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291) 제4부 신불산 정기 - 제10장 교통사고②
대하소설 「신불산」(291) 제4부 신불산 정기 - 제10장 교통사고②
  • 이득수 이득수
  • 승인 2022.10.29 07:10
  • 업데이트 2022.10.29 09: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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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교통사고②

이장희 실장을 비롯한 기획감사실의 전 직원은 물론 시민과와 사회과시절의 동료, 총무과나 비서실의 알음알음이 있는 직원에다 단 한 번도 같이 근무하거나 대화를 나눠본 적도 없는 동료들이 경악을 하며 문병을 오고 조기축구회원들을 비롯한 연산동사람들도 들이닥쳐 병실은 종일 앉을 자리도 없이 붐볐고 음료수와, 과일바구니가 쌓이자 병원 측에서 작은 냉장고를 마련해주기도 했다.

그러나 그 누구보다도 가장 비통한 모습으로 찾아온 사람은 시민과의 손재식 과장과 최재덕씨였다. 손 과장은 한창 욱일승천으로 뻗어가는 기세가 마치 부러진 다리처럼 꺾일까봐 걱정이며 쉬었다 뛰는 개구리가 더 멀리 점프하는 것처럼 6주간을 은인자 중 재충전을 하는 기간이 되라고 당부했다. 최재덕씨는 일주일에 한두 번 일과 후에 술자리를 하는 것이 자신의 재미이자 탈출구였는데 계장님이 아프니 인생에 낙이 없다고 했다.

박창식씨와 강정호씨, 자신보다 어리면서도 일 잘 하고 행동거지가 반듯하며 인물까지 훤칠해서 선망을 넘어선 두려움을 느끼던 두 신사들도 역시 정중히 문병을 했고 김남규씨와 고추친구인 오지랖이 넓은 정봉석씨는 구청 안에 퍼지고 있는 갖가지 정보를 물고 와 낮은 목소리로 귀에 넣어주었다.

먼저 운전자 김일환 주임이 술을 먹었느냐, 아니냐, 감사계주무가 음주운전을 한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는 비난이 일었는데 식당주인 김성갑 구의원이 사람 넷이 소주 한 병과 사이다 한 병을 마셨다고 증언해 음주운전의 수준이 아닌 것으로 분위기를 가라앉혔다고 했다.

다음 그러면 그들이 조사하러 가던 혐의자는 누구인가, 네 사람의 부상자를 내고 사건이 유야무야된 것으로 보아 참으로 관운이 센 사람인 셈인데 그 억센 사람의 기세에 온몸이 부서진 감사팀만 모진 놈 옆에 있다 벼락을 맞은 셈이라는 이야기가 돌며 모모씨들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본다고 했다. 마지막에 한층 더 목소리를 낮춰 귓속말로 들려준 이야기로 서구관할 6급 사무장과 계장들은 어느 날 문득 동래구에서 쫓겨 온 동서기 열찬씨가 몇 가지 황당한 제안과 입담으로 상관들을 현혹시켜 천둥벌거숭이처럼 날뛰며 감사계장자리에 까지 오르더니 마침내 불나비처럼 추락했다고 다시는 더 이상 재생하지도 못 하고 사무관승진의 경쟁대열에도 끼지 못 할 것이라고 고소해한다는 것이었다.

 

이틀이 지나 경상을 입은 조선덕씨와 김일환씨는 직장으로 돌아가고 병실에는 열찬씨와 김남규씨의 내외만 남았다.

미장원일과 아이들이 궁금해 영순씨가 연산동 집으로 돌아간 하룻밤과 아침은 하는 수 없이 김남규씨의 아내 삼순씨가 열찬씨의 수발까지 맡았는데 오줌을 받은 플라스틱 통을 건네는 것만 해도 멋쩍은 일인데 대변을 보게 한다고 고개를 돌린 채 환자복을 벗기면서는 서로가 민망해서 죽을 지경이었고 숟갈로 밥을 떠먹이고 받아먹는 일도 쑥스럽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이튿날 아침 영순씨가 돌아와 삼순씨가 참으로 오랜만에 집안청소를 하러가자 이번에는 영순씨가 두 남자의 수발을 맡았고 오후에 삼순씨가 돌아오자 두 내외가 자연스럽게 형님, 동생과 언니, 아우로 부르기로 했다.

그렇게 사이를 트면서 삼순씨의 이름이 왜 그렇게 촌스럽냐고 우스개가 나오자 형제가 아들 셋, 딸 셋인데 나오는 순서대로 일철이, 이철이, 삼철이, 일순이, 이순이, 삼순이로 짓다가 그렇게 된 막내딸이라고 했다.

남규씨가 삼순씨를 만난 것은 같이 입대해 내무반생활까지 함께한 고성출신의 군대동기 삼철씨가 농담 삼아 우리 삼순이를 소개시켜준다고 하다가 휴가 길에 삼철씨의 집에 들려 그 말로만 듣던 삼순씨를 만나 하하, 웃으며 수인사를 했는데 마침 중병으로 병상에 누워 죽을 날만 기다리던 부친을 만났을 때였다.

