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이
오창헌
지구는 돈다
그러자 팽이는 쓰러지며 울었다
세상이 온갖 분풀이할 때도 태연했는데
무시 폭언 폭행 무수한 채찍질에도 당당했는데
지구가 도는 이유를 알고는 울었다
소위 중앙이라는 가면의 말솜씨는 훌륭하다
자신을 내줄 줄 모르고 자신에게 집착하는 병이 있지
변방이라는 가면 또한 이에 못지않다
자신을 팽개치고 중앙이라는 가면에 목매다니까
대한민국이 서울공화국이 되어가는 요즈음
수도권이 중심의 가면극을 펼치는 요즈음
수도권의 일극주의가 대한민국을 망치는 요즘
변방이라는 가면을 벗기면 보인다
아기 울음소리 사라지고 청년들이 사라지고
빈집들이 늘어나고 학교와 마을이 사라진다
세상은 저들을 위해 아무 말도 남기지 않았다
세상은 저들이 스스로 무엇을 행동할지만 남겼다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한국적이고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
다들 모르지, 팽이가 돌다 쓰러질 때
팽이의 중앙이 중심을 잃어서가 아니라
팽이의 변방이 중심을 잃어 쓰러진다는 걸
어느 날, 지구가 돌며 말했지
나의 중심은 변방에 사는 너희들이야
혹 너희가 잠이 들어도 나는 돈다
그러자 팽이는 울고 말았지
<시작여화>
지난해부터 수도권 외 지역 소멸이 급증하고 있다. 한국고용정보원 계간지 <지역산업과 고용> 2022년 봄호에서 이상호 고용정보원 연구위원은 전국 228개 시군구 중 113곳을 ‘소멸위험지역’으로 분류했다. 한 곳 모자란 절반이다. 이른바 수도권 외 지역 소멸의 원인은 빠른 고령화와 수도권으로 다른 지역의 젊은 인구가 대규모로 몰려가는 게 문제의 근원이고, ‘명문대’와 ‘좋은 일자리’가 수도권에 집중돼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부울경 지역의 인구도 한 해 한 해 줄어들고 있다.
2022년 8월 기준으로 부산은 2021년 335만 명에서 333만 1,444명으로, 경남은 331만 4천 명에서 329만 명으로, 울산은 112만 2천 명에서 111만 3천 명으로 줄어드는 속도가 가팔라지고 있다. 특히, 경남은 경남신문 2022년 3월 21일 자에 따르면 청년[20~39세]의 유출이 광역시도 중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고, 수도권으로의 유출이 대다수를 차지했다고 한다.
소멸을 막으려면 부울경 지역을 젊은이들이 살만한 곳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이구동성이다. 처방은 차고 넘치는데 실천이 없다. 한계에 다다른 소멸 위기 극복을 위한 현행 지원정책에 손 놓고 있을 여유가 없다. 그러니 부울경 정치권만이라도 부울경메가시티의 유불리를 넘어 실천가능한 해법을 내놓아야 한다.

◇ 오창헌 : ▷시집 『해목』 ▷‘고래를 사랑하는 시인들의 모임’ 대표 ▷‘경부울 문화연대’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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