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364) 제5부 열찬씨의 전성시대 - 제7장 고독한 천재의 죽음⑨
대하소설 「신불산」(364) 제5부 열찬씨의 전성시대 - 제7장 고독한 천재의 죽음⑨
  • 이득수 이득수
  • 승인 2023.01.19 07:05
  • 업데이트 2023.01.18 16: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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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고독한 천재의 죽음⑨

음력설이 지나고 불과 20일 남짓한 정월 스무사흘 날이 아버지의 기제사라 열찬씨내외는 미처 숨 돌릴 틈도 없이 다시 영주를 향할 판이었다.

그런데 그 사이에 김해댁이 이제 영주가 아닌 수원의 우현이네집으로 제사를 지내러오라는 전화를 하면서 네 곳의 고모 댁에 연락을 하라고 했다.

며느리에게 크게 살림도 내어준 게 없으면서 제사 하나는 기가 차게 일찍 넘긴다고 금찬씨가 혀를 끌끌 찼지만 순찬씨는 이번에도 역시 점바치딸은 어데가 달라도 다르다고, 세상에 서둘러야 되는 일이 있고 서둘지 말아야 되는 일이 있는데 어떻게 그렇게 청개구리 짓만 골라서 하는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푹푹 쉬다 역시 죄 많은 딸을 용서해달라는 기도와 함께 할렐루야로 끝을 맺었다.

그리고는 제사장소변경의 연락이 되었는지 확인이라도 하듯 집집이 전화를 돌리며 또 한 가지의 연락사항을 전했다. 떡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미리 김칫국을 마시는 꼴이지만 자신으로는 제 생각이 당연하다고 철석같이 믿는 그녀의 이야기는 이랬다.

조카 우현씨가 직장을 그만두고 주식투자에 실패해 살아갈 길이 막막하고 연립주택마저 넘어갈 판이니 당연히 밥술이나 뜨고 사는 두 삼촌, 그러니까 열찬씨, 백찬씨가 어디까지나 작은 아버지도 아버지인 만큼 둘이 돈을 추렴해서 갚아주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처음엔 평소에 가장 만만하고 설령 기분이 나빠도 대들지 못할 처지인 백찬씨쪽에 전화를 했지만 평소에도 말수가 적고 의사표시가 분명치 않은 백찬씨가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는 바람에 다음은 가장 순하고 무던한 덕찬씨집으로 전화가 갔다.

비록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집안일에서 손을 뗀 어머니 대신 큰오빠인 일찬씨와 김해댁의 두량으로 시집을 간 덕찬씨 역시 여간 기분이 나빠도 바로 대들 처지가 못 되는 지라

“그래 두 동생이 형편이 넉넉하면 좋겠지만 열찬이는 공무원 박봉으로 대학공부를 둘이나 시키고 백찬이도 두 살이나 늦게 고등학교에 가고 취직이나 장가가 다 늦은 판에 무슨 돈이 있겠노? 그리고 그 사람들 장가가고 분가할 때 큰집에서 딱히 살림이라고 할 만큼 내어준 것도 없으니 그게 쉽겠느냐, 아무래도 힘들지 않겠느냐?”

완곡하게 돌려서 말했다.

하도 답답해 신평의 갑찬씨에게 전화를 했지만 이미 귀가 어두워지기 시작한 큰 올케는 “뭐라꼬? 뭐라꼬?”를 반복하며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를 못 하니 만사휴이였다.

이제 남은 곳은 열찬씨와 금찬씨, 순찬씨 셋인데 하나같이 만만찮은 상대였다.

그래도 일단 열찬씨한테도 의사를 타진했는데 돌아오는 답이란

“아무리 형제간이라 해도 인간세상이란 주고받는 기본적 거래가 성립되어야지요. 그게 반드시 정확하게 맞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서로가 최선은 다 해야 되는 것인데 챙길 때는 몽땅 챙기고 그 많은 재산 몽땅 날리고는 맨손으로 출발해 아직 허리도 한번 제대로 못 펴는 동생들한테 손을 내미는 꼴이 다 뭥교? 셋방살이 동생에게 쌀 한 말 주란다고 지붕에 불을 지르고 돈 좀 빌려달란다고 살림살이를 다 부수고 가는 사람들이 아무리 입이 대문짝만 해도 그게 할 말잉교? 내 비록 아무리 기분이 나빠도 만약 그 때 쌀 한 말만 기분 좋게 주었어도 어떻게 마음을 내겠지만 그 때 진 포원이 아직도 가슴에 돌덩이처럼 뭉친 판에 말이 되겠능교?”

