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290) 제4부 신불산 정기 - 제10장 교통사고①
대하소설 「신불산」(290) 제4부 신불산 정기 - 제10장 교통사고①
  • 이득수 이득수
  • 승인 2022.10.28 07:10
  • 업데이트 2022.10.28 10: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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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교통사고①

이튿날이었다. 아침 일찍 새마을조기청소에 참석하고 구청장주재의 간부회의에 이어 기획감사실의 계장회의까지 마치자 시간은 벌써 11시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어제 행사를 빛내준 공과금요원친목회장에게 고맙다는 전화를 하는데

“계장님!”

반갑게 인사하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면서

“아, 조 주사!”

열찬씨가 활짝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같은 동래구 출신으로 시청 감사관실에 근무하는 동래구 출신 조선덕씨는 열찬씨가 감사관실직원 중에서 유일하게 아는 사람이고 조선덕씨 역시 서구청에서 유일하게 아는 사람이라 서로 믿고 지내는 사이였다. 커피를 한잔 하면서 그가 꺼낸 용건은 방금 시장님으로부터 긴급한 오더를 받았는데 서구청에 근무하는 모 기술직 간부가 시청에 재직하면서 관계 업체와 유착하여 사하구 구평동에 커다란 빌딩을 샀다는 첩보가 있어 이를 서구청감사실과 합동으로 단속하여 응분의 조치를 하라는 것이었다.

관용차를 관리하는 총무과에 배차를 신청해도 차량이 없어 김일환 주무의 승용차를 이용하기로 하고 셋이서 문을 나서는데

“이 계장님, 나도 우리 조 주사랑 같이 나가서 모처럼 점심이라도 하고 싶지만 오늘 컨디션이 너무 나빠요. 나 대신 점심대접 잘 하세요.”

키가 작고 땅땅하지만 절대로 포기하거나 쓰러지지 않는 두주불사의 오뚝이 이장희 감사실장이 평소와 다른 벌겋게 상기된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같은 감사실 출신이라 웬만하면 같이 나섰을 텐데 조기청소를 나가기 직전 화장실에 갔다가 머리가 핑 도는 바람에 한참이나 숙직실에 누웠다 겨우 회의참석만 했다는 것이었다.

자동차에 오르던 열찬씨가 좌석이 한 자리가 남는 것을 보고 잠깐 기다리라며 사무실로 올라가

“김남규씨, 서류 덮고 같이 가자. 어서 일어나게!”

서류철에 머리를 박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을 기어이 일어 세웠다. 모처럼 송도 쪽에서 점심을 할 것이라 어제 진갑연의 사회를 맡아 고생한 것을 보답할 심산으로 동행시킨 것이었다.

 

구평동으로 가려면 아무래도 송도를 거쳐야하는데 송도윗길에서 곡각지를 넘어서자 열두시가 가까워 차를 암남공원입구에 세우고 김모구의원이 운영하는 백숙 집에서 오리백숙을 시켜 소주를 곁들인 점심을 먹고 다시 길을 나섰다.

주민들이 혈청소라고 부르는 동물검역소를 지나 한창 매립중이지만 아직도 갯바위에 파도가 출렁이고 정초에 풍어제를 지내던 커다란 포구나무그늘에서 낚싯대를 늘어뜨린 모지포 바닷가를 지나 감천삼거리방향의 꼬불꼬불한 산길로 접어들었다.

여기가 시내중심인 서구가 맞나 싶을 정도로 새파란 남쪽바다를 배경으로 초록으로 우거진 장군산과 진정산의 숲속에는 드문드문 아카시아꽃이 피고 창가로 간간이 뻐꾸기 우는 소리가 들렸다. 반주로 먹은 소주 탓으로 잠이 쏟아진 열찬씨가 꾸뻑꾸뻑 졸다 감천삼거리를 지날 즈음 간신히 눈을 떴다 다시 스르르 잠에 빠질 때였다.

갑자기 차체가 진동하더니 온몸이 위로 붕 뜨는 느낌이라 양발로 버티면서 이를 악무는데 쿵, 소리와 함께 오른쪽 대퇴부에 찌릿한 통증을 느끼며 그는 정신을 잃고 말았다.

