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 승진과 애기동장⑤
물고기의 모형과 그림을 만드는 일도 쉽지 않을 것 같아 관내의 간판 집에 부탁을 하되 눈에 잘 띠면서도 예쁜 디자인을 위해 혹시 미대에 다니는 대학생이 있으면 소개해달라니까 즉석에서 두 명이나 추천되었다.
다음 만만치 않은 비용문제는 구청에서 받은 예산 30만 원외에 동정자문위원회에서 30만 원으로 부담하고 공동어시장과 냉동어판매상조합, 새벽시장번영회에 부탁해 그들의 임직원과 조합원, 상인들도 참여시키면서 자연스러운 찬조도 끌어내고 그래도 모자라면 각 자생단체에서 갹출하기로 의논을 모았다.
마지막으로 동별 경쟁이 심한 판이라 혹시 정보가 누출되어 해안을 낀 충무동, 남부민3동, 암남동에서 아이디어를 가로채거나 모방할 우려가 있다고 단단히 입단속을 하기로 하는데 산복도로의 김정도 자율방범대장이 손을 번쩍 들더니
“동장님, 아무리 물고기분장이 독창적이고 생기발랄하더라도 그것 한 가지 만으로는 부족할 것 같습니다. 제가 듣기로는 인근의 모(某)동에서는 2.5t 트럭 위에 대형 거북선 모형을 만들고 거북선의 눈에 빛이 번쩍번쩍하고 입에서 불길과 연기가 나오는 최첨단 가장행렬을 준비한다고 하는데 우리 동도 물고기분장외에 뭔가 색다른 것을 하나쯤은 더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고 제안해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럼 김정도 회장님의 추가사업 아이디어를 말씀해보시지요.”
열찬의 요청에 김정도 회장은 자연보호와 자원재활용을 홍보할 겸 색색의 병뚜껑으로 봉고트럭위에 두 개의 홍보 판을 바깥쪽을 향해 세우고 그 바탕에 한 쪽은 <자원재활용> 또 한 쪽은 <자연보호>를 세기고 남부민1동을 상징하는 고등어 한 마리를 로고처럼 박고 되도록 밝고 화려한 색깔의 병뚜껑을 모자이크처럼 배치해 햇빛을 받아 눈이 부시도록 반사되게 한다는 계획이었다.
만장일치로 채택되면서 이 또한 철저한 비밀에 붙이고 은밀한 곳에서 작업하기로 하고 각 통장과 부녀회원, 새마을지도자들이 병뚜껑을 모아주기로 하고 제작비와 간식비는 동장이 우선 지급하고 나중에 정산하기로 했다.
누가 무슨 분장을 하고 어떻게 퍼포먼스를 펼칠지 준비가 착착 진행되어 최종리허설까지 하면서 하나의 걱정거리가 생겼는데 그건 동장인 열찬씨의 몸이 불편한 점이었다.
구민축제의 입장식은 구의 기수단을 선두로 동 건재순대로 피켓걸이 앞장을 서고 흰 체육복바지와 동명이 적힌 셔츠를 입은 각동장을 필두로 가장행렬이 행진하는 식으로 진행이 되는 데 이제 겨우 목발을 떼고 비틀비틀 걷기 시작하는 열찬씨로서는 도무지 음악과 걸음걸이를 맞출 수가 없는 것이었다.
고민 끝에 행진은 박철수사무장이 맡고 열찬씨는 본부석에 앉아 정봉석씨를 비롯한 친한 직원들이 남부민1동의 행렬이 지나갈 때 높은 소리로 환호성을 지르게 해 심사위원들에게 강력히 어필하기로 했다.
마침내 구민축제의 날이 밝았다. 단순한 농악대를 비롯해 춘향이와 이도령의 사랑놀이 등 동별로 다양한 볼거리를 만들어 입장하는데 가장 많은 환호성이 터진 것은 물고기행진의 남부민1동과 거북선의 남부민3동이었다.
구청직원들의 예상은 아이디어와 활기찬 모습은 남부민1동이 참신하지만 남부민3동의 거북선건조도 아주 정교하고 화려하며 그 준비과정에 너무나 많은 공이 들어가 무시할 수가 없으며 오랜 기간 서구에서 총무계장을 비롯한 요직을 역임하다 정년퇴직을 얼마 남기지 않고 동장으로 나가 올 연말에 퇴직을 하는 사람 좋고 성실한 김주열 동장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남부민3동이 1등을 차지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입장식에 이어 자랑스런 구민에 대한 시상, 구청장의 대회사, 국회의원의 축사에 이어 2인3각 경기, 줄다리기, 윷놀이 등의 시합이 벌어졌지만 경기자체는 그리 관심이 없고 동별로 파전을 굽고 참치회, 쭈꾸미, 눌린 돼지머리를 안주로 술판을 벌리고 김이 무럭무럭 나는 선지국, 쇠고기국을 끓여 점심을 먹느라고 거대한 잔치마당이 되어버렸다.
