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 딴따라 과장의 '남항등대'⑥
아무튼 그날 저녁 업무를 마치고 일부러 느긋이 저녁식사와 반주를 하며 시간을 끌어 부평동 극장골목 너머 술집골목에 하나씩 불이 들어오며 짜잔짠 음악소리가 울려 퍼질 때쯤 일행은 이모 의장의 살롱으로 들어갔다. 좌석에 앉아 첫잔을 돌리기도 전에 종업원의 연락을 받은 의장이 득달같이 달려와
“아이구, 우리 이 과장님! 이 누추한 곳까지 직원들을 대동하고 시민들의 밑바닥생활이 어떠한 지 민정시찰을 다 나오시다니요?”
아주 흡족한 표정으로 설레발을 쳤다.
“개업한 소식을 들은 지가 한참이나 지났는데 진작 한번 와본다는 것이...”
공손한 태도로 열찬씨가 의장에게 건배를 제의하자
“우리 문화관광과와 의회는 오늘 부터 더욱 더 공고한 한 가족이 될 것입니다. 자, 이열찬 문화관광과장과 전 직원의 건승과 과업무의 순조로운 추진과 발전을 위하여!”
“위하여!”
일동의 우렁찬 복창으로 분위기가 한껏 고조되자 두당, 당당, 당당, 다다당, 오르간과 전자기타 2인조로 이루어진 악단의 기타연주자가 줄을 고르고 분위기가 한껏 고조되는데
“과장님과 일행들이 오셔서 반갑기는 한데, 원 공무원들만의 분위기는 너무 딱딱하고 맨숭맨숭해서...”
의장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리자
“자, 웨이터, 여기 양주 한 병 추가에 아가씨도 두 명!”
눈치 빠른 문화계장이 세 병째의 양주를 시키자 양주와 동씨에 두 명의 도우미가 들어와 각각 눈치껏 의장과 열찬씨 옆에 앉아 다시 한 순배 술잔이 돈 뒤에
“자, 그럼 과장님 재미있게 놀다 가십시오. 저는 다른 데 약속이 있어서.”
의장이 슬며시 빠져나가자 비로소 술자리에 활기가 돌면서 슬슬 아가씨들을 쳐다보던 박기도 주임이 열찬씨에게 노래를 시키면서 아가씨 하나를 같이 춤을 추게 하는데
“자, 이젠 세상만사를 잊어뿌고 맘껏 마십시다. 만약 오늘 저녁에 술을 덜 먹고 맨 정신으로 똑 바로 걸어 나가거나 내일 차침에 맨숭맨숭한 얼굴로 출근하는 사람들은 우리 문화관광과의 출근부에서 이름을 빼뿔 끼요!”
이젠 열찬씨가 기고만장 소리를 질러댔다.
급히 <암남공원조각공원조성> 계획을 작성한 서구청에서 문화관광부에 제출하기 전에 부산시 문화예술과로 사업시행을 통보함과 동시에 시비지원을 요청하였으나 반응이 신통찮았다.
이미 남구의 유엔공원, 그러니까 한국전쟁 때 전사한 16개 참전국의 용사가 묻힌 유엔공원의 주변에 조각공원을 조성하기로 하고 남구청의 보고를 받아 문화관광부에 시달한 후라 1개 광역단체에서 2곳을 상신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보다도 사전에 시의 실무부서와 전혀 상의한 일도 없이 일방적인 계획서를 제출한 것도 실무자들의 비위를 상하게 한 것이었다.
그래서 시에서 돌아온 답변은 당장 2개 구청의 계획을 보고할 수도 없을 뿐더러 꼭이 조각공원을 조성하려면 구 자체사업으로 추진하거나 문화관광부지정사업으로 국시비의 지원을 받으려면 우선 도시계획이나 녹지관리시책에 문제가 없는지 해당 부서와 협의하여 기반조성부터 차근차근 절차를 밟아 차후 문화관광부의 제 2차 조각공원조성사업에 응모하라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서구의 사업에 관심이 없고 지원은커녕 상당히 불쾌하다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문화관광부에서 제2차 사업을 벌일지도 미지수였고 벌이더라도 김모구청장의 임기가 지나서라면 아무 소용이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한번 일을 시작하면 절대 물러서는 법이 없고 설령 집에 가지 못 하는 일이 있더라도 절대로 계획된 일정을 늦추는 일이 없어 일벌레로 소문난 구청장이 그만 일로서 그만 둘 리가 없었다.
시청의 주요부서에 자신이 시정과장이나 감사실장으로 재직하던 시설 고락을 같이한 일 잘하고 충성심이 충만한 자신을 꼭 닮은 독일병정 같은 옛 부하들이 포진하고 있는데다 당시 안상영시장도 자신이 시정과장시절 충성을 다해 감사실장으로 승진시켜준 든든한 배경인 데다 이미 각자가 그 어려운 민선을 통과한 단체장이 된 만큼 서로의 관심과 애정이 더 한충 돈독한 해 실무부서의 사실상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막무가내로 밀어붙이기로 했다.
