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시대11-수필】 혀 - 송은숙
【시민시대11-수필】 혀 - 송은숙
  • 시민시대1 시민시대1
  • 승인 2022.11.18 14:27
  • 업데이트 2022.11.20 10:3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송은숙 수필가

얼마 전 혓바늘이 돋아서 한동안 고생을 했다. 음식을 먹을 때마다 쓰리고 아파서 거울 앞에서 혀를 내밀고 살펴보니 혀끝이 빨갛게 부어 있고 양쪽이 좀 울퉁불퉁하게 패인 것 같다. 혀를 이리저리 돌려보다가 혀는 참 독특한 기관이란 생각이 들었다.

혀는 주머니 속의 손처럼 자기 마음대로 몸속에 넣었다 뺐다 할 수 있는 유일한 기관이다. 혀의 두 가지 큰 기능은 맛과 말인데 이 둘은 발음은 비슷하지만, 양태는 다르다. 맛은 입속의 혀, 느끼고 받아들이는 혀이다. 말은 입 밖의 혀, 드러내고 표현하는 혀이다. 혀는 입 안에 있되 마음대로 입 밖으로 낼 수도 있으니 혀의 두 양태와 기능은 서로 잘 호응한다. 그런 의미에서 약 십 센티미터, 삼백칠십 그램 정도의 타원형인 이 무른 덩어리는 욕망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도구이다.

불교에서는 눈, 귀, 코, 혀, 몸의 다섯 가지 감각 기관에서 야기되는 색, 성, 향, 미, 촉의 다섯 가지 욕망을 오욕이라고 한다. 이 가운데 가장 강력한 욕망이 혀가 불러일으키는 맛에 대한 욕망이 아닐까 한다. 특히 맛은 먹는다는 생존과 직결된 욕망이고, 혀는 미각 이전에 촉각도 함께 느끼게 하므로 두 가지 감각이 어우러져 더 상승 작용을 일으키기 때문이리라. 맛은 감촉 이후에 혀끝에 스며드는 오묘한 무엇이다.

혀는 늘 맛을 통해 자기의 존재를 알린다. 혀에는 ‘미뢰’라는 돌기가 있어 달고, 쓰고, 짜고, 시고, 떫고, 감치는 온갖 맛을 느낄 수 있다. 삶의 여러 즐거움 가운데 먹는 즐거움을 빼놓을 수 없으니 행복은 혀끝에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렸을 때는 눈이 펑펑 오는 날, 마당에 서서 혀를 쏙 내밀고 내리는 눈을 혀끝으로 받아먹었다. 혀끝에 닿은 눈은 살짝 차가움을 남기고 아쉽게도 이내 녹아버려 우리는 연신 다른 눈송이를 향해 입을 벌리곤 했다. 혀로 녹여 먹던 알사탕 맛은 어떤가. 문구점에서 산 아기 주먹만 한 알사탕을 입속에 넣고, 처음엔 하도 커서 잘 움직이지도 않는 걸 혀로 밀어 이리저리 굴리며 그 달콤한 맛에 한나절이 행복했었다. 혀가 없다면 느낄 수 없는 원초적인 행복이다.

이 원초적 행복에 대한 갈증 때문인지 몇 해 전부터 여기저기서 먹방 프로그램이 유행이다. 맛집 탐방, 요리 대결, 엄청나게 많은 음식 먹기 등. 사람들은 타인이 먹는 모습에서 대리 만족과 행복을 느끼는 미묘한 존재다.

드러나는 혀, 표현하는 혀의 대표적인 기능은 말이다. 혀[舌]는 일천 천[千]자에 입 구[口]자가 붙어 이루어진 글자다. 천 가지, 그러니까 온갖 소리를 내는데 혀가 필요하다는 의미가 아닌가.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 때 발음기관인 입술이나 이, 입천장, 혀 등의 모양을 본떠 만들었다니 과연 천재다운 발상이다. 자음 가운데 혀로 소리를 내는 혓소리는 ‘ㄴ’, 반혓소리는 ‘ㄹ’이다. 그 모양이 구부러진 혀 모양새다. 혓소리는 부드럽고 경쾌하다. 노래를 부를 때 ‘나나나’니, ‘라라라’니 하는 것이 다 이 혀의 물렁한 구부러짐 덕분이다. 실제 혀는 얼마나 부드러운가. 피고름을 빨고 상처를 핥아주는 혀는 따뜻한 치료사이다.

