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 바다축제, 사라진 마이크③
그렇게 고생한다고 타부서 직원들이 문화관광과에서 수고가 많다고 치사를 하기보다는 승진대상에 포함되는 과계장을 중심으로 아직 초임과장인 이과장이 천둥벌거숭이처럼 남의 업무를 가로채 자신의 고과점수만 따려한다고 오히려 앙앙불락 불만을 토로하여 경우에 따라서는 고생만 실컷 한 문화관광과 직원들이 동료사회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경우까지 있는 것이었다.
“5일 개최되는 송도바다축제에는 만장에 성황을 이루어 1, 2사장 전체의 분위기가 붕붕 뜨게 해보겠습니다. 청장님!”
“알겠네.”
마침 시청에서 담당국장이 나오는 바람에 영접 차 구청장이 황급히 떠나는 바람에 열찬씨는 일단 자리를 모면하나 싶었는데
“가과장, 개장식 때는 확실히 하게. 내 가과장의 실력이 어디까진지 유심히 보겠네!”
1호차가 떠나는 순간 창문을 연 구청장이 커다랗게 소리치고 떠나버리자 열찬씨와 문화계장, 담당 세 사람의 망막에는 이지적이고 냉혹한 구청장의 노란 안경의 잔상이 오랫동안 어른거렸다.
어쨌거나 고생한 문화장터회장단과 풍물패에 점심을 대접하고 오후 4시에 문화관광과 계장주무회의를 열기로 미리 연락해 평소 말이 없고 업무에 소극적이면서 고스톱이나 빠찡고에는 일가견이 있어 외근을 빌미로 좀 체로 자리에 붙어있지 않는 광고계 박모주무까지 소집해 7명이 원탁회의를 하여 코앞에 닥친 송도바다축제 인원동원과 분위기 조성을 의논하는데
“자, 직책이나 업무소관과 관계없이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이야기해보세요. 기막힌 아이디어가 나온다면 내 신불산 밑에 조상 답을 팔아서라도 단둘이 포장마차로 직행하리다!”
땅 한 뼘, 그야말로 등허리에 송곳하나 꽃을 곳도 없는 언양땅을 들먹이며 아이디어를 채근하는데
“우선 기존의 틀에서 포맷을 완전히 바꿔야 합니다. 제가 알기로 서구에서 축제를 시작한 이후 해마다 이미 이용객이 없어 거의 사라진 옛 송도의 명물 바나나보트 젓기 대회와 남녀별 씨름, 여자들의 투호놀이를 천편일률적으로 진행했는데 먼저 바나나보트는 서구청이나 송도의 입장에서는 추억이지만 현대의 젊은이에겐 생소하기도 하지만 그들이 영화나 TV에서 보는 야자수가 우거진 낭만적인 열대의 바닷가에서 젊은 연인들이 타는 보트에 비해 너무나 촌스럽기 때문에 아예 눈길조차 가지 않지요.
또 씨름도 이만기 이후로 엄청난 힘과 기량을 선보이는 천하장사 프로씨름을 보다가 동별로 새마을지도자나 부녀회원들이 동네 조무래기들 장난처럼 금방금방 쓰러지니 스릴이 하나도 없지요.
거기다 그 투호라는 것도 고궁이나 양반가의 후원에서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아낙들이 낭창낭창 던지는 민속적 분위기가 나야 제 맛인데 사방이 탁 트이고 수많은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난장 같은 모래판에서 추리닝을 입은 여자는 물론 남자들까지 무슨 야구공 던지듯 하니 어울릴 수가 없지요. 좌우지간 기존 포맷을 모두 바꾸어야 합니다.”
모처럼 입을 뗀 장수환공보과장이 그간 느낀 바가 많은 듯 장황하게 이야기하자
“그 말이 내 말일세. 나도 서구 전입 이후 늘 그런 느낌을 받았지. 그렇지만 그 모든 프로그램을 단번에 없애기도 어렵고 대체 프로그램을 찾기도 그렇고...”
미간을 찌푸리는데
“과장님, 새로운 사업은 아이디어가 문제가 아니고 예산이 문제지요. 당장 사용할 돈이 없는데 무슨 뾰족한 대책이 있습니까?”