 

시장바닥이나 운동회 날의 소음 같은 아련한 꿈속에서 문득 깨어난 열찬씨가 오른쪽 다리가 끊어질 것만 같은 통증을 느끼며 눈을 떠 사방을 살피자 옆에 얼굴전체가 피투성이가 된 김남규씨가 신음소리를 내며 드러누운 뒤로 쉭쉭 소리를 내면서 반대방향으로 트럭들이 달리는 것으로 보아 자신들도 자동차로 달리는 것 같은데 하늘이 훤히 열린 것으로 보아 화물차의 짐칸인 것 같았다.

“김 주사, 김남규씨!”

이게 웬일이냐고 물어보려는 순간 격렬한 통증으로 다시 정신을 잃고 말았다.

다시 정신을 차리자 사방에서 여러 사람이 걱정스런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고 그 중에는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도 보였다. 너무 통증이 심해 여기가 어디고 무슨 일이냐고 묻고 싶어도 입술만 달막거리고 말이 나오지 않았다.

위잉, 철공소에서 쇠톱으로 무엇을 자르는 소리가 나고 그의 오른쪽 대퇴부에 따끔한 통증이 지나가더니 이내 참을 수 없는 아픔을 수반하며 그의 다리가 끄떡 들려 공중에 매달아졌다. 이를 악물고 아픔을 참으며 정신을 가다듬는데

“감사계장님, 정신이 듭니까? 저 예산계장 정상식인데 알겠습니까?”

그의 눈을 들여다보며 물었다. 열찬씨가 천천히 고개를 끄떡이며 눈빛으로 답하자

“놀라지 마십시오. 구평동 가는 해안 길에서 브레이크파열로 교통사고가 났습니다.”

“교, 교통사고! 지, 직원들은 요?”

“김남규씨는 아직도 정신이 없고 김일환씨하고 본청의 조선덕씨는 경상입니다. 세워놓은 컨테이너와 정면충돌해서 차체가 형체도 없이 부서졌는데 그만하기도 천행이랍니다.”

“...”

ⓒ서상균

이어 이장희 기획감사실장과 또 다른 계장과 직원들이 들이닥치고 여직원들이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병실로 옮겨져 천장의 전등을 바라보며 혼자 자초지종을 더듬어보는데 연방 아야, 아야 소리를 내며 환자하나가 실려 왔는데 목소리가 김남규씨 같았다. 일이나 하게 가만 두지 괜히 밥 한 끼 먹이겠다고 데리고 나서 이런 일이 생겼다고 자책하는데

“보소, 당신 정신이 돌아왔능교?”

누가 귓가에 대고 속삭이는 소리에 눈을 떠보니 영순씨였다.

“다, 당신!”

“억지로 말하지 말고 가만 계세요. 이만 하기도 다행임더. 하느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목소리가 울먹울먹하더니 돌아서서 한참이나 어깨를 들썩였다. 이어

“많이 아프지요. 참을 만항교?”

눈을 들여다보며 손을 잡았다. 순간 열찬씨는 긴장이 풀리면서 다시 잠이 들고 말았다.

다시 눈을 떴을 때 병실에는 환하게 불이 들어와 있었고 얼굴전체를 붕대로 감은 옆자리의 김남규씨도 의식이 돌아와 계장님은 괜찮으냐고 걱정을 했다.

 

김일환 주무가 운전하던 자동차가 구평동을 향해 감천동 해안도로를 내리막을 돌아가는 중 갑자기 차체가 흔들려 운전자가 급히 브레이크를 밟아도 소용이 없었단다. 이미 브레이크가 고장이 난데다가 당황해 액셀러레이터레이더를 밟는 바람에 내리막을 쏜살처럼 내달리는데 좌측은 바다인지라 급한 대로 우측으로 핸들을 꺾어 하필이면 길가에 주차된 컨테이너를 들이받았다고 했다.

마침 뒤따라오던 화물차가 이를 발견하고 바로 짐칸에 네 사람을 실었는데 피투성이가 된 셋은 문제가 없었지만 운전석 옆자리에 탄 김남규씨는 차체와 함께 휴지처럼 찌그러져 꺼낸다고 죽을 고생을 했다는 것이었다.

가장 심한 김남규씨는 오른 쪽 고관절파손과 얼굴과 목에 50여 바늘을 꿰매야 하는 중상을, 열찬씨는 오른쪽 대퇴부일부가 산산조각이 난 복합골절을 입었고 운전자 김일환씨와 시청의 조선덕씨는 정수리에 혹이 나고 오줌에 피가 나오지만 큰 부상이 아닌 경상이라고 했다.

