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317) 제4부 신불산 정기 - 제14장 산토끼, 토끼야!②
대하소설 「신불산」(317) 제4부 신불산 정기 - 제14장 산토끼, 토끼야!②
  • 이득수 이득수
  • 승인 2022.11.26 07:10
  • 업데이트 2022.11.25 10: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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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산토끼, 토끼야!②

사실 열찬씨로서 된다, 안 된다 달리 선택의 여지도 없었다. 우선 자신의 직근상관인 현직구청장에다 몸이 불편한 그에게 사무관시험의 기회와 공부할 기회를 주어 극적으로 사무관이 되게 밀어준 은인이었고 더더욱 같은 언양, 즉 두동면 이전리출신 동향인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서로가 만족한 결과를 얻고 둘은 한참이나 술을 더 마시며 황소처럼 뚱뚱한 마담이 구워주는 고기로 맛있는 저녁밥을 먹었다. 상관인 자신이, 그것도 구청장의 판공비로 밥을 산다는 것을 그것은 다른 데 쓰시라고, 그 간의 은혜를 갚는다며 억지로 열찬씨가 밥값을 내었다.
 
마침내 구청장과 작별하고 아직도 벙벙한 가슴으로 열찬씨는 다시 사무실로 들어가서 동장실에서 한참이나 뛰는 가슴을 달래야했다. 구청장이 출마결심을 위해 제일 먼저 자신을 찾아오다니. 기획계장이라는 심복자리에 있다 사무관이 되고 더더욱 동향인  만큼 민선구청장에 당선만 된다면 자신도 승승장구할 것이 불을 보듯이 뻔 했다. 우리 어머니가 본 사주팔자에 관물을 먹는다더니 그러다 금방 구청과장, 감사실장, 총무과장이 되고 서기관국장이 될 것이 아닌가? 
 
너무나 황홀한 꿈에서 깨어나 퇴근을 하려 외투를 입던 그가 뭔가 허전한 느낌이 들어 호주머니를 뒤져보니 코트에도 양복 윗저고리에도 심지어 바지주머니에도 지갑이 없었다. 저녁을 먹었던 황소불고기집에도 못 보았다고 했다.

‘왜 이러지? 이 심각한 날에 왜 이런 일이 생기지?’

바지 주머니의 잔돈을 털어 표를 산 열찬씨가 찬바람이 쌩쌩 부는 지하철승강장에서 왠지 모를 불안감에 휩싸였다. 벌써 술이 반이나 깨어 그 붕붕 뜨던 기분도 다 날아가 버리고 이젠 단지 지갑을 잃어버렸다는 찜찜한 기분이 그를 꽁꽁 묶고 조여오기 시작했다.

이튿날부터 김모구청장이 제 1대 서구 민선구청장에 공식출마를 선언한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하고 열찬씨와 같은 날 발령받은 아미2동 박주영 동장을 비롯한 각 동장을 저녁마다 한 두 명씩 만난다는 이야기도 들려왔다.

구정의 모든 초점이 민선선거에 맞춰졌다. 가급적이면 구청장이 많은 구민을 만날 수 있게 구청 각과와 동에서 되도록 많은 행사와 모임을 기획하고 직간접적으로 구청장의 업적은  물론 업무능력과 인품을 홍보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심이 되는 부분은 김모구청장은 오직 일밖에 모르는 일벌레로서 시청의 핵심부서 시정과장을 맡아 안상영시장을 비롯한 역대시장의 돈독한 신임을 받았는데 그 비결은 그 때, 그 때 벌어지는 시의 정책업무와 돌발 상황을 처리하기 위해 밤샘을 예사로 하는 직원들을 다독거리기 위해 한 달에 한두 번도 집에 잘 들어가지도 않고 매일 같이 일하고 같이 저녁을 먹고, 때로 격려차 술을 마시며 월급의 대부분을 써버려 결혼생활 30년이 넘도록 집에는 거의 월급을 가져가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직접 돈벌이에 나서 장사를 하던 아주 우아하고 현숙한 부인이 혼자 힘으로 두 아들을 공부시키고 오로지 일과 출세만 아는 남편을 내조하다 마침내 중병에 걸려 세상을 떠났지만 아주 담담하고 대범하게 일에 열중하며 노모와 두 아들을 잘 건사한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또 그 이야기 끝에는 그렇게 지독하게 일만 하다가도 어쩌다 직원들과 술자리를 가지면 죽은 아내를 회상하며 가끔 눈물을 보이기도 하며 다시 재혼할 생각도 하지 않는 참으로 인간적인 사내, 가장 열심히 일하면서 한 남편으로서도 의리를 지키는 사내 중의 사내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구청장의 인기가 폭발하면서 부산의 지방지에 부산서구에서는 당연히 김모현 구청장이 출마하고 따로 경쟁자가 없을 것이라는 기사가 나기도 했다. 이제 구민이 아닌 유권자를 대하는 구청장의 행보는 더욱 넓어지고 빨라졌고 열찬씨도 회의나 행사시는 물론 점심이라도 같이하는 단체원이나 유지들에게 김형호구청장이 다른 것은 몰라도 참으로 업무에 성실하고 사람을 대하는 데 인정이 넘치고 두주를 불사하는 사나이중의 사나이요, 인간성이 좋은 사람이라는 홍보를 꾸준히 해왔다.

당시 월요일 아침의 간부회의는 어떻게 하면 구청장이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골목골목의 주민들이 실제로 고마움을 느끼고 표를 찍어줄 이런 저런 사업을 벌일 것인가를 보고하는 것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때우기 시작했다. 