바탕 자체가 공동어시장을 중심으로 생선 배를 따거나 새벽시장에서 채소장사를 하며 주로 칼을 들고 밥벌이를 하며 독한 소주, 거친 노동에 욕지거리가 입에 붙고 대부분이 숯 검댕처럼 새까만 얼굴의 동민들이지만 누구보다도 열정적이며 단결심이 강해 남부민1동의 천막 앞은 초장부터 시끌벅적한 술판에 간간이 울리는 북소리징소리에 얼룩덜룩한 깃발과 올망졸망한 물고기모형으로 꽃밭이 되고 우렁우렁 술 취한 목소리로 돗대기시장처럼 붐비기 시작했다. 벌써부터 눈이 갤갤 풀리도록 취해 너나 돌이로 시비를 붙기도 했는데 이 사람, 저 사람 수십 명의 술잔을 받은 열찬씨도 어느 새 술이 취했다.
이어 국회의원과 구청장이 약간의 간격을 두고 저마다의 수행원을 이끌고 각동을 돌며 동장과 구의원을 만나 인사를 하고 부녀회원의 술잔을 받으며 덕담을 건넸는데 둘 다 남부민1동의 극성스런 단체원과 애교만점의 부녀회원에게 잡혀 오랜 시간을 끌었다. 마침내 해가 설핏한 오후 다섯 시 경에 폐회식이 거행되면서 동별 순위가 발표되었는데 구청직원들의 예상을 깨고 남부민1동이 최우수상을 받게 되었다.
준비하는 과정에 가장 많은 정성과 비용이 들어간 남부민3동의 퇴직을 앞둔 김주열동장에게 선물삼아 1등을 주어야 된다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동의 지역적 특성을 가장 잘 나타낸 참신하고 발랄한 아이디어와 다채로운 물고기와 깃발의 알록달록한 화려한 색상으로 축제의 분위기를 한껏 고양시킨 남부민1동이 막상막하로 경합했는데 마지막으로 남부민1동의 병뚜껑 조형물이 상징하는 자연보호와 자원재활용에 대한 홍보효과가 시대적 여망에 맞춘 특출한 아이디어라 많은 추가점수를 받아 남부민3동을 압도했다는 것이었다.
많은 동민들의 거의 다 술이 취해 비틀거리는 판이었다. 쉰 명도 넘는 검은 얼굴의 참석자들이 뛰고 굴리며 환호성을 지르며 난리법석을 떠는데 아직도 마치 콩을 심는 듯 잘숨거리는 걸음걸이의 열찬씨가 단상으로 나가 우승기와 상금을 받고 박철수 사무장에 뒤에서 기를 챙겼다.
동민들 모두가 깃발을 들고 차례로 상금봉투를 만져보며 다시 풍악을 울리며 단번에 소주, 맥주 한 상자씩을 해치워버리고는 구덕운동장에서 법원 앞과 충무동로타리를 거쳐 동사무소에 이르러 또 한 판 풍악을 울리고 자리를 파했다.
이튿날부터 동네의 분위기가 단번에 바뀐 것처럼 열찬씨를 바라보는 동민들과 단체원들의 태도가 호의적으로 변하고 직원들의 눈빛도 신뢰감이 감돌았다.
전국 최초의 행정사무관 동장이라는 저 천둥벌거숭이처럼 젊은 사내가 몇 명의 토박이들이 제멋대로 가지고 노는 동의 각 자생단체의 운영을 바로잡고자 단칼에 조직정비의 깃발을 빼들어 반신반의했는데 정말 상당한 추진력이 있어 과연 무엇이 달라도 다르다는 생각인 모양이었다.
그날 부로 중복된 단체원의 보직을 사퇴한다는 사퇴원도 들어오고 부녀회나 청년회에 가입하고 싶다는 사람도 생기고 방위협의회, 바르게살기위원회에도 여러 사람이 새로 추천되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신명이 난 사람은 동정자문위원회의 만년 제 2인자 도회수의원과 바르게살기운동의 총무를 맡은 장지상위원이었다.
도회수동정자문위원장은 경북 김천출신으로 어려서 부산의 양과점에서 잔뼈가 굵어 아직 공동어시장이 들어오기 전의 고물상과 쓰레기장으로 버려진 매축지에 약간의 땅을 헐값으로 사 조그만 양과점을 열어 겨우 먹고살다 공동어시장이 들어와 인구가 늘고 땅값이 뛰면서 갑자기 팔자가 피어 이제 양과점을 접고 과자공장을 비롯한 몇 개의 슬레이트건물을 세놓아 유복하게 사는 사람이었다.
그는 동사무소의 동정자문위원장과 새마을금고의 이사, 파출소의 선진질서위원, 경찰서의 치안자문위원, 검찰의 경생보호위원 같은 굵직한 감투를 쓰고 있었지만 마을에서는 동정자문위원장과 새마을금고이사장을 지내는 안만종씨와 행동대장격인 서수양부위원장등의 <7형제회>에 밀려 만년2인자를 면하지 못 했는데 드디어 기회가 온 것이었다.