오히려 반박을 하는 것이었다.

낙심천만한 김해댁은 이번엔 금찬씨에게 전화를 했다. 시동생들에게 내용은 들었겠지만 그래도 동갑간의 정의로 봐서 나중 수원에서 의논을 할 때 적어도 다른 소리를 말고 침묵을 지켜 중립이라도 지켜달라는 신신당부를 했다.

그러나 금찬씨 역시 냉정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올케 니는 지 한 일은 생각도 않고 만사 지 좋은 데로 생각만 하느냐, 정 그렇다면 내가 논밭 팔아간 이야기나 돈을 보태주라 말라 이야기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미리 내가 당연히 돈을 보태주어야 한다는 식으로 미리 헛소문을 내지 말라며 단단히 오금을 박았다.

이제 남은 곳은 김해의 순찬씨인데 차마 용기가 나지 않는 모양이었다. 동생들에게 한 푼도 주지 않고 논밭과 집을 팔아간 것을 따지는 것은 두고라도 혼담이 오갈 때 분명히 교회에 나가 하느님의 딸이 될 것을 맹세하고 단 한 번도 교회 문 앞에도 안 가본 점바치 딸, 무당의 딸 이야기가 나올까 봐 덧정이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궁하면 통하는 법, 오랜 고심끝에 집안에서 사람 좋기로 소문난 언양의 사촌시숙 상찬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종제가 이른 나이에 죽어 안타깝고 제수씨가 고생이 많다는 이야기까지는 서로 간에 죽이 맞았는데 목소리가 착 가라앉아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어조로 예, 예 말을 이어가던 김해댁의 이야기가 마침내 빚 이야기, 삼촌들이 도와주어야한다는 스토리로 흘러가자 그만 상찬씨의 말대꾸가 뚝 끊기더니

“종수(從嫂)씨, 내 암만 생각해도 그건 아닌 것 같은 데요. 내 부산에 열찬이, 울산에 백찬이동생들이 어째 살림을 나고 어떻게 고생을 한지 빤하게 아는 판에 내 입으로는 도와주라 말라 말을 할 수가 없지요.”

또다시 김해댁의 염장을 질렀다. 그래도 마지막 보루라 생각하고 이제 영 울음기가 가득한 목소리로 “아주버님. 아주버님!”을 연발하며 애원을 하자

“뭐 그거사 벌써 빤하게 답이 나온 것 아잉교? 제수씨가 사는 영주집 팔아서 빚 갚으면 되지, 영주가 어데 우리 이씨들 고향도 아니고 동생도 죽고 없는 판에 제수씨가 혼자 남아서 동네 통반장을 할 것도 아이고.”

슬쩍 던지는 말이 뜻밖에도 단 한 마디도 틀리지 않는 정답 중에 정답이었다. 김해댁의 전화가 황급히 끊어지고 말았다.

 

마침내 제삿날이 닥쳐 열찬씨내외는 김해에서 순찬씨를 태우고 백찬씨는 언양에서 갑찬씨, 금찬씨, 덕찬씨를 태우고 경부고속도로 건천휴게소에서 만났다. 영순씨가 매점으로 일행을 인솔해 어묵을 먹고 커피를 마시면서 모처럼 6남매가 상봉하는 자리에 딱 한 사람 타성인 자신은 대화에 끼지도 못 하고 돈 만 내게 생겼다며 웃었다.

그러나 좀처럼 분위기가 화기애애하게 풀리지 않고 어딘가 무겁게 가라앉은 것은 저마다 오늘 제사 전에 무슨 분란이 일어나지 않고 자신에겐 무슨 큰 봉변이나 없을지 걱정을 하는 모양이었고 슬쩍슬쩍 순찬씨의 눈치를 살피는 것이 아마도 사리판단도 빠르고 강단도 있는 순찬씨가 이 난감한 문제를 풀어줄 것으로 기대하는 모양이었다.

