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318) 제4부 신불산 정기 - 제14장 산토끼, 토끼야!③
대하소설 「신불산」(318) 제4부 신불산 정기 - 제14장 산토끼, 토끼야!③
  • 이득수 이득수
  • 승인 2022.11.27 07:10
  • 업데이트 2022.11.26 18: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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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산토끼, 토끼야!③

당시 천마산 꽃길조성과 산토끼복원사업, 13통 간이상수도 저수조공사를 하느라고 날마다 수백 개의 가파른 계단을 올라 산복도로를 건너 천마산의 체육공원으로 오르는 열찬씨의 마음이 뒤숭숭했다. 아침나절에는 남항 가득한 해무가 자갈치바닷가의 수많은 점포와 선박과 깃발과 행인과 소음을 지워버려 갑갑한 시야처럼 그의 마음이 늘 트릿하고 찜찜하며 무언가 불안하기 시작하고 볼일을 보고 사무실로 내려오는 한낮에도 황사가 덮이듯 흐리고 어둑했다.

날이 맑은 날 산복도로나 천마산기슭에서 조용히 남쪽으로 수평선을 응시하면 거뭇한 선으로 대마도가 전망되는데 그 멋진 순간에도 마치 물위에 뜬 대마도처럼 시꺼먼 막대기로 누가 그의 가슴에 빗장을 지르는 것만 같았다. 

마침내 공천발표가 있던 날, 열찬씨의 불안한 예감이 적중하고 말았다. 지역연고가 많은 변모구청장이 공천된 것이었다.   변모구청장과 측근이 환호작약이 끝나기도 전에 김모구청장은 곧장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순간 구청과 관할에 숨이 막힐 듯 불안한 긴장과 서로가 서로의 눈치를 살피고 의심하는 날카로운 눈빛이 흘렀다.

나이가 좀 든 단체원 몇이 조심스레 현 구청장이 공천에서 탈락, 여당의 텃밭인 이곳에서 아무래도 당선가능성이 희박하니 이제 낙천자 김모구청장을 지지하거나 동석하는 일이 없도록 하고 최소한 중립은 지켜야 된다고 조심스레 열찬씨에게 권했다. 만약 변모구청장이 당선되어 남부민1동장 열찬씨가 낙선자 김형호를 지지한 사실을 알게 되면 당신의 전정(前程)은 그것으로 끝장이 난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이 부처님도 돌아눕는다는 처첩간의 씨앗다툼, 즉 한 남자를 차지하고 고임을 받기위한 것이라면 사내들 간의 가장 지독한 다툼과 원망은 정치적 투쟁, 즉 선거에서 뉘 편이었느냐 하는 권력다툼이며 이는 여인들의 싸움이 단순히 가정이란 울타리 안의 집안싸움인데 비해 한 지역사회전체에 엄청난 사건을 몰고 오는 대 사건이며 정치보복이란 후폭풍을 몰고 오는 것이라고도 했다.

“충고말씀은 고맙습니다. 제가 알아서 잘 처신하겠습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열찬씨는 사내가 한번 마음을 먹고 밀어주기로 한 이상 꿋꿋하게 밀고 나가야 된다는 생각이었다. 

무엇보다도 출마를 저울질하던 당시 맨 처음 자신을 찾아와 출마여부를 묻던 열기가 가득한 김모구청장의 눈빛을 잊을 수가 없었고 송별회자리에서 이장희 감사실장이 하던 ‘사내는 오로지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쳐야한다.’는 말도 지울 수 없었고 퇴임식장에 선구자가 울려 퍼지던 비장한 분위기도 떠올랐다.
 

