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373) 제5부 열찬씨의 전성시대 - 제10장 바다축제, 사라진 마이크①
대하소설 「신불산」(373) 제5부 열찬씨의 전성시대 - 제10장 바다축제, 사라진 마이크①
  • 이득수 이득수
  • 승인 2023.01.28 06:40
  • 업데이트 2023.01.28 11: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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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바다축제, 사라진 마이크①

이튿날 열찬씨가 구청장실에 들러 조각공원순방이 순조롭게 이루어져 많은 도움이 되겠다며 사진과 구체적 내용은 차후 담당자를 통하여 보고를 올리겠다고 하고 사무실에 돌아왔을 때였다.

미리 기다리고 있던 계장들로부터 과장 부재시 업무보고를 받고 다들 수고했다고 회의를 파하자마자

“과장님!”

고명석 문화계장이 다시 자리에 주저 않으며 업무수첩을 펴는데 <과장님 오시면 처리할 일>이라는 제목 밑에 구체적 소제목이 대여섯 개나 되었다.

우선 닷새 뒤면 7월 1일 송도해수욕장 개장일인데 개장식과 해수욕장관리 전체를 총무과의 체육청소년계에서 담당은 하지만 올해부터는 바다축제를 전담하는 문화관광과에서 어떻게 하면 보다 많은 시민들과 외지 관광객을 끌어 모을지 좀 색다른 이벤트를 벌이라는 구청장의 특별지시가 떨어졌다는 것이었다.

다시 두 명의 계장과 공보계의 박기도 주임, 한창 출장보고서 작성에 정신이 없는 정병진씨까지 불러 무엇을 할지 대책을 모색하는데

“사람 모으는 데는 풍물패 이상이 없지요. 거기다 각설이공연을 겸한다면 금상첨화지요.”

나이든 광고물계장의 제안에 이어

“젊은 관객들을 모으려면 연극이나 공연을 해야 됩니다. 그것도 <전국노래자랑>이나 <가요무대>풍이 아닌 록페스티벌 같은 걸로 말입니다.”

공보계장의 말에 이어 정병진 주임은 대형광고물 즉 애드벌룬을 띠우자고 했고 박기도 주임은 자신은 신문사와 방송국에다 연합통신을 비롯한 7명의 출입기자 전원에게 부탁해 어떻게든 송도축제의 소식을 보도하게 하여 성과를 올리게 했다.

그런데 그 모든 대책은 적잖은 예산이 수반되는데 총무과의 바다축제예산에 그런 홍보비용 업무추진비가 전혀 반영되지 않은 것이었다. 한 달 100만 원도 안 되는 문화관광과의 업무추진비예산으로는 액수가 부족할 뿐 아니라 직원들의 회식이나 간식 하다 못 해 사무실의 커피구입도 못 하게 되니 쓸 수가 없고 구청장, 부구청장, 국장의 업무추진비 역시 당사자들은 쓰다달다 말은 않더라도 그걸 쓰다가는 그야말로 고양이목에 방울달기로 밉보여 나중에 승진이나 전보에 불이익을 볼 것이 불을 보듯이 빤 한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예산계나 경리계직원들이 합의를 할 리가 없는 것이었다.

결국 돈 안들이고 소정의 효과를 낼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한 끝에 운동장 옆에서 주말마다 개장하는 문화장터를 축제기간에는 격주로 송도해수욕장에서 열기로 하고 문화장터상인연합회를 통해 대체로 민속이나 풍물에 조예가 깊어 풍물이나 국악기 하나쯤은 다룰 줄 아는 회원들이 평시에는 전을 펴고 장사를 하다 하루 서너 번 사물놀이패를 꾸려 백사장을 한 바퀴 비잉 도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열찬씨가 분위기를 살리는 데에는 무엇보다도 새납 또는 당나발로 불리는 트럼펫보다 훨씬 목이 길고 높은 쇳소리를 내는 놋쇠나팔이 낫다며 걸립패나 포졸로 분장한 사람이 불며 앞장서 행진하는 것으로 낙착을 보았다.

문화장터 회장과 총무를 방문하여 운동장근방의 제법 큰 중국집 문화반점에서 탕수육과 소주를 곁들인 점심을 하며 어렵사리 오전에 상의된 문화장터의 해수욕장이전과 당나발을 비롯한 풍물패행진의 승낙을 받고 사무실에 돌아와 커피를 한 잔 하며 숨을 돌린 열찬씨가 퇴근 전에 <서구의 노래>제정에 극구 반대하는 마지막 장벽 동대신동 이기율 의원을 방문할 요량으로 사회과의 정봉석씨에게 둘이 일과가 끝나자 말자 같이 가기로 약속하고 전화를 끊는데

“과장님, 이기율 의원님 방문보다 더 급한 일이 생겼습니다.”

구청장실에 불려갔던 문화게장이 맞은편에 앉아 수첩을 펼치더니

“지금 노래제작 예산확보보다 더 시급한 일이 어디 있나? 뭐 지금 당장 안 하면 하늘이 무너지거나 땅이 갈라질 일이라도 있단 말이요?”

빙긋 웃으며 쳐다보는 열찬씨에게

“예. 그것도 오늘 오후에 당장, 또 문화관광과장이 직접 김해 가락동 어느 강마을의 지점토공예가 하경혜씨를 방문하고 오라는 특별지시, 아니 긴급지십니다.”.

“아니, 지점토라니?”

