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292) 제4부 신불산 정기 - 제10장 교통사고⑤
대하소설 「신불산」(292) 제4부 신불산 정기 - 제10장 교통사고⑤
  • 이득수 이득수
  • 승인 2022.11.01 07:05
  • 업데이트 2022.10.31 10: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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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교통사고⑤

김남규씨의 병세는 나날이 호전되어 목발을 짚는다는 것을 빼면 별 불편이 없었지만 열찬씨의 다리는 한 달이 지나도 도무지 진척이 없이 어쩌다 오른 쪽 발바닥이 땅에 닿기라도 하면 고압선에 감전된 듯 찌릿찌릿했다. 담당의사에게 이야기해도 조금만 더 기다리면 뼈에서 진액이 나와 금방 붙을 것이라는 막연한 이야기뿐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어느 듯 동산병원에서 제법 고참환자 축에 든 두 사람에게는 많은 친구들이 생겼는데 주로 나이가 지긋한 여자환자들로 사량도에서 물질을 하던 해녀도 있었고 다대포시장에 횟감용 활어를 팔던 노파도 있었는데 심지어 한쪽 무릎아래를 절단한 30대 아줌마도 있었다. 휠체어를 타거나 목발을 짚은 이들이 우르르 복도나 계단으로 몰려다니며 운동을 하기도 했지만 주로 열찬씨와 남규씨가 생활하는 2인실로 와서 자신들의 6인실에는 없는 냉장고에서 시원한 음료수나 과일을 꺼내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거나 열찬씨더러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라고 부탁하고 열심히 듣기도 하고 어떤 때는 사량도나 다대포어시장에서 가져온 횟감으로 회식을 하기도 했다.
 
또 열찬씨나 남규씨도 처음 들어보는 손해사정사라는 사람들도 들랑거렸는데 이들은 교통사고나 화재사고의 당사자를 찾아다니며 피해나 부상, 앞으로 남을 후유증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여 보험회사를 상대로 더 많은 보험금을 타게 하고 그 일부를 수임료로 받아가는 사람들이었다. 생긴 것부터 말쑥한 데다 검정 가방을 들고 다니는 젊은이들이 왠지 미덥지 않아 대부분의 환자들은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지만 김남규씨의 부인 삼순씨는 그래도 귀가 솔깃한 듯 열심히 듣고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열찬씨의 경우에는 전에 같은 집에 세 들어 살다 서울로 이사 간 병민이 아빠가 보험감독원에 잘 아는 사람이 있다면서 굳이 손해사정인의 도움을 받을 것 없이 보험합의직전에 의사의 장해진단서를 보내주면 보험금액수가 적정한지 따져 최대한으로 받아주겠다고 했다.
 

마침내 당초 완쾌기간인 6주가 지나 8월의 한더위가 몰려왔지만 열찬씨의 상태는 조금도 개선되지 않고 환부가 점점 더 욱신거리고 가끔은 칼로 에는 듯 날카로운 통증이 간헐적으로 지나갔는데 밤, 특히 새벽에 잠이 깨어 식은땀을 흘리며 잠 못 드는 날이 많았다. 그 때마다 간호실에 이야기 해 진통제주사를 맞고 겨우 잠이 들곤 했다. 