추풍령 너머 금강휴게소의 곰탕 맛이 좋더라는 열찬씨의 제의로 휴게소에 들린 일행은 길 건너 산골짜기에 쏘가리 매운탕을 한다는 간판을 발견하고 저 쏘가리탕이 얼마나 맛이 있는지 오늘 구경이나 하자면서 고속도로박스를 넘어갔다. 쏘가리회 1Kg에 10만 원, 일곱 명 매운탕에 5만 원에 만 원짜리 도리뱅뱅이를 한 접시 서비스한다는 주인의 말대로 음식을 시키고

“봐라, 동생아, 내는 이거뿐이다.”

덕찬씨가 돈 10만 원을 꺼내주자

“예.”

열찬씨가 받아 나머지는 제가 보태기로 하고 호주머니에 넣는데

“아따, 형제간에 부자가 하나 있으니 좋기는 좋네.”

“에라이, 장촌 갑부가 단 돈 10만 원이 뭐꼬? 내 년에는 돈백만 원 담고 오너라.”

오랜만에 활기를 띠며 눈 깜빡할 새에 쏘가리회와 도리뱅뱅이를 먹어치우고 매운탕을 후루룩거리는 것이 과연 남천내 개울가에 자란 사람들다웠다. 열찬씨가 계산을 치르고 돌아 나오는데

“아이구, 맛있다. 둘이 묵다가 서이 죽어도 모리겠다. 야야, 동생들아 여게가 금강휴게소제? 휴게소 박스 지나서 산굼티기 부산식당이라고 단디 외어놔라.”

갑찬씨가 흡족한 표정으로 말하자

“아이고, 새이야, 산굼티기가 뭐꼬? 산골짜기지?”

“아이다. 요렇게 오목한 골짜기는 산굼티기고 이 쪽 저 쪽 대나무 간지깽이 하나 걸칠 형편도 안 되는 골짜기는 골짜기도 아이고 골미창이다.”

“그거는 뭐 골미창도 아이고 그냥 산비알이다.”

“아이다. 산 비알은 전체를 말하고 이렇게 발치에 붙은 것은 산치거리다.”

네 자매가 설왕설래 주고받는 것이 모처럼 생각나는 언양사투리 한마디씩이 신기하고 재미있는 모양이었다.

아직 해도 지기 전에 수원 송죽동의 우현씨집에 닿은 일행은 장손이면서 온 집안을 빚 문제로 분란을 일으킨 장본인 우현씨도 집을 비우고 아직 김해댁이 도착하지 않은 것을 보고 괜히 찝찝한 기분에 빠져들었다.

소심한 우현씨가 제사가 끝날 때까지 나타나지 않고 숨을 수도 있지만 그 보다도 대신 빚을 갚아줄 사람도 없는 마당에 괜한 욕이나 먹을까봐 김해댁이 아예 오지도 않을 수도 있는 것이었다.

자신이 무슨 큰 죄라도 지은 것처럼 안절부절 못 하는 현우씨댁이 딱해서 일행은 가까운 송죽공원의 호숫가나 걷자면서 다시 집을 나서는데

“아부지, 어무이. 먼 길에 고생 많았지요? 인자 다 왔습니더. 여기가 수원현우집입니더.”

누가 택시에서 내리면서 중얼중얼 쌀을 뿌리는데 바로 김해댁이었다.

“아이구, 새이야!”

“월깨야!”

“형님요!”

덕찬씨, 금찬씨, 영순씨가 달려가는데

“마 놔나라! 우상숭배 하는 기 무슨 큰 벼슬이가?”

순찬씨의 고함소리에 멈칫거리는데

“올해부터는 여기서 제사를 모실 겁니더. 아부지어무이 아무리 길이 멀어도 귀신같이 잘 찾아올 수 있겠지요? 자, 인자 집안으로 들어갑니더.”

고개를 까딱해 손위 시누이들에게 인사를 하면서 김해댁이 집으로 들어가자 모두들 우르르 따라가고 순찬씨만 현관 앞에 주저앉아 “주여!” 긴긴 기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넋을 잃고 쩔쩔 매는 우현씨댁을 영순씨가 도와 저녁상을 차려 식사가 끝나도록 우현씨는 나타나지 않고 아이들도 낯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무서운지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 이 글은 故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