그런 흐름에 맞추어 열찬씨는 남부민1동 13통, 14통의 고지대에 대원사 절 쪽에서 내려오는 산수도물을 저장하여 일 년 내내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저수조를 만드는 사업을 제안했고 사업은 일사천리로 전개되어 단번에 예산까지 확보되었다. 

이미 시작한 천마산의 꽃길조성과 산토끼방사사업의 준비와 저수조공사로 열찬씨는 날마다 오후가 되면 산복도로위의 고지대와 천마산을 오르락내리락하는 부지런하고 열정적인 젊은 동장으로 소문이 나고 그가 자랑하는 김모구청장에 대한 지지도 늘어나고 김모구청장이 당선되면 가열찬동장도 날개를 단 용마처럼 훨훨 날 것이라는 소문도 돌았다.

현역구청장이 출마하려면 3개월 전에 사표를 내어야 된다는 선거법에 따라 김모구청장이 공식출마를 선언하기 하루 전날 저녁이었다. 국장, 실장, 과장, 동장 구청의 전 간부가 내일 퇴직하는 구청장을 송별하는 회식자리에서 구청장의 가장 충실한 심복 이장희 기획실장이 건배를 제의하며

“간부 여러분, 내일이면 우리의 김모구청장님이 새로운 민선구청장에 도전하기 위해 우리 구를 잠시 떠나게 됩니다. 옛 말에 여자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내를 위해 옷을 벗고 사내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는 이야기는 굳이 관포지교(管鮑之交)를 들먹이지 않아도 다들 잘 아실 겁니다. 이제 우리는 서구청의 한 간부로서 또 한 사내로서 큰 꿈을 품고 우리 구를 떠나는 김모구청장님, 누구보다도 우리를 잘 알아주고 살펴주던 부모 같은 청장님을 위해 모두가 힘을 합하여야 될 줄 압니다.”

긴 이야기 끝에 목소리를 낮추자 분위기가 숙연해지는데

“우리 모두 김모구청장님의 당선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각오로 임합시다. 우리의 목숨을 내어놓읍시다. 건배!”

비장하게 소리치자 전체가 더 큰 목소리로 재창했다.

이튿날 김형호 구청장의 퇴임식에는 구청의 직원과 구 단위 단체원과 유지는 물론 시청의 옛 동료들까지 몰려와 좁은 회의실이 터져나갈 지경이었고 총무과장의 업적보고와 구청장의 이임사가 전개되며 수차례의 박수가 길게 이어지다 마침내 여직원 6명으로 구성된 합창단의 송별가가 불러지는데

 일송정 푸른 솔은 늙어늙어 갔지만
 한 줄기 해란강은 천년 두고 흐른다.
 지난 날 강가에서 말 달리던 선구자
 지금은 어느 곳에 거친 꿈이 깊었나.

1절이 끝나자 장내에 와아 박수가 터지면서 환호성을 질러댔다. 김형호구청장이 민선의 새 세상으로 나가는 선구자가 된 것이었다. 그 비장한 분위기에 젖었는지 구청장의 눈가에 물기가 맺히는데

 용두레 우물가에 밤새 소리 들릴 때
 뜻 깊은 용문교에 달빛 고이 비친다.
 석양을 등에 지고 말달리던 선구자 
 지금은 어느 곳에 거친 꿈이 깊었나.

2절이 불려 지면서 분위기는 더욱 고조되고 환호성도 높아갔다. 마침내 3절까지 노래가 끝나고 김모구청장은 회의실 문 앞에 서서 퇴장하는 참석자에게 일일이 악수를 청하며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열찬씨의 순서가 되자

“고맙다. 내 자네 말에 많은 용기를 얻었지. 고맙네, 정말.”

정이 뚝뚝 흐르는 표정으로 손을 잡았다.

“알겠습니다. 청장님, 열심히 돕겠습니다.”

열찬씨도 씩씩하게 대답했다. 

 

그렇게 성대하게 퇴임식 겸 출마선언을 하였지만 단 사흘도 못 가 사태가 급변하였다. 골수여당지역인 부산 서구의 구청장공천에 변모 전구청장이 공천을 신청한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김형호 구청장의 전임구청장인 그는 당시 서구를 떠나 북구에 근무하고 있었는데 현 근무지인 북구보다는 자신의 집이 있는 서구에 출마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는 것이었다. 얼핏 생각하면 같은 공무원선후배인 두 사람이 각자의 근무지에 출마하면 될 것 같았지만 변모 구청장은 자신이 동대신동의 명문 K고등학교를 나온 데다 결혼 이후 쭉 서구에 살아온지라 동문과 이웃의 연고만 해도 상당히 도움이 될 것 같아서였다. 

공천신청을 접수하고 마감하기 전까지 구청간부들과 단체장들 사이에는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아직 대부분이 현직으로 구청장실에 앉아있는 김모 현구청장을 지지하는 것 같았지만 아무래도 학연, 지연이 깊은 변모구청장이 공천을 딸 것 같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벌써부터 말을 갈아타야 된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심지어 벌써 구청의 모모 간부와 아무개 회장이 몰래 북구청의 변모구청장을 만나고 왔다는 소문도 퍼졌다.
 

당시 천마산 꽃길조성과 산토끼복원사업, 13통 간이상수도 저수조공사를 하느라고 날마다 수백 개의 가파른 계단을 올라 산복도로를 건너 천마산의 체육공원으로 오르는 열찬씨의 마음이 뒤숭숭했다.

 

 ※ 이 글은 故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