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 시인의 단시조 산책 (57) 실업 - 백점례
이광 시인의 단시조 산책 (57) 실업 - 백점례
  • 이광 이광
  • 승인 2022.11.16 09:17
  • 업데이트 2022.11.17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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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
                백점례

비닐조각 흐느낀다
밭둑가에 버려져서

바람이 무성한 날
속수무책 찢겨지며

몸 바쳐 지킨 저 자리
못 떠난다는 아우성

백점례 시인의 <실업>을 읽는다. 이 작품이 보여주는 광경은 수확이 끝나고 농업용 비닐이 찢겨진 채 방치되어 있는 밭이다. 작물을 심기 전 검정비닐로 멀칭을 하는 것은 토양의 수분 유지, 지온 상승, 잡초 억제 등 여러 효과가 있어 필수농법이 된 지 오래다. 그런데 밭의 광경과 시인이 들려주고자 하는 이야기는 사뭇 다르다.

작품의 제목은 비닐조각이 널브러진 밭둑가를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의 농성 현장으로 바꾸어놓는다. ‘몸 바쳐 지킨 저 자리/못 떠난다는 아우성’은 바람에 묻힌 듯 주목받지 못하고 노동자들의 비통한 얼굴만 어른거린다. 역할을 다한 물품이 폐기되듯 사람의 경우에도 그러한 수순을 밟는 걸 당연시하는 오늘의 현실을 본다. 노사가 상생의 정신으로 서로 합심하여 해법을 찾던 시절은 이미 지나간 것일까. 평생을 보장하는 직장은 없다고 봐야 한다. 정부에서는 실업에 대한 대책을 지원하지만 그 이상의 책임은 질 수가 없다. 각자도생의 시대인 것이다.

노동자들의 농성 현장을 목격한 적이 있는 시인은 밭에 버려진 비닐을 보며 그 기억을 떠올린 모양이다. 약자에게 취약한 사회 구조 속의 실업은 재난이나 다를 바 없다. 노동자들의 아우성을 전하며 타인의 고통에 무심하지 않으려는 시인의 심정이 와 닿는다. 실업은 이제 우리 모두의 문제인 것이다.

 

이광 시인

◇이광 시인 : ▷2007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당선 ▷부산시조 작품상, 이호우 시조문학상 신인상, 나래시조문학상 수상 ▷시조집  《당신, 원본인가요》, 《소리가 강을 건넌다》, 《바람이 사람 같다》, 현대시조 100인선 《시장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