급조된 공원조성계획서를 지참한 고명석 문화계장을 대동한 이용호 부구청장이 시청을 한 바퀴 빙 돌고 김형호 구청장이 요소요소에 전화를 걸자 마침내 특별히 부산시에서는 남구의 유엔공원과 서구의 암남공원 두 곳을 조각공원조성대상지로 추천하기로 결정이 되었다. 김형호 구청장의 무대뽀식 밀어붙이기와 함께 고시출신 이용호 부구청장의 차분한 설명과 인맥이 상승작용을 한 덕분이었을 것이었다.
신명이 난 구청장은 도시계획이나 공원수립절차는 건설과의 도시계획계와 지역경제과의 녹지계에서 해당 법규를 검토, 필요한 절차를 밟기로 하고 우선 개괄적인 계획서를 작성하여 실무진이 문화관광부에 직접 찾아가 중앙부서의 실무자에게 천혜절경인 암남공원이 적지임을 충분히 설명해 납득시키고 잘만 의논이 되면 실무선끼리 저녁식사라도 하면서 친밀감을 조성하라는 것이었다.
급히 계획서를 작성한 열찬씨가 정병진주무와 광화문 앞 정부종합청사의 문화관광부를 찾아갔다.
미리 전화로 방문계획을 알렸지만 처음부터 가능성도 없는 일에 괜히 무엇 하러 오느냐는 투로 무덤덤하게 나오던 담당 김모사무관은 경비실에서 지금 올라가도 되겠느냐는 전화에 지금 급한 회합이 있다면서 연락을 줄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했다.
아침 7시에 부산에서 출발해 서울역 앞에서 간단히 점심을 먹고 오후 2시에 도착했는데 한 시간이 지나도 연락이 없어 공연히 청사 앞을 서성거리거나 광화문까지 걸어갔다 오면서 경비실에 연락이 없느냐고 문의를 해도 경비원은 그저 딱하다는 듯이 혀만 끌끌 찼다. 그럭저럭 다섯 시가 다 되어 해가 한참이나 기울어서야 연락이 왔다. 파티션으로 각자의 집무공간이 가려진 담당 김모사무관의 자리를 물어 부산서구에서 왔다고 공손히 머리를 숙여도
“아, 그렇습니까.”
건성으로 대답하고 열찬씨의 명함을 보지도 않고 책상위에 놓더니 정병진씨가 펼친 계획서를 건성으로 한 번 주욱 훑어보고는
“알았습니다. 일단 심의에 올려보기로 하지요. 그러나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일단 부산으로 내려가 기다리십시오.”
차마 절대로 안 된다는 말은 못 한다는 투로 아주 딱하다는 표정으로 말하더니 계획서를 접었다.
언제 한번 부산에 오실 기회가 있어 현장을 보시면 알겠지만 우리 암남공원이 정말로 천하의 절경으로 조각공원의 적지이다, 또 2년에 한 번씩 열리는 부산국제비엔날레의 수준 높은 조각품을 유치하고 운운 열찬씨가 열심히 설명하고 정병진씨가 머리를 조아렸지만 같은 사무관에 나이가 더 들고 더욱이 먼길에서 온 열찬씨에게 자리에 앉으라고 의자도 권하지 않고 건성으로 듣던 담당사무관을 또 다른 회합이 있다고 그만 나가주었으면 했다.
순간 가방에서 자신의 시집 《비오는 날의 연가》를 꺼내어 담당에게 건네면서
“보시다시피 제가 지방에서 책을 몇 권 낸 시인이라고 문화관광과장으로 발탁되었는데 조각공원을 유치 못 하면 사무실로 돌아오지도 말라고 압력을 받았습니다. 사무관님 제발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도와주십시오.”
열찬씨가 울상이 되어 하소연하자
“아, 그렇습니까? 나중에 한번 읽어보지요.”
건성으로 책장을 주르르 넘겨보던 사무관이 고개를 돌렸다.
별 성과도 없었지만 문화관광부의 담당사무관에게 충분히 설명을 했고 암남공원이 천하절경으로 공원조성입지로서 아주 적지라는 납득은 하는 것 같더라는 복명을 하자 김형호 구청장은
“그렇다면 바로 전국 유명조각공원이나 우리 암남공원과 환경이 비슷한 조각공원들을 벤치마킹하고 다음 단계로 들어갈 준비를 하게.”
