, 우리 처남 겁나게 출세했네. 나이 서른여덟에 부면장이라니 언양읍사무소나 삼남면사무소에 가면 내일모래 환갑이 다된 사람도 부면장이 못 되고 호적계장, 총무계장이나 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한 판에.. 참 그라고 보이 삼남면사무소에 호적계 평직원으로 있는 이주사도 처남 니 고등학교동창이라면서...”

신명이 잔뜩 나서

“날씨도 덥은 데 보신삼아 달구새끼나 한 마리 잡으까?”

닭장에서 검은 털이 박힌 알록달록한 토종닭을 한 마리 꺼내와 능숙한 솜씨로 멱을 따고 털을 뽑고 배를 갈라 간과 똥집을 도마 위에 놓고 소주잔을 따르며

“처남, 봐라. 내 니 누부한테 장개갈 적에 저 사람 인물이야 뭐 볼 끼 있나마는 아래 우로 처남 둘이 머리가 좋다 캐서 두 말 않고 오케이 했다 아이가? 그런데 우리 미진이를 학교에 보내고 보니 공부를 하기는 좀 하는데 처남들하고는 영 다르더란 말이야. 그래도 처남 니가 벌써 부면장이 되었으니 나중에 면장도 되고 군수고 되면 내 모처럼 처가 덕을 볼지도 모리겠다.”

하면서 껄껄 웃었다.

 

이튿날 울산에서 오는 버스를 타고 언양에 도착 부산행버스로 갈아탄 열찬씨는 담배 두 보루를 사들고 면사무소로 향했다.

 

※ 이 글은 故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