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307) 제4부 신불산 정기 - 제12장 죽은 자와 산 자⑥
대하소설 「신불산」(307) 제4부 신불산 정기 - 제12장 죽은 자와 산 자⑥
  • 이득수 이득수
  • 승인 2022.11.16 07:00
  • 업데이트 2022.11.12 12: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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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죽은 자와 산 자⑥

시험날짜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서울법학원도 다음 화요일이면 수강이 끝날 예정이라 마지막 모의고사를 치르고 학원 앞을 나서는데

“보소!”

누가 옆구리를 쿡 찌르는데 목소리만 들어도 귀가 번쩍 띄는 영순씨였다.

“당, 당신이 여기 우째?”

“당신 공부 잘 하는가 보러 왔지요.”

애써 웃었지만 웃는 얼굴이 아니었다.

“당신, 암만 공부가 급해도 사람 꼴이 그 기 뭥교?”

아직도 울먹이는 목소리, 눈빛이 풀려있었다.

“뭐 어때서? 내 편하면 최고지.”

“암만 그래도 옷이나 신발이라도 좀 갖추지, 세상에 나는 서울로 공부하러 간 내 남편이 사무관이 아니라 거지 중에서도 상거지가 된 줄 알았지요. 목발 짚은 사람을 찾았기 망정이지 20년 가까이 산 남편 얼굴로 못 찾을 번했네.”

“안 그래도 서울 신림동에 밀림에서 포획한 상처 입은 포로, 베트콩이 나타났다는 소문이 돌고 있단다.”

“...!”

둘은 나란히 고시원을 향해 걸었다. 참으로 기괴한 몰골의 목발장이와 말쑥한 멋쟁이부인이 나란히 걷는 것을 길가의 행인들이 모두들 쳐다보며 수군댔다. 고시원 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에구머니나!”

깜짝 놀란 영순씨가

“보소 여기가 사람 사는 곳이요?”

미로처럼 얽힌 침침한 복도 가득 옅은 햇살에 투영되어 붕붕 떠다니는 노란 먼지들과 매캐하고 시큼한 냄새에 질렸는지 손수건을 꺼내 코를 가리더니

“아이구야!”

열찬씨의 방문을 열자 한숨 섞인 비명을 지르더니

“보소, 다리도 아픈 사람이 이 좁은 데서 우째 잠이나 잤능교?”

“쳐다보는 눈동자가 젖어있었다.

“대각선으로 누우면 충분하다. 내가 언제 고대광실에서 호의호식하던 사람도 아이고 이정도면 충분하다. 봐라, 내 좋아하는 소주도 있고 오징어도 있고.”

“아이구, 냄새야!”

서둘러 흩어진 옷가지와 이불을 개어 제 자리에 놓고 술병과 안주접시, 탁자위의 책까지 정리한 영순씨가

“보소.”

목이 잠겨 착 갈아 앉은 목소리로 부르더니 마침내 눈물을 주르르 흘리며

“우리 집에 내려갑시더. 몸도 아픈 사람이 이 고생을 해서 사무관이 되면 뭐할 낑교? 나는 당신 사무관되는 것도 내가 사모님소리 듣는 것도 다 싫소.”

“무슨 소리? 십년공부 나무아미타불도 아이고 골대 앞에 자빠지는 꼴도 아이고 인자 며칠만 고생하면 되는 일로.”

“며칠이 아이라 단 하루라도 더 버틸 지 겁이 나네요. 그라다가 사무관되기 전에 사람이 먼저 죽겠소.”

“개안타. 씰데없는 소리 좀 하지마라.”

 

같이 저녁을 먹자고 고시원을 나오는 영순씨의 눈이 발갛게 토끼눈이 되어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마땅찮은 식당이 없어 콩나물과 오징어 범벅의 해물 탕을 먹고 골목안의 여관에 들러 급한 대로 회포를 풀고 욕조에 더운물을 받아 영순씨가 꼼꼼하게 열찬씨를 씻기고 버덩다리가 된 무릎을 몇 번 구부려보다 아무 성과가 없자 포기하고 둘이 나란히 침대에 누웠다.

옆방에 아베크손님이 들었는지 금방 숨이 넘어가는 요상한 신음소리가 들려와 마주보고 빙긋 웃다 옷을 입고 밖으로 나왔다.