머리를 푹 숙이고 열심히 메모를 하던 고명석 문화계장이 필기를 멈추고 올려다보았다 일순 분위기가 얼어붙으며 한참이나 침묵이 흐르는데
“그렇다고 돈타령이나 하며 새로운 변화도 없이 천편일율 답습만 할 수도 없고...‘
열찬씨의 중얼거림을 자르며
“과장님!”
자그맣고 다부진 체구에 매사에 똑 부러지는 박기도 공보계주임이 눈을 반짝이며
“추억의 송도, 송도의 옛 명성을 되찾는 것이 바로 전국 최초의 해수욕장으로 6.25때 수많은 피난민들이 잠깐 가쁜 숨을 돌리며 향수를 달래고 70년대 초반 대규모 관광호텔들이 나오기 전까지 전국 최대의 신혼여행지로서 아련한 추억이 쌓인 송도의 명물 송림공원과 거북섬 간의 송도케이블카와 출렁다리, 다이빙대, 연인들이 칸막이 뒤에서 슬쩍슬쩍 입맞춤을 하던 포장유선과 바나나보트 등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이 추억이 가득한 장면들을 거북섬에서 송림공원에 오르는 길과 계단에 사진으로 전시하는 것입니다. 우리 과 사진기사 김종현씨가 소장한 것은 물론 그간 구정화보를 출판했던 인쇄소에 부탁하면 사진원본이 있을 것입니다.”
자신 있게 말했다.
“그것 참 좋은 생각이요. 그리 많은 예산이나 강제인원동원도 필요하지 않고.”
말하면서 열찬씨가 고명석 주무계장을 흘낏 보는데
“과장님, 그 정도 사업이면 무난히 추진된 것 같습니다. 단 자료수집에 시간이 좀 촉박하기는 하지만.”
아주 긍정적 발언에 모처럼 필기를 중단하고 고개를 든 정병진 주임의 눈빛도 번쩍하는 지라
“그럼 일단 채택하기로 하고, 그런데 장수환 계장님, 시간이 촉박하다는데 그래도 자신 있습니까?”
“예. 저하고 박주임, 김종현씨 하고 셋이서 오늘부터 밤을 새워서라도 차질 없이 추진하겠습니다.”
하고는 종현씨, 종현씨를 외치며 기자실로 달려가 한참 뒤에 돌아오며
“종현씨말로 내일 출판사에 들리면 자료는 거의 찾아지고 패널제작과 부착에 시간이 좀 걸린답니다.”
간단히 한 건을 확정 짓는데
“과장님!”
필기에 열중하던 정병진씨가
“이건 제가 담당으로 오래 고민하던 사항인데 요즘의 축제는 무엇보다도 젊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야 하고 그렇게 붕붕 뜨는 활기찬 분위기를 만들어야 중년이나 노년들도 자신도 아직 늙지 않았다는 기분으로 참석도 하고 어울리기도 할 것입니다. 그래서 가장 손쉬운 방법은 요즘 유행하는 여자아이돌 그룹 원더걸스를 불러오거나 맨발의 디바 이은미나 미사리의 황제 박강성 같은 카리스마가 넘치는 라이브가수의 통기타나 열창으로 관중을 압도하는 방법이 있겠습니다만 워낙 출연료가 비싸고 일정이 촉박해 내년에나 한번 추진해보기로 하고 그 차선책으로...”
“차선책으로?”
좋다만 표정으로 모두들 바라보는데
“젊은이들이나 아이들이 참석할 운동경기랄까 그 뭐 요즘 유행하는 머드축제, 즉 갯벌이 많은 서해안의 해수욕장에서 벌이는 펄 목욕, 펄 마사지를 원용해 우리는 백사장에 대형 황토풀장을 만들고 거기에서 밀어내기 레슬링이나 씨름을 붙이면 아이들과 청장년들, 특히 외국인들의 참여가 높을 겁니다.”
“야, 그거 좋은데!”
모두들 탄성을 지르는데
“설치비용이 만만치 않을 텐데?”
또 고명석계장이 돈 문제를 들고 나오는데
“아닙니다. 요즘 어린이들이 많이 가는 공원처럼 인공 풀장을 만드는 대형 고무, 아니 비닐튜브에 황토 흙만 채우면 되는 것이라 이벤트사에 연락하면 금방 설치될 것입니다.”