<7형제회>가 독점한 동사무소의 여러 직책을 단 하나만 남기고 물러나면 자신의 경쟁력이 향상될 뿐더러 새로운 골목대장인 동장과 사사건건 대립하는 <7형제회>와는 반대로 새 동장과 친밀하고 우호적인 모습을 보임으로서 자신이 새로운 리더가 될 기회가 온 것이었다.
그가 생각하는 리더는 단순히 동사무소의 동정자문위원장이 되는 동의 1인자가 되는 것을 넘어 이듬해로 예정된 제 2기 구의원출마를 염두에 둔 일이었다.
현재의 정수원의원이 마을의 원로로서 <7형제회>회를 비롯한 모든 유지들의 대부이기는 하지만 이미 나이가 8순도 훨씬 넘어 재출마를 않기로 선언한 상태라 다음 후보로는 동정자문위원회의 부위원장이자 파출소의 선진질서위원장과 명예파출소장을 맡은 서수양씨가 기정사실화된 상태였는데 뜻밖에 야기된 신임 동장과의 갈등을 이용해 자신의 입지를 세울 틈바구니를 발견한 것이었다.
그 때부터 도회수씨는 동정자문위원회를 포함한 모임에서 늘 동장을 감사는 옹호세력이 되었고 열찬씨와 함께 각종 행사를 다니고 술집이나 식당에 들려 친밀을 과시하기도 했다. 또 점심시간에는 자기의 사무실로 동장과 덩치가 태산 같은 허모 정보형사를 초청 점심내기 고스톱을 벌려 돼지고기대신 쇠고기를 넣은 유니짜장을 시켜먹기로 했다.
그런가 하면 동사무소와 가까운 송도아랫길에 정확당이라는 금은방을 경영하는 장지상 바르게살기총무는 도회수씨와는 또 다른 야심가였다. 키는 작아도 통통한 몸매와 두루뭉술한 얼굴윤곽에 늘 웃는 표정의 그는 어릴 때부터 장사가 몸에 익어 상대가 누구이든 그 말을 잘 듣고 기분을 맞춰주며 사람 좋다는 소리를 들어 새벽시장과 동네아줌마들의 계를 비롯한 단체손님을 잘 끌어 상당한 재산을 축적하고 있었다.
또 전임 새벽시장의 사장조카인 예쁘고 다부지고 생활력이 강한 부인과 독일병정처럼 열심히 살고 있었는데 특히 그 부인이 그 때까지 영세상인 들에게 상당한 규모의 일수 돈을 놓아 다달이 엄청난 수입을 올린다고 했다.
평생 화를 내거나 목소리를 높이는 일이 없이 조용조용 사람에게 접근하여 친밀감을 높여가는 그는 동갑인 열찬씨에게 늘 ‘동장님, 동장님’을 입에 달고 살며 특별한 점심약속이 없는 날은 거의 매일 열찬씨를 데리고 주로 일식집에 가서 생 대구탕, 생 명태탕을 대접하고 그날 참복이 들어왔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그 귀한 자연산 복국을 대접하기도 했다.
그 역시 이제 슬슬 활동범위를 넓혀 바르게 살기위원장과 동정자문위원등을 거쳐 차기나 차, 차기(次期)를 바라는 젊은 지도자로 커나가기 위한 원대한 꿈을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그 밖에도 박상택새마을지도자협의회장, 이민자부녀회장들이 사심 없이 열찬씨를 도왔고 통장협의회장인 이용숙통장연합회장, 또 통장들의 실질적인 리더인 김복연 5통장, 김상배 15통장이 똘똘 뭉쳐 동장을 옹위해 갈수록 열찬씨의 입지는 단단해졌다.
그러나 호사다마라는 말을 입증이라도 하듯 시청 감사실로부터 남부민1동의 자생단체운영을 확인하는 감사반이 파견되었다.
<7형제 회>의 멤버를 비롯한 몇 명의 불평분자들이 열찬씨가 안하무인격으로 동민을 무시하고 수십 년을 마을을 위해 봉사한 단체원들을 강제로 잘라 동의 분위기가 엉망진창이 되었으니 동장을 바꿔달라는 진정서를 낸 것이었다. 동장의 감독이나 동의 지도는 당연히 구청장이 해야 되는 것이지만 구청장과 동향인데다 단단한 신임을 받는 처지라 항의해도 소용없는 것임을 알고 아예 시청으로 달려간 것이었다.
그러나 구청의 의견과 마찬가지로 시청에서도 가열찬 동장의 단체원 해촉과 조직정비는 동을 보다 젊고 활기찬 마을로 발전시키려는 지극히 당연한 처사이며 아무런 하자가 없는 행정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후 여러 단체에 중복되게 참여하던 조직원들이 마침내 하나의 직책만 남기고 모두 사표서를 제출했다.
※ 이 글은 故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