마을 안에서도 슬금슬금 공천여파가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그전까지 젊은 동장 열찬씨를 열렬히 지지하고 모든 행사에 적극적이던 새마을지도자와 부녀회원, 청년회원 몇몇이 천마산 등산로에 꽃을 심거나 산토끼 방사장의 울타리에 그물을 치는 작업에 나타나지 않고 길을 가다 눈이 마주쳐도 슬며시 피하는 것이었다. 열찬씨가 김모현구청장 측이라는 점도 있었지만 이미 공천자인 변모구청장의 측근에 붙은 것인 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까짓 건 약과였다. 고기가 물을 만난 듯 7형제회의 서수양동정자무위원회 부위원장을 비롯한 토박이 그룹들이 사사건건 동장을 물고 늘어지는 것이었다. 심지어 그중에서 가장 입이 험한 정현조 방위협의회회장은 단체장회의석상에서 

“보소. 가열찬동장! 당신은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이란 철칙을 지키지 않고 왜 공공연히 김모무소속후보의 지지를 선언하고 단체원들의 지지를 끌어내려는 거요. 그리고 김모구청장의 지원으로 벌이고 있는 천마산산토끼 방사사업과 꽃길조성, 13통 산수도 저수조사업을 당장 중단하시오!”

하고 핏대를 세웠다.

열찬씨가 그건 선거하고 관계없는 단순한 행정행위, 동민의 단합과 정서순화, 식수난해결을 위한 것으로서 흔들림 없이 추진되어야 된다고 설명해도

“당신 같은 천둥벌거숭이, 세상물정을 모르는 하룻강아지는 선거가 끝나는 순간 바로 모가지를 날리고 말 거야! 내 당신을 동장자리에서 쫓아내지 못 하면 사내자식이 아니다!”
 노골적으로 삿대질을 하고 서수양씨 일행은 비시기 웃음을 머금었다. 그래도 그중에서 제일 점잖고 원만한 안만종 동정자문위원장이 사태를 수습하고 술집으로 자리를 옮겨 분위기를 풀어보려 했지만 그날 역시 맥주병이 난무하고 말았다.

 

그 해 지방선거에는 처음 실시하는 단체장선거와 동시에 지방의원, 즉 시의원, 구의원의 선거가 실시되는데 그게 또 남부민1동을 엄청난 소용돌이에 몰아넣었다. 충무동, 남부민 1,2,3동 암남동의 5개동을 선거구로 하는 시의원선거는 명망 있는 교육자요 사회사업가인 김허남 현의원이 난공불락의 요새를 구축하여 아무 문제가 없었지만 문제가 남부민1동 안에서 단 한 명을 뽑는 구의원선거였다.

소의 꼬리보다는 닭의 대가리가 된다는 말이 있듯이 외진 산골, 좁은 골짜기일수록 그 안을 좌우하는 골목대장이 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 특히 사내들이 지배욕 또는 호승(好勝)심이 아니던가? 

주민대부분이 어선을 타거나 공동어시장의 생선을 운반하고 가공공장에서 명태 배를 따고 새벽시장에서 채소를 팔고 소주에 절어 새끼만 얼굴들이지만 누구보다도 솔직하고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갯가마을 남부민1동에 지금까지는 공식적 골목대장 동장이 지배하고 마을의 유지들과 단체원들이 동장주변에 스크랩을 짜고 마을을 끌어왔다면 민선이후로는 구의원이라는 또 다른 권력자가 동장과 견제와 균형을 이루고 이끌어가는 권력분립체제로 변한 것이었다. 그런데 당시의 정수원구의원이 8순이 넘은 노장이라 자연스럽게 은퇴를 하고 이제 새 구의원이 뽑히게 된 것이었다.
 

아주 자연스럽게, 어쩌면 당연한 일처럼 7형제회의 리더 서수양씨가 구의원출마를 선언하고 동민들은 당연한 일로 받아들였고 누구나 그의 당선을 믿어 의심하지 않았다. 오랫동안 지역에 살면서 마을일에 나서고 수많은 이웃과 친지에 둘러싸여 상당한 세력을 가진 그를 이길 사람이나 도전할 사람이 감히 나서지 못 할 것이라 누구나 믿고 있었다.