아이들 밥도 그렇지만 이튿날이 돌아가신 장인어른의 사후 첫 생일이라 같은 항렬인 처삼촌을 비롯한 인척들과 점심을 먹기로 했는데 오랫동안 회사에 다니느라 이제 찬찬하게 부엌일을 하는데 취미가 없어진지 오래인 어머니 순란씨 대신 영순씨가 미역국을 끓이고 생선을 찌고 전을 부쳐야한다는 것이었다. 서울역까지 배웅하려 했지만 영순씨가 사양해 그냥 택시를 태워 보냈다.

 

다음 화요일 서울법학원의 교육과정을 수료한 열찬씨는 아무쪼록 꼭 합격해서 수원의 중앙공무원교욱원에서 신규임용교육을 받을 때 만나자고 옆방의 노계장과 단단히 약속을 하고 고시원으로 돌아와 짐을 꾸렸다.

전화를 받은 상계동 귀찬이 누님의 둘째딸 효경이가 찾아와 이불과 옷가지와 책을 꾸려 둘이 택시를 타고 상계동으로 향했다. 열찬이의 군대생활 중의 그 어렵던 형편이 조금씩 펴 몇 년 전 감사원교육 때 열찬씨가 4주간을 묵어갈 정도의 제법 반듯한 5층짜리 연립주택에 사는 귀찬씨는 처음 친정에서 번듯한 손님, 그것도 감사원에서 교육을 받는 당당한 동생이 온 것이 너무나 대견했던 모양이었다.

몇 안 되는 연립주택의 만나는 사람마다 부산에서 온 우리 동생이 지금 감사원에서 교육을 받는다고 자랑을 했고 벌써 대학생이 된 효숙이, 효선이, 효경이 세 조카들도 말로만 들은 언양에 친 외사촌들이 있는 것은 가마득히 잊고 외가 쪽이라면 으레 열찬씨를 떠올려 외 5촌 당숙이 아닌 친 외삼촌인 줄을 철석같이 믿고 있는 것이었다.

“열찬이 왔는가?”

스무 살도 더 어린 자식 같은 처남을 보며 매형 조형록씨가 벌쭉 웃었다. 건설회사에 고용되어 여기저기 공사입찰을 다니며 자기들끼리 입찰가격과 낙찰순서를 담합하고 낙찰된 회사에서 떡값을 받아내는 전문입찰꾼, 감사원의 회계실무에서 부정당업자로 지목된 그 묘한 직업으로 평생을 지내면서 날마다 마시는 독주에 얼굴과 목의 피부가 땀구멍이 숭숭하고 빨간 딸기코가 점점 더 붉어지고 커져가는 것이 안타까웠지만 본인은 개의치 않았다.

“아이구, 동생 니 얼굴이 거기 뭐고? 거지 중에도 상거지 꼴이네.”

귀찬씨가 깜짝 놀라며 저녁상을 차려오자 조형록씨는 마침 한 안주인 불고기와 잡채를 보고 참을 수가 없다며 소주를 들고 와 열찬씨와 주고받자말자 내리 세 병을 마시고 딸기코가 진달래처럼 선홍색이 되었다.

방이 두개뿐이라 노부부와 아이들이 하나씩 차지하고 열찬씨는 거실에서 자기로 하고 식탁위에 책을 펴고 페이지수가 많은 행정법부터 읽어나가다가 이러다간 다섯 과목을 다 독파하기 전에 시험 날이 닥칠 것 같아 곰곰 생각 끝에 각 교재의 목차부분만 반복해서 읽고 그 과목의 전체적인 윤곽을 먼저 익히고 골격이 되는 큰 제목을 몇 번씩 반복해서 읽고 잔가지인 소제목도 쓰윽 한 번씩 훑었다.

