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 고독한 천재의 죽음⑪
말이사 바른 말이지 우리 시 할매가 좀 무섭고 심청궂은 사람이며 시누이 하나 있는 것은 아직 어리고 한 집에 안살아 괜찮지만 다섯이나 되는 시고모들이 여간 별난 사람들인가? 그 때문에 아이가 셋이나 되는 스물일곱 살이 되도록 신랑이 술만 먹어도 그 이야기가 나올까봐 가슴이 철렁하고 명절이나 제사에 시고모들만 와도 얼굴을 못 들었는데 마침내 덕찬이가 장촌에 고 서방한테 시집을 간다고 했지.
덕찬이가 나보다 세 살이 적고 또 네 살이나 더 먹은 스물넷에 시집을 가니 꼭 7년만이지.
그 때는 세월이 더 좋아져 웬만한 집이면 모두 양복을 해주던 시절이라 장촌 고 서방은 두말없이 양복을 얻어 입었지. 그 때 얼핏 내게 기왕 묻힌 김에 고 서방 양복 맞출 때 우리 박 서방도 같이 한 벌 맞춰주면 얼마나 좋을까 심은 생각이 들었는데 그러고 보니 우리 박 서방도 그걸 은근히 바라는 눈치이기도 했어.
그래서 의령에 살던 오빠랑 김해올케가 와서 덕찬이 혼수감을 마련하고 고 서방 양복이랑 시계를 사 줄 적에 내가 내려가서 차마 바로 사달라는 말은 못 하고
“오빠, 그 때 내가 부산보수동 집 앞에서 지리산 약장사가 흘린 돈줌치를 주워서 오빠 준 돈 2만환이 요새도 생각나나?”
“아, 참 그런 일이 있었구나?”
“그 기 요새 돈으로 양복 한 두어 벌 값은 되겠제?”
은근히 물었는데
“그래. 그 정도 안 되겠나?”
하고는 그 뿐이었어. 그 어려울 때 그 거금을 준 걸 생각하면 그까짓 양복 한 벌이사 해주겠지 싶었는데 그 기 다 떡 줄 놈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시는 쫌새였어. 하여간 양복은 날아가고 이번엔 금방에 시계를 사러가서 고 서방 시계를 사는 걸 보고
“아이구, 이 시계 참 멋지기도 하다. 우리 박 서방도 하나 찌면 얼마나 좋겠노? 참, 오빠, 그 때 돈 2만환이면 이런 시계는 다섯 개도 더 사겠제?”
하니까 또
“그 정도 안 되겠나?”
하고는 그 뿐이었어. 하도 기가 막혀서 올케 니를 쳐다보니 니는 본 척도 않고 고개를 돌리데. 내 참 그때만 생각하면 지금도 분하고 억울하고 치가 다 떨린다.”
삶은 계란에 요리조리 빗금을 넣어 노란 도라지꽃을 만들던 칼을 놓고 똑 바로 김해댁을 쳐다보았다.
“일식이애미야, 이미 지나간 이야기를 하면 뭐 하노? 30년도 더 된 이야기를 하면 속만 더 상하지. 마 잊아뿌라.”
“올케 니겉으면 잊어뿌겠나? 나는 못 잊어뿐다. 지금도 생각만 나면 분통이 터지고 이가 갈린다. 자다가도 가슴에 중치가 맥히서 벌떡벌떡 일어서곤 한다.”
“그라면 그 때 이야기를 하든지. 뭐 따문에 그 때는 말 안하고 인자 와서 이 난리고?”
“아니 꼭 말로 해야 되나? 같은 여자로서 같은 동갑으로 척 보면 모르겠더나? 니 같이 눈치 빠른 사람이?”
“몰라. 나는 생각도 잘 안 난다.”
“그래 말이 나온 김에 하는 말인데 그 때 올케 니는 시계에 금반지에 목걸이에 금을 칠갑을 하고 있더마는?”
“아, 그거야 우현이아부지가 돈을 잘 버니 그렇지.”
“그래. 니는 우째 그래 팔자가 좋노? 그렇지만 올케 니도 한번 생각해봐라. 암만 오빠가 번 돈이라 카지만 올케 니는 오빠가 공부하고 병 고치는 데 아무 보탬이 없었고 나는 없는 집안에서 우쨌든동 원질인 장남 오빠 공부시키고 병 고친다고 넘의 집에 아아 보러 댕기고 식모살이 하고 공장까지 댕겼는데 우째 오빠가 번 돈이랑 아부지 재산 처진 거 올케 니만 호의호식하고 금을 쳐 바르고 댕기고 나는 금반지가 아니라 우리 일식이아부지 가다마이 한 벌도 못 얻어 입힌단 말이고?”
