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시대12-유라시아의 역사와 문화를 찾아서】 중앙아시아에선 김태희 씨가 정말로 밭을 맬까?
【시민시대12-유라시아의 역사와 문화를 찾아서】 중앙아시아에선 김태희 씨가 정말로 밭을 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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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2.12.19 10:30
  • 업데이트 2022.12.21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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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혁 (사)유라시아교육원 원장
밀가루반죽하는 농촌의 우즈베키스탄 미인
밀가루반죽하는 농촌의 우즈베키스탄 미인

중앙아시아에 대해서 우리나라에 많이 퍼져있는 이야기가 더러 있지만, 그중에서 가장 유명한 이야기는 이것이 아닌가 한다. 거기 가면 김태희 같은 예쁜 배우들이 밭을 매고 있다는 속설 말이다. 필자는 1991년 8월말부터 중앙아시아를 들락날락하였다. 필자가 생각하기로도 그 속설이 맞는 거 같다.

그곳에 가면 미인이 정말로 많다. 특히 우즈베키스탄이 그런 것 같다. 깊고 부리부리한 눈빛들, 짙은 눈썹, 태양을 닮은 둥글고 환한 얼굴, 종교심이 마음 가운데 가득해 보이는 경건하고 수수한 모습들...

꼭 면화밭에만 그런 자연미인들이 많은 게 아니다. 길거리 카페에 들르거나 혹은 공장이나 학교에 가거나 어디서나 때 묻지 않고 순수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인위적인 미, 억지 미가 판을 치는 지구의 다른 곳과는 뭔가 미의 기준이 다른 곳, 중앙아시아는 그런 순박한 매력이 넘치는 곳이다.

그러면 중앙아시아에 왜 이렇게 유난히 미인이 많을까. 그건 중앙아시아의 ‘중앙’이라는 그 이름이 이미 답을 내포하고 있듯이, 이곳이 동서양 문명의 교차로이기 때문이다. 우즈베키스탄의 경우만 해도 그렇다. 2022년을 기준으로 이곳에 3천5백30만 명의 많은 사람들이 사는데, 여기선 다른 인종과의 결혼이나 혼혈이 지극히 자연스런 현상이다. 삶의 조건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단일 민족’ ‘단일 혈통’, 그런 얘기를 이곳 사람들에게 했다간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린가?”

그 분들이 그럴 것이다. 하나의 민족이니 하나의 혈통이니 하는 ‘이념’들은 그 자체가 이미 진실과 거리가 먼 ‘신기루’나 ‘허상’일뿐 아니라, 이곳의 강렬한 햇빛 그리고 풍성하고 다채로운 다문화 조건 속에선 맥을 붙이고 살아갈 수 없게 되어있다.

우즈베키스탄 국민을 이루는 주요 인종만 따져보아도, 1313~1341년까지 킵차크 칸국[금장한국, 주치 울루스]의 칸이었던 우즈벡 칸의 후손이라는 우즈베크인, 타지크인, 러시아인, 타타르인, 카자흐인, 카르칼팍인[호레즘 지방의 옛 카자흐인], 키르기스인, 투르크멘인, 우크라이나인, 아제르바이잔인, 벨라루스인, 고려인 등 일일이 나열하기가 힘들다. 한 집 걸러 한 집에 슬라브인, 독일인, 터키인, 위구르인, 유대인이 사는데 어떻게 그들과 우즈베크 인 사이에 사랑이 싹터지 않고 통혼이 이루어지지 않겠는가. 그러니 미인이 마구 쏟아질 수밖에 더 있겠는가!

 우즈베키스탄 남서부의 고대토성 오르는 길
 우즈베키스탄 남서부의 고대토성 오르는 길

중앙아시아에 대한 지리적 개념 정의가 여럿 있고 혹자는 몽골이나 페르시아 혹은 아프가니스탄을 여기에 포함시키지만, 보통은 소련 연방을 이루던 아시아 중앙의 5개 나라, 즉,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타지키스탄을 ‘중앙아시아’라고 부른다.