병상의 노인이 남규씨를 보더니 느닷없이

“우리 삼순씨를 맡아주게. 그래야 내가 안심하고 눈을 감겠네. 아무튼 자네만 믿겠네.”

손을 잡고 눈물을 주르르 흘리는 바람에 마음이 여린 남규씨가 자신도 모르게

“예. 알겠습니다.”

하는 바람에 졸지에 삼순이 신랑으로 지목이 되었고 제대를 하여 귀향을 하는 도중에 그 부친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집에도 가지 않고 바로 삼순씨 집으로 가서 초상을 치렀다고 했다. 그렇게 빼도 박도 못 하는 삼순이 신랑이 되어 그 길로 결혼채비에 들어갔다고 했다. 맏이라서 차분한 영순씨와 달리 막내라서 좀 단순하며 덤벙거리는 삼순씨는 마치 친자매처럼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그 날 저녁 퇴근한 김경환씨가 아내와 함께 문병을 왔는데 그 아내가 다대포시장에서 샀다면서 돌 담치를 한 자루 사와서 복도에 솥을 걸고 삶으니 냄새가 온 병원에 진동했다.

병실의 열찬씨내외를 비롯해 출입하는 간호사와 간호사실, 기웃거리는 옆방의 환자와 간병인들에게도 국물을 넉넉히 담은 담치를 한 그릇씩 안겼는데 환자라고 제일 먼저 받아먹던 열찬씨가 맛이 좀 그렇다고 바카스 한병을 마시고 누웠는데 이내 영순씨, 일순씨가 동시에 욱, 하는 소리를 내며 화장실로 뛰어가고 남규씨, 일환씨부부도 난리가 나고 옆방의 환자와 간병인도 토하고 싸고 난리가 나서 약을 얻으러 간호사실로 가니 간호사 세 명도 방금 똥물까지 올라올 정도로 심하게 토하느라고 얼굴에 땀과 눈물이 흥건했다.

6월말 건조기라 패류독소가 생긴 걸 모르고 사온 탓이었다. 속이 좀 튼튼한 사람은 이튿날 아침까지 심한 사람은 몇 며칠을 앓았는데 희한하게도 온몸을 꼼짝 못 하고 병상에 누운 열찬씨 혼자만 멀쩡했다.

멋쩍어진 김일환씨가

“계장님은 어떻게 그렇게 위장이 튼튼합니까? 진짜 아무렇지도 않단 말입니까?”

묻고

“어릴 때 땅바닥의 닭똥을 주워 먹고 자란 촌놈이 다른 사람보다 나은 모양이야. 아무거나 일단 목구멍만 넘어가면 소화가 되고 아무데고 머리만 닿으면 잠을 잘 자는 것이 그나마 도시사람들보다 나은 점이지. 우리 촌놈들은 태어날 때부터 독일제 창자를 달고 나온 셈이지.”

대답하다가 마침내 열찬씨는 독일제 위장을 가진 사람으로 별명이 붙었다.

나흘째부턴가 아버지 명촌가손이 젊어서 너무 일을 많이 해서 온 몸에 이열이 들었다던 그 어혈, 그러니까 토막토막 끊어지고 파손된 실핏줄과 세포의 손상이 풀렸는지 이제 두 사람은 스스로 목을 가누고 숟가락질을 할 수가 있어 영순씨와 삼순씨는 우리 아기들이 많이도 자랐다며 웃었다.

열찬씨는 언젠가 일찬씨가 하던 말, 사람이 심한 교통사고를 당하거나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 인체의 모든 실핏줄이 터지고 근육과 신경을 다쳐 마치 갓난애가 조금씩 자라듯 머리를 이기고 허리를 이기며 조금씩 회복한다던 말을 그 때 비로소 실감했다.

 

그날 저녁 퇴근길에 장모 순란씨가 병실에 들렀는데 아무 말도 못 하고 열찬씨의 손을 잡고 눈물을 뚝뚝 흘렸고 병실의 다른 사람들은 너무 젊은 장모를 신기한 듯이 쳐다보았는데 사실 순란씨가 사위의 손을 잡는 것이 그 때가 처음이었다. 겨우 열세 살이 적어 만만찮기보다도 징그럽던 사위가 그렇게 몸을 다쳐 앓으니 비로소 자식 같은 생각이 들었다고 나중에 술회하기도 했다.

영순씨가

“아버지는?”

하고 동행하지 않은 이유를 묻자

“아이구, 그 놈의 영감쟁이!”