“아따, 제사 앞두고 말도 많네. 아부지어무이가 정신없어서 밥이나 잡숫겠나? 그라고 정 억울하면 니도 와 돈 잘 버는 신랑한테 시집을 가지 와?”
“뭐라고? 새이 니 정말 말 다했나!”
금찬씨가 바르르 떨며 일어나 방금 머리채라도 잡을 듯이 김해댁을 흘겨보는데
“아이구야! 잘 하면 사람 치겠네!”
김해댁도 지지 않고 쏘아보더니
“그래 다 지내간 일로 가지고 우짤긴데?”
픽 웃으며 고개를 돌리자
“봐라, 올캐야!”
이번에는 순찬씨가 벌떡 일어났다. 덕찬씨, 열찬씨, 백찬씨 3남매가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이러다가 제사나 제대로 모실지 모르겠다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데 덜컥 현관문이 열리며
“잔아부지 오셨능교? 고모님들 오셨능교?”
팔척장신 우현씨가 꾸뻑 고개를 숙이며 들어섰는데 기가 죽어 눈을 맞추지 못 하고 금방 고개를 돌렸다.
“아이구, 이기 누고? 우리 장손 우현이아이가?”
“그래 잘 있었나?”
“몸은 좀 어떻고?”
한마디씩 던지느라 분위기가 일신했다.
자동휴전이 된 상태로 제사상을 차리고 안방에서 절을 하는 동안 순찬씨는 거실에서 혼자 중얼중얼 기도를 올리고 찬송가와 축도도 잊지 않았다. 마침내 제사가 끝나고 둘러앉아 백찬씨가 커다란 양푼이에 비빈 꿀 비빔밥을 한 그릇씩 받아 탕국과 함께 먹기 시작하고 열찬씨 혼자 제주를 홀짝거리는데
“부산대름, 울산대름 보소! 그래 우리 우현이 빚 갚는 거 생각 좀 해봤능교?”
마침내 김해댁이 운을 떼며 흘낏흘낏 순찬씨를 곁눈질했다.
“형수, 그 기 아이고. 언제 우리 형제가 서로 돕고 살았능교? 또 형님이나 형수가 내나 백찬이한테 숟가락몽디 하나라도 뭐 좀 살림 내준 기 있능교? 그렇게 아무 것도 준 것도 없이 바래기는 뭐로 바래능교?”
얼굴이 빨개져 고개를 푹 숙인 백찬씨를 보며 열찬씨가 말을 받는데
“아이구 얄궂다. 형제간이 어데 꼭 주고받고 거래하는 사이가? 큰집에 형편이 안 되면 작은 집에서 보태는 거지. 작은 아부지는 어데 아부지가 아이가?”
김해댁이 기가 차다는 듯이 혀를 끌끌 차는데
“올캐야, 니 쇳바닥으로 콧구멍을 핥아봐라. 그 기 잘 되는가? 새이 니는 우째 그래 지 처지, 지가 한 일은 모르고 그래 택도 없는 욕심만 부리노?”
“마, 니는 빠져라. 니는 출가외인 친정일이니 니 집 걱정이나 해라!”
“뭐라꼬!”
또 금찬씨가 눈에 쌍심지를 켜는데
“봐라! 우현이애미야! 니 오늘 자식 앞에서 개망신 한 번 당해볼래? 뭐 너거가 부모재산 하나도 못 받고 자수성가했다고? 에라이, 서천에 소가 웃을 일이다. 그래 우현이한테 니가 언양 논밭과 집을 우째 팔아묵었는지, 열찬이, 백찬이 장개갈 때 부조통은 누가 들고 가고 살림을 우째 내 존는지 한 번 이야기해주까?”
이번엔 순찬씨가 일어나 우현이쪽으로 다가가자
“우현이 니는 니 방에 안가고 뭐 하노? 몸도 안 존 기.”
김해댁이 가로막으며
“아이구! 말이 좋아 칠남매지 내 수중에 돈 떨어지니 우째 이래 한 사람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노?”
우현이를 끌고 방으로 들어가는데
“에라이 째진 입이라고...”
참으로 오랜만에 큰 언니 갑찬씨가 요진 통을 찔렀다. 순간 비시시 웃음을 띠우는 좌중과 달리
“아이구 내 팔자야!”
가슴을 탕탕 치며 뭐라고 신세타령을 시작한 김해댁은 종내 나올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마침내
“질부야! 상 치아라! 퍼뜩 자고 날 새면 내려가자. 이기 어데 사람 사는 집이가?”
순찬씨의 호령으로 모든 상황이 끝나버렸다.
※ 이 글은 故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