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시대10-권두칼럼】 잠들지 않는 도시, 불을 끄고 별을 켜요 - 홍정희
【시민시대10-권두칼럼】 잠들지 않는 도시, 불을 끄고 별을 켜요 - 홍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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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2.10.18 12:30
  • 업데이트 2022.10.20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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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정희 부산대학교 명예교수

인류는 과거 수백만 년간 낮에는 태양빛, 밤에는 달빛·별빛과 함께 살아오면서 그 속에 인간의 삶, 문명, 문화, 예술, 공간 등을 투영시켜왔다. 근대도시가 발달하고 야간활동이 증가하면서 인공조명의 확산은 밤의 모습을 크게 변모시켰다. 지금 현대인들은 인공적인 빛이 넘실대는 과도한 빛의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다.

야간조명은 그 나라 문명의 반영이며 도시의 화려한 야간경관은 그 도시에 대한 긍정적 가치를 갖게 한다. 근래 빛 관련 지자체별 축제 행사와 야간명소에서 인공조명의 화려한 불빛은 관광적 효과로 이어져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최근 수많은 인공조명들로 어둠을 잃어버린 지구촌은 빛공해로 몸살을 앓고 있다. 빛공해[light pollution]란 불필요하거나 과도한 인공조명의 빛이 인체나 환경에 피해를 주는 상태를 말한다. 2016년 국제공동연구진의 전세계 빛공해 실태분석 결과에 따르면 전 세계 80% 이상이 빛공해에 시달리고 있으며, 한국은 G20 국가 중 빛공해 면적비율이 89.4%로 이탈리아[90.3%]에 이어 두 번째로 높았다. 1992-2017년 사이 25년간 빛공해는 49%나 증가한 것으로 분석됐다.

빛공해는 동물, 식물 및 인간의 생체리듬을 교란시켜 자연생태계를 무너뜨리고 있다. 주로 낮에 활동하는 매미는 밤에는 울지 않지만 가로등 불빛 등 인공조명 때문에 밤을 낮으로 착각해 밤낮없이 시끄럽게 울어댄다. 해변에서 갓 부화한 새끼 바다거북은 반짝이는 빛을 따라 바다로 향하는 길을 찾는데, 해변의 수많은 인공조명으로 인해 방향을 잃고 헤매다가 천적에게 잡아먹히거나 아사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달빛이나 별빛을 이용해 야간에도 비행하는 철새들은 도시의 불빛 등 인공광에 이끌려 방향감각을 잃고서 건물에 부딪혀 떼죽음을 당하기도 한다.

농작물은 빛공해에 장시간 노출 시 성장은 빠르지만 계절과 다르게 개화하거나 수확량이 크게 떨어진다. 야간조명에 노출된 논의 벼 수확량이 21% 감소된 것으로 나타났다. 식물원, 도심지 내 나무에 설치된 LED 등 야간조명이 나무의 성장량 및 탄소 저장량을 감소시켜 나무 건강성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확인됐다.

빛공해는 인간에게도 치명적인 피해를 입힌다. 태양빛에 의한 낮과 밤의 주기에 적응해온 인간에게 빛공해는 생체리듬을 깨뜨려 수면장애, 우울증, 인지장애, 비만, 암 등 각종 질환을 유발할 수 있다. 2018년 이스라엘의 연구진은 빛공해가 심한 지역에 사는 여성들의 유방암 발벙률이 그렇지 않은 지역의 여성보다 73% 높게 나타났으며, 과다한 빛에 노출된 지역의 남성의 전립선암 발병률은 2배 이상 높게 나타났다고 밝혔다. 2017년 국내의 연구결과에서는 빛공해가 심한 지역의 유방암 발병률이 24.4% 더 높게 나타났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빛공해를 줄이려는 노력이 활발히 일어나고 있다. 환경부는 2013년 제정된 ‘인공조명에 의한 빛공해 방지법’의 시행령 개정안을 2020년 공포 시행했으나 보다 구체적이고 실효성 있는 법안 개정이 필요한 실정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생활에 필요한 빛은 충분히 확보하되 불필요한 곳의 빛은 에너지 절약 겸 최소한으로 줄여나갈 수 있도록 다함께 노력해나가는 것이다. 또한 태양광처럼 인간의 생체리듬을 맞출 수 있고 생태계 폐해를 막을 수 있는 자연친화적 광원을 개발해야 할 것이다. 최근 불을 끄지 않고도 상황에 적합한 조명 방식을 이용할 수 있는데, 형광등에서 LED조명으로, 나아가 주변 환경에 맞춰 밝기가 자동 조절되는 스마트조명으로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지구의 또 다른 환경문제는 ‘어두운 밤하늘을 어떻게 보존할 것인가’이다. ‘불을 끄고 별을 켜자’는 슬로건으로 유명한 국제어두운밤하늘협회[IDA:The International Dark-Sky Association]는 1988년 설립된 후 전 세계 곳곳에 ‘어두운 밤하늘 공원’을 지정하고 밤하늘 평가와 보존에 힘쓰고 있으며, 불끄기를 적극 권장하고 있다. 불필요한 조명을 끄면 사라진 별도 되찾고 에너지도 절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밤은 너무 밝다’의 저자 아네테 크롬베네슈는 빛의 아름다움 속에 감춰진 충격적 진실을 직시하고 “지금보다 더 자주 불을 끄자”고 말한다.

이제 우리는 생명같은 빛을 지켜내기 위해 어떤 빛을 만들어내야 할지 그 방향을 제시해야 하며 밤의 어둠을 되돌려놓아야 한다. 밤하늘의 별빛과 어둠을 향유하며 자연과 인간이 상생하는 쾌적한 빛환경을 가꾸어나가기 위한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상황이다.

홍정희 부산대 명예교수

 

 

 

 

 

 

 

 

 

 

◇ 홍정희

▷부산대학교 자연과학대학 생명과학과 명예교수
▷전)부산대학교 문화콘텐츠개발원 원장
▷전)사단법인 부산여성과학기술인회 회장

 

※(사)목요학술회가 발행하는 월간지 『시민시대』는 본지의 콘텐츠 제휴 매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