그렇게 시도 때도 없이 맞는 주사 때문에 양쪽엉덩이에 근육이 조금씩 뭉치더니 마침내 수술실에서 마취주사를 맞고 감각이 없던 타이어처럼 거칠고 남의 살처럼 감각이 없는 상태가 되었다. 주위사람들이 열찬씨의 등 뒤에서 뭔가 수군거린다는 느낌이 들더니 어느 날 다대포어시장에서 활어를 팔던 할머니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전에 열찬씨처럼 교통사고로 대퇴부가 절단된 50대의 아저씨가 있었는데 전치 6주의 진단대로 순조로이 뼈가 붙어 두 달쯤 되어서는 통원하며 물리치료를 받았고 한 4개월쯤이 되어서는 다시 화물차운전을 하는데 40대 초반의 열찬씨가 두 달이 다 되도록 아직도 뼈가 붙지 않는 것은 무언가가 잘못 되어가는 것이라고 병원에서 외출허가를 받아 다른 병원으로 가서 새로 엑스레이를 찍어 현재의 상태를 알아 다시 더 큰 전문병원으로 가야된다는 것이었다. 농사짓는 사람들 사이에 <어정 7월, 둥둥 8월>이라는 말이 있듯이 어정거리다 7, 8월이 다가고 어느 듯 9월초가 되고 입원한지 6주가 아니라 10주가 되는 70일이 훨씬 지났지만 열찬씨의 상태는 조금도 진척이 없었다. 김남규씨는 이제 퇴원을 해서 출퇴근으로 물리치료만 받으면 될 정도였지만 기왕이면 열찬씨와 같이 퇴원한다면서 머뭇거렸는데 환자가 적어 빈 침대가 여럿인 병원에서도 퇴원을 종용하는 일은 없었다. 
 

그 때부터 식사시간에 휠체어에 식판을 두 개를 겹쳐 싣고 받아오고 식사 후에 내어가는 일을 비롯해 병실의 청소까지 그가 도맡아 처리할 수가 있어 영순씨나 삼순씨는 2, 3일에 한 번씩 오는 정도였다. 심지어 열찬씨가 금찬씨가 해준 개소주를 마실 시간이 되면 극심한 통증으로 사색이 된 열찬씨대신 자신이 개소주 팩을 따서 컵에 담아 먹여주는 등 정성이 대단했다. 

추석이 다가오면서 어지간히 나은 사람들은 대부분 퇴원을 해서 사량도의 아주머니나 다대포의 할머니도 이미 퇴원을 해서 물리치료차 통원을 하면서 자주 열찬씨의 병실에 들어와 걱정을 하고 부산에서 제일 유명한 초량의 세일병원으로 옮겨야한다고 부추겼다. 추석 2, 3일 전부터는 다리가 점점 더 욱신거리는 데다 휠체어나 화장실의 변기에 깁스된 다리를 얹어보면 점점 두 무겁고 둔한 느낌이 들었다. 왕진 온 의사에게 이야기하니 얼굴빛이 순간적으로 변하면서도 또 추석까지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고 했다.
 

대부분의 입원환자들도 추석을 쇤다고 임시휴가를 얻어 떠나버리자 평소 2,30명이 입원했던 4층도 겨우 여남은 명만 남고 복도나 화장실에서도 인적이 드물어 병원전체가 휑한 느낌이 들었다. 서울역의 귀성객들이나 방영하는 텔레비전조차 유독 지루하고 재미가 없는 추석 안날 저녁 김남규씨가 

“계장님, 심심한데 노래자랑이나 하십시다.”

하면서 목발을 거꾸로 들고 다다다당 당다당 다다당, 기타줄을 고르며 음을 잡는 시늉을 하는데 참으로 그럴 듯 했다.

사내들 사회에선 군에선 공병삽과 곡괭이면 능히 집을 짓듯이 병원에서는 목발하나로 만사를 해결하는 것이었다. 목발 끝의 고무부분을 이용해 베드에 앉아서 문을 여는 것은 물론 닫는 것까지 능숙한 판이라 목발이 기타로 변하는 것쯤이야 그리 신기할 것도 없었다. 

열찬씨도 목발을 거꾸로 잡고 통로를 가운데로 둘이 마주 앉으니 먼저 김남규씨가 자신의 18번인 <너와 나>라는 노래를 시작하는데

  나 혼자 걸어가면 쓸쓸한 길도
  너와 나 둘이라면 외롭지 않아 
  나 혼자 바라보는 밤하늘 보다
  둘이서 바라보는 하늘이 좋아
  마음과 마음으로 맺은 너와 나
  이 세상 다 하도록 변치를 말자

음정, 박자가 다 정확하고 노래가사가 따뜻했지만 어딘가 쓸쓸한 기분이 들어 열찬씨가 목발기타를 퉁기며

  얼마나 기다리다 꽃이 됐나
  달 밝은 밤이 되면 홀로 피어
  쓸쓸히, 쓸쓸히 미소를 짓는
  그 이름 달맞이꽃 
  아아, 아아 서산에 달님도 지는데
  외로운 밤이 되면 홀로 피는 
  그 이름 애처로워라