흡족하게 받아들이는지라 차마 별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겠다는 이야기는 꺼내보지도 못한 열찬씨는 다시 조각공원답사계획서를 만들어 담당 고명석 계장과 정병진씨를 시켜 관련부서인 기획감사실, 총무과, 재무과를 돌며 협조를 받고 결재를 받으니 구청장관심사인 만큼 절차는 일사천리로 끝이 났다. 그러나 가뜩이나 예산이 부족한 형편에 문화관광과에서 출장비, 업무추진비를 너무 쓴다고 예산계와 총무계, 회계계실무진의 불평이 이만저만이 아니라는 이야기가 들렸다.
다음 월요일 간부회의도 시작하기 전인 아침 여덟 시에 열찬씨와 정병진담당, 기획실의 조현춘 기획계장이 전국 유명조각공원을 답사하기 위한 출장길에 올랐다. 출장비는 2박3일 열차여행으로 하되 오너인 조현춘 계장의 승용차를 이용하기로 했다.
첫 방문지인 천만갑 교수가 추천한 김포의 김포국제조각공원을 향해 경부고속도로를 부지런히 달려 김포가도의 작은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현장에 도착했다.
제법 넓기는 해도 그만그만한 구릉지 중간, 중간에 몇 개의 크고 작은 조각품을 전시한, 뭔가 눈에 확 들어오거나 그렇게 감명이 깊은 것은 아니었다. 정병진씨가 부지런히 사진을 찍고 메모를 해서 다음 행선지인 서울시내의 작은 조각공원을 찾았는데 물어물어 현지에 도착하니 그건 공원이 아니라 산기슭에 조각품 몇 점을 설치한 단순한 라이브술집이었다.
실망했지만 역시 부지런히 사진을 찍어 다음코스인 서해안을 향하다 국도변 어느 식당에서 반주를 겸해 느긋이 저녁을 먹고 이웃한 모텔에 방을 구했지만 언양촌놈에게 보리경사, 즉 서울말이 귀에 선 영악하게 생긴 50대 여인이 손사래를 쳤다.
처음엔 빈방이 없다더니 그들이 보는 앞에서 승용차에서 내려 호실 키를 받아 올라가는 중년 한 쌍을 보며 왜 저 사람들에겐 방이 있고 우리에겐 없느냐고 항의하자 여긴 한적한 곳을 일부러 찾아오는 아베크족을 상대로 장사하는 모텔이라 남자만 오는 손님, 특히 술 먹고 소리 지르기 십상인 중년의 사내들에겐 방을 줄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기가 찬 열찬씨가 허허 웃는 사이 조현춘 계장이 허가조건에 사람차별을 해도 되는 그런 조항이 있느냐고 따져 그렇다면 내실 바로 옆에 붙은 방을 줄 테니 제발 조용조용 주무시라는 말과 함께 키를 주었다.
모처럼의 홀가분한 출장인 데다 그간 따로 술자리를 가져보지 못 한 기획계장이랑 편안하게 술도 한잔 마시며 노래방이라도 가서 격의 없이 놀며 친목을 다지려고 생각했던 나름대로 기대가 컸던 사내들만의 출장이 허사가 되고 말았다.
사방이 껌껌한 적막강산이라 불빛조차 보이지 않으니 도무지 노래방이나 도우미아가씨를 찾을 형편이 아니었다. 하는 수 없이 정병진씨가 맥주 몇 병과 안주를 사 오니 안주인이 얼굴을 붉히며 짜증을 냈다. 조용히 마시겠다며 조심하니 술맛도 나는 것 같지 않아 건성으로 마시고 고스톱 판이라도 벌이자고 하니 조현춘 계장이 자신은 취미가 없다고 해서 그만 방을 치우고 각자 자리에 누우니 아닐까, 다르랴 마침내 열찬씨가 은근히 걱정했던 일, 옆방에 투숙한 남녀의 숨넘어가는 신음소리가 벽을 타고 넘어오기 시작했다.
이튿날은 용인에 있는 김세중돌박물관을 둘러 조각의 주요재료인 오석이 많이 난다고 천만갑 교수가 자기 고향인 충청남도 보령군을 돌아보라는 당부대로 태안반도의 만리포해안에서 대천해수욕장을 거치면서 길가에 세워진 조그만 조각품은 물론 장승 하나가 오도카니 서있는 소공원까지 일일이 들리면서 정병진씨가 사진을 찍고 메모를 하면서 하루에 한 번 물이 빠져 바다가운데의 작은 섬에 걸어서 갈 수 있다는 <모세의 기적>이 나타난다는 무창포해수욕장에서 불타는 고개구이로 저녁 겸 반주를 때우고 좁은 시골여관에서 묵었다.
피로에 지친 3일 째는 차창 밖의 풍경을 건성으로 보면서 익산의 미륵사지, 고창의 고인돌공원, 순창의 죽물박물관을 거쳐 아직 해가 지기 전에 부산에 도착해 열찬씨가 이튿날 아침에 견학의 요점만 보고하기로 하고 각자 귀가하기로 했다.
※ 이 글은 故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