하지만 혀는 때로 단단하고 날카로운 비수가 되기도 한다. ‘혀를 놀리다.’가 말을 한다 라는 의미인 것처럼 발음기관인 혀는 곧 언어, 말이라는 의미로 많이 쓰인다. 세 치 혀가 사람 잡는다, 혀 밑에 가시가 있다, 행복과 불행은 혀에 달려 있다 등 혀에 관한 속담은 많다. 성경의 집회서에도 ‘매에 맞으면 맷자국이 날 뿐이지만 혀에 맞으면 뼈가 부서진다.’는 말이 있다. 이런 속담이나 경구는 말을 조심하고 가려서 하라는 경계의 뜻이다.

혀에 관해서는 이솝의 일화도 빼놓을 수 없다.

이솝의 주인이 현명한 노예인 이솝을 자랑하고 싶어서 친구들을 초대한 다음, 이솝에게 가장 값지고 좋은 재료로 요리를 하라고 일렀다. 이솝은 온갖 짐승의 혀를 볶고 굽고 지지고 해서 내놓는다. 그리고 주인에게 하는 말. 아름다운 노래, 달콤한 속삭임, 상찬의 말이 혀에서 나오니 혀야말로 가장 값지고 좋은 재료가 아니냐고. 화가 난 주인이 같은 친구들을 초대해서 이번엔 가장 천하고 나쁜 재료로 요리를 해보라고 하니, 이솝은 지난번처럼 똑같이 혀를 볶고 지지고 굽고 해서 내놓는다. 그러면서 남을 헐뜯고 비방하고 곤경에 빠뜨리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하는 말이 혀끝에서 나오니 혀야말로 가장 천하고 나쁜 것이 아니겠냐고 대답한다. 이솝은 맛과 말이라는, 느끼고 받아들이며 내보이고 표현하는 혀의 양가성을 잘 이용해 자신을 돋보이게 한 셈이다.  

얼마 전엔 밥을 먹다가 순간적으로 혀를 깨물었다. 피는 나지 않았지만 귓속이 찌잉 울리고 눈물이 찔끔 날 정도로 아파 한동안 먹는 걸 멈추어야 했다. ‘입에 든 혀를 깨문다.’는 속담이 사람인 이상 실수를 안 할 수 없다는 뜻으로 쓰이듯이, 혀나 이나 자기 몸속에 있되 가끔 이렇게 엇나갈 때가 있다. 이런 엇나감은 오히려 혀의 독특한 성질을 더 생각나게 한다.

혀를 생각하면 오디를 실컷 먹고 혀가 보랏빛으로 변했던 추억도 빼놓을 수 없다.

우리는 오디 찌꺼기가 붙어 지저분해진 혀를 최대한 힘주어 내밀며 누구 입술이 더 짙어 보이고 누구 혀가 더 까매졌는지 견주어 보곤 했다. 학교에선 아이들이 종종 색소가 든 사탕을 먹고 시퍼렇게 물든 혀를 쑥 내밀며 서로 자기 혀가 더 짙다고 뽐내 보이곤 한다. 입속에 은밀히 감추어졌던 혀가 용수철처럼 불쑥 튀어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굳이 소리로 표현하지 않더라도 혀의 움직임 자체로 의사 표현이 되기도 한다.

혀를 내밀고 메롱 하는 모습으로 유명한 아인슈타인의 사진이 있다. 노학자의 장난기가 가득 느껴지는 그 사진을 보면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고 유쾌해진다. 일상의 긴장이 느슨하고 느긋해지는 느낌. 쏙 내밀어진 혀는 입속과 입 밖의 경계에서 우리를 무장해제 시킨다.

요새는 늘 마스크를 쓰고 다니니 입속의 혀는 마스크와 입술이라는 이중문 안에 종일 갇혀 있는 셈이다. 저도 답답할 것이다. 아이들끼리 혀를 쏙 내밀고 누구 혀가 코끝에 닿는지, 누구 혀가 더 붉은지 견주어 보는 일도 사라졌다. 언제든 입속으로 도망갈 준비를 하고 혀를 빼물며 메롱 하는 가벼운 놀림, 때로 이런 일탈이 그리워진다. 

 

송은숙
송은숙

◇ 송은숙
▷2004년 《시사사》로 시 등단
▷2017년 『시에』로 수필 등단
▷시집 《만 개의 손을 흔든다》 《얼음의 역사》, 산문집 『골목은 둥글다』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