여기서 유라시아 대륙의 새로운 맹주를 꿈꾸는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투르크메니스탄은 동쪽의 알타이 산맥 쪽에서 이동해온 투르크 계(돌궐족)이고, 유일하게 타지키스탄만 바로 아래의 아프가니스탄과 함께 서쪽의 페르시아에서 온 이란계에 속한다.

이곳 중앙아시아는 세계의 한가운데라는 지리적 위치와 푸른 초원과 오아시스 그리고 풍부한 산물 등으로 인하여 예부터 자기 땅의 주인을 숱하게 바꾼 곳이다. 스키타이[B.C 8세기~] -> 페르시아 -> 그리스[마케도니아 알렉산더 왕의 중앙아 원정, 기원전 330년] -> 아랍의 중앙아시아 오아시스 도시 침략[8세기 초~] -> 몽골제국의 호레즘 공격[1218~] -> 러시아 제국의 남하[1860~] 등이 그것이다. 중간 중간에 당나라, 준가르제국, 청나라, 영국 등의 침략도 있었고 지난 호에서 살펴보았듯이 ‘아블라이 한’과 ‘티무르 제국’의 영광도 있었다.

중앙아시아는 해로가 열리고 바다를 통한 서구열강 사이의 제국주의 경쟁이 본격화하기 전까지는 세계를 잇는 고속도로였다. 무수한 사람과 물자 그리고 각종 문화와 사상이 로마와 중동에서 이곳의 초원과 파미르 고원, 텐샨산맥, 타림분지, 쿤룬산맥을 넘어 티베트 고원으로, 중국의 둔황과 장안으로, 한반도의 경주로 이어졌다. 
 
필자는 우즈베키스탄 호레즘 지방의 히바에서 누쿠스로 이어지는 이런 토성[kala]을 맞닥뜨릴 때마다 감동에 숨이 막히는 경험을 하곤 한다. 서쪽의 페르시아와 남쪽의 인도를 연결하는 통로로서 이곳이 번성하였을 때의 흔적인데, BC 3~ 4세기의 유적이라고 안내판에 적혀있었다.

지금 필자가 서있는 저 자리에 지금으로부터 2천3백 년~2천4백 년 전에 이 초원을 굽어보며 멋진 크레믈린[성곽]들이 서있었다니!

그 크레믈린 안에서 살았을 많은 사람들의 웃음과 탄식, 그 곳을 들락거렸을 수많은 상인들의 흥정소리와 딸각거리는 식기소리가 그 폐허 위를 서성이고 있었다. 말들과 양들, 소와 염소가 신기루 속에서 보였고, 그들이 마굿간과 외양간에서 내는 냄새, 쿰쿰한 짚풀 썩는 냄새가 나는 듯하였다. 독수리 한 마리가 성곽 위에서 하늘 높이 감시 비행을 하고 있었으며, 근처에 마을도 없던데 어디서 달려왔는지 한 깡마른 소녀가 유령처럼 달려와서는 “주차비를 내고 가야한다”며 고사리 손을 내밀었다.

한 세대를 30년으로 치고 2400년을 30으로 나누니 80이라는 숫자가 나온다. 이 성곽 안에서 대장장이로 일하던, 혹은 저 성곽 위를 경비하던 어느 경비대 청년의 80대 후손쯤 되려나 싶다. 여의도의 여러 수십 배나 되어 보이는 텅 빈 벌판에서 무슨 주차비인가 싶어 웃음이 나왔지만, 그 고사리 손에 지폐 하나를 듬뿍히 쥐어주고 돌아서는 마음이 가볍고 유쾌하였다. 

우즈베키스탄 남서부의 고대 토성 위에서
우즈베키스탄 남서부의 고대 토성 위에서 필자

자, 우리의 여행 루트를 우즈베키스탄 남서쪽의 호레즘 지방에서 동쪽으로 돌려 페르가나 지방으로 가보자.

여기는 중국의 수나라와 당나라[581~907년]의 불교문화 흔적이 강한 곳이다. 이슬람의 우즈베키스탄에 무슨 불상이고 절터인가 하겠지만, 고고학적 발견이 그 같은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페르가나가 어디냐 하면, 바로 여기를 말한다.