춘천의 군견훈련소에서 보내던 군대시절 모두가 파견을 나간 단 한명의 단기하사 내무반장인 자신에게 이제 며칠 후면 제대를 한다고 말도 걸지 않고 눈도 마주치지 않고 은근히 무시하며 남이 점호준비를 하느라고 부산할 때 무슨 유세처럼 기타를 치던 충청도 어느 시골출신의 한상우라는 못 생기고, 못 배우고 목소리조차 거친 병장이 부르던 노래 <달맞이꽃>이 떠올라 생각나는 대로 더듬더듬 불렀다. 그러다 그만 당시의 그 외롭던 마음이 생각나 왈칵 눈물이 치솟는 것을 보고 김남규씨가

  타향살이 몇 해던가
  손꼽아 헤어보니
  고향 떠난 십여 년에 
  청춘만 늙어 
  부평 같은 내 신세가
  너무나 서러워서
  창문 열고 바라보니
  하늘만 멀어

가사가 막히는지 고개를 갸웃거리며 고복수의 <타향살이>를 부르고 이어 열찬씨가 

  머나먼 남쪽 하늘 아래 그리운 고향
  사랑하는 부모형제 이 몸을 기다려
  천리타향 낯선 거리 헤매는 발길
  한 잔 술에 설움을 타서 마시며
  마음은 고향하늘로 달려갑니다.-

 나훈아의 <머나먼 고향>을 부르며 둘 다 눈가에 눈물이 흥건한데 똑똑 노크소리가 나며

“밤도 깊었는데 그만 주무시지요. 다른 병실 환자들도 좀 생각해주시고요.”

간호사가 들어오자 금방 흥이 식어 목발을 벽에 세우는 순간 금방 환부에 끊어질 듯 통증이 느껴져 

“너무 아파. 온 김에 진통제나 놓아줘.”

하고 주사를 맞은 뒤 겨우 잠이 들었다.

 

추석 연휴가 끝난 날 치과기공사인 둘째 동서 황서방이 장림동에서 전자대리점을 하는 매형 김덕조씨라는 사람을 데리고 병원에 왔다. 추석에 만나 놀던 중에 열찬씨의 이야기가 나왔는데 전에 열찬씨처럼 교통사교를 당한 경험이 있는 그가 열찬씨가 바보 같은 짓을 한다고 난리가 났다는 것이었다. 
 
자신도 열찬씨처럼 대퇴부를 심하게 다쳐 지금도 약간 절기는 하지만 의사의 진단처럼 수술 6개월 후에 정확히 퇴원하고 물리치료를 받아 지금은 운전도 잘만 한다면서 벌써 석 달이 다 되도록 조금도 차도가 없으면 부상이 낫기는커녕 지금쯤 뼛속이 썩어가는 골수염(骨髓炎)이 걸렸을 것이라며 하루가 급하다고 잘못하면 다리를 잘라야 될지도 모른다면서 아예 자신이 승용차를 몰고 와 당장이라도 열찬씨을 싣고 자신이 치료받은 병원에 가자고 우겨댔다. 

담당의사 천구락씨가 꺼릴까 봐 집안에 가까운 사람의 상이 났다면서 외출허가를 얻어 대티고개를 넘어 낯익은 서부세무서와 서부경찰서, 서구청의 거리가 눈에 들어오자 열찬씨의 가슴이 찡했다. 그러나 승용차는 그런 열찬씨의 마음을 모르는 듯 서대신로타리에서 구덕운동장 앞으로 방향을 꺾어 구덕터널을 통과해 제법 큰 고무공장인 세원화학을 넘어 학장천변의 작은 정형외과 앞에서 멈추었다. 
 

전에 김덕조씨를 치료했다는 의사는 급히 찍은 X-Ray사진을 들여다보며 

“허허, 허허, 이것 참...”

 

※ 이 글은 故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