그러나 예상을 깨고 도회수 동정자문위원이 돌연 출마를 선언했다. 그런데 그 출마의 변이라는 것이 좀 묘했다. 지금껏 남부민1동은 서수양씨를 비롯한 7형제회가 동사무소와 새마을금고를 비롯한 모든 자리를 독점하고 동네일을 좌지우지하는 바람에 마을발전이 늦고 고리타분한 동으로 남았는데 이제 자신이 그런 적폐를 일소하고 젊고 의욕적인 가열찬동장을 도와 밝고 희망에 찬 마을을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누가 들어도 그럴 듯한 말이었지만 안 그래도 공천탈락자의 편에 섰다고 의심이 눈초리를 받고 있는 열찬씨의 입장이 더욱 난처해지고 7형제회에서 싸잡아 공격하기에 더없이 좋은 빌미가 되었다. 이제 그야말로 공적(公敵)이 된 것이었다.
 
 남부민동의 만년 2인자 도회수씨는 동사무소와 새마을금고에도 관여는 하지만 주로 파출소를 통해 경찰서로, 또 경찰서를 통해서 검찰로 드나들며 명예파출소장, 경찰서 선진질서위원, 지방검찰의 재활지도위원등으로 출입하며 극도의 권력지향을 보이고 있었다. 

그러나 마을 안에서는 그의 그런 앞길을 번번이 서수양씨의 7형제회가 가로막아 그는 동사무소에서도, 새마을금고에서도 항상 제 2인자가 되어 단 한 번도 새마을금고의 이사장이나 동정자문위원회의 위원장이 되지 못했고 7형제가 주도하는 각종 회의나 행사에 가끔 이의를 걸어보는 것이 유일한 존재가치였고 7형제회 역시 매사 그를 견제하고 봉쇄하는 데 전력을 다하고 있어 지난 번 동 단체원정비나 산토끼방사사업에 가열찬동장을 지지하며 7형제회와 맞섰던 것이었다.

그렇다보니 그의 선거전략이라는 것은 당연히 서수양후보와 7형제와는 반대로 가열찬동장과 매우 협조적이며 동장이 추진하는 모든 일에 앞장서는 미래지향적인 마을일꾼임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열찬씨가 출근을 하기 무섭게 차나 한 잔 하자면서 매일 동장실로 찾아온 그는 동장의 일거수일투족을 함께 하며 마을 사람들에게 동장과의 친밀함을 과시했고 마을을 돌면서 선거운동을 하다가도 점심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동사무소에 나타나 같이 점심을 먹었는데 그것도 매일 식당을 돌아가면서였다. 그렇게 해서 식당주인의 표라도 확보하려는 셈인 모양이었다.

불안한 가운데서 선거 날은 점점 다가왔다. 김형호전구청장은 가끔 전화를 걸어 서로 안부를 묻거나 사소한 동정을 이야기 하곤 했지만 열찬씨의 입장을 생각해서 동사무소에 들르거나 길에서 만나도 수인사만 할뿐 동행하는 일은 없었다. 반대로 변모 공천자와 일행은 외고 펴고 동사무소에 드나들고 직원에게 무얼 묻거나 협조를 요청하기도 했지만 가장 큰 목적은 아무래도 반대편으로 소문난 가열찬동장의 동향을 파악하는 일인 것 같았다. 

그러다보니 수정다방 2층에서 애송이동장이 물러날 때까지 지켜보겠다던 강모 전 동장의 감시와 악담도 한층 치열해지고 7형제의 핍박과 악담도 보란 듯이 심해졌다.

그렇다고 벌인 일을 중단할 수도 없는 일이라 늘 찜찜하고 갈아 앉은 기분으로 이제 절반이하로 줄어든 단체원들과 함께 여전히 천마산을 오르내리며 꽃을 심고 그물을 쳤다.