병실에는 김남규씨의 부인과 얼굴에 붕대를 감은 조선덕, 김일환씨의 여섯이 남았는데 자신들의 부상은 접어두고 시청과 구청 사무실에서 난리가 났을 것이라고, 사무실에 가서 무슨 말을 해야 될까 걱정들을 하고 있을 때였다.

“아이고, 가계장!”

키가 커다란 중년사내가 덥썩 열찬씨의 손을 잡으며

“이 일을 우짜겠노? 많이 아프지요?”

참으로 안타까운 듯 정이 뚝뚝 흐르는 목소리로 물었다.

“...?”

“...!”

순간 저마다 붕대를 감은 네 사내들의 눈이 둥글해졌다. 자신들이 조사를 하러가던 장본인 바로 척모 도시국장이었다.

“어쨌든 몸조리 잘 하이소. 사모님들도 고생이 많습니다. 자주 오께요.”

<쾌유를 빕니다.>라는 리본이 묶인 커다란 과일상자를 안기고 그가 방을 나갔다.

 

이튿날 구청장이 기획감사실장과 예산계장을 대동하고 와서 원장을 잘 안다며 병원비나 치료는 아무 걱정 말고 사무실도 당분간 잊고 치료에만 전념하라고 어깨를 두드리고 나갔고 예산계장은 무엇이든 조금만 불편하면 바로 자기에게 전화를 하라고 했다.

보호자인 영순씨와 들것에 실린 열찬씨가 천구락이라는 이름의 담당의사의 방에 불려갔는데 의사가 가리키는 엑스레이 사진속의 열찬씨의 오른 쪽 대퇴부는 마치 폭격이라도 당한 것처럼 무릎 위 한 뼘쯤 윗부분이 뚝 부러지고 떨어져 나간 뼛조각과 날카로운 단면이 끔찍했다.

다리의 부기가 가라앉는 데로 수술을 하면 6주후면 완치가 되어 일상생활에 불편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침대위에 줄을 매달아 오른 쪽 다리를 45도 각도로 고정시킨 흉측하고 불편한 모습도 문제였지만 가장 시급한 것은 온몸이 쑤시고 따끔거리는 것이었다. 마치 온몸의 모든 실핏줄이 터지고 세포가 파괴된 것처럼 어디 한 곳 아프지 않은 곳이 없이 욱신거리다 보니 저절로 미간이 찌푸려지고 이마가 띵했다.

열찬씨의 아내 영순씨와 김남규씨의 아내 삼순씨가 하루 종일 더운 물에 적신 수건으로 온몸을 찜질했지만 통증이 줄어들지도 않았다. 플라스틱 통으로 소변을 받아내는 일쯤이야 간단했지만 변기를 침대바닥에 깔고 대변을 보는 일은 당사자나 조력자모두 힘이 들고 무엇보다 고약한 냄새가 고역이었다. 겉으로는 멀쩡한 두 팔도 통증으로 들어 올릴 수가 없어 아내가 일일이 밥을 떠 먹였는데 몇 가지 안 되는 반찬을 이거 올려라, 저거 올려라 해도 도무지 제 손으로 먹는 것처럼 맛도 없고 양도 차지 않아 짜증을 부리기 일쑤였다.

사람의 입이 너무나 영악하고 간사해 쌀밥, 보리밥의 부드럽고 꺼칠한 것은 물론 조금 비싸고 싼 담배 맛에도 금방 반응한다더니 몇 가지 반찬 중에 밥숟갈 위에 무얼 얹느냐, 몇 가지를 같이 얹느냐, 또 어떤 차례로 얹느냐를 제 마음대로 하고 못하고에 따라 그렇게 맛이 차이난다는 사실에 스스로도 아연할 지경이었다.

 

이장희 실장을 비롯한 기획감사실의 전 직원은 물론 시민과와 사회과시절의 동료, 총무과나 비서실의 알음알음이 있는 직원에다 단 한 번도 같이 근무하거나 대화를 나눠본 적도 없는 동료들이 경악을 하며 문병을 오고 조기축구회원들을 비롯한 연산동사람들도 들이닥쳐 병실은 종일 앉을 자리도 없이 붐볐고 음료수와, 과일바구니가 쌓이자 병원 측에서 작은 냉장고를 마련해주기도 했다.

 

※ 이 글은 故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