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291) 제4부 신불산 정기 - 제10장 교통사고③
대하소설 「신불산」(291) 제4부 신불산 정기 - 제10장 교통사고③
  • 이득수 이득수
  • 승인 2022.10.30 10:35
  • 업데이트 2022.10.30 10: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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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교통사고③

다소 뜸해지기는 해도 여전히 직원들의 문병이 많아 과일이 남아돌아 간호사실과 옆방에 돌리고도 남아 영순씨나 삼순씨가 아이들을 먹인다고 집으로 가지고 갈 정도였다.

그 중에서도 제일 지극정성으로 찾는 사람은 손재식 과장과 최재덕씨로 회를 많이 먹어야 빨리 뼈가 붙는다며 평소에 안주로 먹던 아나고와 숭어, 낙지와 멍게를 사들고 와 넷이서 술판을 벌리기도 했다.

또 부구청장실의 비서로 있는 조경미양은 문병 올 때 마다 자료실의 소설책을 몇 권씩 들고 왔는데 워낙 책읽기가 빠른 열찬씨가 어느새 모조리 읽어버리자 나중에는 주로 전집종류를 들고 왔고 어떤 때는 열찬씨가 먼저 이런저런 책이름을 가르쳐주면 자료실에 없어서 서점에서 사오는 새 책도 있었다.

 

또 김문태라는 이름의 열찬씨보다 열 살도 더 많은 늙은 7급 평직원은 남규씨와 친한 사이라 거의 매일 퇴근길에 병실에 들러 열찬씨에게도 계장님소리를 입에 달며 한두 시간씩 놀다가고 남규씨의 고추친구 정봉석씨도 수시로 구청의 소식과 정보를 물고 왔다.

어느 날 오전 늦게 소식을 들은 김해의 순찬씨가 병원을 찾았는데 병실입구에서 한창 남규씨의 머리를 감기는 영순씨를 보고

“올케야, 욕보제?”

하고 다가서다

“어이쿠야!”“

비명과 함께

“니 지금 뭐 하노?”

남의 사내 머리를 감기는 올케가 이상했던 것이었다. 계속 머리를 감기면서 손으로 침대 위를 가리키는데 인기척에 읽던 책을 놓고 고개를 돌리며 열찬씨가

“누님 오싰능교?”

인사를 하자 금방

“아이구, 내 동생이 와 이래 됐노? 열찬아, 열찬아!”

하며 침대 위로 올려 맨 기브스를 한 다리를 한참이나 주무르더니 열찬씨의 손을 잡고

“주여...!”

소리와 함께 기도를 시작하는데

“인간의 생사와 우주의 만사를 주관하시는 우리 주 하느님 아버지 오늘 이 착하고 순진한 어린 양을 불쌍히 여기시고 긍휼히 여기시사...”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기도를 한참이나 이어가더니 이내 어조를 바꾸어

“열찬아, 내 동생아! 니는 가난하고 못 배운 부모 밑에서 장남도 아니고 막내도 아닌 차남으로 태어나 장남은 원질이라고 챙기고 막내는 불쌍타고 챙기면서 니는 그저 농사나 지으라고 온갖 천대를 하고 학교도 안 보낸다는 것을 내가 아부지 몰래 근근이 입학을 시켰지만 공부만 잘도 하고 그 많은 농사일을 하면서 방학 때 마다 큰 산에 나무를 해다가 끝에 두 누부를 시집보내고...”

아무래도 기도가 너무 이상하게 흘러 자신의 본전이 다 드러난다고 열찬씨가 얼굴을 찌푸리는데

“태어나던 그날부터 태열을 얼마나 심하게 했는지 우리 아부지가 미역국 끓이려고 사오던 고기도 땅바닥에 떼기장을 치고 인간 안 된다고 아아를 거름 밭에 버렸는데 내가 불쌍하다고 안고 와서 씻기고 근근이 키웠는데...”