“왜, 한때 선풍을 일으킨 그 <뮌헨의 노란 민들레>, 또는 아이 잘 낳는 여자로 알려진 재독 지점토공예가 김영희씨의 주로 아이들과 초가집으로 이루어진 향수가 가득한 앙증맞고 단순한 공예품구성으로 닥종이공예와 비슷한 재료인 점토에 이갠 종이로 역시 그런 분위기의 소품이랄까, 작품을 만들어 부산일보사에서 전시회를 연다고 언론에 보도가 되고 시청과 각 구청을 돈다면서 우리 구청을 방문 청장님과 장시간 면회를 하신.”

“아니, 나는 금시초문인데?”

“아, 그렇구나! 과장님 하고 정병진씨가 출장을 갔을 때 왔구나. 아이구, 제가 미처 부재중 보고에 넣지 못 한 걸 용서하십시오.”

사과조로 이야기를 하면서 눈빛은 웃음기가 가득해

“아니 이 사람이 못 볼 것을 보았나?‘

“아닙니다. 과장님, 이따 만나보면 아시겠지만 아무튼 대단한 멋쟁이에 미인입디다. 우리 청장님이 작품에 관심을 가질 만하지요. 아무튼 오늘 만만찮은 짐을 지고 오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을 두 번이나 반복하는 것으로 보아 나름 대단히 흥미진진한 모양이었다.

“그럼, 출발합시다. 쇠뿔도 단김에 뺀다고 머뭇거리다 불호령을 맞는 것 보다야 선 김에 갔다 옵시다.”

색다른 분야의 문화예술인들을 너무나 환대하며 그 부탁을 거절하지 못 하며 더더욱 여류에게 친숙한 구청장의 성향이 떠올라 열찬씨가 빙긋 웃는데 총무과로 배차신청을 해 빈 관용차가 없다고 하자 자신의 승용차 키를 들고 한참이나 울상을 짓던 문화계장이

“정주무, 출장보고서 내일아침에 결재 받으면 안 될까? 내 이놈의 허리가 일이 많거나 골치가 아플 때면 유독 더 심하게 아파서...”

오만상을 찌푸리며 허리를 꼬자

“그러지요. 뭐.”

정병진씨가 시원하게 대답하며 자신의 키를 찾아들었다.

차가 구포다리를 건너 김해평야를 가로질러 가락인터체인지에서 내려 들길을 달리기 시작하자

“어허, 거 참 속 시원하다. 내가 촌놈이라서 그런지 나는 초록색 논길을 걸으면 그만 기분이 좋아진단 말이야. 시심(詩心)이 절로 솟아난단 말이야.”

강 건너 하회탈처럼 소탈한 웃음을 가진 늙은 농부 서재수 시조시인이 살던 가리새마을과 갈대숲에 둘러싸인 그의 집에서 우렁이이회안주로 동동주를 마시던 생각을 하는데

“과장님, 결코 오늘 출장이 속이 시원하거나 시심이 솟아날 그런 일이 아닐 겁니다. 눈치도 보아야하고 골치도 아프겠지만 무엇보다도 돈 문제가 생길 것입니다.”

그렇게 운을 뗀 정병진씨는 멋쟁이 하경혜 지점토공예가에게 매료된 김형호 구청장이 전시회 날 상당한 금액의 대작을

구매하고 싶지만 예산사정이 안 되니 어떻게든 실무진인 문화관광과에서 해결을 해보라는 뜻이니 아무튼 오늘 방문 시에 작가의 미모나 작품의 예술성에 너무 혹하지 말고 전시회 날에도 예산계나 경리계와 갈등할 정도가 아닌 그저 체면치레의 소품을 구입하자는 단단한 다짐을 받고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마을 어귀에 차를 세우고 감나무가 서있는 구불텅한 골목길을 돌아 한참이나 들어가니 옛 농가의 삽짝에 <하경혜지점토공예장>이라는 세로로 된 표시판이 붙은 제법 넓은 집이 나타났다. 사십대 중반, 키가 늘씬하고 걸음걸이가 능수버들처럼 치렁치렁 멋이 배인 하경혜씨가 아주 친근하고 소탈한 웃음으로 그들을 맞았다.

이렇게 생소하고 특이한 예술장르가 있고 또 이렇게 대단한 미모의 작가를 만나서 영광이라는 말에 진작부터 시인으로 알고 있는 과장님께서 이 외진 곳의 누옥으로 찾아오셔서 자신이 더욱 영광이라는 낯간지러운 인사말을 나누는데

“안녕하세요? 정 주사님. 오랜만입니다. 아마도 옆에 계신분이 과장님인 모양이지요.”

서른 남짓쯤 보이는 키가 작고 오동통한 여자하나가 김이 펄펄 나는 차 주전자를 들고 와 통나무테이블 위에 놓고 작설차를 끓이는데 자세히 보니 보수동 고서적상의 딸 사향아씨였다.

“구팔칠씨, 당신도 이리 와서 우리의 선배이자 시인 문화관광과장님께 인사드려요.”

부엌 쪽으로 소리치자

“안녕하세요? 선배님, 동아대미술과를 나온 후배 구팔칠입니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가열찬입니다.”

“저는 사향아이고요.”

엉겁결에 셋이 인사를 나누는데 옆자리의 정병진씨가 둘이 미술과의 동급생이며 구팔칠씨는 동양화를 전공하고 사향아씨는 그림보다는 보수동헌책방을 경영하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고서에 관심이 많다고 소개했다. 언젠가 이런저런 사람들이 구청장실에 자주 드나들고 경우에 따라 작품구입비가 들지도 모른다고 설명을 들은 기억이 났다.

 

차를 마시고 일단 작품을 둘러보는데 재료만 다르지 분위기는 대체로 김영희의 닥종이공예와 비슷했다.

 

※ 이 글은 故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