처음 나비처럼 나풀거리는 팬지와 데이지를 등산로 가에 심었을 때 사람들은 마을이 생긴 이후로, 자신들이 등산을 다닌 이후로 이렇게 산뜻하고 기분 좋은 일은 처음이라며 열찬씨에게 악수를 청하고 칭찬이 자자했다. 그러나 이튿날 오전 출근과 함께 등산로에 올라간 열찬씨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애써 심은 꽃이 거의 절반이나 뽑혀나간 것이었다. 호사다마, 너무 화사하고 예쁘니까 등산객들이 저도 몰래 뽑아간 모양이었다. 아무리 책 도둑, 꽃 도둑은 죄가 없다고 하지만 열찬씨로서는 기가 찬 일이었다.

 

구청에 회의를 마치고 돌아오는 날 동기생인 아미2동 박주영동장이 그를 불러 세웠다. 다방에 앉아서 하는 말이 세상이 참 더럽다, 인간들이 변해도, 변해도 그렇게 쉽게 변할 줄을 몰랐다며 열을 올렸다.

무슨 말이냐는 열찬씨의 물음에 벌써 구청간부 대부분이 공천자 변모구청장 쪽에 줄을 서고 남은 사람은 당신과 나를 비롯한 몇몇일 뿐이라고, 아무튼 상대측에 책잡힐 만한 위험한 일은 피하고 몸조심하라는 말을 하고 헤어졌다.

가뜩이나 마음이 뒤숭숭한 판에 사무실에 돌아오자 말자 사퇴한 구청장자리를 직무대행하는 부구청장의 전화가 왔다. 수인사가 끝난 후 그는 대뜸

“이 동장, 나는 이 동장이 머리도 좋고 영리한 사람인줄 알았는데 요즘 왜 그러는 줄 모르겠소. 이동장 때문에 항의를 하고 투서를 넣은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란 말이요.”

하고 혀를 끌끌 찼다. 대충 짐작은 하고 있는지라

“예. 저도 말썽이 없도록 각별히 행동과 발언을 조심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더욱 주의하겠습니다.”

대답했지만

“조심한다고만 되나? 이미 당신이 김모전구청장의 사람으로서 당시에 예산을 딴 산수도공사를 누구나 다 알고 있지 않나?”

또 혀를 끌끌 찼다.

“그거야 그렇기도 하지만 저는 고지대영세민들의 급수난을 해결하기 위해 당연히 동장으로 해야 될 일을 하는 것 아닙니까?”
“허허. 이 사람아. 이하부정관(李下不整冠)이라고 의심받을 일을 당초에 하지 말아야지 하필이면 선거를 목전에 두고 오얏나무 밑에서 갓끈을 고쳐 매는 그런 어리석은 일을 한단 말이요?”

그렇고 보니 그렇기도 했다. 

“그건 그렇고 산토끼방사사업은 계획대로 추진할 거요?”
“예. 이미 매스컴에 보도도 많이 나갔고 동민들과 단체원들에 대한 약속도 있고 또 별정직도 아닌 행정사무관인 동장이 선거를 이유로 일을 중단할 수도 없고 무엇보다도 남부민초등학교 학생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일이고 해서요.”
“하긴 그렇기도 하군요. 그러나 아무튼 조심해서 행사를 치르세요. 초청도 둘 다 같이 하거나 둘 다 아니 하거나 하되 가급적이면 둘 다 안 하는 것이 속도 편하고 말썽도 없을 것이요.”
“예, 잘 알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아마도 마지막 초청 건에 대한 훈수를 하느라 전화를 한 것 같았다.

 

세상이 묘한 것은 단체원이나 일반 동민도 아닌 바로 수하의 동직원도 벌써 몇몇은 행동거지가 이상하고 열찬씨의 눈치를 보며 눈을 바로 맞추지 않는 것이었다.

 

 ※ 이 글은 故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