갈수록 묘한 기도에 영순씨, 삼순씨는 물론 옆 병실의 환자와 간병인들도 병실입구에 둘러서서 순찬씨의 입만 쳐다보는데

“열찬이 니는 알라때 태열을 했으면 됐지 무슨 흔디는 그렇게도 많이 해서 마른버짐, 소버짐은 물론이고 짱배기에 사부라찌는 와 또 그렇게 나서 고름을 질질 흘리고 그라고 그 때 뭐꼬 우리 어무이 시근도 없는 명촌때기가 흔디가 심하면 머리에 그만 연고나 양잿물을 바리면 될 낀데 하필이면 그 독한 소뼈잿물을 발라 머리가 홀랑 다 벗겨지고 지금도 재랄만한 흉터가 남고...”

기도가 한창 점입가경으로 들어가는 그 때

“됐다! 마 그만 해라! 그 흔디이야기는 마로 하노? 그 소뼈잿물이야기는 빼라!”

옆에 앉아 눈을 감고 있던 매형 재근씨가 불만이 가득한 목소리로 입술을 실룩이며 말하자

“와아!”

둘러섰던 사람들이 일시에 폭소를 터뜨리고 개중에는 배를 잡고 또글또글 구르는 사람도 있었다. 점잖은 남규씨도 담요에 얼굴을 가리고

“크크크크”

웃기시작하자 마침내 영순씨, 삼순씨도 눈가에 눈물이 나올 정도로 참았던 웃음을 터뜨리는데

“이 사람들이 뭐 기도하는 거 첨 들었나? 넘은 동생이 다쳐서 속이 터져 죽을 판인데...”

하고 한 바퀴 빙 둘러보다 자신이 생각해도 멋쩍은지

“올케야, 내 동생 좋아하는 메밀묵 가져 왔다. 어서 상글어서 동생도 주고 간호원 하고 옆방 사람들도 갈라 줘라!”

히쭉 웃으면서 묵이 든 커다란 나무반티를 내 놓았다.

 

시간이 조금씩 흐르면서 두 사람의 움직임도 조금씩 나아져

둘 다 휠체어의 앞부분에 판자를 걸치고 그 위에 깁스한 다리를 얹고 화장실을 출입할 정도가 되었다. 1, 2, 3, 4 각층마다 화장실이 있기는 해도 좌변기는 층당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 눈을 뜨자말자 좌변기를 향해 달렸고 선점한 사람이 있으면 다른 층으로 옮겨 다녀도 끝내 자리가 없으며 한참이나 기다려야 할 때도 있었다.

2주 정도가 지나자 이제 목발을 짚고 다닐 수 있었는데 거추장스런 휠체어를 버린 것만 해도 가뿐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그렇지만 물기 젖은 바닥에 목발의 고무 파킹이 미끄러질 위험이 있어 늘 조심해야했다. 자칫 넘어지거나 엉덩방아를 찧기라도 한다면 골절부분에서진액이 분비되어 겨우 붙기 시작한 접골이 도루아미타불이 될 판이었다.

두개의 목발에서 하나를 벽에 세우고 여전히 하나는 왼쪽 어깨 밑에 받치고 오른 손으로 세수를 하면 아무리 오래 하여도 개운한 맛이 없고 어딘가 찝찝한 것이 꼭 부상직후 아내가 떠먹이는 밥맛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 것과 같았다.

처음의 험상궂은 얼굴과 달리 김남규씨는 점점 차도가 좋아져 얼굴도 말끔해지고 목발 둘을 벽에 세우고 양손으로 세수를 할 수가 있었지만 어찌 된 셈인지 열찬씨는 오른 쪽 발을 땅에 딛고 무게중심을 옮기며 방금이라도 다리가 끊어질 것처럼 찌릿찌릿한 통증이 엄습해 양손세수를 엄두도 낼 수 없었다.

김남규씨의 상처 고관절이란 척추에서 허리로 내려와 두 다리로 연결되는 부분, 즉 상체와 하체의 연결부분에 있는 가장 크고 중요한 관절인데 이미 파손되어 새로운 관절로 갈아 넣고 안정이 되어 퇴원하며 10년 단위로 교체해야 된다고 했다.