결국 전부터 하던 사업은 그대로 존속하되 <추억의 송도사진전>과 <황토풀장>을 추가하기로 결론이 났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사업을 계별로 내 업무, 니 업무 따져서는 안 될 것이요. 모두를 우리 과, 이 이열찬 과장의 업무로 생각하고 전 직원이 일치단결하여야 될 것이요. 참, 그리고...”
열찬씨가 말을 끊자 또 무슨 사안이 있는지 모두들 엉거주춤 자리에 앉는데
“잠깐, 과장님!”
행사장에 사진을 찍으러갔던 촬영기사 김종현씨가 카메라를 둘러매고 들어오더니
“제가 기자실에서 잠깐 들었는데 작년 우리 고향 남해 상주해수욕장에서 보고 느낀 것 몇 가지만 말씀드리지요. 우선 초등학생들을 상대로 바다그림그리기대회를 하는데 반응이 좋더군요. 또 누구나 백사장에만 오면 하고 싶은 모래장난과 집짓기의 본능을 활용한 가족단위 모래공작만들기를 해서 약간의 기념품을 주는 방법도 있고 풍선공예기술자를 데려와 아이들 앞에서 달과 별은 물론 여러 가지 동물모양을 만들어 보이다가 마지막엔 선물로 주는 것도 아이들을 유치하기에 좋지요. 요즘은 핵가족시대라 아이들만 유치하면 자동적으로 젊은 부모들이 따라오니 관객유치에 그만한 방법도 없지요. 또 그런 가족들을 상대로 백사장 위에서 경쾌한 춤을 곁들인 마임공연도 하고요.”
“아, 그래요? 괜찮아 보이는데.”
열찬씨가 반가운 반응을 보이자
“우리 종현씨가 새천년에 들어서 처음으로 좋은 말을 한 번 하는구먼.”
“남해 설천면에 인물 났네, 인물 났어.”
이미 마흔이 넘은 노총각으로 밤늦도록 마시는 술과 잦은 지각, 잘 씻지 않아 늘 덥수룩한 얼굴에 자주 아침을 굶는 불규칙적인 생활로 직원들의 눈에 늘 걱정스럽게 보이던 사람의 뜻밖의 발언에 같은 계 장수환 계장과 박기도 주임이 대견해 하는데
“좋긴 좋은데 이 역시 만만찮게 돈이 들 텐데...”
흘깃 문화계장을 바라보는 열찬씨에게
“과장님, 바다그림그리기와 모래공작은 서구문화회 미술분과에 부탁하면 큰돈이 들지 않을 것이고 완월동 골목에 충무동에 연극도 하고 마임도 하는 작은 소극장을 운영하는 친구를 제가 아는데 아마 제가 부탁해서 일당 정도만 주면 될 것 같습니다. 단지 풍선공예기술자를 불러오는 것이 좀 문제인 것 같기는 하지만 어차피 황토풀장을 운영할 이벤트업자에게 일괄 부탁하면 어려움이 없을 것입니다.”
귀를 쫑긋 세우고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받아 적느라고 정신이 없던 정병진씨가 고래를 들고 말하는데
“자, 그렇다면 우리 고명석 문화계장의 생각은?”
“어차피 힘든 행사, 예산이 모자라면 모자라는 재미로 밀어붙인다는 심정으로 난관을 돌파하기로 하고 일단 수용하기로 하지요. 송도해수욕장번영회에 부탁도 해보고 아니면 유엔호텔이나 송도공원 같은 큰 업체를 스폰서로 끌어들여 보기도 하고요.”
“그럼 일단 김종현씨의 아이디어도 모두 채택하는 것으로 합시다.”
마무리를 짓던 열찬씨가
“이 모든 사업을 서구민은 물론 시민들에게 널리 알려야하는데 장수환 공보계장은 각종 언론, 특히 부산일보에 대문짝만 하게 보도할 자신이 있습니까?”
똑바로 바라보자 순간 흠칫하던 장 계장이
“예, 과장님. 과장님이 신불산 조상 답을 팔아오듯 저도 마산 앞 바다 작은 섬을 팔아서라도 반드시 추진하겠습니다.”
모두 와아, 웃는데
“참, 진미덕 서무님. 오늘 3/4분기 업무추진비가 자금배정되었는지 모르겠네? 오늘 같은 날 우리 과회식이나 한 번 하게.”
“예, 과장님 아무 걱정 마십시오. 당장 횟집에 연락을 할까요? 삼겹살집으로 할까요?”
※ 이 글은 故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