화를 버럭 내던 순란씨가 영순씨를 병실 밖으로 끌고 나갔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 원래 딸이 이사를 하거나 사위가 입원을 하면 장인이 가지 않는 법이라고, 만약 함부로 출입을 하면 딸네집이 못 살거나 사위의 병이 잘 낫지 않는다고 못 오게 하기도 했다고 했다. 사실은 괜히 요즘 사람들은 잘 해먹지도 않는 환갑, 진갑잔치를 억지로 차려달라고 하는 바람에 맏사위가 주동이 되었고 그 바람에 동티가 난 것이라고 주변사람들이 수군거리는 바람에 장인 홍상사가 죽을상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튿날 열찬씨의 수술 일정이 잡혔는데 하반신 부분마취를 하고 서너 시간동안 끊어진 뼈를 이어 핀으로 고정시켜야 된다고 했다. 언젠가 전신마취를 하고 수술을 하다 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죽는 경우가 더러 있다는 말을 들은 열찬씨는 비록 부분마취라도 겁이 더럭 나서 곰곰 생각하던 끝에 신평에 연락해서 큰누님을 오시게 했다.

어머니까지 돌아가신 판에 딱히 심리적으로 기댈 언덕도 없고 아내 영순씨나 장모님은 너무 젊어 의지할 바가 못 되는 것 같아 그나마 갑찬씨, 순찬씨 두 누나가 의지가 될 것 같았는데 기왕이면 큰누님을 부르기로 한 것이었다.

눈이 동그랗게 되어 부랴사랴 병실에 들어선 갑찬씨는 열찬씨의 손을 잡고 ‘아이구, 야야, 열찬아!’를 반복하며 주르르 눈물을 흘리더니 수술실에 실려 가는 ‘관세음보살!’을 연호하며 손을 모아 빌기 시작했다.

어디서 졸졸거리며 개울물이라도 흘러가는 깊은 계곡처럼 고요한 병실에서 척추에 부분마취 주사를 맞은 열찬씨는 하반신이 뻣뻣해지는 느낌에 엉덩이를 만져보니 마치 타이어를 만지는 것처럼 거칠고 딱딱한 느낌이었다.

머리 위에 환하게 불이 켜지고 어디선가 똑똑똑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어 가슴이 홧홧 하면서 뭔가 깊은 꿈속에서 깨어나는 것 같이 눈앞이 몽롱하며 붉고 푸른 물방울이나 동그라미 같은 것이 떠다니는 것 같은 환각에 빠지다 정신을 잃어버렸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숨이 갑갑하고 토할 것 같은 느낌에 눈을 뜨자 의사와 간호사가 뭔가 허덕거리는 것처럼 매스인지 가위인지가 쨍그랑 부딪히는 소리가 나고 다시 귓가에 졸졸졸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다시 엉덩이를 만져보니 꾸덕꾸덕하면서도 약간의 온기와 양감이 느껴져 마취가 풀렸나 싶었는데 이어 칼로 찌르는 것 같은 격렬한 통증이 엄습해 절로 미간이 찡그려졌다.

침대에 누운 채 병실을 나오는데 ‘관세음보살!’을 외치는 갑찬씨 뒤로 금찬씨, 덕찬씨의 얼굴이 보이고 장모 순란씨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보는데

“욕 봤심더.”

목이 매여 말끝을 잘 맺지 못 하는 영순씨의 손에 땀이 흥건했다. 그 때

“아이구, 내 정신 좀 봐라.”

갑찬씨가 깜짝 놀라며

“박 서방네, 고 서방네야. 내 동생 줄라꼬 묵 가온 거 어데 놔났노?”

하며 세 자매가 허둥거리더니 병실입구에 던져둔 묵 반티를 찾아 영순씨에게 건네주었다.

 

이튿날 김남규씨의 고관절수술도 무사히 끝나고 열찬씨의 얼굴과 머리의 작게 찢어지고 부어오른 곳도 거의 아물고 1차로 60바늘도 넘게 꿰맨 남규씨의 얼굴과 목이 상처도 많이 아물어 본얼굴이 제법 드러났다. 이제 6주간만 기다리면 둘 다 퇴원을 할 수 있다며 남규씨가 달력의 날짜에 동그라미 하나씩을 그리기 시작했다.

아침에 담당의사가 왕진을 도는 것으로 시작해 아침에 근육주사와 혈관주사 몇 종류, 오후와 저녁에도 같은 방식으로 하루 열서너 번씩 주사를 맞았는데 처음 혈관을 찾아 주사바늘을 꽂아 종일 약물을 투입한 링거를 꽂아놓는 혈관주사도 성가셨지만 처음 따끔하던 엉덩이의 근육주사가 횟수가 거듭될수록 엉덩이의 근육이 뭉치면서 가볍게 따끔거리던 아픔이 마치 우물 속에서 퍼지는 물보라처럼 점점 더 깊고 은근하게 아렸다. 다행히 둘 다 혈관이 두드러져 찾기는 좋다고 했지만 자주 맞는 팔꿈치 안쪽의 혈관에 새파랗게 멍이 들기 시작했다.

 

다소 뜸해지기는 해도 여전히 직원들의 문병이 많아 과일이 남아돌아 간호사실과 옆방에 돌리고도 남아 영순씨나 삼순씨가 아이들을 먹인다고 집으로 가지고 갈 정도였다.

 

※ 이 글은 故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