 

반면 열찬씨는 오른 쪽 무릎위의 다리뼈가 완전히 부서진 것으로 부서진 단면을 깨끗이 닦아내고 그 파손된 공간에 엉치 뼈를 끌로 긁어낸 뼛조각을 석회와 버물려 떼워 놓으면 뼈의 양끝에서 골수(骨髓)가 분비되어 뼈로 굳어진다는 것이었다.

2주 정도면 어느 정도 골수가 분비되고 슬슬 물리치료에 들어갈 것이라는 수술당시 의사의 말과 달리 열찬씨의 다리는 조금도 진척이 나가지 않아 한밤중에 잠이 깨어 간호사에게 극심한 고통을 호소하면 진통제를 놓아주었고 아침에 왕진을 도는 천구락이라는 담당의사에게 이야기하면 그저 고개를 갸웃하며 조금 더 기다려보자는 말뿐이었다.

 

세상에는 참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제마다 희한한 방법으로 살아가듯 문병을 오는 사람들의 스타일도 각각 달랐다. 보통의 경우 박카스나 음료수를 사와서 건네주고 몇 마디 틀에 박힌 걱정을 늘어놓고는 맡은 업무를 처리한 사람처럼 홀가분하게 떠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김문태씨처럼 날마다 찾아와서 병원바깥세상이야기는 물론 자신의 이야기를 부담 없이 늘어놓고 껄껄 웃다 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손재식과장 최재덕씨처럼 환자가 좋아하는 음식을 사와 같이 먹고 마시는 유형, 의료보호전임자였던 박창식씨나 치과의사인 고향친구 엄영호씨처럼 열찬씨가 바둑을 좋아하는 줄 알고 일부러 바둑판까지 들고 와서 한나절을 놀아주고 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과일을 사와 정성스레 깎아서 먹이는 사람들, 환부를 일일이 확인하고 어깨나 무릎을 주물러주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열찬씨가 가장 반갑게 기다리는 사람은 비서실의 조경미양이 한 보따리 소설책들을 들고 오는 모습이었다.

명색소설가가 되겠다는 꿈을 가지고 이 낯선 항구로 떠나왔으면서도 어느 새 문학에 대한 꿈을 가마득히 잊고 다람쥐 쳇바퀴 돌듯 하루하루를 따분한 행정업무에 시달리며 처자식을 먹여 살리기에 몰두하던 그가 먼 출퇴근길에 문고판을 읽기시작하다 다리를 다쳐 드러누우면서 비로소 다시 소설책을 읽고 소설가의 꿈을 떠올린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로니컬하기는 했지만 과히 싫지도 나쁘지도 않은 일로서 가슴 깊숙한 곳으로 부터 어떤 의욕과 용기가 조금씩 꿈틀거리며 솟아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문병객중의 대미는 무어라 해도 주로 직장에 관련된 부산의 도시인이 아닌 주로 두 사람의 고향인 남해와 언양에서 오는 순박한 촌사람들이었다. 먼저 벌써 일흔이 다 된 남해의 김남규씨 부모님들은 주로 싱싱한 회나 해산물을 가져와서 열찬씨를 비롯한 두 환자가 먹는 것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영순씨, 일순씨에게 권하기도 했지만 올 때마다 빠지지 않는 것은 <속>이라고 부르는 자주색 바다가재였다.

어른의 엄지손가락만 한 크기의 삶은 속의 대가리를 때내고 머리와 꼬리사이의 몸체의 껍질을 벗긴 게맛살 한 토막만 한 자주 빛의 살점은 연하면서도 고소하고 간간하면서도 감칠맛이 있었는데 김남규씨의 모친이 어릴 적의 아들이 매일 먹던 간식거리라 부산에 올 때마다 일부러 잡으러 나간다고 했다.

 

그런가 하면 열찬씨의 네 누님은 각자의 사정에 맞게 갖가지 형태로 무언가를 들고 왔는데 신평의 갑찬씨는 주로 도토리묵이나 메밀묵을 가져와 온 병실에 돌리는 바람에 묵누님이라는 별명이 붙었고 김해의 순찬씨는 딸기, 토마토, 단감, 사과등 주로 제철의 과일을 들고 왔지만 메밀묵을 쑤어올 때도 많았다.

 

※ 이 글은 故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