그러다 보니 과목전체의 연결이 훨씬 뚜렷해지는 것 같아서 이튿날 집 앞의 목욕탕에 다리를 풀면서 두 시간 넘게 속으로 목차를 더듬다가 마침내 아이디어가 떠올라 황급히 집으로 가서

1215 대헌장(마그나 칼트)
1613 권리청원
1636 권리장전
1776 미국의 독립선언
1789 프랑스대혁명
1851 산업혁명의 꽃인 런던 대 박람회와 함께 근세도래

다윈의 진화론
칼 마르크스의 공산주의 선언
지그프리드 프로이드, 칼 융, 에릭포름으로 이어지는 심리학의 탄생
막스 베버의 관료주의 이론 탄생
이후 동양에서는
아편전쟁, 홍수전의 난으로 중국의 혼란과 열강침입
은둔의 조선에 실학과 천주교가 전래
1894 동학란과 갑오경장
1876 강화도조약과 부산포개항

이렇게 연대표를 작성하니 헌법, 행정법, 행정학과 민법 심지어 지역개발론의 전개과정이나 주요사건과 이슈가 연대표의 마디와 사이사이에 정리되고 연관되어 비로소 세계사 및 한국사의 정치와 행정의 전개와 발전이 뚜렷하게 각인이 되는 것이었다.

시험 하루 전날 오늘은 공부는 하지 말고 목욕이나 다녀오라고 하는 매형 조형록씨의 말대로 목욕을 하고 오니 뚱뚱한 배에 앞치마까지 두른 영감이 감사원교육시절 열찬씨도 즐겨먹던 함경도식 냉면을 해준다고 슈퍼에서 파는 냉면사리를 삶고 열무김치고명에 얼음을 듬뿍 넣어 두 내외와 셋이 실컷 포식을 했다.

맥주 두 병의 반주가 조금 아쉬웠던지

“처남, 오후엔 머리도 식힐 겸 동막골에 놀러나 가.”

매형이 먼저 옷을 챙겨 입는 바람에 열찬씨 오누이도 따라나섰다. 집이 지하철 4호선 종점 바로 앞의 상계동인지라 얼마 지나지 않아 높다란 3층 건물에 태극기가 나부끼는 동사무소가 나타나자

“누부야, 내 누님 집에서 묵고자고 시험을 봐서 걸리면 저 커다란 동사무소의 직원 20명을 거느리는 동장이 된다.”

무심코 내뱉으니

“아이구, 되고말고. 관세음보살!”

귀찬씨가 곧바로 두 손을 모으고 빌자

“걱정 마. 처남이 그 심한 사고에도 안 죽고 살은 거로 봐서 틀림없이 될 거야. 뭔가 할 일이 남았으니까 죽지 않고 산 거지.”

운동도 할 겸 바람을 쐬자던 사람이 동막골입구에 다다르자 말자 첫 번째 평상 집에 자리를 잡고 도토리묵과 파전과 동동주에 맥주를 푸짐하게 시켰다.

셋이서 천천히 먹고 마시다 해가 설핏 넘어가자 조형록씨는 꾸벅꾸벅 졸다 술잔을 떨어뜨리더니 귀찬씨의 옆구리에 기대어 잠이 들고 열찬씨는 숲속으로 소변을 보러갔는데 어느 순간 길이 헛갈려 물어물어 아까의 평상 집으로 가니 노부부는 되려 열찬씨를 찾느라고 숲으로 들어갔다는 것이었다. 열찬씨는 연달아

“누님! 자형! 조형록씨!”

를 부르고 부부는

“처남! 동생! 열찬아!”

를 부르다 해가 지고 전깃불이 들어온 뒤에야 마침내 이산가족이 상봉하여 곧장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오늘은 아무 생각 없이 푹 자라며 안방에 자리를 깔아주고 누님내외가 거실에 누웠는데 도무지 잠이 오지 않는 열찬씨의 한숨소리가 끊이지 않은지라 하는 수 없이 불을 켜고 냉장고의 남은 술, 소주 두 병과 맥주 세 병을 모조리 마시고서 다시 셋이서 잠을 청했다.

밤이 깊을수록 점점 정신이 맑아지며 콩콩 뛰는 가슴이 방금이라도 장마철의 논둑처럼 사정없이 무너질 것만 같아 자신도 모르게 푸우 한숨을 쉬면 누나 귀찬씨가 그만 자라고 문을 열었다 돌아가기를 반복하다 나중에는 귀찬씨가 문을 열면 일부러 잠든 척을 하고 문을 닫으면 또 한숨을 내 쉬기를 반복하다 잠깐 간신히 잠깐 토끼잠이 들었다.

 

이튿날 속을 달래라며 귀찬씨가 콩나물을 넣고 달걀을 푼 북어 국을 끓여주었지만 입천장이 깔깔해 먹는 시늉만 하고 집을 나섰다.

 

※ 이 글은 故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