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시대10-이달의 시】 그리하여 - 조성래
【시민시대10-이달의 시】 그리하여 - 조성래
  • 시민시대1 시민시대1
  • 승인 2022.10.22 10:11
  • 업데이트 2022.10.22 10:1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조성래 시인

그리하여
                          조 성 래 시인

 

 

김제 들판 농민들
추수 직전 벼를 트랙터로 갈아엎을 때
세상은 잠시 정지된다
정부 농산물 정책에 반발하여 밥상 위
먹을거리가 생산자들에 의해 무참히 버려질 때
저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우리는 잠시
침묵하게 되고, 먹고사는 일이
뒤틀린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지주에게 굽신대고 공출에 숨죽인 쌀의 역사
밥과 숭늉 대신 빵 먹고 우유 마시는
서구식 식생활에 떠밀려
여전히 냉대받는 농투성이 현실
우리 스스로 흙의 자식임을 잊고 살아온
부끄러운 날들을 잠시나마 반성하게 된다
정부 비축미는 처치 곤란이고
경작지 줄이면 해결된다고 뻔한 소리 하지만
평생 벼농사로 이어온 삶을 어이하랴
이 와중에도 정치판은 값싼 외국 농산물 들여오며
자기 밥그릇 챙기기 여념 없고
부유층은 호텔 식당에서 고급 양식 즐기리라
그리하여 기습폭우는 쌀값 폭락과 함께 기어이
못사는 이들만 죽음으로 내몰리라
김제 들판 황금물결이 금방
트랙터 뒤에서 시커먼 흙으로 뒤집히는 모습 앞
어쩔 수 없이 우리도 속이 뒤집히고
잠시 할 말을 잊는다

<시작 여화>

가끔, 우리가 애써 외면하고 살아온 현실이 뒤통수를 칠 때 우리는 잠시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다. 정신이 돌아올 때까지 얼떨떨하게 서 있다가 아차, 지나온 삶을 돌아보게 된다. 벼농사의 경우가 그렇다.

우리의 근대화는 쌀에 빚진 바가 크다. 저곡가 정책이 저임금 도시근로자들 먹여 살렸고, 그러한 경제활동의 바탕 위에서 우리나라는 부유한 수출산업국으로 성장했다. 우리의 관심이 온통 경제 지수에 쏠려 있는 뒷전에서 벼농사 짓는 농민들은 언제나 희생양이었던 셈이다.

이제 그들의 고통은 개방된 농산물 시장경제 체제의 그늘에서 더욱 깊어지는 모양새다. 올해도 생산비에 못 미치는 수매가 때문에 농민들 스스로 추수 직전의 벼논을 갈아엎고 있다. 뒤통수가 얼얼하다.

 

조성래 시인

◇ 조성래 시인

▷1984년부터 <지평>, <실천문학>을 통해 작품 활동

▷시집 『두만강 여울목』, 『천 년 시간 저쪽의 도화원』, 『목단강 목단강』, 『쪽배』 외

▷최계락문학상, 김민부문학상 수상

 

※(사)목요학술회가 발행하는 월간지 『시민시대』는 본지의 콘텐츠 제휴 매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