     

  불교 유적이 많이 발견되는 우즈베키스탄의 페르가나 지방
  불교 유적이 많이 발견되는 우즈베키스탄의 페르가나 지방

중국과 우즈베키스탄의 종교학자, 고고학자들이 같이 이 같은 문화융합 현장을 발굴하고 있는데, 절터도 나오고 불상이나 절에서 사용하던 다양한 의례 도구, 탱화 등이 출토되고 있다. 이 문화유산들은 우즈베키스탄의 수도인 타시겐트에 있는 ‘우즈베키스탄 역사박물관’에 가보면, 8~9세기의 우즈벡 역사의 중요한 보물로서 잘 보존되고 있다.

우즈베키스탄 동부의 중국 불교 영향을 보여주는 중국화
우즈베키스탄 동부의 중국 불교 영향을 보여주는 중국화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사실은 미인 이야기를 하려던 게 아니었다.

미인이란 우리들 마음속에 우리들의 사랑 속에 자신만의 느낌과 이미지로 있는 것이지, 그 느낌과 이미지를 누가 누구에게 강요하기 어렵고 일반화하기 어렵지 않을까? 미인 얘기를 꺼낸 건, 사실은 문화 간의 교류와 습합, 문화 간의 소통과 대화를 이야기하기 위함이었다.  

키르기스스탄의 텐샨[천산]산맥에서 발원하여 아랄 해로 흘러드는 2256km의 시르다리야[Сырдария]강, 타지키스탄의 파미르 고원에서 발원하여 아랄 해로 들어가다가 지나친 개간과 면화 농사 등으로 누쿠스 근처에서 물길이 끊어져버린 총길이 2400km의 아무다리야[Амударья]강 사이에서 다양한 문명을 꽃피워온 중앙아시아, 여기는 사방이 다 뚫리고 동서남북이 탁 트인 십자로이다. 모든 인종, 물자, 문화가 서로 교차하고 만나는 교차로이고, 중앙아시아 초원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보조르[시장]다.

       

산물과 사람이 섞이는 수천년 전통의 중앙아시아의 보조르[자유시장]
산물과 사람이 섞이는 수천년 전통의 중앙아시아의 보조르[자유시장]

청동 검도, 알렉산더 대왕과 징기스칸도, 비단이나 차茶, 오아시스 캐러반과 아라비아의 문자와 학문, 조로아스터와 불교사상도 모두 여기를 거쳐 지구의 다른 쪽으로 이동하였다. 그러니 모든 게 섞이지 않을 수 없다.

진선미로 압축되는 모든 인문적 가치가 대부분 그러하겠지만, 미 또한 예외가 아니라고 본다. 모든 아름다움은 그것이 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 섞임과 융합에서 더 깊고 부리부리하게, 더 짙고 환하게 새롭게 창조된다고 생각한다,

모든 길은 갈림길에서, 교차로에서 더 넓게 그리고 더 멀리 열린다. 21세기에 새롭게 도래한 유목민[nomad] 시대를 맞아, 우리가 중앙아시아의 수많은 초원의 길과 비단 길에 주목하고, 이곳에서 밭을 매는 많은 김태희에게 눈길을 돌려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본다. 

 

이재혁 원장

◇이재혁 교수

▷한겨레신문 생활환경부 국제부 기자, 모스크바 특파원
▷한국러시아문학회 학술이사, 감사
▷동북아시아 문화학회 부회장
▷대통령 자문 동북아시대위원회 자문위원
▷현) 러시아 부랴트 국립대학 명예교수
▷현) 부산외대 러시아학과 교수
▷현) 외교부 소관 비영리법인 (사)유라시아 교육원 원장
▷저서 『내가 사랑한 러시아』 『배낭 속의 유럽 문화』 『러시아 국민성과 멘텔리티』 『러시아 정교의 미학』 『러시아 극동의 역사와 문화』 『러시아 사회문화 이슈』 『러시아 문화의 흐름』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